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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1주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이후부터는 말씀으로 명하시고, 명하신 말씀을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므로, 마지막날까지 계속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뜻을 강제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음성을 따라, 우리 의지로 따를 수 있도록 하신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이 주신 길을 가는 자들은 자기 의지로 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갈 때,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역시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다른 것 같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세상 사람들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스도인과 불신자를 비교할 때, 행실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불신자들은 그야말로 세상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그런데, 거기서 유난히 남들과 구별된 자들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단 분위기부터 도드러진다.
세상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면이 있다.
성품도 비슷하다. 성품이 좀 거칠고, 경계심이 많고, 남에게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가 손해를 볼 것 같으면, 당장 화를 낸다. 그래서, 기어코 보복을 통해, 자기의 손해를 복구하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이기적인 원칙들은 항상 지켜진다.
손해보지 않으려는 냉혹한 공격성은 다 허용된다.
그래서, 대단히 거칠다.
반면, 신자들은 착하다.
자기에게 부당한 상황이 처해져도, 손해보고, 참고 가는 사람이 많다.
그리스도인들은 원래 그렇다.
자기가 억울할텐데도, 그냥 손해본다. 거기서 분개하며, 달려들지 않는다.
또, 교활하게 남을 속이고, 내 실속을 챙기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거칠게 대하지 않고, 친절하고, 진실하고, 배려심이 있고, 남을 존중한다.
이런 부분은 대부분 극명히 나타나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이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비웃기도 한다. 미련스럽다고 본 것이다.
2천년간 전통적으로 그렇게 보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을 특징짓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가 갑자기 도덕적인 것은 신경쓰지 않고, 다른 신앙을 갖겠다고 하면, 진짜 기독교인이 아니다.
진짜 기독교인은 그렇게 해왔다.
남들이 비웃을지라도, 자기들의 그런 모습이 그리스도를 닮았기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행복하다.
어떻게 닮게 되었을까.
말씀을 통해, 배우고, 훈련하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래서, 그분과 같은 모습을 닮게 된 것이다.
그런데, 겉모습이 뭐가 중요해. 영감이 중요하다고 하면 말은 멋있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른 것은 놔두고도, 교회 망신을 시키고, 하나님께는 불명예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복음의 길은 막히게 된다.
교회를 다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람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일단 우리보다 큰 것은 주님의 복음이다.
내 자신보다, 훨씬 중요하고 크다.
예수께서 부탁하신 복음전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이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조심해야 할 문제가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삶]
나의 주인되신 하나님과 나의 관계.
신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신앙을 외치고, 영감을 외친듯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영감을 외친다고, 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자기가 원하는 일만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불법을 행하는 자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심각하게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내가 과연 이런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길을 잘 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은 구원의 여부와 관련이 있다.
신학적으로 구원의 확신의 문제다.
구원이 확정되었는지 의문이 여전히 남아있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한없이 갈 수는 없다.
[주를 기쁘시게 하려는 노력]
엡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 시험하여서, 확인해보라.
그렇게 너의 행실에 대해, 판단하며, 구분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룰이다.
시험하여 보라.
나의 행실이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시험하여, 판단해보고, 확인해봐야 한다.
테스트해서, 입증하라는 뜻이다.
입증은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성으로 자기가 옳은지, 그릇된지 판단해야 한다.
영감이 아니라, 내가 봐야 한다.
우리가 멀리 여행을 간다고 하자.
공항에 가서, 절차를 밟는데, X-RAY에 내 소지품을 넣고, 검사를 해본다.
불법적인 물건들을 적발하기 위해서다.
꺼릴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무사히 통과되면, 비행기를 잘 탈 수 있다.
반면, 불법적인 물건이 있으면, 미리 빼놓고 가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것이 불법인지, 아닌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두려움 속에서 검색대를 지나는 동안,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어떤 불법적인 것이 들어있어도, 상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다 괜찮아. 그냥 넘어가겠지 한다.
불법으로 확인되는데도, 운에 맡기고, 통과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검색대에서 반드시 적발되어, 법적 처벌을 받고, 비행기도 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법 물건만 뺏고, 그냥 보내지 않는다. 잡아서 처벌한다.
이 때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와 비슷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우리 모두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감시 아래 있다.
그래서, 항상 면밀한 조사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의 내부 깊숙한 곳까지 날카롭게 보고 계시다.
만약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오히려 자기가 하나님을 기뻐하게 할 것이라면, 그 일을 즐겁게 할 것이다.
반면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일로 판단되면, 내 생각을 포기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잘 한 것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자기 행위가 하나님이 용납하실지, 말지, 판단할 수 없다.
그 사람은 그냥 하나님의 날카로운 시선을 의식하면서, 평생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해, 다 용납된다고 하는데,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것이다.
유사하게, 난 몰랐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일이 악한데도, 모른 척하면서, 핑계대면, 마음으로 아는데, 거짓말 한 것이 하나님께 더 큰 범죄가 된다.
그래서, 오히려 처벌이 가중된다.
조금 드문 경우인데, 진짜 자기가 한 행위가 악행인지 모른 경우도 있다.
이 사람도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통해, 수없이 말씀해 온 것을 듣지 않았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는 날부터, 자기가 큰 은혜받은 것에 감동을 받고, 새삶을 살게 된다.
이 때부터 말씀을 순종하면서, 산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첫날부터 꾸준히 배운다.
5년, 10년, 20년 끊임없이 진리를 가르쳐 주었는데, 몰랐다고 하는 것,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2천년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달되었다.
진리, 지혜는 생명의 길이다.
[세상의 빛으로서 의무도]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면서, 우리 스스로 질문하며, 판단했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하고, 세상과의 관계속에서도 중요하다.
우리는 세상에서도 판단을 받는다.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어떤 사람이 항상 그리스도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하자.
그리스도인에 대해 대단히 나쁜 인식을 갖고 있는데, 자기가 손해보면서도, 불만하지 않고, 친절한 그리스도인을 만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누구에게든,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날이 있다.
그 사람이 갑자기 교회 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때, 자기에게 친절헀던 그 사람이 생각날 것이다.
그 때, 가볼 마음이 생긴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권고하시는 날에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마5:14-16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가 빛이다.
롬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빛의 광선 아래, 세상의 시선 아래, 그 행동이 옳게 보여져야 한다.
그럴려면, 먼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배웠으면, 그것을 기준으로 스스로의 행위를 시험하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내용이다.
진리의 지식을 머리속에만 넣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진리의 지식은 자기 행동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변화되어 있어야 한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능력]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께 어떻게 보여질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이 없다면,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또, 애초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이다. 애초에 그런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예수 믿는데, 세상에서 가졌던 습성을 버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여전히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판단 능력을 통해, 자기를 시험하는 자들이다.
성령의 역사는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능력에서 탐지가 된다.
사람이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저 사람이 바뀌었는가. 성령이 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을 통해 하시는 것이다.
그 사람이 스스로 판단하고, 시험하는 열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자에게 미치는 성령의 역사는 결과적으로 신자의 도덕적인 행실을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사람이 자기 행실을 제어하는 자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감지할 수 있다.
자기 행실을 관리하는 능력이 향상되면, 향상될수록, 성령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역사하시는지 알 수 있다.
갈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교회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다.
여기 나열된 덕목중에서, 도덕적인 결과로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부 도덕적인 것과 직결된다.
어떤 사람이 자기를 훌륭한 신자라고 나타낼 수 있지만, 어느새 악행하고, 고소고발하면서 괴롭히고, 교회의 믿음의 소망을 파괴하는 자가 된다면, 성령은 그 사람에 한해서는 당신의 역사를 멈추고 있는 것이다.
거부당헀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는 어떤 경우든, 신자가 육신으로 하는 일과 대단히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의 역사는 육체의 소욕과 반대다.
말하자면, 가까운 관계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우리가 육체에 마음이 끌리는 것과 직결된다.
이런 종류의 성령의 역사를 주의 종을 통해, 지난 2천년간 계속 가르쳐 주셨다.
오늘 여기까지 왔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면 안된다.
자기가 안듣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무시하는 것은 성령의 영역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 영역에 대해, 모든 것을 순종하지 않기로 자기가 어느날 결정해버린 것이다.
이 결과는 그냥 조용히 끝나지 않는다. 잘못 판단한 부분이 도덕적 악행을 통해, 반드시 튀어나오게 된다.
인간의 욕망이 제어되어야 하는데, 육체의 속성이 결국 분출되어 버린다.
주님은 우리를 원수에게서 해방시켜주었는데, 그 사람은 원수의 사슬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령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믿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주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해석]
어떤 것이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것일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은 사람마다 달리 이해되거나, 해석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한결같다. 똑같다.
내가 보기엔 이렇다 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글로 풀어서, 명백히 기록했다.
거기에 그렇게 쓰여지 있기 때문에,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않으면, 막연히 세운 기준 때문에 신자의 삶도 요동친다.
이러면 성경 전체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구약의 많은 인물들이 있는데, 그 인물들의 삶과 행한 일에 대해서, 왜 기록되었는지 ,무슨 의미인지, 하나님과 자신과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넘어가게 된다.
세상을 치료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가 추적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성경의 많은 부분을 버려도 될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 버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뽑아낸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성경에 의인들이 나온다. 나는 의인일까, 아닐까.
신약교인은 의인이라고 하면, 고개를 젓는데, 그런 것과 다르다.
창5:22,24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었다.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사람일 것이다.
창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만났을 때,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간구했다.
자기 생각에는 의인이 오십명은 있겠다고 봤다. 그러다가, 열명까지 내려갔다.
창18:23,25
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최소한 열명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시32: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 할찌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찌어다
구약에 의인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시34:15-16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의인을 하나님은 흐뭇하게 보시고, 악인에 대해서는 심판을 결심하고 계시다.
시편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론에 대해 너무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의인은 구원하고, 악인은 멸하리라.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악인이 거짓증언으로 나를 고소합니다.
당신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으면, 나는 망할 것입니다.
나를 불법으로 행하려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나님께 계속 하소연을 올리는 내용이다.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다. 여기 있는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속으로는 내 욕심 채우기]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은면서, 속으로는 자기 욕심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은 영광받기는 커녕, 욕되게 취급받고 있다.
롬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실패를 하고 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름다운 음악을 드리면, 하나님이 감상하시는가. 성가대는 우리 심령을 대표로 나타낸 것이다.
오늘도 은혜 베풀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 은혜로 인해, 우리는 서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만족과 감사를 나타내는 것이 예배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실 때, 이것이 무엇인지 구별해야 한다.
[빛의 지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
빛이 비추는 것은 두가지 면이 있다.
지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이 있다.
하나님의 빛을 이해하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진리는 지식으로 온다. 이것은 거룩한 행실의 근거가 된다.
빛안에 사는 것은 지식도 얻어야 하고, 이로 인해 거룩한 삶도 가져야 한다.
알아야 행할 수 있다.
아는 것은 내 삶의 방법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의 빛은 나의 행실을 만들어준다.
빛이 비추면, 저절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서, 나를 움직여 가야 한다.
사단은 이것을 막으려고 한다.
사단은 우리 지식이 참 진실을 파헤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엡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오면, 사단은 망한다. 그래서, 이것을 자꾸 왜곡시키고, 못보게 한다.
[사단은 신자의 지식을 막으려 공격]
그래서, 매사에 악을 선하다, 선을 악하다 하며 헷갈리게 한다.
고후4:4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사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요일1:5-7
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진리를 듣고, 전달한다. 진리의 내용은 하나님은 빛이시다. 어둠이 없다.
그 결과 우리는 빛 가운데서 행하는 자들이 된다.
지식도 필요하고, 지식을 행위로 옮기는 것도 필요하다.
[평생 배우며 성장해진다]
고후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그리스도를 배우는 동안 기준이 생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판단할 수 있다.
평생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계속 판단한다.
그분을 기분좋게 하려는 것이 동기가 아니라, 그분이 하시는 일을 순종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나도 기여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빛의 자녀로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동안, 그들의 삶도 변해 갈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가득한 마음, 살리려는 강력한 노력과 말씀이 다 진리다.
진리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내가 말할 수 있다.
빛의 자녀로서의 증거가 있다.
[성령이 만드시는 열매 맺는 신자]
빛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와 동일한 것이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은 끊고, 주님 앞에 나간다. 주님이 우리에게 열매 맺도록 이끌어 주실 때, 행하고, 돌이키면서, 우리를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한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자신의 행위를 시험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자들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