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변기에 고장이 생겼다.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면 어느 정도 물이 차고 나서 물이 멈춰야 하는데 줄곧 물이 오버플로우 되는 거였다. 물도 물이지만 그 물이 졸졸거리며 넘치는 소리는 밤새 사람을 힘들고 불편하게 히였다.
우선은 사용후에 물을 받아놓고 물이 차면 꼭지를 잠갔다가 다시 반복하는 수밖에... 그리고는 임시방편으로 볼의 강도를 조여줘서 보충수가 멈출 시점에 멈추게 하였고 수압을 제동하는 누름스위치가 뻑뻑거리길래 거기에다가 기름칠을 해주었더니 하루는 어째 조용하게 넘어갔다.
대개 부품들이 고장이 나면 거의 근접 부품들이 연이어 고장이 나게 마련이기에 조만간 다시 더 돈을 들여야 하는 시점이 올 줄은 알았지만 하룻만에 다시 연결 부위가 덩달아 고장을 일으켰다.
몸도 괴롭고 하여 만사 귀찮아서 그 것도 만지기 싫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물을 만지고 공사를 해야 할 상황... 이틀 전부터 감기 기운이 돌더니 엊그제 아침부터는 이유 없이 위가 땡기고 경련을 일으켰다. 구역질이 나서 변기로 갔더니 나오는 것이라곤 시큼한 위산만 꾸역꾸역... 구토 중에 다시 그 고장난 변기가 줄줄 새기 시작했다.
『 전부 8,000원입니다 』
Jesse Cook - Thats Right
볼탑이 요즘은 무소음용으로 나와서 아주 간편한 거였지만 가격은 기존의 것과 동일해서 4,000원이고 변기 아랫쪽 수도꼭지가 물이 새길래 그 것까지 교체하려고 추가했더니 도합 8,000원이었다. 연장통에서 줄줄이 연장을 꺼내들고 나오는데 참 번거롭다.
기술이 많으면 굶어죽는다더니...
집을 수백채 지어보고 갖은 토목공사까지 안해본 일이 없으니 변기 하나 못고치랴... 그러나... 목수가 죽을 때까지 제집 하나 손수 못짓는다더니 내 짝이 딱 그짝 아닌가 말이다. 애초에 집짓는 기술을 배울 적에는 내 손으로 근사한 집 한 채 짓겠다는 명분으로 현장에 뛰어들었던 것...
그러나 옛 속담 하나 그른게 없다. 집 짓는 기술을 대목부터 소목까지, 건축에서 토목까지 세세히 다 배웠건만 정작 현장일을 통해서는 많은 돈을 만질 수가 없었다. 예부터 시쳇말로 오야지 하면 건축 붐을 타고 집을 짓고 팔고 해서 집부자 땅부자 되었다는 사람들이 제법 되었지만 어째 나는 그 부류에 들지 못했는지...
일꾼도 많이 안따르고 현장일도 그저 그렇고 그런 일만 들어와서 정작 묵돈을 쥔 시기는 잠시였고 대개는 소위 대마치라고 하는 중단되는 일이 많아서 손해를 많이 본 것이다. 한바닥 600평 되는 빌딩 공사가 하루 아침에 무너져서 그랬고... 사고와 문제가 연이어 터지는 바람에 앞으로 벌고 뒤로 까먹는 일이 비일비재 했던 것...
현장에서 젊음을 바치고 열정을 바친 세월을 돌이켜 보니 참 나도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열정과 패기와 진실로는 절대 돈을 만질 수 없었다는 것을 왜 그리도 몰랐는지... 이 나라 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는 눈먼 돈도 많았건만 불법을 하지 않으려고 숱하게 갈등 번민 하다보니
정작 좋았던 시절은 다 어디로 흘러갔는지 내 손아귀에 쥐어진 것이라곤 손바닥의 옹이 밖에 없었다. 누구처럼 현장에서 삽질을 해서 떼돈을 못벌다니 나도 참 어지간히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돈키호테였다. 망치 한 자루와 삽 한자루로 신화를 일궈낼 뻔도 했다는 아슬아슬한 기회들이 여러번 내 코 앞을 스쳤었는데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손수 던져버렸으니 누구 탓도 못할 일이다.
끙끙거리며 8,000원으로 변기 문제는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구태여 기술자를 부르지 않아도 되니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재산이랴... 그러나 기술을 가진 이는 몸도 마음도 고달프기 마련... 애초에 할 줄 모르면 연장도 안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연장이 없으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
신간이 편하려면 이런 기술도 구태여 가질 필요도 없지...
혼자 중얼거리며 연장을 주섬주섬 챙긴다. 기술을 가진 사람이 대접 받는 사회, 자기 집은 자기가 손수 관리할 줄 아는 가장...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것이 온당하거늘... 대체 왜 이 나라는 손수 무엇을 한다는 것을 천하게 여기고 사회적으로 신분을 보장해주지 않는걸까...
모조리 사자(士字) 직업으로 펜대만 굴려야 대접을 받고 잘 사는 사회 유교 봉건체제를 거친 우리나라지만 이건 좀 심각한 오류 속에 소아병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가 아닌가?
아무튼 힘은 좀 들었지만 8,000원으로 소음 문제와 수도 낭비문제는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오늘은 일단 잡생각 접고 조용한 화장실 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데 자위를 해보자...
8,000원 - 피안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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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피안의 새 원문보기 글쓴이: 피안의 새
첫댓글 일인 일기..사람마다 기술 하나는 있어야 된다는 말...금과 옥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게 너무 많으면 또 굶어 죽는 수도 있구만요...잘 알았습니다...
재능들이 아주 전문적이면 재산 긁어모으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 재능들이 별로 전문적이지 못해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ㅎ
문제 해결후 그 성취감이란 돈으로 환산 할 바가 아니지요.
그정도를 여기서 기술자 부르면 오매가매 교통비에 시간당 인건비 100불 X 2시간 잡고 부속비용 합해서
원화 환산 40만원 이상 되겠습니다.
기술입국하자고 하던 때도 있었는데 사회 풍조가 점점 돈맛에 길드려지는 바람에....
나도 이제 상머슴 손이긴한데 손안에 들은건 하나도 없네요?.
아니...ㅎ 변기 하나 고치는 데 그만큼 비싸다니요... ㅎ
아무리 기술자 불러도 그렇지요~ 그런 경우에는 재산 불리는데 기술이 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요~
그런 곳에 살자면 왠만한 건 직접해야겠네요...
우와!!! 40만원이라....
그렇지요? 수요가 많지 않으니 일감이 적기는 하지만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공구들을 보면 대단하더군요.
그만큼 자기일은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게 당연하다는..
백인들.특히 북유럽 사람이나 그 후손들...아마 수렵으로 살아온 문화라선지..제 손으로 못하면 죽어야 된다 라는게 박혀 있어 가지고..그래서 아마 세상을 지배하는지도 모르지요..남이 대신해준다하면 성을 벼락 같이 내어서 첨엔 어리둥절했답니다.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계시네요.
요즘 잡다한 가정일들,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A/S나 전문가를 부르는데...
기술도 대단한 게 못됩니다. 그만큼 못하는 사람도 없을테지요...ㅎ
글쎄...
그거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데요.
많은 나라에서 남녀 구별 없이 열서너 살 되면 자기 먹을 음식 다 할 줄 아는 걸 봤습니다.
근데 우리는 남녀 구별 없이 나이 먹고도 자기 먹을 음식도 잘 못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집 짓는 것만 해도 다들 전문가에게 맡기는 거로 알고 있지만 세상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식구끼리 손수 짓는 사람도 제법 있더라고요.
하물며 고장난 것 좀 고치는 것쯤이야...
유교근성이 남아서 남자라면 에헴~ 하고 뒷짐지고 있어야 체면서는 줄 아는...
풍토가 남아서 그런가바요. 누구든 닥치면 다 하게 마련인것을요...
미얀마 사람들이 더 심할 겁니다. 배에 사관(OFFICER)이라고 손으로 하는 일은 글이나 쓰는 일 이외에는 안 하려 합디다.
미국에는 선장도 험한 일을 직접한다고 손을 더럽히는 데...억지로 시켜더니 얼마 후에 배를 내려 집으로 갑디다..참...우리 나라 양반들도 그랬겠지요? 그런 문화권 사람들 미래에 희망없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크는 애들도 똑 같이 희망없습니다. 험한 일 안 하려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