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1933년과 36년 이때에 이 전라도 지역에 엄청난 수해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라남도에서만 그때 십만 명이 이재민이 나가지고 이 만주로 이주로 갔다는 그런 동아일보 기사를 제가 확인 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번 수해 구제 때 공은 자기 식량 전부를 이재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공(空)은 눈물로서 이재민을 동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너무나 공(空)의 뜻에 감격하여 그를 위하여 자선 비를 만들어 세운일이 있었다. 공(空)이 이 소문을 듣고 자기를 위하여 세운 자선 비 앞에 가서 벌 벌 떨며 울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구제하였다고 칭송 받으려는 그가 아니다. 그는 이것이 너무 황공스러워 마음이 괴로웠던 것이다. 인간에게 감사할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사람에게 예찬하는 것은 무엇보다 심하다고 말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공이 너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그 자선 비를 뽑아 없이 하였다고 한다. 공(空)은 때를 따라 교회 예배에 참석한다. 그러나 교회 절차를 따라 제도의 구속을 받으려 하지 아니한다. 예배는 순종이다 순종하는 삶을 탐구하고 묵상하는 것이 곧 예배이다. 그는 이렇게 청교도적인 자유주의를 취한다. 그러나 그는 교회나 예배 형식을 반대하지 아니한다. 다만 어떤 형식을 갖춘 것만이 예배가 아니요. 어떤 일정한 형식을 통하여서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주장한다. 안식일은 일주일간의 생활을 검사받는 날이다. 우리 생명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날이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생활을 한 사람에게는 가장 기쁜 날이요. 순종치 아니한 사람에게는 가장 괴로운 날이라고 한다. 공(空)은 주일이면 혹 교회 주일 집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혹 전도나 구제하러 나가기도 하고 혹 혼자 산으로 올라가 명상하기도 한다. 그는 한번 어느 사경회에 참석하여 본 다음에 여기서 하나님은 나타나지 아니하고 사람만이 서로 자기를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낙심하였다고 말하였다. 공(空)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실행제일 주의를 그날, 그날 흠 없이 살려고 힘쓴다. 만사에 시비를 당하지 아니하려고 아니하도록 하라는 성경 말씀이 그의 생활표어와 같이 되어있다. 그리스도인이 물질을 잘못 씀으로 세상 사람이 시비를 많이 당한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이기고 이 세상을 이겨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소리는 많으나 빛이 없다. 교역자 자신이 먼저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는 것 보다 더 큰 배신은 없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만 살아야 된다. 공은 성경을 거 진 외우다시피 잘 알았다. 무슨 말을 하든지 성경 말씀을 인용하였다. 그의 성경 해석에는 너무나 상징적인 것도 없지 아니하고 세밀한 잡기에 억매여 대의에 어그러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아무에게도 지도를 받지 아니하고 단독으로 받은 영감이 비범한 것은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학자가 아니다. 성경의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는 신학자가 아니다. 신학 상 이론으로 공의 박식을 비웃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는 설교가도 아니요. 정책가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요. 정책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를 경외하는 것이다. 성경을 학문으로 배우려고 하지 아니하고 신학을 이론으로 꾸미려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는 것이다. 그가 받은 영감을 누가 부인하랴. 그가 그의 엄숙한 신앙을 누가 거역하랴. 공의 얼굴은 창백하나 눈에는 밝은 빛이 비추이고 그의 눈은 초췌하나 영은 산기운이 있다. 기자는 (정 경옥 자신입니다.) 기자는 길거리에서 그와 손목을 나누었다. 그는 걸인이라고 밖에 더 볼 수가 없다. 구멍 뚫린 모자 누더기 베옷 헤어진 고무신 모두가 거지보다 나을 것이 없다. 공은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뚜벅뚜벅 힘을 들여 내게 말하였다. 자기는 기억력이 부족하여서 한번 본 사람을 어디서 다시 만나더라도 무심히 지나치는 때가 많으니 언제든지 다시 만나거든 먼저 아는체 하여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을 구하고 친구를 찾는다. 공은 의지의 사람이면서 정의의 인물이다. 그러나 이 거칠고 쓸쓸한 세상에서 공(空)의 친구가 되어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길모퉁이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었다. 신앙은 고독이오니 성자의 길은 외로울 진저.’
결국 이 세종 선생을 만난 게 성경 읽는 것과 같이 어울리면서 정 경옥 선생이 위기를 탈출하고 나를 발견하고 예수를 재발견하면서 고갈되었던 영성의 샘이 다시 뚫리는 그 과정이 아마 이 사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그가 성경을 읽으면서 다시 예수를 발견했는데 그 예수의 화신이 결국은 이 공(空) 선생으로 그것이 중첩이 되면서 바로 살아서 움직이는 예수의 모습을 결국 이 공(空) 선생님에게서 봤기 때문에 이분이 1938년도 평양에 올라가서 그는 이렇게 살았다. 그 내용은 알고 보면 이 공 선생님 이름은 한 번도 밝히지 않았지만 구유의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의 예수에 이르기까지 결국 이 공선생의 삶의 모습 그게 바로 제일 첫 장이 현대와 기독인데 여기서 이야기 하는 건 뭐냐 하면 과거 2천 년 전의 예수가 아닙니다. 오늘 지금 당장 이 조선 반도에 예수가 바로 예수입니다. 이걸 이야기 한 거거든요. 그게 바로 이 세종 선생을 은밀하게 소개한 거고,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살았다는 제목으로 붙인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구체적으로 곤고의 기독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제일 마지막 장에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는데 제일 앞서서 고독의 그리스도 이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고독해야 된다. 이 시대는 고독하지 않고서는 참 도를 구할 수 없다. 이게 정 경옥 선생의 결론입니다. 고독 하지 않고 어떻게 도를 참 도를 깨달았다고 하겠는가? 사람들에게 박수 받고 명예 훈장 받고 뭐 이 박수 받는 그거는 자기가 보기에는 참 도가 아니다. 그러니까 참 도를 찾는 자는 고독해야 되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하면서 고독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곤고의 그리스도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름은 밝히지 않지만 이 공(空) 선생님을 다시 한 번 그는 이렇게 살았다는 책에서 소개합니다. 그 부분을 한번 또 읽겠습니다. 52쪽입니다. ‘남한지방 화순이라는 곳에 이상한 사람이 한분 계신다. 그는 학식도 지위도 없는 산골에 사는 농부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운 후로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인고를 즐겁게 받고 있다. 그는 음식을 먹어도 사람이 차마 먹지 못할 것을 먹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드려보아도 결단코 먹지 아니한다. 그는 불쌍한 거지나 어려운 생활들을 하는 빈민들을 생각하면 부드러운 밥이나 맛있는 반찬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잘 때에 이불을 덮어도 몸을 절반만 가리고 잔다. 왜 다 덮지 않느냐고 물으면 추운 때 잘 곳이 없이 길가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차마 이불을 끌어 덮기 어려워 손이 떨린다고 한다. 우리는 그의 미숙한 사상이나 독단적인 이론을 반박할 수도 있고 그의 기괴한 생활형식을 배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이단인지 정통인지 그것조차 심판하여 보려고 하지도 아니하였다. 나는 다만 그의 순진한 사랑과 그리스도의 곤고를 본받아 실천하여 보려는 열성만을 존경하고 사표로 삼고 싶은 것이다.’
사표라는 말을 여기서 썼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공(空) 선생이 결국은 그는 이렇게 살았다고 하는 거기서 정 경옥 선생이 소개하려고 하는 예수님 그 구체적인 오늘의 모습으로 이 공(空) 선생님을 소개를 한 거지요. 1937년 7월에 이 두 분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두 분이 더 만났는지는 확인을 못했어요. 그러나 이미 두 분의 만남으로 더 이상의 만남은 의미가 없지요. 이미 영맥(靈脈)이 통했기 때문에 한번 아브라함의 우물을 다시 파가지고 이 샘 줄기를 찾았던 이삭이기 때문에 이제는 어디 가서 우물을 파던 거기서 샘이 솟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 공(空) 선생님과 만나서 고갈되었던 영성의 우물에 다시 샘이 솟아나니까 이분은 이제 그 후로 이 공(空) 선생 다시 안 만나도 스스로 자기 우물에서 자기 물을 길어 마실 수 있는 그런 영생의 샘을 정 경옥선생도 확보한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