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중도유적(春川 中島遺蹟)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
중도유적(中島遺蹟)은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화덕자리와 구덩이 유규,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도 확인되었다. 중도유적은 1,300기에 달하는 집터를 비롯하여 방어 시설인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에서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그리고 원삼국~한성백제 시기의 중도유적은 환호와 경작지를 갖춘 대규모 마을에 해당하며,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의 존재를 통해서 볼 때 춘천 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발굴경위 및 결과
중도유적은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충적지에 자리하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화덕자리와 구덩이 유구,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 그리고 고려~조선시대의 집터와 무덤도 일부 존재한다.
1977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졌고, 1980~1990년대의 소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의 집터와 고인돌, 원삼국~삼국시대의 집터와 돌무지무덤주1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전체적인 규모와 성격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2010~2011년에 이루어진 4대강 살리기사업(제방 구간)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레고랜드 건설의 일환으로 시행된 발굴 조사를 통해서였으며, 그 결과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집터를 비롯하여 무덤, 경작지, 환호(環壕: 마을이나 중요 시설을 감싼 방어용 도랑), 지상 건물 등이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형태와 특징
중도유적의 고고학적 양상은 2013~2017년의 발굴 성과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점이 주목된다. 중도유적에 인간의 점유가 시작된 것은 신석기시대로 화덕자리 1기와 구덩이 6기가 확인되었으며, 절대연대(絕對年代)주2 측정 결과 그 시기는 서기전 2620~2020년으로 나왔다.
청동기시대는 구획 및 방어 시설인 방형 평면의 환호 1기를 비롯하여 집터 1,273기, 지상 건물 14기, 구덩이 유구 745기, 소성(燒成)주3 유구 2기, 무덤 150기 등이 발굴되었으며, 경작 유구로 추정하고 있는 그물 모양 도랑이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청동기시대 유구에서 나온 유물은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주4 등 청동기 6점을 비롯하여 토기, 석기, 옥 등 모두 6,476점에 달한다. 이뿐만 아니라 기존에 보고된 중도유적의 발굴 결과를 더한다면 집터는 1,300기가 넘는 등 그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청동기시대 유적의 조성 시기는 덧띠새김무늬토기가 유행한 서기전 15~13세기의 청동기시대 조기부터 덧띠토기주5가 사용된 서기전 5세기의 청동기시대 후기까지 해당한다. 청동기시대 중에서 구멍무늬토기주6를 제작하고 사용한 서기전 9~6세기가 유적의 규모가 가장 컸던 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환호는 대부분 타원형이나 원형인 데 비해서 중도유적의 환호는 방형의 형태를 띠어 주목된다. 환호의 평면 형태는 전체적으로 볼 때 방형을 띠며 서 · 남 · 북변은 직선으로, 동변과 동북 모서리 부분은 활처럼 굴곡 형태를 갖는다.
출입구는 동 · 서 · 남쪽 세 곳에 두었으며, 환호 전체의 길이는 121.6m, 너비는 87.2m, 장단비는 1.39:1이다. 환호의 도랑 폭은 1.7~2.5m이며 깊이는 56~102㎝이다. 환호의 전체 둘레는 403.7m이며 면적은 9,516㎡이다.
중국에서 방형 환호는 신석기시대의 이른 시기부터 등장하였으며 중도유적의 환호 마을이 존재하던 시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방형 성곽(城郭)이 일반화된 시기에 해당한다. 고조선의 중심지 역시 방형 토성의 형태로 최상위 취락을 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남한의 청동기사회는 비파형동검 시기부터 랴오닝〔遼寧〕 지역의 고조선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으며, 중도유적의 청동기 사회는 이를 통해 방형 환호를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형의 환호는 중도유적를 비롯해 춘천율문리유적, 양주금남리유적과 진주대평리유적의 사례가 알려져 있다.
원삼국~삼국시대는 2~5세기에 해당하는 여자형(呂字形) 또는 철자형(凸字形)의 형태가 주류인 집터 149기를 비롯하여 두 줄이 1세트로 구성된 환호 1기, 지상 건물 21기, 구덩이 355기, 매납 유구 75기, 무덤 12기와 함께 제철 공방, 경작지(밭), 도랑 유구(방형 구획 시설) 등이 발굴되었다.
대부분의 유구는 원삼국시대에서 백제한성기에 속하는데, 환호는 3세기 대에 축조되었다. 돌덧널무덤주7 2기에서는 고구려의 금제 귀걸이와 토기가 나온 점으로 볼 때 고구려의 춘천 지역 진출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중도유적은 1,300기에 달하는 집터를 비롯하여 방어 시설인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에서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남한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청동기시대 조기 유적 가운데 하나이며, 중기와 후기에 해당하는 비파형동검, 고인돌, 환호 등은 중국 동북 지역 및 서북한 지역의 고조선 문화와 관련되어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중도식토기(中島式土器) 또는 중도식민무늬토기와 여자형(呂字形) 또는 철자형(凸字形) 평면을 한 집터, 돌무지무덤 등으로 알려져 있던 원삼국~한성백제 시기의 중도 유적은 환호와 경작지를 갖춘 대규모 마을에 해당하며,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의 존재를 통해서 볼 때 춘천 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춘천시 [상중도&하중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