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고맙게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 미처 몰랐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떠나려고 합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일화
삼성 이건희 회장 만찬에 일류 가수를 초빙하는데. 3,000만 원의 출연료가 든다.
그러나 나훈아는 단칼에 거절했다.
나는 대중 예술가다! 공연을 보고 싶으면, 직접 와서 표를 끊어라!
중학교 시절 홍기(본명)는 틈나는 대로 용두산 공원에 올라가 기타를 쳤다.
기타는 물론이고, 피아노도 수준급이었다,
나훈아의 음악
울긴 왜 울어? 갈무리, 영영, 같은 로맨틱한 노래를 주로 불렀다.
1970대에는 남진 나훈아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나훈아 측에서는, 돼지 멱 따는 소리 그만해!
남진 측에서는, 도둑놈같이 생긴 놈이! 어디서 까불어!
결과적으로 이런 경쟁 구도는 가요계의 발전을 가져왔다.
진성이 ‘땡 벌’을 불러도 되냐고 묻자. 흔쾌히 승낙했다. 작곡 실력도 알아주어야 한다.
아! 테스 형,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리 힘들어?
할아버지 묘소에 성묘 갔다가, 문득 떠올라 만든 곡인데, 처음에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아버지’라고 불러보니 임팩트(맹탕)가 부족해서,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하여, 소크라테스로 바꿨다고 한다.
나훈아의 생애
장안의 미녀 김지미는.
나훈아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사람이다.
나훈아는 연상의 김지미를, 지미 씨라고 불렀다.
그리고 모종의 치정사건(?)으로 갈라지게 되자, 집을 박차고 나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지미 씨벌! 지미 씨벌!
봉곤이 딸내미가 부른 어매를 듣고, 허! 허! 크면 뭐가 되려고!
김다현을 두고 한 말이다.
나훈아는 청중들에게 신비주의 전략을 쓴다.
그러면서 군중 속에서 나대기를 좋아한다.
기부는 물론이고 재능 기부도 하지 않았다.
조용필의 꾀꼬리
27인 선승들의 삶을 엮은 ‘마음 살림’에 나오는 이야기다.
너는 뭐 하는 놈이냐?
저는 가수입니다.
그래! 그럼, 꾀꼬리 노래 한번 불러보거레이!
구성진 노랫가락이 통도사에 울려 퍼졌다.
고놈 참 잘 한데이!
그런데 네 안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진짜 주인은 누꼬?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내 안의 꾀꼬리를 찾아보거레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청중입니다. 그분들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에 너무 인색한 것 같습니다.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아왔습니다.
조용필은 음지에서 조용히 선행한다.
하늘 아래 왕이 둘일 수는 없다.
누가 왕인지 판단은, 세속의 이치에 맡긴다.
바지 내린 사건
나훈아가 발기부전이라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제가 바지를 내리고 5분 동안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관중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앉자, 해외로 도피성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인도 티벳트 등 11개국을 돌아다녔다.
다른 사연
존슨 대통령에게, 기자들이 물었다.
‘베트남 전쟁을 왜 계속해야 하는가요?
전쟁의 당위성을, 자신의 정치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대통령이라는 신분도 망각한 채, 바지를 내리고 고추를 꺼내 ‘이것이 바로 그 이유다.’라고 했을까!
미국은 월남전에서 빼도 박도 못할 입장이라는 것이다.
나훈아는 2,600곡을 취입했는데, 그중 800곡은 자작곡이고, 120곡을 히트했다.
노래방 반주곡으로, 매월 8,000만 원(?)이 들어온다.
작품
머나먼 내 고향
강촌에 살고 싶네
해변의 여인
어매
인생길 나그네 길
녹슬은 기찻길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가지 마오
물레방아
울긴 왜 울어
무시로
잡초
머나먼 고향
바다가 육지라면
고향역
이별의 부산정거장
애정이 꽃피던 시절
갈무리
청춘을 돌려다오
18세 순이
모정의 세월
땡별
홍시
아! 테스 형
첫댓글 멋진 좋은 작품 감명 깊게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당케 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