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마가 들려주는 약수와 배수 1 이야기 >> 김화영 지음 . 자음과 모음 .
무엇인가를 써야 하는 일은 언제나 나를 곤란하게 한다 . 단 한 번도 예외는 없었다 .읽기만 하고 쓰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 나는 읽어버렸으므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 .읽기와 쓰기는 한 몸 같지만 , 둘은 전혀 별개의 행위이자 맥락도 전혀 다른 두 사건 같다 .아주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 읽기만 발견하고 멈추지 쓰기는 왜 생겼을까 ? 내게는 다른 즐거움이 없기에 이런 장난을 하고 있지만 , 결코 권하고 싶지 않다 . 독서는 가난하지만 시간은 많은 자들에게 한 번쯤 권해 볼 만한 취미다 . 읽고 쓴다고 하여 재산이 늘어날 일도 없고 , 더 ‘행복 ’해질 리도 없다 . 읽으면 ‘지혜 ’가 생기고 , 상상력이 길러지고 , 세상을 보는 안목도 생겨 성공과 행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 거짓말이다 . ‘가치 ’는 오래전에 ‘가격 ’에 자리를 내준지 오래다 . 출판사에 속지 말고 , 소위 작가라는 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이유는 오래된 습관이고, 달리 할 일이 없어서다. 책 같은 것은 세상에 무용하다.
/x ⁿ+y ⁿ=z ⁿ에서 n 이 2 보다 큰 자연수인 경우에는 이 정리를 만족하는 자연수 x,y,z 의 값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이것이 그 유명하다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고 하더라 . n=2 인 경우를 피타고라스 정리라고 한다 . x²+y²=z²은 피타고라스 정리를 대수로 옮긴 정리다 . 예를 들면 3²+4²=5²이다 . 3,4,5 를 피타고라스 수라고 한다 . 그런데 n=2 보다 큰 자연수인 경우에는 이런 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었지만 , 이런 내용들은 내게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 알지 못하기에 감동도 없지만 , 도대체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 정작 충격을 받은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를 증명한다는 문자에서다 . 내게 ‘증명한다 ’는 늘 있다를 증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다 . 늘 존재 증명이었지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 자아의 있음을 증명하고 , 신의 있음을 증명하고 , 사랑이 이 세상에 있음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 자아의 부존재를 증명하고 , 신의 없음을 증명하고 , 사랑의 부재를 증명한다는 발상은 없었던 듯 하다 .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다니 , 망치로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 1994 년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가 해결하였다고 한다 . 대단한 호기심이 생기지만 , 그러나 나는 알 길이 없다 . 알 수 없기 때문에 . 이로써 나는 내가 알지 못함을 증명하였다 .
/숫자도 완전한 숫자가 있고 친구들이 있다구요 ? 그렇습니다 수에도 특징이 존재해요 /
약수란 ? 어떤 자연수 a 가 어떤 자연수 b 로 나누어질 때 , b 를 a 의 약수라고 한다 . 8 의 약수는 1, 2, 4, 8 이다 . 배수란 ? 어떤 정수의 ‘정수 배 ’가 되는 수다 . 즉 곱한 수이다 . 4 는 2 의 배수가 된다 . 어떤 수를 1 배 , 2 배 , 3 배 ---한 수를 그 수의 배수라고 한다 . 소수란? 아무리 나누어도 1과 자신만 나오는 수다. 나에게는 모든 수는 그냥 수였다. 그런데 저자는 수가 성질이 있고, 특징이 있다고 한다. 수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을 정수론이라고 하고, 페르마는 ‘현대 정수론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그가 특히 관심을 보인 분야는 숫자이며 그 중에서도 소수라고 한다. 사람마다 성격이 있고, 성질이 있고 특징이 있는 것은 알겠지만, 수도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신선하였다. 삼각수, 사각수, 완전수, 우애수, 형상수, 부족수, 과잉수, 약수, 배수, 소수 등등. 이것들은 어떤 수의 성질을 나타낸다. 소수를 이용하여 소인수분해도 하고, 최대공약수나 최소공배수도 구한다. 수를 가지고 게임이나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수의 성질을 알면 그 수들을 통해 더 많은 패턴이나 법칙을 찾을 수 잇다. 피타고라스는 모든 것을 수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고 한다. 즉 만물은 수이다. 세상 모든 것이나 관계를 수로 나타낼 수 있다면, 사랑이나, 마음, 행복 등도 수로 나타낼 수 있으리라 본다. 수의 성질과 관계를 통해서,
수학책을 읽는 이유는, ‘증명’을 익혀보기 위해서도 있다. 또한 누군가 내게 세상사에 대해 묻는다면 아무말도 하지 않고 칠판에 공식 한 개만 딱 써놓고 침묵을 지키고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F=MA 같은 것. 상대가 어리둥절하면 ‘증명’을 해보이고 싶다. 그리고 그 증명을 가지고 다투고 싶다. 믿음과 취향과 성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개의 의견이 난립할 수밖에 없다. 백 명이 백 개의 믿음을 가지고 다양성을 주장하면 ‘다양성’일까?
첫댓글 수에 몰입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자아의 부존재를 증명하고 , 신의 없음을 증명하고 , 사랑의 부재를 증명한다/
부존재!!!! 그렇죠. 존재않음. 답없음. ^^
/읽기만 하고 쓰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 나는 읽어버렸으므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좋은 표현에서 쓰기가 생활이란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