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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간
이 홍사
이놈 토끼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토끼의 간을 먹어야 용왕님의 병이 낫는다고 했느리라.
아이쿠! 진즉 말씀을 하시지. 간을 빼서 너럭바위 위에 말려두고 왔는뎁쇼.
토끼의 간을 먹어야 병이 낫는데. 어떡하지?
그래서 토끼가 어떻게 되었대?
몰라! 아마 용궁에서 간을 가지러 뭍으로 나왔다지? 거북이 호위병을 거느리고.
그런데 토낀다는 말이 어디서 나왔을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그 말이 어디서 나왔을까?
고개를 갸웃한다. 토끼다. 그 어원은 어디에 있을까? 토끼다는 뜻은 잡히지 않으려고 달아나거나 위험을 피해 몸을 숨긴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인데 토낀다는 말이 혹시 토끼의 간, 이 이야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토끼다는 말이 표준말인가? 서울에서도 이 말을 쓰는가?
모르겠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오로지 토끼의 간이 필요하다.
토끼의 간이 있어야 하는데.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났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던 군부에서 아웅산 수찌여사를 감금하고 계엄령을 내렸다.
세계의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인데 나로서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다. 남의 나라 민주주의가 되든 말든 그것은 둘째 문제고 나는 토끼의 간이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 토끼의 간을 미얀마의 너럭바위에 말려두고 왔다.
미얀마 난리가 났던데, 우짤라카노?
허구한 날 받는 전화의 질문이다.
내가 미얀마에서 일을 벌여놓고 있으니 그 사실을 아는 누구로부터 수시로 전화가 온다. 묻는 말이, 우짤라카노? 이 말이다. 안부라고 하는 전화인데 그 부담스러운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나는 지니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아내도 말은 않고 있지만, 뉴스를 접하고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 외면하는 눈치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비단 눈치뿐만이 아니라 일 년에 고무실 열두 켤레를 넘게 달구어 가며 일군 것인데 생각하면 속이 아리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금접비무金蝶飛舞라고 했다.
난초의 이름이다. 선배가 중국 충칭의 어느 골짜기 산촌을 헤매다가 얻어온 난초의 싹이 살아 붙어 베란다에 꽃을 피우고 있다고, 난에 꽃봉오리가 맺히는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냈는데 그 이름이 금접비무다. 황금의 나비가 춤을 추듯이 난다는 허풍이 덕지덕지 붙은 중국 이름이다. 중국의 이름에는 항상 허풍과 호들갑이 묻어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금접비무! 한문으로 이름을 적어서 보냈는데 나는 ‘접’자가 무슨 글자인지 아슴아슴해서 다시 물음표 카톡을 보냈더니 ‘나비접’자라고 답신이 날아왔다. 그러고 보니 호접란은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호접란과 같은 나비가 아닌가? 오늘 만나면 물어보아야 하겠다.
선배는 난에 관심이 많다.
아파트 베란다에 온통 화분이고 난초가 가득하다. 겨울이면 난초가 얼지 않게 비닐로 방한을 하고 지독히 추운 날은 온풍기를 틀어주는 관심을 보이는데 우리 사무실의 싸구려 난초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얼어 죽는 일이 없다.
담배 연기에 찌들어 난향을 맡을 수는 없지만 사무실에는 서너 개의 난 화분이 있다. 비닐로 방한을 하기는커녕 담배 연기가 빠지라고 밤새 창문을 열어놓아도 얼어 죽는 일이 없다. 금접비무처럼 귀한 난이 아니어서 그런가? 그렇게 정성을 들여 보살피지 않으면 얼어 죽는 난초인가? 그런 희소성의 원칙에 의해서 귀한 난이 되는가? 황금 나비가 춤을 추듯이 난다는 금접비무! 보아둔 여자가 있으면 별명으로 붙여주면 좋겠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보아둔 여자가 없다. 그러면 아내의 별명으로 쓸까? 아서라! 아내는 어디를 보아도 금접비무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다.
오늘은 선배가 한 사람을 소개해 주겠노라고 했다.
소개를 빙자해서 같이 술자리를 하자는 것이다.
상대는 미얀마 양곤의 한국대사관에서 식당 일을 삼 년이나 하다가 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미얀마에서 쓴 소설집 ‘미얀마 참 희한한 나라’를 한 권 준비하라는 전갈이 왔다. 그 소설을 읽으면 공감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 좋은 선물이 될 거라고 했다.
책을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장에 여분의 책이 서너 권 남아 있으니 어렵지 않지만 나는 그 책을 주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단편 소설집인데 미얀마에서 구상한 미얀마의 이야기를 실었다. 그 책 첫 장에 결정적인 오타가 있다. 그게 눈에 상당히 거슬려서 남에게 주기를 꺼리는 것이다. 보름날! 미얀마 말로 라비니를 설명하는데 영어로 보름날, 풀문데이의 스펠링을 잘못 기록했는데 교정을 본 작자도 그걸 찾아내지 못하고 그냥 넘어간 모양이다. 풀이면 full로 적어야 꽉 찬다는 뜻인데 fool로 적었는데 나는 그 오류를 눈여겨보지 못했고 교정을 본 작자도 그걸 찾아내지 못했다. full이 아니라 foll! 풀장이거나 바보스러운, 이라는 뜻인데 참으로 바보스럽게도 찾아내지 못하고 그렇게 인쇄가 되었다. 얼른 보면 모르고 넘어가겠지만, 아는 작자가 자세히 보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문제다. 정말 fool, 바보라고 씹을 것이다.
어쨌거나 오늘 만나면 또 미얀마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대사관 식당에서 일했다니 여자일 수도 있겠다.
어떤 자리이거나 미얀마의 이야기가 나오면 곤혹스럽다. 토끼의 간을 미얀마의 너럭바위에 말려두고 왔기 때문이다. 토끼를 뭍으로 내보내 간을 가져오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토끼의 배를 갈라서 간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할지 난감한 일이다. 토끼의 배를 갈라 간이 없다면 너럭바위에 말려두었다는 간을 찾을 수도 가져올 수가 없는 이치라 그저 답답한 현실이다.
토끼의 간!
지금 내 실정이나 심정을 대변하는 아포리즘이 아닐는지?
미얀마에 지은 집이 팔리지 않고 있다.
생각하면 환장할 일이다. 애초에 집을 한 채 지어서 팔고 그 돈으로 땅을 사서 또 한 채를 짓겠다는 계획이었는데, 막상 뭍에서 그림으로만 보던 토끼를 보니 간이 여러 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빚을 끌어다가 무리하게 투자를 강행했다.
그게 벌써 칠 년이 되었다.
과한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
집을 다 짓고 나니 그렇게 치솟던 집값이 하락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설상가상 미얀마에 민주화가 정착되고 시장 경제를 개방하면서 달러가 폭등을 해서 투자한 것에 반쪽으로 만드는 사태가 발생했다. 간을 꺼내서 너럭바위에 말려둔 토끼를 데리고 용궁으로 들어온 셈인인데 이런 대답이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간을 빼서 너럭바위에 말려두고 왔는뎁쇼.
환장하겠다.
미얀마에서 나는 부자에 해당한다.
집이 거의 스무 채나 남았으니 부자는 틀림이 없지만 여기서는 돌아서면 빚이다. 빚에 가위가 눌릴 지경이다. 토끼의 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집을 빨리 팔아야 한다.
인마!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미얀마에 들어갈 수가 없다. 미얀마에서 나온 지 거의 일 년이 되도록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내 재산 반은 미얀마 너럭바위에 말려두고 왔는데. 한 달은 미얀마 한 달은 한국에서 생활하던 내가 일 년이 넘도록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니. 작년에 미얀마에서 들어올 적에 의료용품을 실으러 오는 특별기를 타고 들어왔다, 우한 폐렴 때문에 정기노선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끊어졌다. 방콕을 경유하는 노선도 태국 정부에서 막았고 하노이에서 환승을 하는 노선도 베트남 정부에서 차단했다.
돌아올 길이 없었다.
답답했다.
발이 묶이고 매일 인터넷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길을 검색했는데 정기노선이 아니라 미얀마 항공에서 의료용품을 실으러 간다는 특별기가 뜬다는 소식을 접하고 발 빠르게 그 비행기를 항공사로 직접 찾아가서 예약해야만 했다.
비행기를 타고 나서 우한 폐렴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체온을 두 번이나 체크하고 비행기를 탔는데, 뭐가 이래? 여자 승무원은 없고 모두가 남자인데 방진복을 입은 모습이 우주비행사처럼 보였다. 물론 기내식도 없었다. 모든 게 생략되었다.
이거? 사태가 심각하구나.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면서 그래도 두어 달 후에 다시 미얀마로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 짐작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인천공항에 내리니 사태는 더욱 심각했다. 핸드폰에 생전 처음 보는 자가격리자의 전용 앱을 깔고 갖가지 검사를 하고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는데 두 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보건소의 전화를 받고 동선을 감시받으며 집에서 보름간 격리를 해야만 했다.
자가격리가 끝난 지 거의 일 년.
물 건너 있는 돈은 돈이 아니다. 그 말을 철저히 신봉했는데 이제야 실감이 난다. 토끼의 간은 뭍의 너럭바위에 말려두고 용궁으로 들어왔다. 그게 일 년! 너럭바위에 말려둔 토끼의 간은 온전할까?
질곡이 없는 삶은 없다고 했는데 이제야 내 삶에 질곡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책으로 쓰면 열 권이 넘는다고 하는 할머니들이 부지기수다. 그게 이야기이고 오래되고 그 이야기가 뭉치면 역사가 되는 일이다. 이야기는 Story 이고 개인사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Hi를 붙이면 역사, History 즉 대설大說 크고 높은 이야기, 바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처음에는 히스토리라고 발음하지 않고 하이스토리라고 발음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압도적이다. 역사는 높은 이야기고 큰 이야기다. 소설가들이 리얼리즘소설을 쓰는 것과 역사소설을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야기의 주제와 크기, 즉 스케일이 다르다. 그러나 역사의 모태는 스토리, 즉 이야기에 있다.
작은 이야기들이 모이고 커지면 역사가 된다.
이런 공식에 대입시키면 내가 너럭 바위에 말려둔 토끼의 간도 분명 역사가 될 것이다.
역사의 발단을 생각하고 있는데 선배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미얀마 대사관에서 식당 일을 하던 분이 오늘 단체 손님이 있어서 만나기가 불가하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 식당을 하시는 분인가?
선배는 만날 수 없음을 카톡에 불발이라 표기했다.
불발?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서 미얀마의 이야기가 나오면 곤혹스러워 술도 잘 넘어가지 않을 것인데 다행이다. 탁자에 준비해둔 책을 다시 책꽂이에 꽂았다. 그럼 오늘은 술자리가 없는 것인가? 완전히 불발된 것인가? 정체불명의 서운함에 가슴이 허전해지는 순간, 선배의 카톡이 다시 날아왔다.
꿩 대신 닭?
그럼 그렇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지.
통닭으로 하죠.
간단하게 답신을 날렸다.
두 번의 카톡을 더 주고받고 우리는 가끔 가는 형곡동의 호프집에서 옛날 통닭을 놓고 마주 앉을 수가 있었다. 옛날 통닭이란 기름에 통으로 튀긴 닭인데 가격이 싼 대신에 엄청 작은 닭이다. 겨우 병아리를 면한 수준이라 안주가 되도록 먹으려면 두 마리를 먹어야 하는데 입맛이 없을 적에 가끔 찾는 집이다. 선배는 연어회를 좋아한다. 나는 송어회를 좋아하고, 하여 둘이 만나면 연어나 송어를 먹는데 오늘은 통닭이다.
토끼의 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도 바로 그 집이었다.
소주가 한 순배 돌자 뭔가 토론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난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선배의 의견을 존중하고, 듣는 자의 입장이다. 난에 관해서 이야기하다가 선배가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 어디서나 정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선배인데, 한 벽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그 호프집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야당 후보의 경선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게 이야기의 발단을 만든 것이다.
보궐선거는 명예롭지 못하게 성추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는 성추행으로 촉발된 것이다. 국민으로서 쪽팔린다는 게 선배의 입장이었다. 선배는 분명히 쪽팔린다는 비속어를 썼다. 국민으로서 절대로 자랑스럽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의 인사가 당선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다음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바로 토끼의 간이었다. 이 정부에서는 토끼의 배를 갈라서 간을 꺼내려 하고 있다고 선배가 이야기를 꺼냈다.
토끼의 간?
나는 여태 그 생각을 하다가 왔는데? 흥미가 있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은 총수를 구속했다. 죄목은 묵시적 청탁이란다. 묵시적 청탁? 법에서는 명시적인 것만 따지는 게 아닌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그 총수를 석방해야 한다는 청원이 끊이질 않고 있는 참담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걷히는 세수의 20% 이상을 내는 기업이니 이렇게 말하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이 작은 나라에서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다. 선배는 그 총수가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 지난번 개 목걸이에 끌려 북한에 갔을 적에 속 시원히 투자나 기부에 대해서, 총수답게 간이 크고 통이 크게 말하지 않고 목구멍에 넘어가지도 않는 냉면을 그냥 먹고 왔기 때문에 괘씸죄에 걸렸다고 단정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사기업을 빼앗아 국유화시키는 작업의 일환으로 총수를 구속하는 얄팍한 수법을 쓰고 있다는 말이다.
역시 동의.
잘 하지도 않거니와 선배와 마주 앉아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거품을 무는데 오늘은 선배가 그 몫을 했다. 나는 잠자코 추임새만 넣으며 듣고만 있었다.
그 기업이 토끼의 간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그걸 꿀꺽하면 용왕님의 병이 나을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토끼의 간이 토끼의 배 속에 있는지 뭍의 너럭바위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일관성이 없이 갈팡질팡한다. 선배의 지론은 정치와 경제는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결코 경제인의 위에서 군림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전적으로 동의.
철딱서니 없는 정치계 인사들은 그 기업을 꿀꺽하면 계속 황금알을 낳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오산이라는 이야기다. 꿀꺽하는 법을 만들어 국민의 눈을 가리고 꿀꺽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 기업은 황금알 대신에 똥만 싼다는 이야기가 선배 이야기의 골격이었고 총수가 감옥에서 나오면 아무래도 그 기업을 해외로 이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견해였다.
그 말에도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기업의 총수가 얼마 전에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기업가가 왜 대국민 사과를 할까?
소비자에 대한 사과나. 임직원에 대한 사과는 있을 수가 있지만, 대국민 사과라니 좀 의아했다. 노조를 만들겠습니다. 기업 윤리 위원회를 구성하겠습니다. 이 기업은 절대로 제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걸 보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 국민에게 왜 저런 소리를 해야 하나? 국가의 세금을 받아먹는 정치인이 아니라 세금으로 엄청나게 내서 한국을 먹여 살리는 기업인데. 국제적으로 그 기업의 경쟁업체에서 보면 뭐라고 할까? 의아스럽기가 그지없었다.
“형님! 난초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보다 확실히 재미있는데요.”
통닭을 우물거리며 나는 또 추임새를 넣었다.
“난초는 자라는 것을 사람이 통제할 수가 있지만, 시장은 그 기능을 시장에 맡겨야 해! 왜 국가가 시장의 기능을 통제하려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떡고물이 떨어지니 그렇겠지요.”
“안, 타, 깝, 다.”
선배는 입맛을 쩍 다시며 밑도 끝도 없이 그 말을 내뱉었다.
“뭐가요? 뭐가 안타깝다는 말씀이죠?”
선배의 말은 이 정부가 자꾸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공수처를 만들고 중대 범죄 수사처를 만들어 정권이 끝난 후에 자신들의 안식처를 꿈꾸지만 어림도 없다는 얘기다. 그런 것을 만드는 자체가 자충수라는 것이었다.
“내로남불의 다른 말이 뭔지 알아?”
선배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물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아닌가요?”
“그 말 말고,”
“그럼 무슨 다른 뜻이 있나요?”
“안타깝다. 이 정부가 하는 짓을 보니 안타깝다는 말이다. 이 정권을 대변하는 최대 아포리즘은 안타깝다는 말이지.”
선배는 내로남불이 곧 안타깝다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배는 이 정권의 수장인 대통령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했다.
“무슨 연민?”
반말처럼 들리겠지만 그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라는 직함과 연민이라는 말은 어울리지도 않거니와 거리가 너무 먼 단어였다. 모든 정책을 거꾸로 하고 있으니 나중에 책임을 어떻게 지겠느냐는 것이다. 아주 비참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난초의 이야기보다는 재미가 있었고 술이 잘 넘어갔다. 묵시적 청탁이나 국정농단으로 사 년이 넘도록 감옥에 있는 전직 대통령도 있는데 이 정권은 국정농단에다가 국가 파탄, 그리고 이적행위라는 죄목을 쓰면 얼마나 비참한 말로를 보내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노라고는 요지였고 그래서 대통령이라는 직함에 연민을 느끼고 안타깝다는 말이었다.
전직 대통령에게 국정농단이라고 하면 이 정권이 하는 짓을 보면 죄목은 백 개도 넘을 것이라는 요지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선배는 정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양반인데 뭘 잘 못 먹었나?
지금 표를 사기 위해 엄청 국민에게 퍼주는 정책을 쓰고 있는데 그게 누구의 돈이냐. 천문학적 숫자의 빚을 후손들에게 남길 수는 없는 문제가 아니냐? 다음 정권이 들어오면 무조건 국민의 주머니를 터는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요지였다. 그러자면 이 정권의 실세들은 모두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게 선배의 지론이었다. 북한이 싫어하니까 한미 군사훈련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적에게 물어보고 훈련을 하느냐? 북한은 땅굴 속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군사적 균형을 유지해야 평화가 유지되는 이치인데? 전부가 상상을 초월하는 자충수란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당에서는 벌써 증세에 관한 이야기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감옥에 간 정권이 그렇게 쌓아놓았던 곳간을 바닥내고 빚을 끌어다 선심을 쓰더니 이제는 증세라는 말을 들고나와 국민의 뒤통수를 친다. 오렌지즙을 짜듯이 자꾸 비틀면 나오는 게 국민의 세금으로 인식하는 작자들의 비참한 말로가 걱정이고 연민이 인다고 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이건 명제에 해당한다. 그만큼 퍼주었으니 증세는 불가피하다. 구멍가게 살림도 이렇게는 안 한다는 게 선배의 말이었다. 토끼의 간이 토끼의 배 속에 있는지 뭍의 너럭바위에 있는지 모르는 무리가 갈팡질팡하다가 용궁을 이 꼴로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 여권에서 다음 대통령이 나오더라고 면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이 정권의 비리나 폭정은 단죄하고 가볍게 출발할 것이 자명하다는 게 선배의 견해였다.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토끼의 간은 어디에 있나요? 형님은 아십니까?”
“애초부터 토끼의 간은 필요가 없었어. 용왕님을 진단했던 주치의의 농간이었어. 자신의 의술로는 고치기 어려우니까 구하지도 못할 토끼의 간을 끌어다 붙인 거지. 토끼의 간을 먹어도 용왕의 병은 낫지 않아.”
선배의 말은 단호했다.
어쩌면 그런지도 모른다.
그게 정답일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뭘 어떻게 해? 용왕님이 죽도록 내버려 두고 새로운 용왕님을 앉혀야지?”
“현실적으로 말씀해 보셔요.”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거야. 기업을 옥죄던 제재를 모두 느슨하게 풀어서 사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준다. 노조에 덕을 보았다지만 노조의 힘도 좀 줄이고, 나라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생각으로 기업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정부가 할 일이고 정부의 몫이야. 정부는 기업에 대해서 더 깊이 간섭하면 절대로 안 돼. 거기까지가 나라가 할 일이지. 왜 시장을 나라가 통제하려고 드는지 모르겠어. 시장의 원리는 그렇게 되는 게 아니야. 그냥 풀어주면 시장의 섭리에 따라서 법이 생기게 마련이야.”
“그러면 토끼의 간도 시장에서 팔까요?”
“토끼의 간? 그런 건 세상 어디에도 필요가 없어. 혹시 북한의 장마당에는 있는지 모르지.”
“저는 토끼의 간을 미얀마의 너럭바위에 말려두고 왔는데요.”
“아하! 그 토끼의 간?”
선배의 되물음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 토끼의 간은 미얀마 군사 쿠데타가 잠잠해지고 우한 폐렴이 좀 수그러져서 나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란다. 잘 말라 꾸덕꾸덕한 간을 그대로 가방에 담아서 오면 된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달러나 폭락을 해라.”
선배의 이야기 끝에 내가 말했다.
달러가 오르는 게 해외사업을 하는 데는 이득이 되지 않는가?
선배는 의아해했다. 우리나라 달러가 오르면 좋지만 경제 대국이라 달러의 요동이 약하고 미얀마는 후진국이라 달러가 요동을 친다. 국제 사회가 조금만 신경을 써도 달러 가격이 변하고 국내에서 사건이 발생해도 달러가 요동을 치는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으니 달러가 움직일 게 자명하다. 나는 미얀마 돈으로 집을 팔아서 달러로 바꾸어 나와야 하는 이치다. 미얀마의 달러 가격이 바닥을 치면 그보다 더한 횡재는 없다. 싼 가격에 손쉽게 날려도 이득이다. 쿠데타로 경제 지각이 변동해서 달러 가격이 움직일 것이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선배는 금방 알아들었다.
“토끼의 간이 꾸덕꾸덕 말라서 가져오게 좋게 만들어지겠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좀처럼 정치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선배인데 속에 든 것을 뱉어내니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그 말끝에 이번 정권 오 년은 너무나 지겹다는 말을 곁들였다.
국민 절반 이상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복지라면서 코로나를 빙자해서 선거 앞에 마구 풀어주는데 그 빚은 누가 갚느냐? 포퓰리즘 정책으로 꼭 선거 앞에 풀어주는데 매표행위나 다름없다. 옛날의 고무신 선거와 무엇이 다른가? 우한 폐렴은 제갈량의 동남풍과 진배없어. 적절한 시기에 호재로 작용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하고 선배는 맥주로 목을 축였다. 부인할 수 없는 말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누구의 말인지 모르지만, 선배는 그 말을 그대로 했다.
증세?
국민의 등골에 빨대를 꽂을 날이 멀지 않다.
이대로 가다간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는 게 선배의 생각이었다. 벌써 증세론이 여권에서 슬금슬금 나오는데 선거가 끝나면 어느 진영이 되든 본격적으로 증세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다.
내 등골에도 빨대가 꽂힌다?
섬찟한 일이 아닐 수가 없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술맛이 떨어지는 정치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금접비무가 무성해지면 한 촉을 나누어 주시죠. 귀한 난을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화제를 난으로 돌렸다.
“금접비무? 아직은 안돼. 나중에 분갈이할 때 나누어야지. 이제 겨우 한 촉이 살아 붙었는데.”
귀한 난이라 성장 속도가 더디다는 말이렸다. 본디 귀한 것은 성장 속도가 더딘 법이다. 성장 속도가 빨라 흔해지면 희소성의 원칙에 위반되어 가격이 떨어지는 법이다.
“금접비무! 난은 나중에 나누어 줄 터이니 미얀마 너럭바위에 말려둔 토끼의 간이나 가져올 생각을 해.”
생각하니 울렁거린다.
속이 울렁거린다.
토끼의 간을 먹으면 이렇게 속이 울렁거리는 걸까?
미얀마 너럭바위에 말려둔 토끼의 간은 온전하게 있는 것일까? 군중의 함성이 연일 매스컴에서 그렇게 들리는데. 토끼의 간이 온전할까?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린다. 분명히 술 탓은 아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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