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8회 한시 송독
용전운강경권(用前韻講經權)
(강경권유감(講經權有感) 시의 운을 차운하다)
청음 김상헌
成敗關天運(성패관천운) 성공과 실패는 천운에 달렸다지만
須看義與歸(수간의여귀) 반드시 의(義)에 맞는가를 보아야 하리
雖然反夙暮(수연반숙모) 비록 아침과 저녁이 뒤바뀐다고 해도
詎可倒裳衣(거가도상의) 어찌 치마와 저고리를 뒤바꿔 입으랴
權或賢猶誤(권혹현유오) 권도(權道)는 현인도 그르칠 수 있지만
經應衆莫違(경응중막위) 정도(正道)는 뭇사람들 어기지 못하리
寄言明理士(기언명리사) 이치에 밝은 선비에게 말하노니
造次愼衡機(조차신형기) 급할수록 저울질은 신중히 하시게나
1, 2구에서 세상만사 성공과 실패는 때로는 하늘의 운이 작용하지만, 어찌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것이 의리와 근본에 맞는가를 생각해야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쟁도 좋고 화친도 좋지만 어느 것이 근본이고 하늘의 도에 맞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타이르듯이 말한다. 그래서 3, 4구에서 결정적인 논지를 편다. 설사 아침저녁이 바뀐다 해도 어찌 치마와 저고리를 뒤바꿔 입을 수 있는가 하고 소리를 높인다. 나라에 힘이 없어 설사 전쟁에 패하더라도 당당히 대항도 해보지 않고 어찌 어버이 나라인 명나라를 배반하고 오랑캐나 다름없는 청나라와 화친을 맺는단 말인가? 길은 반드시 옳은 길만 걸어야 하는 것이니 치마와 저고리를 바꾸어 입는 것처럼 걸을 수는 없다고 나무란다.
5,6구에서 나라 경영은 때로는 성인도 임금도 잘못할 수 있으나, 의리와 근본을 지키는 것은 천리로서 세상 사람 누구도 저버릴 수 없는 절대 계율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성리학에서 경(經)은 날줄이고 근본, 이치이며 도심(道心)이다. 그에 비해 권(權)은 현실이고 말단, 사물이며 인심(人心)이다. 어느 것을 지켜야 할 것인가. 마지막 7,8구에서 똑똑한 선비 그대에게 이르노니 아무리 형세가 급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처신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역시 대못을 박는다. 김상헌다운 생각이다. 8구의 ‘조차’(造次)는 아주 위급한 상황을 말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도 깜짝하지 않은 채 지조와 의리를 굳건히 지키는 조선 선비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분이 청나라에 끌려갈 때, 연세가 71세이니 참으로 슬프고도 불행한 역사의 피해자이다. 그러나 노 대신은 끝까지 한 점 굽힘이 없었다. 떳떳하기가 오히려 추상같다. 군졸들에게 붙들려 가는 중에도 서울을 지날 때, 대궐에 남아 있는 인조 임금을 생각하며 시조를 한 수 지었으니 바로 저 유명한 ‘가노라 삼각산아’이다. 청음(淸陰)의 이러한 기개와 의리는 그 후 조선 선비와 유학자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한 몸에 받게 된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이지만 청음의 손자, 증손자 대에 소위 ‘삼수육창’(三壽六昌) 아홉 명이 출현하고 이후 역사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