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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당 춘원의 밤은 지나가다
- 육당·춘원은 금이 간 옥이었다. 그 옥을 아는 자 없었기에
함 석 헌
춘원에 갈 날 오고
씨알 육당에 찬 밤
소금 안 든 우림을
불 가도록 먹으라네
씨알아 네 속움직다
「네 맘 먹어」 함인가
이것은 지난해(1957년) 11월 23일 밤 사상계사의 주최로 열렸던 육당·춘원의 밤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좀 분한 생각이 있어서 장난으로 한 소리이다. 나 같은 것이 분했댔자 당랑(螳螂, 버마재비)의 도끼지만, 본래 당랑이 그런 것이다. 그 도끼가 나무를 찍잔 것도, 호랑이를 잡잔 것도 아니요, 생의 대도로 못 지나갈 것이 지나가는 날 거부의 한 손을 높이 들어보잔 것이 그 뜻이다. 그래 제 몸에는 격에도 아니 맞는 큰 도끼다. 상징이다. 생의 대도 위로 역사의 바퀴를 움직여 가자는 사람들은, 천하에는 당랑의 도끼 같은 의견도 있는 줄을 좀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사회가 어느 면으론 말썽이 너무 많아 걱정이면서도, 또 어느 면으론 너무 말이 없어 걱정이다. 민중의 손을 당랑의 도끼로 알고 정치니 학문이니 하며, 그 위를 막 밟고 찍고 건너가지 않나? 대성(大聖) 석가는 눈에 뵈지도 않는 벌레를 밟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름엔 여행을 그만두고 우안거(雨安居)를 하며 공부를 했다는데.
생은 당랑의 도끼다. 거부하는 것이 생이다. 그리고 차(車)는 아무리 커도 깨지는 날이 있을 것이요, 당랑의 뒤에는 끓질 줄 모르는 당랑이 있다. 말해 보자. 누가 이기나 보자!
춘원에 갈 날 오고
봄 동산에 갈 날이 왔다. 육당·춘원은 이 동산에 한때 문화의 꽃을 피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가는 날이 왔다.
가면 어떻게 하나? 가면 보내야지. 올 줄 갈 줄 아는 것이 사람이다. 올 때에 오고 갈 때엔 가야 한다. 오는 사람 맞을 줄 알고 가는 사람 보낼 줄 아는 것이 사람이다. 육당·춘원의 밤을 만든 것은 가는 이 보내자는 일 아닌가. 육당·춘원에 갈 날 왔다. 올 때 왜 왔고 말할 때 말했으며, 잠잠할 때 잠잠했고 갈 때 갔나? 단풍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여름에 들어서는 못쓰는 것이요, 모란이 아무리 좋아도 떨어질 때가 깨끗하지 못하면 보기 싫다. 사람은 오기도 하고 힘 있게 살기도 해야지만, 더구나 갈 때를 잘 알아 잘 가야 하는 것이다. 석가의 이름 하나를 선서(仙逝)라 하지 않나? 잘 간 이다. 봄보다는 가을이 더 중하고, 옴보다는 감이 더 귀하다. 장례요, 추도요, 기념이요, 그것은 다 가는 이를 잘 보내자는 일이다. 그러려면 우선 가는 이가 갈 때에 선뜻 일어 뒤에 남김이 없이 깨끗이 잘 갔어야 하는 것이요, 보내는 자가 또 그 모양을 잘 보아야 하는 것이다. 갈 때가 되었는데도 갈 생각을 못하면 어서 가라 재촉을 하고 미급한 준비를 해드려 가게 하는 것이 예(禮)다. 또 떠난 후는 서서 그 가는 뒷모양을 바라며 지평선에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것이 잘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보내는 나의 처지도 알아야 한다. 내가 슬픔을 당했는데 춤추며 보내는 것도 예가 아니요, 내가 기쁜데 가는 그에게 기쁨을 나눠 주지 않는 것도 일이 아니다. 오늘 우리는 봄날을 당했나? 갈 날을 당했나? 인생을 즐길 사람들인가? 생각을 하고 반성을 하고 회개를 할 사람인가? 우리야말로 갈 날을 당하지 않았나? 그럼 육당·춘원의 밤에 육당·춘원의 가는 모양은 잘 나타났던가? 우리 처지답게 잘 보냈던가?
육당·춘원의 인생으로서의 살림은 스스로 된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이들 자신과 조물주와의 사이의 일이지 우리 알 바 아니다.
우리가 그들의 감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는 육당·춘원은 사회인, 역사인으로서의 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우리로 서서 그 가는 모양을 바라보아야 한다. 보내는 것은 영원히 사는 역사의 전당(殿堂)에 두기 위해서다. 보존할 한 푼 값어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보낼 필요가 없다. 육당·춘원은 보낼 분들이지 유야무야로 가는 줄 모르게 버려둘 존재들이 아니다. 그러나 보존을 하려면 가름이 없을 수 없다. 썩을 부분은 제하고 썩지 않을 부분만을 두어야 할 것이다. 보내는 날엔 비판이 없을 수 없다. 미술품을 잘 보관하는 사람은 늘 서재에 두고 조석으로 보고 만지는 이다. 미술의 값은 알지도 못하는 부자가 한개 자랑으로 미술품을 사서 쌓아두어도 그것은 몇 날이 못가고 썩을 것이다. 인물은 늘 오늘의 입장에서 다시 비판하고 다시 씹어서만 살아 있을 수 있다. 육당·춘원의 밤엔 무엇을 했나?
씨알 육당에 찬 밤
이날 11월 23일은 마침 12년 전(1945년), 해방으로 좇아오는 감격과 희망의 빛으로 빛나는 강산에 이리(狼)떼처럼 밀려드는 공산당의 횡포에 분개하여 신의주에서 어린 학생들이 정의와 자유를 지키자고 붉은 주먹을 들고 총칼에 대들었다가 푸른 피를 땅에 부은 날이다. 그들은 그 피로 생명의 역사 페이지에 도장을 찍고 갔다. 참 잘 간 그들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그들의 간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나는 넘어가는 해의 황혼에 그때의 공포와 비분에 잠가지는 그 침울한 공기 속에서 역사적 돌진을 하던 그 모양을 하늘가에 그리면서, 그들의 죽음과 이 두 분의 생애와의 사이에 어떤 연결을 시켜보면서, 발길을 재촉해 강연 장소인 서울대학교 문리대 강당으로 갔다.
가서 보니 시간은 아직 전인데 청중은 벌써 다시 더 들어설 여지가 없이 꽉 찼다. 본래 문리대 강당으로 장소를 정한 것을 보고 사상계사가 오산을 하지 않았나 했었다. 후에 들은 말로하면 사상계사가 그 모임을 열 계획을 할 때에 그런 것을 하지 말라는, 해서 성과가 시원치 않으리라는 여러 사람의 사적인 충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알고도 주최한 사상계사의 일은 용단이라면 용단이지만 잘 알지 못한 것이 있다. 이 사회의 공기, 민중의 기분, 이 젊은이의 말썽을 모르는 말들이다. 육당·춘원의 이야기라면 청중이 많을 것은 정한 일이었다.
온 사람은 대개 학생이었다. 그 사람들이 다 무엇을 위해 왔을까? 학문 연구나 도덕적 교훈이나 예술의 연마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는 그들이 쓴 책이 있다. 두세 시간 강연에 새로 얻는 것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한계가 빤히 정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큰 군중이 움직이는 데는 개인적인 무엇 이외의 동기가 있다. 육당·춘원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 어떤 커다란 무엇에 부딪쳐 보잔 것이 그들이 의식하는 또 의식하지 못하는 밑의 동기이다.
인도에서는 어떤 유명한 인물이 오는 경우에는 군중이 모이는 일이 많다는데 그것을 설명하는 자의 말을 들으면 그 동기는 따르산(darshan)에 있다고 한다. 따르산을 번역하면 '축복’ ‘감격’이라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따르산은 반드시 그 인물의 말을 듣거나 직접 만나서 되는 것이 아니요, 그저 그 장소에 가서 멀리서 한번 바라만 봄으로도 된다고 한다. 간디나 네루가 온다고 하면 그 얼굴을 한번 보자고 몇 십, 몇 백리 밖에서 와서 온종일을 땅바닥에 앉고 누워 기다리는 군중 때문에. 옮겨 설 수가 없다고 하며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이 무언지 하나 알아듣지도 못하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그 모습을 한 번 보고는 기쁨에 넘쳐 돌아간다고 한다.
인도만일까? 어디든지 군중은 그런 것 아닌가? 군중은 감격을 찾는 것이다. 감격이 무엇이 감격인가? 자기와, 자기가 아무리 적고 못생겼어도 자기와 절대로 큰 전체와가 하나로 통하는 시간에 일어나는 생명의 물결이 곧 그것이다. 간디의 얼굴만 보고 그저 좋아 눈물을 흘리는 군중은 자기 속에 간디를, 간디 속에 자기를, 둘을 다 하나로 만드는, 인도를 혹은 하나님을 진리를 가진 것이다. 제 못생김을 잊는 것이 민중이다.
일전에 서독에 가있는 어떤 친구게서도 그와 같은 소식이 왔다. 그는 말하기를 독일 사람은 대단히 이성적이면서도 어떤 때는 참 어리석어 보인다. 크리스마스라, 부활절이라 하는 명절이 오면 그저 모든 사람이 떨어나 막대한 돈, 막대한 시간을 써가며 미친 듯 떠드는데, 그것은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그리고는 이것은 참말 어리석은 일(Die Dummheit)인데, 사실은 이 어리석음 때문에 독일은 있지 않나? 우리 한국 사람은 너무 약은 사람들 아닌가? 그 때문에 아무 것도 안되는 것 아닌가 하는 소감을 말하였다. 동감이었다. 우리 사람은 확실히 약은 민족이다. 그러나 그래도 민중인 이상은 약지만은 못한다. 한강 백사장에 30만이 나가지 않나? 신익희(申翼熙)가 잘나서는 절때로 아니다. 민중 스스로의 무엇에 끌려서지. 민중은 저를 모르는 것, 어리석은 것. 그러므로 저를 찾는 것, 찾아 만난 시간엔 어쩔 줄을 모르고 감격하는 것, 그 감격이 역사를 짓는다. 이성만이 민중을 지도한 일은 없다. 감격을 준 자가 민중을 얻었지.
나는 길을 뚫고 들어가 가득히 당내(堂內)에 찬 씨알 속에 한 알로 끼었다. 육당은 왜 육당이라 했는지 모르지만 육(六)은 땅의 수(數)다. 이 땅은 씨알의 땅, 씨알은 이 땅의 주인. 시냇물 한 방울이 바다 속에 들어가는 모양으로, 나는 들어가기 전엔 미리 느끼지 못했던 어떤 커다란 물결 속에 한통치고 든 것을 느꼈다. 그 큰 강당 전체가 한 개의 폐엽(肺葉)이 되어 너울너울 숨을 쉬는 듯했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왔을까? 따르산을 찾은 것도 사실이지만, 또 다른 것도 있다. 해방 후 민중이 육당·춘원에 대하여는 좀 찬(冷)데가 있었다. 그들의 문화상의 공적을 말하면 큰 것이 있는 것을 세상이 다 알고, 자유를 얻는 날 달려가서 그들을 꽃다발로 묻어드리고 싶은 점도 없지 않지만 그럴 수 없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일제 말년에 그들과 타협을 하고 굴복한 점이 있다는 것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민중은 그들에게 대해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한 분은 이북으로 납치가 되고 한 분은 아주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위에서 말한대로 가는 줄 모르게 갈 분들이 아니다. 무엇으로나 분명한 인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육당·춘원의 밤이라는데 민중은 그 궁금한 것을 풀자는 것도 한 동기였을 것이다.
소금 안든 우림을
그런데 강연은 도무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사회로부터 폐회에 이르기까지 여덟 분이 말을 하였는데, 그 말은 다 사실이요, 거짓말은 하나도 없었지만 맛은 짜릿한 것도 따끔한 것도 없는 아무 맛없는 말이었다. 식은 숭늉이 목구멍을 넘듯이 강연회는 무난히 미끈히 원만히 됐다면 됐다고 할 것이나, 그 대신 뱉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몇 번 몇 번 났다. 이 청중이 이것 들으러 왔을까? 따르샨이고 감격이고는 털끝만큼도 얻어 볼 수 없었다.
강사가 감정을 가진 분들인가, 시비판단을 아는 분들인가 의심이 날 지경이었다.
우리는 지식을 얻으러 간 것이 아니었다. 보고서 낭독을 하려고 우리를 오라 했나? 우리를 동업회사의 사원으로 아나? 우리는 정신을 찾아서 간 것이다. 산 혼의 부르짖음을 들으러 간 것이다. 육당·춘원이야 누가 모르느냐? 네가 혼이 있나 보자는 말이다. 내가, 우리가 지금 우리게, 산 호흡이 있는가 해서 간 것이다.
밤새도록 말한댔자 육당·춘원이라는 두 마리 생선이 살고 간 마른 뼈다귀를 우려먹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려먹어도 소금이 들어야 맛이 나지 않나? 가장 중요한 소금을 아니 넣었으니 어떻게 먹으란 말인가? 그것이 민중 대접인가? 소금이 무엇이 소금인가? 말하는 그들의 맘인가? 그대의 알짬 되는 인생관 사회관, 인격의 주체되는 것을 내어놓음 없이 무슨 인물을 기념 소개하겠단 말이며, 이 민중더러 무엇을 얻어먹으란 말인가? 자기의 생명을 위태한 자리에 내어놓음 없이 남에게 선을 할 수 있나? 민중의 지도자가 될 수 있나?
나의 편견인지 몰라도 나 보기엔 그날 밤에 한 것은 육당·춘원의 비석 세운 것밖에 없다. 비문은 언제나 둥그스름한 법이다. 보나마나한 글이다. 육당·춘원은 그렇게 비석이나 세우고 말, 또 비문을 써도 그렇게 쉽게 무난히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또 오늘 우리가 그처럼 고인의 무덤이나 꾸미고 있을리만큼 한가하고 무사하고 좋은 세월 만난 사람들이 아니다. 죽은 자는 저들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라! 살려는 너는 나서라! 나서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싸우고 정복하고 찾고 이겨야 한다.
육당·춘원은 그대로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 있고 무조건 존경하기에는 너무도 미운 것이 있는 분들이다. 제사꾼들은 가라해라! 민중은 거짓은 하지 못한다. 그렇다. 그들은 외상거래는 아니한다. 그들은 가난한 고로 외상은 없다. 외상거래는 저 ‘있는 사람’ ‘가진 자’들의 일이다. 줄 테면 아주 주고 안 줄 테면 차라리 욕을 하고 돌아설 것이지, 주마 주마 줄듯 줄듯하면서 안주고 급기야 오래서 가면 부도수표를 준단 말인가? 밤새도록 한 강연이 새 역사를 일으키려는 일꾼인 민중의 정신엔 아무 영양을 주는 것 없는 형식적인 말뿐 아닌가? 소금을 왜 아끼나? 소금은 아끼자는 것이 아니고 녹아버리어 짠맛을 내잔 것 아닌가? 그대들은 왜 민중 속에 녹아버리려 하지 않나? 왜 자기를 아껴 지키려고만 하나? 그러려거든 왜 오라 했던가?
불 가도록 먹으라네
소금이 아니 든 국을 밤새 먹으려니 힘이 들지 않나? 밤은 깊어 불이 가게 되는데, 마음은 점점 급해 이제나 이제나 하고 소금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데, 한 알만이라도 떨어만 지면 한 그릇 국이 다 살아날 줄을 아는데, 소금은 종시 아니 떨어지고 말았다.
불을 붙이러 갔었는데 불은 종시 붙는 것이 없이 장작을 도로 지고 돌아와야 했다. 무거운 맘이요 무거운 걸음이었다. 불씨가 이렇게 없나? 이 우리가 못생겼어도 움찔꿈찔해도 장작인데 우리게 불꽃을 주기만 하면 타련만 그 불씨 하나를 아니 주고 마니!
춘원은 기독교다가 불교로 돌아갔다 하고 육당은 불교다가 가톨릭으로 갔다 하니, 그러면 어째 그렇게 된 것을 밝혀주면 이 어둔 씨알의 가슴에 불빛이 되지. 밝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그렇다고만 하니 우리 듣기엔 점점 어두워지는 일뿐이다. 후에 불교가 되니 전날엔 장난이었나? 잘 몰랐던가? 그럼 그때에 한 말은 무엇인가? 처음엔 불교다가 나중엔 가톨릭이라니. 그럼 전의 불교는 버렸나? 아니란 말인가? 육당·춘원의 심경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 앞에 그 생선을 내어놓는 이상에야 왜 분명한 요리의 칼을 아끼느냐 하는 말이다. 이 역사의 단계에 서서 할 말을 왜 아니하고 말까 ?
세조가 불교 장려를 했다 해서 칭찬만 해가지고는 역사는 밝아지는 것이 없다. 단종을 내쫓고 모든 충량(忠良)을 죽이고 임금이 됐으나, 그 죄가 무서워서 행여 벗을까 하는 심리를 해부해 본 다음에야 비로소 알려지는 것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밝히잔 것이 역사지 나타난 일만을 소개하는 것이 무슨 역사인가? 육당·춘원의 맘은 역사의 한 귀절이다.
나는 강당 문을 나오면서 “소금이 아니 들었구나!” “점잖음이 사람 죽이노나!” 했다. 강연이 그렇게 생기 없는 것이 된 원인은 강사들이 점잖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다 하늘에 걸린 달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다 쌓아놓은 인격이 있고 닦아놓은 지반이 있고, 거느리고 있는 세계가 있는 분들이다. 그러니 자기를 위해서만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주책없이 홍분을 하거나, 가볍게 비평을 하거나 얕은 말의 선전을 해서는 아니되는 점이 있을 것이요, 또 고인에게도 미안할만한 결점에 관한 말은 아니하는 것이 좋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민중을 볼 때, 이 따르샨을 찾아 어리석음을 잊고 몰려드는 군중을 볼 때 그렇게 점잖고만 있을 수 있을까? 점잖은 것은 지나가는 신사요, 사랑하는 자가 위급한 데 빠짐을 당한 자는 체면, 예모, 안전을 다 잊고 달려들 것이다. 우리는 신사는 소용없다. 우리 형님이 필요하고 동생이 필요하지.
대체(大體)를 굽어볼 때 분명하지 않은가? 나라가 망하는데 내 세계가 어디 있으며, 사회가 온통 결만이 나는데 지반이 무슨 지반이 있으며, 국민이 없어지는데 인격이 무슨 인격이 있나? 역사가 이렇게 된 단계에 점잖은 자가 누군가? 그것은 보수주의적인 특권계급의 의식 이다.
의분은 왕왕 처지를 잊게 하는 것이요, 사랑은 매양 체면을 버리게 한다. 이 사회에 대한 의분이 있고 육당·춘원을 참으로 아껴하는 맘이 있다면 어떻게 목도 한 번 아니 떨리고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육당·춘원의 밤에 눈물도 콧물도 아무 예리한 비판도 깊은 음미도 없이 지나갔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강사들도 너무 점잖았고 청중도 너무 점잖았다. 강사의 말에 불이 없으면 청중 중에서라도 불이 터져 “집어치워라!” 소리가 나왔어야 할터인데 그것도 없었다. 우리는 하룻밤 제사를 지내고 말았다.
점잖으려는 심리의 밑에는 무엇이 있나? 현실 문제에 접촉하지 말자는 심리가 있다. 오늘 우리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언론의 자유가 점점 없어져간다.
우리 민족을 본래 약은 민족이라고 위에서 말했지만, 약아진 것은 부대껴온 역사 때문이다. 민중이 너무 속아 봤다. 그러므로 좀처럼 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또 의사 발표를 하려 하지 않는다. 의사 발표를 했다가 너무 비참한 수난을 한 민족이므로 될수록은 속을 주는 말을 피한다. 그것이 약아진 것이다. 해방이 됐다는데 원일인지 또 속을 내어놓고 말을 할 수 없어진다. 민(民)의 자리에서 보면 이까짓 역사에 아까울 것이 없건만, 그래도 아까워서 잃을까 두려워 말을 피한다. 그러므로 여론은 점점 더 죽고 횡포자는 더욱더 마음대로 한다. 일명(一命)을 잊고 바른말을 하는 어리석은 인물을 가지는 민족은 살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 약아서 말을 아니하는 민족은 개 돼지가 될 것이다. 벌써 다 되고 있지 않나?
그날 밤 두 시간 반이나 넘는 시간에 여덟 명사가 말을 했는데 민중이고 민권이고 민(民) 소리는 한 번도 아니 나왔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마이크가 좋지 못했으니 내가 잘 듣지 못한지도 모르나, 그 수천 군중이 박수 한 번 딱 소리도 낸 것 없으니 내가 잘못 본 것도 아닐 것이다. 이집트 고분에 가서 미이라에 관한 강연을 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많고 산 민중을 놓고 일제 밑에 압박을 받고 착취를 당하고 코를 끌려 다니던 재주는 천하 어디 가도 자랑을 할 만한 재주, 맘성은 어디가도 내어 놓을 만한 어진 맘성들을 가지면서 그 참혹한 살림을 했던 육당·춘원을 이야기하는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또 까닭이 있다. 강사들이 말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두 분이 다 문제를 가지기 때문이다. 총독부의 사료 편수관이 됐고 학도병 나가라는 권유 강연을 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이것을 잘했다 할 수는 없으니 말을 끄집어내면 거기 대한 비판을 안할 수 없고, 하면 고인에게 욕이 될 것 같고, 이러므로 될수록 그 문제는 건드리지 말자 해서 그 말은 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픈 데 건드리지 않고 고치는 의사가 어디 있으며, 병 고쳐 주지 않고 인술(仁術)이 어디 있나? 그것 하자고 연 밤에 그것 아니했으니 무슨 의미인가? 살았을 때 얼굴딱지지, 세상을 다 떠난 다음에 낯이 어려울 것도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또 우리는 누구의 사정을 보러 모였던가? 또 사랑이 무엇이 사랑인가? 살아서 우리가 그것을 말려드리지 못하고 또 죽은 후에 그 비판조차도 못하면 무슨 사랑인가? 또 설혹 그것이 결점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한번 죽이고 다시 살려낼 만한 재주가 없던가? 재주가 무엇이 재주인가? 성의가 재주지.
씨알아 네 속움직다
사람을 모아놓고 할 말을 안한 것은 속인 것이다. 소금 아니 넣었기 때문에 속음이다.
왜 속았나? 왜 속였나? 강사들이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 속이잔 것 아닌데 왜 속임이 됐나? 둘 사이에 떨어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무러운 것은 그것이다.
왜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할 말을 못하는 민중의 입장에 서서 해주지 않았나? 우리는 사실 우리말을 들으러 간 것이었다.
우리가 육당·춘원에 대해 하고 싶으면서도 못하는 말, 발표 능력이 없어 못하고, 제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몰라 못하는 말을 해 주는가 해서 갔었다.
우리가 말하지는 못하여도 들으면 우리말임을 알기는 한다. 그러면 우리 맘이 열려 힘을 얻는다. 그것을 위해 갔다
그런데 우리말을 해 주지 않았다. 민중은 속았다.
민중이 무어냐? 본래 속는 것이다. 정치로 속고, 교육으로 속고, 종교로 속고, 역사가 민(民)의 역사라면 그것은 속음의 걸음이다. 저 민중은 꽤 속임직하다 하기 때문에 감히 지도자라 나서고, 교사라 나서고, 신의 사자라 하고 나서지, 민중이 뚫어보는 눈을 가진 줄을 안다면 한 놈도 나설 놈은 없을 것이다.
아니다. 민 그 자체가 스스로 속임 아닌가? 생(生)이 곧 스스로 속임인데, 그렇기 때문에 감히 속이려 드는 것인데,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다.
씨알아, 네가 스스로 눈을 감지 않는데 네 눈을 가릴 자가 누구란 말이냐? 네가 스스로 입을 다물지 않는데 누가 네 입을 틀어막는단 말이냐? 네가 참을 참대로 보는 것과 그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밖에 또 무엇이 아낄 것이 있는 듯해 너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느냐? 그러나 속고 나면 속았구나 하는 것이 민중이요, 속았구나 하면 분하다 분하다 못해 내가 잘못이지 하는 것이 민중이다. 그러나 스스로 속였구나 할 때 속 움직임이 있다.
거기서 새 역사의 걸음이 시작된다.
「네 맘 먹어」함인가
소금 먹을 생각을 말고 네 마음을 먹어라. 네 마음이 소금이다.
맛이 씨알 제 속에 있다. 생명력이 씨알 제 자체를 깨침에 있다. 목숨을 아꼈더니 아낌이 죽음이었구나. 이 한 목숨 아낌을 타서 너희가 나를 속였지, 내가 이젠 속지 않는다. 속지 않는다 할 때 나는 깨지고 그 깨달음으로 참 생명을 얻는다.
네 마음을 먹어라. 스스로 결심해라! 너는 네 마음을 먹고 사는 것이지 밥을 먹고 사는 것 아니다.
지도자가 네게 살길을 주는 법은 없다. 네 마음이 스스로 너를 살린다.
문제는 네게 있지 남에게 있지 않다. 수천의 젊은이가 달려간 것은 육당·춘원을 알러 간 것이 아니었다. 자기를 알러, 제 소리를 들으러, 제 초상을 보러 갔던 것이다.
민중이 제 초상을 보고 제 음성을 듣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그것을 위해 민중은 헤매이고 안타까워하고 더듬고 넘어진다.
성격을 세워라! 모든 문제는 민중의 성격을 다듬는다는 한 점에 집중된다.
사회의 지도자들이 육당. 춘원의 밤을 열면서도 아무 준 것이 없었던 것은 그 뜻이 너 스스로 해라 하는 데 있다.
사실 성격을 누가 줄 수 있을까? 줄 수 없는 것이므로 못 준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성격을 세우기 위해 육당·춘원을 사정없이 씹어 먹어야한다.
육당·춘원이 무엇인가? 한퇴지(韓退之)의 말을 빌어 하면 잘 운 사람들 아닌가? 이 나라가 기울어지려 할 때, 이 민중이 고난에 빠지려 할 때, 그 불평을 잘 울라고 하늘이 세웠던 이들 아닌가? 그들은 참 잘 울었다. 그 소년잡지, 그 청춘잡지, 그 역사, 그 단군론, 그 백두산 참관, 그 백팔번뇌, 그 무정, 그 개척자, 그 단종애사. 이순신, 원효, 이차돈, 그것이 다 이 민족을 위해 울고 이 나라를 위해 슬프게 힘있게 우렁차게 운 것 아닌가? 민중은 한때 그들 안에서 자기의 가슴에 사무친 불평을 시원히 울어낼 수 있었다. 우리가 그들의 공로를 찬양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 마음을 잘 알아서 우리가 있으면서도 잘 발표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잘해 주었기 때문 아닌가?
그런데 이제 민중이 그들 위해 분해하고 아껴하고 의아해하는 것은 그렇게 울던 그들이 내처 힘있게 울지 않고 증도에 그 소리가 그만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울음이 사람을 움직이려면 그 폐부와 간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곧 깊은 데서 나와야 한단 말이다. 뼈에서 혼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는 꼿꼿이 서지 않으면 안된다.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이라, 사람은 곧은 것이 그 천성이다. 그러므로 꼿꼿이 서서만 하늘 숨을 마실 수 있다. 하늘 숨을 마셔서만 참 맑고 날카롭고 힘있는 울음을 울 수 있다. 절조(節操)라니 다른 것 아니고 곧음이다. 만일 자기를 굽히면 옳은 울음이 나올 수 없다. 장자가 굴복자는 기익언약회(其!益言若吐)라 한 것은 이것이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가슴을 우그리고 배를 눌러 남한테 꾸부린 자는 맑고 힘차고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없다. 육당·춘원이 독립 운동을 하고 민족정신을 위해 싸울 때는 정천입지(頂天立地) 꼿꼿이 섰었다. 그러나 총독부 사료 편수관으로 들어가고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때는 아무래도 굽혔다. 굽혔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그 소리가 맑고 날카롭고 진동적일 수가 없었다. 동정하려면 동정할 수도 있고 작다면 작은 일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전에 진두(陣頭)에 앞서서 총칼을 무릅쓰고 울던 그 사람과 후의 그 사람을 대 조해볼 때 우리는 이 사람에 어째 이 일이었느냐고 주먹으로 땅을 치고 싶고 보던 역사의 페이지를 찢고 싶음을 금하지 못한다.
아, 칠십 인생이 이렇게 어려운가? 육척 못되는 몸이 이리도 무거 운가? 육당·춘원의 밤에 이 비분도 아니 울라면 뭘 하자고 수천 민중을 모았던가? 이 울어야 할 사람이 울던 울음을 끊지고만, 이 설움, 이 통분을 한 번 못 울어본단 말이야? 울어야 할 통분을 울지 못하면 터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썩어진다. 그럼 이 지도자들은 점잖은 상아상(象牙床)에 앉아서 이 민중을 썩히고 말려나? 육당·춘원 울라고 하늘이 천분을 주어 내보낸 울음꾼이 왜 마지막까지 울지 못했나?
일본제국주의의 칼에 맞아 죽으면서, 백조가 죽을 때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듯이 마지막 노래를 불렀더라면 이 민중이 감동되어 한 번 크게 울었지. 그랬다면 해방이 돼도 이렇게 더럽게는 안됐지. 죽었더라면 살아서보다 더 힘있게 더 길게 울었지. 정포은(鄭圃隱)은 지금도 얼마나 힘있게 우나? 성삼문(成三間)은 지금도 얼마나 절절(切切)하게 우나? 독립선언문을 썼으면 왜 제퍼슨이 되지 못했나? 문장을 썼다면 왜 일찍이 시일야방성대곡(是曰也放聲大哭)을 썼다가 일본 사람에게 짓밟힘을 당하고 신문사를 헐리우던 그 같이 되지 못했나? 그들은 아직 울고 그 신문은 아직 살아 있지 않나 ?
일본의 지배 하 40년 종살이의 역사에 운 사람이 이밖에도 없지 않으나, 그 어느 모로 보든지 이 두 분에서 지낼 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됐으니 그 분함을 무엇으로 말할까? 우리가 이런 푸념을 하는 것은 고인을 폄하(貶下)하기 위해서가 아니요, 그 공로를 몰라서가 아니다. 그들의 공로가 잊을 수없이 있고 그들을 존경할새 하는 말이며 우리 분을 둘 데 없어 하는 말이다.
그러나 한(恨)은 거기서만 그치는 것 아니다. 그들은 왜 끝내 곧추 서서 울지 못했나? 그것을 그들의 개인적인 책임에만 돌리는 것은 너무도 옅은 일이다. 정말 책임은 민중 자신이 지지 않으면 아니 된다. 개인은 민중의 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큰 재목을 구하려면 깊은 삼림 속에 가야만 하는 것이요, 큰 고기를 잡으려면 넓은 바다에 가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자라는 힘이 한 그루 한 그루의 뿌리에 있다 하여도 숲 없는 사막에서 재목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이고, 아무리 사는 힘이 한 마리 한 마리에 있다 하여도 물이 없는 들판에서 고래를 기를 수는 없는 것이다. 민중 없는 위인은 없다. 위인이 민중을 만드는 것 아니요 민중이 위인을 낳는다. 민중의 지지와 따름이 없이는 아무리 천분을 가진 사람도 그것을 발휘할 수가 없다. 미국 민중의 정신이 나타난 것이 와싱턴이요 링컨이다. 와싱턴이나 링컨은 미국에서만 나게 생긴 것이다.
그러면 육당·춘원이 그렇게밖에 되지 못한 것은 이 민중의 역량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육당·춘원의 생애는 하나님의 이 민족에 대한 심판이다. 너희 성의와 너희 지혜와 너희 용기가 요것뿐임을 알아라 하는 판결문이다. 그러므로 민중은 자기 가운데 서는 인물에서 자기상을 읽어내어 반성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칭찬만 하면 그것은 우상 숭배요, 개인적으로 비평만 하면 그것은 자기를 속임이며, 자기를 낮추는 일이다. 민중은 인물을 떠받들 뿐만 아니라 비판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요, 엄정하게 비평할 줄만 알 뿐 아니라 용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자기발견의 정도가 낮은 민중일수록 우상적인 숭배에 빠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혹하고 도량 좁은 제재(制裁)를 한다. 그래 가지고는 사회는 건전한 발달을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인물 대접할 줄을 모른다. 그것이 우리의 국민적 성격의 큰 결함이다. 재목은 가 꾸어서만 있듯이 인물도 가꿔야만 있다. 우리나라 쇠(衰)한 큰 원인의 하나는 인물 빈곤이 다.
사화. 당쟁 이래 조금 역량이 있는 인물은 모조리 죽여버렸다. 경제력의 피폐는 인적 자원의 피폐와 병행한다. 이조 말년 때 와서 나라가 아무 반항의 힘없이 고스란히 망했던 것은 이 때문이요, 오늘날도 아직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재목 하나를 얻으려 하여도 백 년은 길러야 하는데 인물을 얻으려면 적어도 수백 년을 단위로 삼고 기르지 않고는 큰 것은 바랄 수 없을 것이다. 이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당분간 큰 인물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수록 칠년지병(七年之病)에 구삼년지애(求三年之艾)로, 이제라도 어서 길러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고 옛날 하던 버릇인 서로 배제하는 풍이 아직 있으니 한심하지 않은가?
나무 빈산이 씨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큰 나무가 없는 고로 우마(牛馬)의 침입을 입어 자랄 수 없듯이, 우리나라가 인재가 나지 않는 것 아니나, 크게 되자 못하고 싹 나다가 마는 현상을 늘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큰 삼림 속에서야 큰 재목이 자라고 큰 인물 밑에서야 큰 인물 자란다. 육당·춘원도, 이렇게 된 민족적 희생의 하나라. 할 것이다. 우리가 기르지 못했다. 민중이 정말 받들었다면 그 육당 그 춘원(春園)인들 무시하고 갔을까? 시비를 개인적으로 돌릴 것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 회개를 해야 할 것이다. 육당·춘원은 드물게 얻은 옥(玉)이다. 그러나 거기 그만 금이 갔다. 그것은 옥을 아는 자 없었던 죄다.
우리의 잘못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그들이 약해질 때 눈물로 그 길을 막고 돕지 못했던 것이요, 그 다음 또 하나는 쾌히 용서해 다시 발을 펴게 하지 못한 것이다. 해방이 안됐다면 몰라도 이미 됐으니 낡은 문서는 선뜻 청산을 하고 진심으로 맞았으면 새 울음이 나왔지 아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이 엉거주춤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데 그 아까운 혼들을 다시 기운을 펼 기회를 잃었다. 이것이 분하지 않은가? 이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책망할 것은 우리 자신이었다. 민(民)의 세대 아닌가? 우리 일 아닌가? 그런데 육당·춘원의 밤을 열었으면 그거라도 했어야 할 터인데 그것도 못했다. 말했던 명사(名士)를 나무랐으나 그 잘못 역시 우리 얼굴로 떨어져온다. 청중이 정말 청중이었다면 그 강연이 중단되든지 산 말이 나오든지 했을 것이다. 식은 숭늉 삼킨 것은 들미지는한 민중 자신의 맘이다. 어떤 광대도 관중 보아가며 재주를 하는 법이다. 너희 따위는 이것밖에 볼 자격이 없다 하니 싱거운 연극도 끝까지 두루 뭉쳐서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아젠 육당·춘원은 다 지나갔다. 그들은 우리 고난의 역사의 마지막 밤에 나와 울고 갔다. 이제 그 밤은 갔다. 날이 밝는다. 이제 그들이 다시 돌아와서 우리 울음을 울어줄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오늘의 아픔 슬픔을 울어야 한다. 옛날같이 누구더러 울어 달랄 것도, 누구를 따라 울 것도 아니다. 우리가 앞장을 서서 울어야 할 것이다. 오랜 압박과 착취의 정치는 이 민중에게서 울음까지를 빼앗아버렸다. 그러므로 이때까지의 모든 울음은 참 뜻에서의 우리 울음이 아니었다. 민중이 힘껏 따라 울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울어야 하는 때가 왔다. 아직도 자고 있는, 피폐가 된 채, 질식이 된 채 있는 이 민중이, 그 압박자들이 단말마적인 악독을 부려, 먹을 것 주노랍시고 겨를 주고 흙을 주어도 그대로 먹고, 가르친답시고 차 굴리고 껍질을 벗겨도 움찍도 못하고 있지만, 때는 이미 어쩔 수 없이 밝았다. 이제 신음하는 소리 한 마디만을 질러도 저들이 질겁을 하고 도망을 할 시간이 다가온다.
새 시대의 전망 (1959 백죽문화사)
저작집30; 10-279
전집20; 5-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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