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희 여사
2023년 7월5일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486(지번) 가산면 다부리 329)에 6·25 전쟁 당시 보급품을 지게로 운반하며 국군을 지원했던 이름 없는 영웅들인 지게 부대원의 희생을 기리는 높이 160㎝의 '다부동 전투 지게부대원 위령비'의 제막식을 개최하였다.
다부동 전투 당시 총탄을 뚫고 병사들에게 탄약과 연료, 식량 등 보급품을 지게로 가파른 산악지대 고지를 오르며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국군 1사단과 미군에게 전달하고 전사자와 부상병을 호송해 준 지게 부대원들을 기리는 위령비이다.
당시 군인들의 '생명줄' 역할을 했던 그들을 국군은 '지게부대'로, 미군들은 'A-frame Army'라 불렀다. 다부동 전투에서만 지게부대원 2천800명가량이 전사했으나 참전 사실이 입증되지 않아 제대로 된 보상이나 예우가 이뤄지지 않았다.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 장군은 회고록에서“지게 부대가 없었다면 최소 10만 명 정도의 미군 병력을 추가로 보내야 했을 것”이라며 그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위령비 건립비용과 행사 비용 등 2천500만원은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75) 여사가 사재를 들였다.
백남희 여사는 "아버님은 국군 1사단을 도운 주민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계셨기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칠곡군과 함께 위령비를 마련하고 제막식 행사를 준비했다"며 "아버님이 못다한 뜻을 이루고 다부동전투에서 희생된 주민에게 작은 위로와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백선엽 장군 동상과 지게부대 위령비 등의 건립으로 칠곡군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호국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면서 "호국 관련 기반과 스토리를 모아 유기적으로 엮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부동 전투에서 산화한 지게부대원게 바칩니다.
지게부대원은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노무자들로, 군복을 받지 못해 무명옷 차림으로 포탄과 식량을 40∼50kg 짊어지고 가파른 고지를 올랐으며 내려올 때는 부상병을 실어 날랐습니다.
오직 대한민국과 다부동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포화 속을 누비다 하루 평균 50여 명의 지게 부대원이 전사했습니다.
백선엽 장군은 다부동 전투의 승리는 지게부대원의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헌신이 스며 있다 하시며 항상 고마워하셨고 전쟁이 빗어내는 비극에 늘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백선엽 서거 3주기를 맞아 어버님의 간곡한 유지와 칠곡군민의 뜻을 모아 6.25전쟁 최대 격전지 이곳 호국의 성지 다부동에 위령비를 세워 희생하신 그분들의 애국심과 애향심을 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름 없는 영웅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2023년 7월 5일
백선엽 장군의 유지를 받들어 맏딸 백남희가 올립니다.
지개부대 활약 모습
첫댓글 김교수님, 다부동 백선엽장군 동상제막식에 목로님, 가야님 및 촬영반 여러분이 다녀오셨네요. 님들의 현지촬영과 영상편집 하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7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투현장이 생생하게 떠오르니 말입니다.
당시 초등하교에 입학한 나이에 가족과 피난민 대열에 함께 다부동 산넘어 계천에서 피난생활을 했거던요. 무더위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대도 죽고 죽이는 전투현장의 총소리 대포소리를 들으면서 숨만쉬는 비참한 현장이였지요. 보국대원, 지게부대, 부역군 등 여러말로 불렀지만 죽으러 가는 현장이었습니다.
지게부대 2800명이나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네요. 피란대열에 아군 관계자들이 솔개미처럼 다니면서 지게부대에 참여해줄것을 독려하거나 강압으로 대려가기도 했습니다. 피란생활에 굼주리고 배가고파, 밥을 준다는 말에 자진 참여한 사람들도 있고, 아이들도 가고 싶었지만 자격이 안되었지요. 당시 전쟁에서는 지게부대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무거운 총포탄, 여러 전투물자 등짐으로 현장까지 오르는데, 그들은 군인이 그렇게 부러웠답니다.
날렵한 제복에 적을 죽이고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총을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지게부대원이 턱없이 부족하여 피란민속에서 동원되었기에 인명피해가 있어도 참여자 인적사항도 파악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전쟁으로 죽거나 부상을 당한 무명용사들이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라 짐작을 합니다. 피란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늘 길목이나, 산, 강변에 널려있는 시체들이 보였고, 피아군 또는 엽합군들이 뒤 엉켜 있었으니 어떻게 조사조차 불가로 그냥 집단매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현장을 실감되는 모습이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현장입니다. 다만 전장이 그쪽은 평지나 도시고, 다부동은 높은 산악지가 대분이었습니다. 김교수님을 비록한 영상반 여러분, 현장 출사와 편집에 수고가 많았습니다.
유학산 임자가 여덟 번 바뀌었고 북한군 1만 7천여 명의 전사상자를 내고서야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하니 이보다도 더 큰 혈전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일성은 8월 15일까지 부산까지 진격하여 남한을 완전히 자기것으로 하겠다고
사투를 벌렸으니 가슴이 멍합니다.
우리 아군도 전사상자 1만 여명, 지게부대 2800명이 이 고지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소중한 승리 결과입니까.
아군 1사단 1만여 명과 미군 1개 대대 병력으로 3배의 적군을 물리쳤는데
백선엽 장군 분향소에도, 2021년 6월 1주기 행사에서도
그때 정부에서는 남의 나라 일인 것처럼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경건하고 훌륭한 행사가 이루어져서
정말 정말 한이 없는듯 합니다.
하늘이시여 우리 조국을 구해주신 것은 먼저 가신 선혈들께서
피로서 조국을 지켜주신 덕분입니다. 깊이 깊이 감사드리고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