이 해 이디 아민이 쿠테타로 우간다의 정권을 장악했다. 쿠테타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한국에서는 비밀리에 훈련 중이던 북파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로 돌진하는 실미도 사건이 벌어졌다. 이 해 대선이 치뤄져 박장희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12월에는 서울 중구 충무로 대연각 호텔에서 화재가 나 21층 빌딩이 불탔다. 서울 지하철 공사가 시작된 것도 이 해였다. 지하철 개통은 1974년이었다.
이 해 남진이 없는 가요계에서 나훈아가 인기를 독차지하는데 <머나먼 고향>을 발표하고 김상진의 <고향아줌마> 등과 고향노래 신드롬을 일으켰다.
또 펄시스터즈의 <첫사랑>, 김추자의 TV드라마 주제곡< 님은 먼곳에>가 히트했다. 월남전이 치열해져 가며 이 노래는 훗날 이준익 감독이 1971년을 배경으로 한 월남전 소재의 영화 제목으로 차용된다.
TV드라마로는 MBC의 <수사반장> 이 방송되며 인기를 끌었다.
한국영화는 이성구 감독의 <춘향전>, 김기영 감독의 <화녀>, 신성일 감독의 <연애교실>,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 대완결편>이 개봉되었다. 그외 신상옥 감독, 신영균, 윤정희 주연의 <평양폭격대>, 유현목 감독은 <분례기>를 만들었고 변장호 감독은 <명동잔혹사>, <상해의 불나비>, 이만희 감독은 <쇠사슬을 끊어라>를 감독했다.
외화로는 검열에 부딪쳐 개봉이 미루어진 <졸업>이 뒤늦게 개봉되었다. 새로운 연출기법으로 촬영, 편집되어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아더 힐러 감독, 라이언 오닐, 알리 맥그로우 주연의 <러브 스토리>는 이해 최고의 흥행작이다. 그외 더스틴 호프만의 <작은 거인>도 개봉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해에 <대결>을 감독했다.
홍콩에서는 그야말로 흥행 신기록을 남긴 이소룡의 <당산대형>이 개봉되었다. 홍콩 뿐이 아니라 동남아의 화교들을 흥분시킨 영화로 한국에서도 개봉 예정이었으나 이소룡이 생소한 배우라서 장철 감독의 <권격>이 수입되었다. 장철은 이해 <복수(보구)>의 후속편 격인 <대결투>, <쌍협>을 감독했다.
이 해에는 다양한 홍콩영화가 개봉되었다. 나진 감독의 <왕우의 혈투>를 시작으로 장증택 감독의 <노객과도객>, 서증굉 감독, 정패패의 <여걸 비호>, 이문 감독, 이려화의 <해당화>, 이노우에 우메츠구 감독, 이청의 <화월춘야>, 오가양 감독, 이청의 <더 러브>, 야마구치 테츠야, 미치요시 도이 공동감독, 진홍렬, 정리의 <속 봉신방>, 장철 감독의 <권격> 등이다.
나는 광희중학교를 졸업하며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안양예고로의 진학을 꿈꾸던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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