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 15장 1절 - 5절
사도바울은 로마서 11장 7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 가운데 버림을 받은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완악한 자들입니다. 이 완악한 자들은 택하심을 입지 못했습니다. 이 완악한 자들의 특징은 겸비함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과 예수님과 예수님의 전하신 말씀을 듣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거짓신앙체계에 빠져서 소위 전통이라고 하는 것에 빠져서 예수님이 그들이 지켜온 전통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전통에는 좋은 전통이 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겪은 일들은 오늘날도 좋은 전통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하지만 전통가운데는 나쁜전통이 있습니다. 이 전통이 하나님 말씀보다 위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과 택하심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아서 교회의 일원이 되고 성도라고 하는 명칭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의식들을 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하심을 입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완악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순종치 않습니다. 자기나름대로의 열심도 있고 뜨거움도 있지만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하나님이 행하심을 보이셔도 알아보지 못하거나 순종치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처럼 여러 가지일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순전한 나드를 드리지는 않습니다. 나름 은혜를 입었지만 은혜가 은혜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포도원을 만드셨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포도원의 존재목적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것도 신포도가 아니라 달콤한 포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포도원을 지키시고 가꾸시며 기대하십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맺어가는 열매를 맞보니 달콤한 포도맛이 아니라 신포도맛이 납니다. 포도나무는 극상품의 포도나무입니다. 왜냐하면 포도나무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포도가 맺힌 것은 포도나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가지에 있습니다. 가지가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포도나무로부터 영양분을 제대로 빨아드리지 못한데 있습니다. 우리가 신포도가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데 우리가 그 사랑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신포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 비유의 말씀입니다. 참포도나무란 진짜포도나무라는 것입니다. 진짜포도나무에서는 진짜포도나무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정상이고 상식적인 일입니다. 이 참포도나무는 두가지로 이루어 지는데 바로 참포도나무자체이신 예수님과 열매를 맺는 가지에 해당하는 성도들로 이루어 집니다. 이 성도들은 당연히 진짜포도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달콤하고 포도주를 담기에 합당한 포도를 말합니다. 이 포도는 포도주가 되어 전제로서 부어지는 존재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바로 온전한 헌신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온전히 헌신하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십니다. 농부는 포도원을 가꾸는 자이며 포도원에서 나는 추수를 거두는 자이며 그 포도들을 자기의 뜻대로 사용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러시며 먼저는 예수님께 붙어 있지만 그럼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속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대되는 가지들이라는 것입니다. 농부되시는 하나님아버지는 이런 가지들을 돌보시며 좋은 열매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대받는 자들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농부되시는 하나님아버지의 기대와 계획에 합당하지 못한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즉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포도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부되시는 하나님아버지께서 쓸모없게된 그 포도들을 거름으로 쓰거나 말려서 태워 버리시는 것입니다. 나쁜 열매를 맺는 자들도 후대에게 경계의 가르침을 주는 재료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가지들은 교회에 다니고 성도라고 불림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달콤한 포도열매를 맺지 못하고 신포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바라신 그런 성도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그런 열매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포도나무가지들은 좋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닮은 사랑을 실천하는 인물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농부이신 하나님아버지는 그런 포도나무가지에게 기대를 하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벌래에 먹히거나 상처나지 아니하도록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달콤한 포도를 달고 있는 포도나무가지들은 깨끗함을 입는 존재들인데 그 깨끗함은 바로 말씀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말씀이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씀을 들었고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기 때문에 깨끗한 자들 즉 좋은 포도열매를 맺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가룟유다는 제외입니다. 가룟유다는 말씀을 받았지만 말씀을 따라 삶을 조정하고 결단하지 않았습니다. 가룟유다는 돈을 사랑하였고 도적질했습니다. 돈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기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