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魔障)을 넘는 십원(十願) 육향(六向)
마장(魔障)은 곧 경계이다. 여기에는 순경계(順境界)와 역경계(逆境界)가 있다.
순경계란 기도 중에 마음이 풀어진 상태다.
하는 일이 잘 되다 보면 처음 결심했던 기도의 다짐과 서원은 부지불식간에 잊어버리고
정진의 불씨는 사그라져 무기공(無記空) 나락에 떨어진다.
그래서 다시금 큰 계기가 있기 전까지는 불자(佛子)라는 인식조차도 없이 세월을 보낸다.
한편 역경계란 ‘기도해도 무엇인가 안 된다’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정진에 있어서 진척이 없고 포기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은 경계이다.
그래서 기도에 소홀해진다.
기도해도 현실적 고(苦)의 파도가 계속 밀려오는 바람에 낙담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만난 듯 현애상(縣崖想)이 일어난다.
기도하는 자는 일이 힘들수록 더욱 용맹심을 일으켜 깎아지른 절벽이라 할지라도
기어이 오르고 말겠다는 불퇴전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전혀 다른 세계를 보려면 한고비를 넘기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역경계를 기도로써 이겨낼 수만 있다면 그 경계의 크기만큼 더 큰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도고마성(道高魔盛),
즉 뼛골을 쑤시는 추위가 있어야지 코끝 찌르는 진한 매화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장은 마장이 아니라 일을 성취하는 계기가 될 뿐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순경계가 무섭지 역경계는 크게 나쁠 것이 없다.
가끔 삼천 배를 처음 시도한 불자들을 만나다 보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데 그 내용이 비슷비슷하다.
“스님, 2,500배 정도에서는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부처님도 원망스러웠고 삼천 배를 권유한 스님도 미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만두자니 억울하여 오기로 끝까지 해냈습니다.
그런데 다 끝내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럽고 부처님과 스님이 제 마음 가운데 계심을 깊이 느꼈습니다.”
맞는 말이다. 백 척 장대 끝에 다다른 사람이 그것으론 다 됐다 할 수 없다.
그곳에서 한 걸음 더 내디디어야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관음행자(觀音行者)는 그 어떤 경우에도 물러서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
관세음보살의 메시지가 담긴 천수경에 대세지보살이 등장한다.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의 열 가지 별호 가운데 한 이름이다.
바로 용기의 화신(化身)으로 등장할 때 대세지라 부른다.
관음 기도하는 자는 관세음보살을 이미 마음속에 품었으므로 관음보살의 분신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계를 당하더라도 당연히 용기백배하여 더욱 기도 정진해야 한다.
또한, 관세음보살의 여섯 분 즉, 육관음 가운데 마두관음(馬頭觀音)이란 분이 있다.
관세음보살님은 전륜성왕의 보마(寶馬)가 사방으로 내달리면서
그 위력으로 일체 나쁜 무리를 제압하듯 모든 마장을 굴복시키는 힘이 있으므로
특별히 마두관음이란 별칭이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불자로서의 뚜렷한 목적의식’ 즉, 큰 원을 세워야 한다.
그 절에 오래 주석하는 주지 스님은 그 절의 부처님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관음 기도를 하는 불자는 관세음보살을 닮는다.
우리는 겉모양은 물론이요, 속마음도 닮아야 한다.
속마음이 관세음보살을 닮으려면 관음보살의 큰 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관음 기도하는 자는 관세음보살의 십원(十願) 육향(六向)을 자기의 원으로 삼기를 권한다.
[십원十願]
① 원아속지일체법(願我速知一切法)
② 원아조득지혜안(願我早得智慧眼)
③ 원아속도일체중(願我速度一切衆)
④ 원아조득선방편(願我早得善方便)
⑤ 원아속승반야선(願我速乘般若船)
⑥ 원아조득월고해(願我早得越苦海)
⑦ 원아속득계족도(願我速得戒足道)
⑧ 원아조등원적산(願我早登圓寂山)
⑨ 원아속회무위사(願我速會無爲舍)
⑩ 원아조동법성신(願我早同法性身)
[육향六向]
① 아약향도산(我若向刀山) 도산자최절(刀山自催折)
② 아약향화탕(我若向火湯) 화탕자소멸(火湯自消滅)
③ 아약향지옥(我若向地獄) 지옥자고갈(地獄自枯渴)
④ 아약향아귀(我若向餓鬼) 아귀자포만(餓鬼自飽滿)
⑤ 아약향수라(我若向修羅) 악심자조복(惡心自調伏)
⑥ 아약향축생(我若向畜生) 자득대지혜(自得大智慧)
- 우학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