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거리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관헌(官)이 아닌 사사로운 사람이 제멋대로 참견을 하면 그 행위에 의해
그 사람에게 혼을 입히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메이지(明治) 이전의 가장 유명한 법령의 하나에 "싸움이나 말다툼이 났을 때, 불필요한 참견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있었다. 그런 경우에 분명한 권한이 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인간은 무언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받게 된다. 도움을 베풀면 상대가 크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할 법도 한데, 반대로 원조를 베풀지 않으려 애써
조심한다. 더욱이 형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경우 일본인은 ‘온’(은 恩)에 휩쓸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제까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사람으로부터 단지 담배 한 개비 얻어 피워도 일본인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고 그런 경우 고마움을 표현하는 정중한 화법(話法))은 "아, ‘기노도쿠’
(氣の毒 : 곧 독이 있는 감정)군요."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일본인이 나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얼마나 좋지 못한 느낌인가를 확실히 말해 버리는 편이
참기 쉬운 일입니다. 이때까지 그 사람을 위해 무엇 하나 해 주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온을
입었다는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노도쿠'라는 말은 때로는 "Thank you
(감사하오)."(담배를 얻어서), 때로는 "I am sorry(유감이오). "(은혜를 입어서), 또 때로는
"I feel like a hell (면목없다)."(이처럼 과분한 대우를 받아서)라고 번역된다. 기노도쿠라는 일본어는
이상의 모든 의미를 뜻하고 있지만, 또한 그 중의 어떤 말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일본어에는 온을 받음으로써 느끼는 마음이 편치 않음을 표현하는 '감사하다'라는 뜻의 많은 화법이
있다. 그 중 일반적으로 대도시의 백화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리가토(有難う)'라는 표현이다.
이 말은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Oh, this is difficult things)."를 의미한다. 일본인은 보통,
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손님이 물건을 삼으로써 그 상점에게 주는 크고도 대단한 은혜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일종의 인사말이다. 이 말은 또한 선물을 받았을 때 쓰여지기도 하며, 그 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에 쓰여지고 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이고 '감사'를 나타내는
그 밖의 몇 가지 말들은 기노도쿠처럼 은혜를 받아 곤란하다는 심정을 표현한다. 개인 경영의
상점 주인은 대체로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이건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뜻이 되는 '스미마센’
(濟みまセん)이라는 말을 쓴다. 즉, "나는 당신에게 온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현대 경제 조직하에서
나는 당신에게 진 혼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나는 이런 입장에 놓여진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라는 의미이다.
스미마센을 영역(英譯)하면 “Thank you.", "I’m grateful.” 또는 “I’m sorry.", "I apologize."가
된다. 이를테면, 거리를 거닐다가 바람이 불어 날아가 버린 모자를 누군가가 쫓아가서 주워 준
경우에, 다른 감사의 말보다 즐겨 쓰는 것이 이 말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손에 모자를 되돌려줄 때
당신은 예의바르게 그것을 받아 쥐면서 느껴지는 마음속의 괴로움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람은 지금 나에게 이렇게 온을 베풀고 있지만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이 사람을 만난 일이
없다. 나는 이 사람에게 이쪽에서 온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런 은혜를 받아서 뒤가 꿀리긴
하지만 사죄하면 약간은 마음이 편해진다.
일본인의 감사를 나타내는 말 중에서 아마도 '스미마센'이 가장 보통으로 쓰여지는 말이리라.
내가 이 사람에게서 온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모자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자, 그 이상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우리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
- 루스 베네딕트 저, 김윤식 오연석 역, ‘국화와 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