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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언어학적 고찰」
글 머리 : 아리랑
‘아리랑’의 문자적 해석에 앞서 이 세 글자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이다. 필자는 아리랑의 언어적 참뜻을 찾아 그 나름으로 30여 년을 가슴에 담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아리랑”에 대한 언어적 참뜻을 정리하면서 “아리랑”은 나 혼자만의 의문이 아닌 한민족 모두의 공동관심사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민족의 혼’인 “아리랑”을 한층 더 연구, 발전, 전승할 최소한의 역사적 소임을 엄숙하게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리랑 지킴이 김동철.
1. 아리랑 설에 대한 갖가지 해프닝
각론하고 아리랑의 성립 시기에 관해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그 양상은 고대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설과 대원군 시대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설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아리랑이란 언어는 고대에 성립되어 차츰 변형이 주어져 대원군 시대에 들어와 경복궁 공사와 연계되고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얽혀서 ‘아이롱’이라는 변형된 말이 생기고 내용상에도 변화가 일어난 어설픈 일면이 있을뿐더러 그 대표적 어휘인 <아리랑>에 관해서도 많은 논란이 주어짐도 문제의 여지가 있다.
일단 아낭설(阿娘說)·알영설(閼英說)·알영 고개설을 비롯하여 대원군 시대를 시점으로 보는 아이롱설(我耳聾說)·아난리설(我難離說)·아리낭설(我離娘說)·아랑위설(兒郞偉說) 등이 주요 과제에 해당한다. 이 밖에 양주동(梁柱東)이나 이병도 등에 의해 아리랑이 옛 지명이라는 설도 제기되어 있으나 근간에 이르기까지 아리랑의 성립 시기나 아리랑의 어원에 대한 정설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정황이다.
2. 지금까지 제기된 아리랑 설의 맥락
1). 아낭설(阿娘說)-옛날 밀양 사또의 딸 아랑이 통인(通引)의 요구에 항거하다 억울한 죽임을 당한 일의 애도에서 비롯하였다는 설
2). 알영설(閼英說) :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妃 알영을 찬미하여 알영 알영'하고 노래 부른 것이 '아리랑 아리랑'으로 변하였다는 설.
3). 아이롱설(我耳聾說):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백성들이 원납금(願納金) 성화에 못 견뎌 "단원아이롱 불문원납성(但願我耳聾 不聞願納聲):원하노니 내 귀나 어두워져라, 원납소리 듣기도 싫구나."하고 부른 아이롱(我耳聾)'이 '아리랑'으로 와전되었다는 설.
4). 아리낭설(我離娘說): 흥선 대원군 시절 경복궁 공사에 부역 온 인부들이 부모와 처자가 있는 고향생각을 하며 '아리낭(我離娘)'을 노래한 것이 발단이었다는 설
5). 아리랑을 아리(곱다), 아리다(마음이 아리다), 아릿다운(아리다운), 랑(님) 등 어원을 추상적으로 해석하는 언어의 의미론적 접근설,
6). 최근 주목을 받는 신용하 교수의 어원설로 ‘아리랑’의 첫째 뜻은 ‘아리’가 고운이고, ‘랑’은 ‘님’인 까닭에, ‘아리랑’은 ‘고운님’이며, 둘째 뜻은 ‘아리’가 ‘그리운’ 의뜻이므로 ‘아리랑’은 즉 사무치게 ‘그리운 님’이라는 관념론적 어원설
7), 삼국사기 원성왕 본기에 나오는 “알천”이 “아리랑”과 “아리수”의 언어적 근원이라는 양주동 박사의 언어학적 근원 설
특히 요즈음 정보 공유 차원에서 다양한 아리랑 설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 : “*아(我)는 참된 나(眞我)를 의미하고 *리(理)는 알다, 다스리다, 통한다는 뜻이며, *랑(朗)은 즐겁다, 밝다는 뜻이므로 아리랑(我理朗)은 <참된 나(眞我)를 찾는 즐거움>이다.”라고 나름의 주장을 펴고있으며,
또 다른 아리랑 설에는 “아리랑”의 아리는 가슴이 아리도록 그립다는 뜻이고, '랑'은 화랑도의 “랑” 낭자 할 때의 '랑'으로 님이라는 뜻이므로 아리랑은 ‘사무치도록 그리운 님’이란 다양한 설이 추론(推論)되는 현상이다.
3. 아리랑에 관한 논의의 일면들
각론하고 황현은(1855-1910년) 전라도 광양 출신으로 1863년-1910년 기간의 사회상을「梅泉野錄」이라는 역사서에 기록으로 남겼는데, 여기에 아리랑이란 언급이 “新聲艶曲 阿里娘 打令”이라는 말로 문헌상에 최초로 기록된다. 「매천야록」에 의하면 “阿里娘 打令”을 1894년 창덕궁 보수공사 때 노동자들을 위해 위문 공연으로 부른 신성염곡(新聲艶曲)이라 하였다. 이 노래를 “아리랑(阿里娘) 타령”이라 하였는데, 아리랑을 “阿里娘”이라 한 것은 언어학적 측면에서 순우리말 “아리랑”을 향찰식 표기에 따라서 의미와 관계없이 “음”을 차용한 말이다.
또한 “아리랑”이란 말은 1886년 미국의 선교사 헐버트가 “아리랑”을 채록하여 악보를 남겨 전했으며, 1920년 1월 8일 자『독립신문』에 의하면 상해 민단의 신년 축하회에서 “아리랑 타령”을 불렀는데 최영년은 이 노래를 “말세의 소리”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1926년 나운규는 유년 시절 고향인 회령에서 철로 부설공사를 하러 온 노동자들이 부르던 노래가사를 바탕으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를 개사하였고 노동자 대부분이 한양에서 온 사람들이라 이 노래를 “경기 아리랑”이라 칭하였다.
특히 1930년 6월 조선총독부 기관지『朝鮮』에 김지연 이름으로 “조선민요 아리랑”을 기고하였는데, 모처럼 기관지에 ‘신 아리랑, 별조 아리랑, 아리랑 타령, 원산 아리랑, 밀양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정선아리랑, 서울 아리랑 등’의 가사가 수록된 점을 고려할 때 이즈음 “아리랑”이 전국으로 확산된 듯싶다.
따라서 “아리랑” 노래가 정착된 것은 1886년 미국의 선교사 헐버트가 채록하여 악보로 기록한 19세기 초로 보아야 하며, 선소리 타령으로 선조들에 의해 전승된 가장 오래된 농요인 “정선아리랑”은 그 시기를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때문에 “아리랑”이란 말은 그 발생 시기를 고증할 수 없으나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등’ 각 지역의 아리랑은 1920년대에 창작되어 전하여 온 것으로 유추(類推)할 따름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각 지역마다 불려진 “아리랑”의 노래는 최근 기록에 근거하여 "아리랑"이라는 말의 의미는 추상이나 감성에 의해 관념론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것은 “아리랑”의 어원을 찾지 못하는 현상 때문이므로 일단 언어학적 연구를 통해 그 개념이 구명(究明)되어야 한다.
4. 다양한 문제의 여지(餘地)
1. 아리랑을 실체가 없는 관념어로 볼 것인가?
모름지기 “아리랑”을 관념어로 본다는 것은 아리랑이라는 말의 실체를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노래가사를 통하여 그 의미를 추상적이거나 감성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즉 인문학적 견해에서 우리가 추리할 수 있는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은 각자의 생각과 추리에 의해 다양한 의미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아리랑”의 실체는 확증을 짓지 못하고 “아리랑”의 노랫말을 통하여 고향, 사랑, 이별, 한, 그리움, 등의 추상적 의미가 담긴 관념어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아리랑”의 실체를 온전히 찾는 그 날까지 그럴 것이다. 까닭에 우리는 “아리랑”의 실체를 기필코 찾아야 할 것이다.
2. 아리랑의 언어적 실체
“아리랑”은 사랑, 그리움, 슬픔, 같은 관념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리랑”은 해, 달, 별처럼 우리 조상들이 쓰던 실체가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의 실체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그 해결방법은 “아리랑”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방법이다. 다행히도 “아리랑”에 관련된 우리말이 아직 남아있다. 그와 같은 관련 문헌으로는 “삼국사기 원성왕 본기”에 “알천”이라는 말이 나오며, 정선아리랑의 가사에는 구구절절 강물이 흘러가는 이별의 애절함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리랑”이 강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아울러 한강과 송하강을 “아리수”라 했다는 것과 제주도의 한천 하류에 “아라리(아라동)”라는 마을이 현존해 있다. 이것은 "강"이 곧 "아라리(아리수)"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아리랑”은 “강”과 깊은 관련성을 맺는말이므로 물이 흘러가는 물길의 명칭을 찾아 고증해야 한다.
각론하고 우리나라는 삼천리금수강산 골짜기 마다 물이 흐르는 물길 “알(개울)”이 있다. 물길에는 깊은 산골짜기나 밭고랑 사이로 흐르는 “고랑”, 논밭사이나 마을안길 따라 흐르는 “도랑”, 도랑물이 합쳐 흐르는 “거랑(큰거랑)”, 마을 밖으로 흐르는 내(川)라고 하는 “알(아리)”이 있다. 이것을 정리하면 물은 고랑-도랑-거랑-알(아리)을 거쳐 바다로 간다. 그런데 물길의 명칭을 조사하면서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면, 물이 흐르는 물길에는 모두 물이 졸졸 흐를 물결“랑(浪)”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아리)”에도 당연히 “랑(浪)”을 붙였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잊어버리고 목말라 찾던 “아리랑”인 것이다. 그런데 “알(아리)”의 주변(강변)은 우리 선조들이 수렵생활을 할 때 이웃이 함께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던 삶의 터전이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수렵생활을 하면서 “아리랑(아리수)”의 강변에서 살았기 때문에 삶의 터전인 마을 이름도 “아리랑”, 고개도 “아리랑,” 노래도 “아리랑”, 온통 “아리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 어머니가 계시던 고향이요, 그리움과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아리랑”이다.
3. 알천과 아리랑
모름지기 삼국사기 원성왕 본기에 “周元 宅於 京北二十里 會 大雨 閼川水漲 周元不得渡(주원의 집은 경주북쪽 20리에 있었는데 큰비로 “閼川”이 넘쳐 주원은 입궁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알천”을 통하여 “아리랑”을 검증하면 “알천”은 지금의 경주 북천이다. 지난 경북일보 2016. 4. 28.(알천과 북천) 및 경북일보 2020. 7. 22.(삼국유사 오디세이)에 “양주동 박사는 여기에 나오는 “알천”이 “아리랑”의 어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강을 “아리수”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알천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였다.” 즉 “아리랑”이라는 말의 모태가 “알천”이며, “알천(냇물)”이 “아리랑”이다. 그런데 “아리랑”을 잊어버릴까 이를 증명이라도 해주듯 제주도의 한천 하류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아라동(아라리)”이라는 강변마을이 현존하고 있다. 이것은 “아라리(아라동)”가 한천(아리랑)의 강변마을임을 입증한다.
모름지기 강릉 사람들은 물이 “알”로 간다고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은 물이 아래로 간다는 말이 아니라 물이 “알(川)”이라는 명사 즉 “알(아리)”로 간다는 말이다. 강릉에는 “알”을 향찰로 “월(月)”자를 차용하여 “沙川(사알)”을 沙月이라 말하고 있고, “알천”을 향찰로 “月川(달래)”이라고 한다. 따라서 강릉과 양양의 경계(지경)에 있는 상월천(웃달래)과 하월천(아랫달래)이 그렇고 삼척군 원덕읍의 가곡천을 월천이라고 한다. 일단 강릉의 지명유래를 통하여 “浪,(良)”을 살펴보기로 한다. 어디까지나 고구려 때는 물(강)이 서쪽에서 흐르는 곳이라 하여 “河西浪(하서랑)”이라 하였고, “알(川)”이 거문고의 6현처럼 동해로 흘러내려 아름다운 호수를 펼쳐놓은 곳이라 하여 고구려와 신라 시대는 하슬라(河瑟羅)라 칭하였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고 지명을 작명하는 지혜가 있었다. 특이할 사항은 우리선조들이 물길에다가 물이 졸졸 흐를 “浪(랑)”을 붙여 “고랑”, “도랑”, “거랑”, “아리랑“, ”하서랑“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남겼다. 그 일례로 “알(川)”을 살펴보자. “알”은 “아리”에 준말이며, 파생어로 “아리아리 알아리(아라리)”라고도 쓴다. 그리고 “아리”는 물이 흐르는 물길이니 “아리”에 “浪(랑)”을 붙이면 “아리랑”이다.
즉“아리랑”은 물이 흘러가는 냇물(川)이며, “강”이라는 것이다. “강(물길)”에 대한 명칭은 시대에 따라 변천하였다. 북간도의 송하강도 한때 “아리수”라 하였고. 고구려는 청천강을 “살수”라고 하였듯이 “아리랑”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 서울시는 한강을 “아리수”라 부르고 있다. “아리수” 그리고 “아리랑”은 정말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4. 아리랑을 뒷받침하는 각종의 자료들
1). “아리랑”이란 말은 고려가요 “가시리”를 보더라도 구전으로 오래전부터 불려 왔으며, “구 경기 아리랑”은 한글 창제 이후에 현재의 가사로 정착된 노래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 순 한글 가사 때문이다. 그리고 “아리랑”이란 말은 언제 사용했는지에 관해서는 증명할 수가 없을지라도 삼국사기에 나오는 “알천” 때문에 그 이전에 사용했던 것으로 유추된다.
2). “아리랑”의 노랫말을 살펴보면 모두가 당시 생활상과 관련된 명칭이나 일상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정선아리랑”은 강가에서 살아가던 선조들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다. 따라서 “아리랑”은 추상적 관념어가 아니다. 이 당시 대부분 마을의 명칭이 “아리랑”이었거나 고개의 이름 또한 “아리랑”이었다. 까닭에 “신 경기 아리랑”에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말은 고향 즉 강가의 마을 “아리랑”을 두고 떠나가는 님(사랑하는 사람, 고향, 고국, 부모 형제 등)과 헤어지는 그 이별의 통한을 노래한 것이다.
3). 정선아리랑의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아우라지 뱃사 공아/ 배 좀 건네주게 간다지 못간다지/ 얼마나 울었나/ 송정 앞 나루터가/ 한강수 되었오 내가왔다 간뒤에/ 도랑물 뿔거든 / 내가왔다 간뒤에/ 울고간줄 알아요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남자더냐/ 산넘구 물건너면/ 남자 또 있겠지 아우라지 강물이 / 소주약주 같다면/ 강물은 돌고돌아/ 바다로 가지만/ 이내몸 돌고 돌아/ 어디로 가나/ 앞내 물레방아/ 물살안고 도는데/ 우리네 서방님은/날 안고 돌줄 몰라/ 이처럼 비가오고 강물이 불어나면 뗏목을 나르는 뱃사공이 돌아오고 이들 뱃사공과 노닐던 러브스토리가 구구절절 쏟아져 나오고 있 다. 그런데 노래의 시작이 “아리랑”이고 추임새도 온통 “아리랑”이다. 즉 “아리랑”이 삶의 터전이고 이곳이 “강”이라는 것임을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4). 물길에 대한 현존해 있는 언어의 다양성을 그 나름으로 분별하면 ‘이랑, 고랑, 도랑’은 지금도 통용되고 있지만, 도랑보다 큰 “거랑”은 사라지기 직전의 언어이지만 “알”은 다행하게도 아직 강릉 지방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 보기의 일례로 도랑물이 “알(아래)로 흐른다.”라고 하지 않고 도랑물이 “알(냇물)루 간다.”라고 한다. 이처럼 강릉에서는 알(川)에 대한 두 가지 의미에 따라 서로 다른 동사(간다. 와 흐른다.)를 쓰고 있다. 어법상 도랑물이 알루 간다. 와 알로 흐른다.는 “알”에 대한 그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물이 알로 “흐른다”고 하면 물이 아래(下)로 간다는 의미지만, 물이 알루 “간다” 하면 물이 냇물(알)이라는 장소로 간다는 뜻이다. 이처럼 도랑물이 “알”루 간다는 뜻은 도랑물이 냇물(川)로 간다는 것이다. 다행히 강릉에서는 “알(천)”을 향찰로 유사음 “月”을 차용하고 있는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고증이라면 강릉의 沙川(사알)을 “沙月”이라 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은 “沙川(사알)”을 향찰식 유사음 “沙月”이라 표기한 확증이다. 또 하나 경주의 북천을 삼국사기에는 “閼川”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閼川”의 “알”은 당시 신라에서 “알”을 향찰로 표기할 때 의미와 관계없이 음이 같은 “閼” 자의 차용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알”은 “아리”의 준말이므로 “아리수”의 어원 또한 “알”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한때 강을 “아리수”라고 했다는 기록이 문헌에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 서울시가 한강(漢江)을 “아리수”라고 홍보하고 있음은 이 같은 정황의 일례다.
5). 강릉지역 언어 양상의 일면이라면 강릉지역의 특수어 조사과정에서 “거랑”이라는 말과 “알”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뿐더러 강릉의 옥계면 산계리와 울진군 온정리, 그리고 경상북도 안동지역 내륙에서 “거랑”이라는 말의 사용을 확인하였다. 또 한편 연구자는 “강릉 토박이로서 지방어를 정리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아리랑의 어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고랑, 이랑, 거랑, 아리, 아리수’에 관한 그 나름의 새로운 이론을 전개할 수 있었다.” (중앙대학교 김선풍 교수)
즉 “고랑”, “도랑”, 다음의 말이 “거랑”이었으며, “거랑물”이 “알(아리 또는 아라리)”로 가거나 “아리수”로 흘러간다. 그리고 경주 보문에서 흐르는 북천을 “알천”이라 하고, 제주도 한라산에서 흘러내리는 “한천” 하류의 마을 명칭을 “아라동(아라리)”이라 일컫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아리랑”을 입증하여주는 소중한 언어의 편린(片鱗)임도 그렇거니와 강릉의 전통시장을 포함하여 임계장터, 진부장터, 주문진과 옥계장터 등 현장조사를 거친 자료의 수집을 포함하여 멀리는 중국 연변의 언어학자들과도 교류하며 기초자료를 폭넓게 수집하였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본 연구자의 아리랑에 대한 탐구열은 우후죽순격(雨後竹筍格)인 기존 학계의 학설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철저한 현장 탐색과 자료정리의 관점에서 비롯되었기에 유념할 바다.” (중앙대학교 김선풍 교수)
6). “浪”이란 여러 가지 의미의 확장이라면 그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고랑, 도랑, 거랑, 아리랑, 하서랑’에서의 “랑”은 물이 흘러가는 물결“浪”인데 물이 흘러가는 물길의 명칭에 모두 “랑(浪)”을 붙였다.
7). 기타 참고문헌의 일례로 문헌상의 그 같은 보기라면 1993년 9월 발행의 『대조선 제국사』(동아출판사) 20쪽에서 “우리말 “아리수”를 음역, 의역을 한 한문식 표기인 阿利水, 阿禮江, 列水 등은 모두 긴 강을 의미한다. 또한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과 만주의 송하, 요하, 난하, 등을 향찰,이두 문으로 쓴 옛 이름을 찾으면 모두 “아리수”라 하였다. 또 한편 비교적 강변에는 씨족집단이 모여 살았는데 그곳을 “나루”라고 하였으며, 후일에야 차츰 그 환경조건이 변함에 따라 “라루-라라-나라”로 발음이 변형하면서 “국가”를 뜻하게 되었다.”를 확인할 수 있다.
8). 물이 흐르는 물길에 대한 다양한 언어적 접근을 시도할 때 ‘고랑, 도랑, 거랑, 알, 아라리, 알천(경주북천), 아리수, 河(요하, 송하, 황하), 列水, 살수(청천강), 가람, 내, 川, 江, 개울, 실개천, 개여울 등’을 확인케 된다. 이 같은 말의 양상은 “아리랑”의 개념을 확증하는 귀한 자료에 해당한다.
9). 또 하나 현재 제주도 언어에서 그 같은 예증의 일례로는 언어적 측면에서 한천(대천) 하류의 강변마을을 “아라동”이나 “아라리”라 일컫고 있으며, 이 마을이 “아리랑”의 강변마을임을 입증하고 있다. 바로 이것은 “아리랑”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는 단서일뿐더러 아리랑의 어원을 찾는 근원에 잇닿는다.
10). 정선 아오라지와 동강의 떼꾼들에 의하면 강을 따라가며 뗏목꾼들이 쉬어가는 주막집을 송문옥(정선 떼꾼, 1991년 사망)은 “아라리 주막”이라 하였다. 이것은 아오라지에서 한양까지 흘러가는 물길을 “아라리”라고 하였기 때문이며, 만지나루의 전산옥도 “아라리 주막”이라 일컬었음을 확인케 되었다. 또 한편 강릉의 학산 오독떼기 후렴구에서 “아리아리 아라리 아라리 고개를 넘어간다.”라고 하는데, 강릉에서는 “아라리”를 “아리랑”으로 오랜 날 구전을 통해 불려 왔음을 동기달(강원도 무형문화제 제5호, 학산 오독떼기 기능보유자)은 한층 더 역설하고 있다. 이 같은 점은 “아라리”가 “아리랑”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일례다. (제보자: 오독떼기 악보 제작, 구정초등학교의 권오이 전직 교장)
11). 차제에 “알천”을 향찰로 “月川(달래)”으로 기록하였음은 강릉의 沙川(모래내)을 “沙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내(川)를 “알”이라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알”을 향찰로 “月”이라는 음을 차용하여 쓰기에 沙川(사알)을 향찰로 “沙月”이라 표기하여 왔다. (제보자:김순정) “알천”을 향찰로 “月川(달래)”이라 하는데 영동지방에는 이런 곳이 몇 곳 남아있다. 즉 “월천”이라는 명칭은 영동지방의 알천(냇물)을 일컫는 말인데, 현재 강릉과 양양의 경계(지경)에 “상월천(웃달래)”과 “하월천(아랫달래)”이 그 같은 보기이다. (제보자: 상월천리 유제원)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영동지방에는 군선강은 있으나 큰 강(아리수, 아리랑)은 없는 편이라 대부분 작은 개울이나 냇물(알, 아리)이다. 여기서 “알” 또는 “아라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고, 영동지방 농요(農謠)인 “학산오독떼기” 후렴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기에 우리 국악계에서는 강릉을 “아라리”고장이라고 직간접적으로 일컫고 있다.
12). 각론하고 ‘현대 민속학은 발로 글을 쓰는 것이요, 자료의 현장을 몸소 찾아 자료를 구하고 그를 밑바탕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현장론적 접근방법에 그 나름으로 철저하게 오랜 날 몸담아 온 연구자’는 일단 ‘알의 제보자, 거랑의 제보자, 사월의 제보자, 월천의 제보자, 아라동의 제보자 등등의 주소와 성명을 21c 문화의 지역 구심주의의 시간대를 맞아서 보다 체계적으로 확인 정리해 왔다.’ 까닭에 “그간에 일부의 학자들은 자료를 수집하되 설화를 쓰듯 하였을 뿐 아니라 조사자의 견해까지 삽입 ‧ 정리하여 글을 쓴 사례도 종종 확인되고 있기에 모든 학문은 과학이라는 입장에서 글을 써야만 한다.”라는 이 같은 확증은 연구자들에게는 새로운 일깨움에 해당하는 의미 있는 교시(敎示)이다. (중앙대학교 김선풍 교수)
13). “고랑”의 물은 “도랑”으로 가며, “도랑”의 물은 도랑보다 큰 물길 “거랑”으로 가고 “거랑”보다 큰 물길은 “큰거랑”으로, “큰거랑”의 물은 “내(川)”로 간다. 그리고 “내(川)” 보다 큰 물길을 “가람(江)” 또는 “알”이라 하며 이것보다 더 큰 물길은 “하(河)” 즉 “강”이다. 때문에 “아리랑”과 “아리수”는 “알(川)”보다 큰 물길인 “강”이다.
14). 고랑, 도랑, 거랑, 아리랑에 공통으로 붙어있는“랑”은 무엇일까? “랑”은 명사형 접미사로서 그 의미가 다양할 수 있지만, 물이 흘러가는 물길에다 물이 졸졸 흐를 ”浪“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물길의 명칭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15). “알”은 “아리”에 준말이며 강릉에서는 내(川)를 “알”이라고 한다.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강릉사람들에게 물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알”루 간다고 말한다. 이것은 물이 아래로 간다는 말이 아니라 냇물(알)로 간다는 말이다.
16). “알”을 삼국유사에 “閼”이라고 써놓았는데, 이것은 한자의 음을 차용한 향찰식 문자로 보아야 한다. 당시 신라의 문자는 향찰, 이두문자였기에, “아리랑”을 향찰로 다양하게 阿里郞, 我理朗, 阿離朗, 阿里娘 등으로 표기할 수가 있다. 한편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물이 졸졸 흐를 물결 “浪”을 붙여 ‘阿里浪, 我理浪, 阿離浪’으로 정리해야 옳은 표기일 것이다. 비록 “아리랑”은 별, 달, 해와 같이 순우리말이라는 일면에서 “아리랑”을 향찰로 표기한다면 “涐里浪”이라 표기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7). “알(아리)”을 반복하면 “알알이(알아리)”라는 추임새가 만들어지는데, 아리랑의 후렴에 “아리아리 아라리요”라는 말은 “알(아리)”의 파생어이며, 노래의 흥을 돋우는데 많이 쓰이고 있다.
18). 물길의 명칭을 살펴보면 고랑, 도랑, 거랑, 알, 아라리, 알천(경주 북천), 아리수(한강, 송하강), 河(요하, 송하, 황하), 列水, 살수(청천강), 가람, 내, 川(남대천, 옥천), 江(한강, 대동강), 개울, 실개천, 등 다양하다. 여기서 “랑”이 붙은 물길을 눈여겨 살펴보면 “랑”이 붙은 물길 즉 고랑 - 도랑 - 거랑 - 큰거랑 - 알(아리)은 “아리랑”을 찾는 근거가 되는 말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물길에 물이 졸졸 흐를 “浪”을 붙여 물길의 이름을 아름답게 만들어 썼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알”은 “아리”의 준말로 “아리”에 물이 졸졸 흐를 “浪”이 붙여진 말, 이 말이 곧 “아리랑임”에 틀림이 없다.
19). 차제에 “아리랑”을 찾다 보면 연관어로 “쓰리랑”이라는 말이 종종 거론된다. 여기서 “쓰리랑”이란 말은 “아리랑”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주어질 것이다. 모처럼 “쓰리랑”은 19세기 들어 “진도 아리랑”과 “밀양 아리랑”이 창작되는 과정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만들어진 “신종어” 즉 노래 후렴의 추임새다. 그리고 19세기 무렵부터 “아리랑”의 열풍으로 지역 및 마을마다 창작되어 불러진 아리랑이란 노래는 수 백곡으로 그 숫자를 가히 헤아릴 수가 없다.
20). 1896년 미국의 선교사 헐버트가 채보해 만든 서양식 악보가 “구조 아리랑” 악보인데, 헐버트는 아리랑을 한국인의 “포크송”으로 소개하며 이같이 기술하였다. “아리랑”은 조선인에게 쌀과 같은 노래다. 조선인들은 서정적이며 교훈적이고 서사적이며 이런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 ”아리랑“은 즉흥의 명수인 조선인에 의해 수없이 즉흥곡으로 변주가 되지만 후렴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불려진다.”라고 기술하였다.
21). 중국 연변 정암촌(청주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청주 아리랑”은 노랫가락이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인 “본조 아리랑”과 그 가락이 비교적 흡사한 면이 많은 점도 새삼 고려할 바다.
22). 보편적으로 대중적 호응을 얻어 지금 불리는 “아리랑”은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나운규가 1926년 구 경기 아리랑을 개사하고 단성사 빅터 악단이 작곡 반주한 “신 경기 아리랑”으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김연실이 열창하였다.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에 금창령이 내려졌던 애한(哀恨)이 맺힌 세계적으로 알려진 우리 민족의 애창곡으로 애국가처럼 불렸던 바로 “본조 아리랑”인 “경기 아리랑”이다.
23). 특히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사) 강원도민대합창을 주도하며 ‘아리랑’을 열창했던 가톨릭관동대학교 명예교수 엄창섭에 의하면 “본고에서도 논의된 현존해 있는 ‘이랑, 고랑, 도랑’은 지금도 통용되지만 “도랑”보다 큰 “거랑”은 사라지기 직전의 언어이나 “알”은 강릉 지방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것이 “알(川)”과 “아래(下)”의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음은 유념할 점이다. 차제에 ‘아리랑 지킴이’를 자처한 김동철 연구자가 온몸으로 엮어낸 인고의 결정체인 그 결과물은 그간에 ‘아리랑(我理朗)’을 보편적 개념으로 ‘참된 나(眞我)를 찾는 즐거움’이라는 관념적 측면의 의미로 해석되어왔으나 그 왜곡(歪曲)의 일체를 언어학적 고증을 통해 바로잡은 정체성의 확장에 맞물린 충격적인 몫은, 지대한 언어학적 연구결과의 집산이다.”라고 그 당위성을 높이 수긍하였다.(카톨릭 관동대학교 명예교수 엄창섭)
24). “≪삼국사기≫ 악지에 보면, 덕사내(德思內)라고 하는 강릉 향토민요가 소개되는데, 바로 이 민요가 한국 아리랑의 효시였다. 당시 강원도 문화의 중심지였던 강릉의 이 덕사내 가락이 대관령을 넘어가 평창 아리랑을, 삽당령을 넘어가 정선아리랑을 재생산하게 되었다.”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김선풍)
♣ 경기 아리랑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노래이다. “아리랑”의 실체는 찾지 못하였지만, 나운규는 청진에서 회령까지의 철길공사 노동자들이 부르는 구슬프고 한이 서려 있는 노동요 “아리랑” 곡조를 듣고, 일제강점기(1926년)에 “아리랑” 영화를 제작(조선키네마 프로덕션이 제작한 흑백 무성영화)하여 단성사에서 개봉할 당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를 창작하여 노래는 김연실이 불렀고, 반주는 일본의 빅터 악단이 연주했는데, 빅터 악단의 실수로 노래 제목이 “아르렁”이 되었다. “구 경기 아리랑”이 근간이 되어 창작되었다고 하여 “신 경기 아리랑”이라고도 하는데, 이 노래가 전국에 유행되자 일제는 “금창령”을 내렸다. 이 노래가 우리나라 백성들이 일제강점기 때 애국가처럼 부르던 국민의 노래, 지금의 “아리랑”이다.
♣ 신 경기 아리랑
“신 경기 아리랑”은 작사*작곡 미상의 곡이 아니다. “아리랑” 영화감독 나운규가 철길공사 노동자들의 노동요를 바탕으로 하여 “구 경기 아리랑”을 개사하여, 단성사 빅터악단이 작곡한 곡이다.
(1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2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온대요. 이강산 삼천리 풍년 온다네.
(3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산천초목은 젊어가건만 우리네 인생은 늙어지네.
(4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인 말도 많다.
♣ 구 경기 아리랑 가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 넘어 아라수를 건너 아리랑 아리세계 찾아가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우리네 인생이 짧다고 해도 이어지면 천년이요 손잡으면 만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사람에 한평생 사연도 많고 이어지면 천년이요 손잡으면 만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경기 아리랑의 또 다른 개사곡
아리랑 춘자가 보리쌀을 씻다가 이도령 피리소리에 오줌을 쌌네.
오줌을 싸도 짧게나 쌌나 낙동강 칠십리에 홍수가 났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맺으면서
아리랑은 실제의 강(River)이다. 물은 우리의 생명이고 삶의 원천이다. 물을 떠나서 우리는 살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의 삶 또한 물과 함께하였고, 오랜 수렵 생활을 한 끝에 강가에 정착하면서 이웃을 이루고 혈연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함께 더불어 살았다. 이곳에는 어머니가 계시고 형제자매가 있고 친척과 이웃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정든 고향과 그리움이 있고, 이별과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바로 그 “아리랑”의 정한(情恨)이 겨레의 심장과 얼에 빛나는 성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자료제공 : 아리랑 연구가. 김동철(mail - kim_dch@hanmail.net)
부 록
각종 아리랑노래의 가사
♣ 정암촌 아리랑(정암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루 날 넹겨주게
울넘어 담넘어 님 숨겨두고 나들난들 호박잎이 날 속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루 날 넹겨주게
팔라당 팔라당 갑사나 댕기 곤때도 안묻어서 사주가 왔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루 날 넹겨주게
가겠지 가겠지 언젠간 가겠지 힘들고 고달파도 언젠간 가겠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루 날 넹겨주게
넘겠지 넘겠지 이 산을 넘겠지 보고픈 울 엄니도 환희 웃겠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루 날 넹겨주게
♣ 홀로아리랑
한돌: 작사.작곡 노래: 서유석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 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 타고 간다
가다가 홀로 섬에 닻을 내리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해보자
아아 아아 아리랑 고개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 "靈岩 아리랑" (1972)
백암 작사/ 고봉산 작곡/ 노래 하춘화
달이 뜬다 달이 뜬다
靈岩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月出山 天皇峰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헤야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豊年이 온다 豊年이 온다
지화자자 좋구나
西湖江 夢海들에
豊年이 온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헤야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간 주>
흥타령 부네 흥타령 부네
木花짐 지고 흥겹게 부네
龍七 道令 木花 짐은
장가 밑천이라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헤야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 강원도아리랑
안비취.이은주.목계월 창
(1)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 마라 누구를 괴자고 머리에 기름
※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2) 산중의 귀물(貴物)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貴物)은 나 하나라
※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3) 감 꽃은 주우며 헤어진 사랑 그 감이 익을 땐 오마던 사랑
※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4) 만나보세 만나보세 만나보세 아주까리 정자(亭子)로 만나보세
※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5) 영창(暎窓)에 비친 달 다 지도록 온다던 그 임은 왜 아니 오나
※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6) 풀벌레 구슬피 우는 밤에 다듬이 소리도 처량하다
※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7) 열라는 콩 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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