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출 되기 / 최미숙
큰아들이 가정을 이룬지 2년 만에 아기를 낳았다. 나이가 예순이 넘으니 아장아장 걷는 아이만 보면 왜 그리 예쁜지 나도 그런 보물을 안아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아들 내외에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알아서 하겠거니 했는데 기특하게도 며느리가 자식이 둘은 있어야 할 것 같다며 그렇게 계획했다는 것이다. 2세 대신 반려견을 키운 젊은 부부가 많아 은근히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요즘은 보기 드문 4남매 큰딸이라 그런지 다른 젊은 애들이랑은 생각이 달라 기특했다.
추석 전날인 9월 28일 큰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이라며 며느리가 진통을 시작했단다. 출산일이 가까워 무리하면 안 되겠기에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한 지가 며칠 전인데 덜컥 겁이 났다. 아들은 의사 선생님이 지금 낳아도 아무 문제 없고 건강하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10월 15일이 예정일인데 3주나 빨리 산기가 있어 불안했다.
추석 당일 새벽부터 음식 준비하느라 몸은 바빴지만 신경이 온통 며느리에게 가 있어 휴대폰만 쳐다봤다. 96세 시아버지는 남편을 부르더니 명절인데 손자인 큰아들이 오지 않았다며 자식을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고 아침부터 나무란다. 옆에서 도와주지 못해 속이 타 죽겠는데 저러는가 싶어 화가 났지만 몰라서 그럴 것이라 여기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기 낳으면 말하려고 병원에 들어갔단 이야기를 하지 않은 탓이다. 아들 부부가 초조해할 생각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후 세 시 20분쯤 되니 제왕절개로 몸무게 2.5 킬로그램인 아들을 낳았다는 연락이 왔다. 예정일 보다 빠른 탓에 생각보다 무게가 적게 나가긴 하지만 어쨌든 둘 다 건강하다니 안심이 됐다. 웃음이 절로 났다. 가슴이 벅차고 행복했다. 남편도 기분 좋은지 얼굴이 밝다. 큰아들은 이제 갓 세상 구경을 한 당당이(태명) 사진을 여러 장 보낸다. 추석날 보름달처럼 찾아온 손자와 귀한 선물을 준 며느리가 고마웠다.
산모와 아이는 병원에서 1주일, 산후조리원에서 2주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퇴원하는 날 오후에 큰아들은 내게 직장까지 다니며 애 셋을 어떻게 키웠냐며 고생 많았고 잘 돌봐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이 아빠가 되니 모든 게 다르게 느껴졌나 보다. 울컥했지만 다들 그렇게 부모가 된다며 도리어 좋은 가정을 이루고 자식까지 낳아 대견하다고 말해줬다.
아직 손자는 만나지 못했다. 주말에 계속 바쁘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병원 출입을 제한한다고 해 18일 큰아들 집에 가기로 했다. 나와 남편은 날마다 아이 사진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신생아치고는 코랑 눈도 크고 얼굴이 말쑥하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고 지인들도 똑같이 말한다. 벌써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는 미처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듯이 살았고, 힘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할머니가 된 지금은 사랑으로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아이를 셋이나 키웠지만 볼수록 새롭고 신기하다. 내 팔 길이만한 조그만 아기가 꼬물꼬물 움직이며 웃기도 하고, 하품도 하며 젖병을 빨며 빤히 쳐다보는 것까지 기특한 행동투성이다. 오늘도 카톡에 손자 동영상과 사진이 올라온다. 딸도 막내아들도 가족 모두 감탄사가 이어진다.
지금 일하는 학교에 교장과 나, 기간제로 있는 친구 셋이 같이 근무한다. 점심 먹고 교장실에서 차 한잔 마시는 날이면 둘이 손자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느라 바쁘다. 팔불출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지금까지는 옆에서 고개 끄덕여주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팔불출 되기 경쟁에 동참하게 됐다. 드디어 지난주, 친구 둘에게 우리 당당이 사진을 여러 장 펼치고는 침까지 튀기며 설명했다.
아기 울음소리가 귀한 세상이다. 팔불출이라고 흉을 봐도 괜찮다. 도리어 자랑스럽다. 이런 경쟁은 계속해도 되지 않을까?
첫댓글 그럼요.
그래도 제게는 돈 내고 하셔야 합니다.
하하.
당당이의 건강한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아기 울음소리를 들어본지가 언제인지 정말 오래된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런 경쟁은 계속해도 됩니다! 아이 키우는 재미로 프로그램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축하합니다. 선생님.
저희 부모님도 그렇지만, 손주가 그렇게 예쁘군요.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얼마나 예쁘고 신기할까요? 우리 큰아들 예명이 신비랍니다. 어머님이 지어 주셨어요. 자식들과 달리 너무나 신기하다고. 아마 선배님 지금 마음도 같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도 울컥하면서 읽었습니다. 선생님, 축하합니다!
손주 사랑에 푹 빠지셨네요. 다시 한 번 더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