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곡 토마스 아퀴나스의 프란체스카에 대한 이야기
오, 필멸성의 무분별한 도로여!
날개를 내리쳐서 스스로 추락하는
인간들의 추론은 얼마나 헛된가!
물질만 추구하고 정신의 목표는 외면하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철학자는 이익 때문에 지혜를 가까이하고 법률가, 의사, 성직자, 위정자들은 세속적이 욕망을 추구하는 때
그럴 때, 나는 이런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베아트리체와 함께 하늘에서
이렇게 황송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빛들은 춤을 추던 곳으로 돌아가서 곧게 서 있었습니다.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휘황한 빛(토마스아퀴나스)에서 다른 얘기들이 들려왔습니다.
그분의 빛을 받아서 내가 빛나듯이,
영원한 빛을 바라보면 당신의 생각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게 됩니다.
당신은 좀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명료한 말로 나의 설명을 듣고 싶겠지요.
아까 ‘모두가 살찔 수 있’ 는 곳(10곡 96행)을 말했고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10곡 114행)고 말했는데 그때 이미 분명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깊은 지혜로 주관하시는 섭리는
커다랗게 울부짖으며 축복받은 피를
흘려 맞아들인 그분의 신부(교회)가
그녀의 사랑하는 그분께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녀 스스로 더 확신을 갖고 그분께 더 충실하고자,
두 고귀한 왕자들이 길잡이로 봉사하게 하면서
이곳저곳에서 그녀를 돕도록 했다오.
두 고귀한 왕자는 도미니쿠스파(지혜의 존재)와 프란체스코파(사랑의 존재)를 가리킵니다. 프란체스코파는 천사들의 자장 높은 위계인 세라핌의 사랑으로 상징됩니다. 세라핌은 천사들의 가장 높은 위계로 하느님께 바치는 가장 위대한 사랑의 상징입니다.
도미니크파는 케루빔과 어울립니다. 케루빔은 두 번째로 높은 천사들의 위계로 지혜의 상징입니다. 그 둘은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했기에 하나인 성프란치스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고 합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아시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청빈을 사랑하고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세속의 부와 안락을 버리고 청빈을 사랑하여 아버지의 분노를 샀습니다. 프란체스코가 스물세 살이 되던 봄에 그는 살 다미아노 교회를 보수하기 위해 말 한 필과 여러 벌의 옷을 팔았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주교 앞에 데려가 상속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옷을 벗어 아버지에게 주며 세속의 모든 부와 안락을 버리고 청빈을 실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프란체스코의 청빈의 사랑과 청빈의 삶이 참 잘 어울리는 아시시입니다.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 아시시입니다.
아시시는 아름다운 풍경과 예쁜 성당들이 많고, 그리고 골목들이 참 예쁩니다.
아시시 풍경, 우리가 갔을 때는 가을이었습니다
아시시 풍경
성 프란체스코 성당, 여기는 본층이고 계단 아래 하부 성당이 있습니다.
저녁 노을의 프란체스코 성당
잔디밭 위의 말을 탄 성 프란체스카
하부성당 앞 광장, 앞 쪽에 하부 성당 입구
하부 성당의 회랑과 회랑넘어 아시시 전원 풍경이 어찌나 예쁜지!
존경스러운 베르나르도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그분을 따라 사선 첫 번째 사람이었는데,
달리면서도 꾸물거리는 듯 보였다고만 하지요.
그를 따른 베르나르도는 아시시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프란체스코를 섬겼고 에디지오, 실베스트로도 그를 따라 나섭니다. 그들은 스승인 프란체스코와 함께 초라한 끈으로 서로를 묶고 교단을 인준 받으러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에게 갔습니다.
프란체스코의 단호한 의지에 인노켄티우스 교황은 인준을 주었고 호노리우스 3세 교황에 의해 또 다시 인준 되었습니다.
그 뒤 오만한 술탄 앞에서 그리스도와 제자들에 해대 설교했으나 개종할 준비가 된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이탈리아로 돌아와 형제들을 정통 상속자로 생각하고 청빈을 사랑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 뒤 테베레 강과 아르노 상 사이의 거천 바위에서 금식을 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5상처(양손, 양팔, 옆구리)를 받았습니다.
그 수려한 영혼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자기가 선택한 청빈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다른 관을 원하지 않았소.
프란체스코는 임종 당시에도 자신의 옷을 벗겨 맨 땅에 눕혀달라고 했습니다. 죽을 때도 청빈이었습니다.
프란시스의 일생을 찬양한 뒤 성, 토마스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현재 상태를 개탄합니다.
이제 성 베드로의 배(교회)를 타고 먼 바다에서
똑바로 길을 잡고 있는 이 키잡이 동료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생각해 보시오.
이 키잡이 동료는 도미니코 수도회 창시자입니다. 배에 실은 짐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그의 양 떼는 더 많은 풀에 욕심을 부려서 낯선 숲으로 마구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명예와 재물,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쫒아가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내 말이 너무 모호하지 않았다면, 또 내 말들을 당신이 잘 기억한다면,
이제 당신의 소망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오.
그래서 나무가 어떻게 갈라져 나가는지 볼 것이며,
‘길만 잃지 않으면 모두가 살찔 수 있다’. 라는 말에
‘길만 잃지 않으면 모두가 살찔 수 있다.'라는 말은 자신들이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탐닉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길만 잃지 않으면 모두가 살찔 수 있다’. 라는 말에
‘왜 내가 무게를 두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당부로 끝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