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영업 손실은 시민 주머니 털어 채운다?
유가 하락 3개월 이후 반영, 이번엔 한 달도 안 채우고 가격 올려
인천 남구에 소재한 한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 1,400원 대 초반을 표시하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가 오름세로 반등하자 설 연휴 이전을 기준으로 정유사들이 일제히 기름값을 올렸다. 그러나 가격 반등보다 정유사들의 영업 손실을 메우려는 ‘꼼수’가 있다는 지적이 온/오프라인 전역에서 제기되고 있다.
[인천in]이 인천지역 중 남구 지역의 여러 주유소들을 조사한 결과 이 지역의 리터 당 휘발유 가격은 1450~1460원 선으로 나타났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Opinet)’에 지난 2월 초 1,409원 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던 가격이, 50원 이상 오르는 데에 불과 보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오피넷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전까지 등락을 거듭하던 전국 주유소의 리터 당 평균 휘발유 값이 1,800원 대를 유지하던 것은 2013년 11월경이었다.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 지난해 6월 말 혹은 7월 초 즈음부터였는데, 국내의 경우 정유사의 공급가격이 실질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초로 당시 1,800원 선이 무너졌다.
먼저 정유사들의 이번 휘발유 공급가 인상이 왜 부조리한가를 파악하려면, 국제유가와 국내 공급가 간 반영에 어느 정도 기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유가와 국내 공급가는 약 3개월여 정도 반영 기간을 두고 있다. 즉,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 휘발유 공급가 역시 그 정도 기간이 내려간 이후 하락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WTI(West Texas Intermediate)에서 나타난 배럴 당 유가가 최고점 수준이었던 106달러 선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지난해 6월 말 경이었고 정유사의 휘발유 공급가에 본격적으로 영향이 있던 때가 지난해 10월경이었는데 그것도 반영 기간에 따른 수치였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국제유가가 다시 반등을 해 인상하기 시작했을 때, 정유사는 3개월여 이후 그 인상분을 반영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가가 반등하기 시작했다 해도 그 시점에 정유사가 유통하는 휘발유는 가격이 소위 ‘바닥’이었을 때 구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 연휴를 기준으로 보인 정유사들의 휘발유 공급가 인상은 가히 ‘즉흥적’이라 할 정도로 국제유가에 민감히 반응했다. WTI가 최저점을 찍은 것이 지난 1월 28일의 44.45달러였는데 1개월도 안 돼서 공급가가 인상된 것이다. 약 3개월여 후 인상분을 반영한다 해도 정유사 입장에서 전혀 손해날 일이 아닌데다 그것이 시장 안정화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만, 정유사들이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일방적인 인상폭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시민들은 벌써부터 “내릴 때는 조금씩 내리고 올릴 때는 빨리 올리냐”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
시민 한모씨(33, 연수구)는 “휘발유를 아끼려면 나쁜 운전습관이 몸에 배면 안 된다는데, 그런 운전습관을 갖고 있지 않는 내게도 이러한 일관적이지 않은 유가 반영은 힘들 수밖에 없다”며 “국제유가가 다시 올랐다는 뉴스 나오자마자 이렇게 가격을 50원 이상 올리는 것은 시장 질서를 깨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2/20 기준 배럴 당 유가. NYMEX(뉴욕상업거래소) 기준. (출처=네이버)
2/23 기준 국내 리터 당 휘발유 공급가. 한국석유공사 Opinet 기준. (출처=네이버)
그렇다면 3개월 이후 올려도 괜찮은 상황에서 정유사들은 왜 이런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급락으로 인해 정유사들의 경영실적이 저조해지자 이를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메우려 하는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 기자가 조사해 본 바 국내 4대 정유사의 지난 해 실적은 사상 최악의 상황이었다. 경기 침체 현상에 정유사들의 가장 큰 수익인 정제 마진의 하락 등이 겹쳤고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이 시장 점유율을 이유로 공급량을 오히려 늘리면서 국제유가가 계속 하락세를 치자 이것이 정유사에게도 영향이 온 것이다.
4대 정유사 중 3개 업체는 이미 지난해 4분기에 수천억 원 대의 영업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SK이노베이션은 2,241억 원, S-OIL은 2,589억 원 수준이다. GS칼텍스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해서 무려 4,563억 원의 영업 손실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업체들은 이 여파도 성과급이나 결산배당금 등 직원들에게 돌아갈 이익이 없어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다. 정제규모가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던 현대오일뱅크만이 2천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상황.
결국 이들 정유사가 국제유가에 거의 발을 맞추다시피 공급가격을 인상한 것은 유가 반등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영 손실’을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털어내 메우려 한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다. 이미 설 연휴가 끝난 직후 네티즌들이 SNS나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이러한 의혹들을 즉각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일부 경제 전문가들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실상 자신들의 경영 결과와 책임을 시민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 전문가 A는 “차후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인상을 해도 되는 것을 갖고, 정유사들이 이렇게까지 즉각적으로 국제유가에 실시간으로 반응해 실질적인 인상 기간을 늘린 것은 사실상 ‘담합 아닌 담합’의 수준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이어 “심지어 현대오일뱅크는 이번 경영실적에서 흑자까지 냈는데도 이번 인상 움직임에 다른 정유사들과 함께 했는데 이는 담합의 좋은 증거가 될 것도 같다”고 밝혔다.
한편 4대 정유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현대오일뱅크의 경우는 주목할 만한 부분들이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다른 3곳의 정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정제 규모와 더불어 기업에서 추진했던 유종 다변화 및 고도화 비율 상승 전략 등이 맞아떨어져 이같은 흑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이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 전문가 A는 “현대오일뱅크가 뚜렷하게 흑자를 냈다기보다는 적자 요인을 줄인 것이 더 주효했다고 보는 게 맞을 텐데, 상대적으로 정제규모가 적기 때문에 국제유가에도 영향을 그만큼 덜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3곳의 대형 정유사들이 모두 하루에 60만 배럴 이상을 정제하고 SK의 경우 100만 배럴 이상까지 정제하는 상황에서 수천 억대의 분기별 적자가 났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들 정유사들의 정제 규모를 정부가 억제하고 그 억제된 양만큼 다른 사업자들에게 내주거나 하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독점에 가까운 형태를 원하는 정유사들의 반발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인천 남구 소재 국내 대형 정유사가 직영하는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 1,400원대 중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