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촌지라는 제목을 쓰면서 참 잘 생각했다고 자화자찬을 했습니다. 이 시를 썼을 때, 부정부패와 맞서던 시국이었습니다. 검은 촌지에 담긴 의미가 많았던 것입니다. 3년 7개월 근무를 마치고 서울 집으로 와서 1년 후에 임용 고시를 보고.... 재임용을 받아서 36년 서울서 근무했습니다. 참 오랜 세월이었습니다.
살다 보니 이런 경이로운 일도 만납니다. 1975년에 지도책 보며 찾아간 낯선 정선..... 3년 7개월 근무하고, 육아 문제로 사표를 내고 눈물을 흘리며 떠나온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폐광이 되고, 카지노의 성지처럼 되었지만..... 10년 전에 가보니까 참 많이 변했습니다. 학교 위치도 바뀌었습니다. 늦게나마 탄광 문화 축제를 열고, 탄광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참 젊은 저였습니다.
첫댓글
사북 고한은 90년대 초에 여러번 다녀 왔습니다
일 때문에 다니던 곳이었지요
동창님 초임 시절을 그 곳에서 지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가 70년대 일텐데 오가는 것도 그렇고
그 곳애서의 생활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연탄 100장...!!!
아무리 잊으려해도 잊힐수가 없는
성의일 듯 합니다
검은 촌지라는 제목을 쓰면서 참 잘 생각했다고 자화자찬을 했습니다.
이 시를 썼을 때, 부정부패와 맞서던 시국이었습니다.
검은 촌지에 담긴 의미가 많았던 것입니다. 3년 7개월 근무를 마치고 서울 집으로 와서 1년 후에 임용 고시를 보고.... 재임용을 받아서 36년 서울서 근무했습니다. 참 오랜 세월이었습니다.
먼저 탄광문화축제에 목시인님의 시 -'검은 촌지'가 초대되었다니 얼마나 반가운지요.
시를 다시 보니 탄광촌 학부형의 삶 속에 녹아있던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의미인 촌지로 건네준 연탄 100장의 감동이 초임 교사에게 얼마나 인상 깊게 새겨졌을지 수긍이 되는군요.
탄광축제에 초대될 수 있는 충분조건이 과거 번창기 탄광 속 이야기인 이 시 한 편으로 확실히 전달되었을 겁니다..
살다 보니 이런 경이로운 일도 만납니다.
1975년에 지도책 보며 찾아간 낯선 정선..... 3년 7개월 근무하고, 육아 문제로 사표를 내고 눈물을 흘리며 떠나온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폐광이 되고, 카지노의 성지처럼 되었지만..... 10년 전에 가보니까 참 많이 변했습니다. 학교 위치도 바뀌었습니다.
늦게나마 탄광 문화 축제를 열고, 탄광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참 젊은 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