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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인 신앙뿌리 깊이내려 하늘에 보물(賞)쌓는 해(後)⇨❀
신약(바울) ☆(牧會書信)
딤전5:1-25절) 아름다운 관계
Ⅱ.교회의 구제(救濟)(중)
초대 교회는 처음부터 교회 안에서 어려운 자들을 위해 헌금(獻金)하고, 양식(糧食)을 나눠주고, 구제(救濟)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대 교회도 과부(寡婦)들을 구제(救濟)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구제(救濟)가 교회 안에서는 계속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편지(便紙)를 보낼 때는 이미 과부(寡婦)에 대한 구제(救濟)가 정착(定着)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 과부(寡婦)나 늙은이라 해서, 아무나 구제(救濟)하는 것이 아니라, 엄격(嚴格)한 선(線)을 그어서 정말 구제(救濟)할 가치(價値)가 있는 사람들만 구제(救濟)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3절)참 과부(寡婦)인 과부(寡婦)를 존대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부(寡婦)면. 과부(寡婦)지, 참과부(寡婦)가 있고, 엉터리 과부(寡婦)가 있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聖經)은 참과부(寡婦)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寡婦)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5:5절)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그러므로 참과부(寡婦)란 남편만 죽었다고 참과부(寡婦)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오직 하나님께 소망(所望)을 두고, 주야(晝夜)로 기도하면서, 남은 열정(熱情)을 다 쏟는 과부(寡婦)가 참과부(寡婦)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평소에도 교회에서 봉사(奉事)와 선(善)한 일에 최선을 다해 수고하고, 결혼(結婚)생활에도 흠없는 사람인데, 늙어서 교회 앞에 약속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일은 일체 하지 않고',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남은 평생을 바치겠다'고 서약(誓約)하면, 교회 명부(名簿)에 올려서 참과부로써 인정(認定)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여전도사(女傳道師)나 전도인(傳道人)같은 삶을 산 사람 중에서도 남은 삶을 온전히 기도에 바칠 사람만 참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었다 해서 교회가 다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5:4절)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그리고
노인(老人)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교회가 모든 노인(老人)들을 다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부모를 모시는 문제는 그의 자녀가 책임을 지고, 효도를 하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라'는 것입니다.
5:8절)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여기서 *자기 친족'이란 부모나 조부모 혹은 자기 형제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직계 가족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은 인륜(人倫)에서 어긋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이 너무 악해져서 자녀들이 자기 부모도 모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장성(長成)한 자녀들은 마땅히 자기 부모를 책임져야 합니다.
당시 늙은 과부(寡婦)인데도 향락(享樂)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5:6절)향락(享樂)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아마 이 늙은 과부(寡婦)는 기도는 하지 않고, 이집 저집 놀러 다니는 과부(寡婦)였던 것 같습니다. 즉 할 일도 없고, 어떻게 하면, 하루를 때울까? 하는 마음으로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는 늙은 과부(寡婦)들에 대한 심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아예 산 짐승 취급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늙었으면, 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인가 가치(價値)있는 것을 남겨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놀기만 하는 사람은 *살 가치(價値)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인(老人)들에게 주는 경고(警告)입니다. 그래서 늙으면 *아! 기도를 많이 해야 겠구나'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로당(敬老堂)같은데 가서 화투나 치면서 하루를 보내거나, 노인(老人)들끼리 모여서 장기나 두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뜻입니다.
5:16절)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
참과부(寡婦)가 있을 때는 *가족이나 친척이 책임을 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굳이 과부(寡婦)가 아니라도 정신적(精神的)으로 우울증(憂鬱症)이 심하거나, 혹은 무슨 병에 걸렸을 때는 *그의 집에 알려서 식구들로부터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가족들이 무책임하면, 교회는 교회대로 욕(辱)을 먹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젊은 과부(寡婦)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批判的)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11-15절)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젊은 과부(寡婦)가 된 여자들이 집안이나, 자녀 양육을 위해 재혼(再婚)하지 않고, 수절(守節)하는 경우가 미덕(美德)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특히 자녀들 문제(問題)때문에 재혼(再婚)을 포기하거나, 혹은 아이가 있는 과부(寡婦)와 결혼(結婚)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당시 문화와 우리 문화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당시 문화는 과부 (寡婦)가 재혼(再婚)하는 데는 전혀 문제(問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맹렬(猛烈)하게 비난(非難)하는 대상(對象)은 젊은 과부(寡婦)로써 참과부(寡婦) 명부(名簿) 에 오른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어떤 여자는 *자신의 남은 평생을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기도에 바치겠다'고 서약(誓約)해 놓고, 혼처(婚處)가 생기면, 그 서약(誓約)을 버리고, 재혼(再婚)하는 예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심지어는 *처음 믿음을 저버렸다'는 것을 보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結婚)하고, 어떤 경우는 자기 신앙(信仰)까지도 모두 다 팔아먹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재혼(再婚)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게을러서 교회에서 주는 것으로 먹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헛소리나 하는 과부(寡婦)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自身)의 경험(經驗)을 통해서 젊은 참과부(寡婦)는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녀(處女) 신앙(信仰)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사도 바울은 *젊은 과부(寡婦) 신앙(信仰)은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이 제한(制限)을 60세로 못 박아서, *아예 젊은 참과부(寡婦) 제도(制度)는 없애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젊은 과부(寡婦)든, 늙은 과부(寡婦)든, 제도(制度)가 없어서 상관이 없지만,이 당시는 아주 예민(銳敏)한 문제(問題)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젊은 과부(寡婦)에게는 교회의 일 하기 보다는 결혼(結婚)을 권(勸)하고 있습니다.아-멘 찬송가 221장 *주 믿는 형제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1) 💖진리의 복음💖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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