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때부터 사업 뛰어들어 월 수백만원 수입 인도 사회적기업 ‘아라빈드 안과병원’ 벤치마킹 첫해 매출 12억원… 올 목표는 50억원
▲ photo 한용환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 2008년 사회적기업 연구 모임인 ‘넥스터스’ 회원이었던 김정현(26)씨는 인터넷을 검색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자신이 관심이 있던 사회적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만한 외국 사례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당시 가톨릭대 2학년생(영어영미문학학과)이던 그가 주목한 사례는 인도의 사회적기업인 아라빈드 안과병원. 1976년 설립된 이 병원은 치료비가 없는 환자의 경우 무료로 치료를 해준다. 별도의 확인 작업 없이 말만 믿고 무료 치료를 해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망해야 당연한 이 병원은 지금 인도 최대의 안과병원으로 성장했다. 2005년 아라빈드병원이 거둔 수입은 1534만달러로, 영업이익이 680만달러에 달했다. 영업이익률이 44.4%다. 김씨는 “아라빈드병원의 성공은 이른바 ‘선의(善意)의 효과’를 보여준 것”이라며 “이 병원의 성공사례를 보면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선의의 효과’에 주목하다
김씨가 강조하는 선의의 효과란 이런 것이다. 공짜라는 말을 믿고 환자들이 몰려들면서 의사들은 풍부한 임상실험과 경험을 쌓게 된다. 실제 ‘아라빈드 안과병원’ 출신들은 인도에서 최고의 안과의사로 대우받는다. 실력있는 의사가 늘어나면서 부자들까지 병원을 찾게 되고, 탁월한 서비스에 감탄하며 자발적으로 돈을 내는 환자들까지 늘어났다. 모든 업무를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처럼 철저히 분업화해 비용을 줄이는 일도 해냈다.
아라빈드병원은 1992년부터 인공수정체를 생산하면서도 선의의 효과를 적용시켰다. 특허를 앞세운 외국기업들이 개당 200~300달러를 받던 수정체 가격을 아라빈드병원은 4~5달러 선으로 대폭 낮췄다. 이 역시 소비자들의 폭발적 호응을 몰고왔고, 2006년 인공수정체 판매로 약 560만달러의 매출과 26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아라빈드병원의 성공 사례에 주목한 김씨는 한국의 아라빈드병원을 꿈꾸며 남다른 도전에 나섰고, 그의 꿈은 2년 만에 달성됐다. 그가 2010년 설립한 사회적기업 ‘딜라이트’는 노인인구의 증가에 따라 수요가 늘어날 보청기 분야를 공략했다. 딜라이트는 150만원에서 200만원대에 이르는 외국 보청기업체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국내시장에 34만원의 저가 보청기를 내놓아 돌풍을 일으켰다. 회사 설립 첫해 12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40억~50억원대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본금도 김씨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단돈 500만원에서 출발, 기관 투자 등을 받으며 5억원으로 불어났다. 딜라이트는 지난 3월 17일 기술보증기금에서 사회적기업 최초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고, 지난 6월 28일에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로부터 사회적기업 부설 기술연구소 설립 인증을 받기도 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세금 감면 혜택을 받으며 부설 기술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우선”
딜라이트가 공급하는 보청기 가격 34만원에는 사회적기업 딜라이트의 목표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34만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난청인에게 주는 보청기 보조금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형편이 어려워 보조금만으로 보청기를 사야 하는 사람들을 배려한 ‘착한 가격’이다.
딜라이트는 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청기를 판매한다. 65세 이상 노인, 혹은 도시 근로자 중 월소득이 우리나라 근로자 평균 월급의 130% 미만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청기를 팔고 있다. 김정현 대표는 “싸고 좋은 보청기가 나왔다는 입소문을 듣고 강남 부자들에게서도 보청기 주문이 늘기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갈 몫이 줄어드는 것 같아 판매 대상을 제한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65세 이상 청각장애 인구 15만명 중 불과 7%만이 보청기를 사용하는 현실에서 가난한 노인들에게 보청기를 우선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청각장애자로 등록된 노인들 외에도 보청기가 필요한 난청 노인은 현재 500만명이 넘는다는 게 통계청의 추산이다.
‘선의의 효과’를 노린다지만 34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보청기를 어떻게 공급할 수 있을까. 김 대표에 따르면, 딜라이트의 보청기 판매가 34만원은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가격이다. 오히려 외제 보청기의 가격이 턱없이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보청기시장은 2010년 기준 600억원 규모로, 80~90%를 미국·독일 업체가 점유하고 있습니다. 외제 보청기들은 부품을 국내에 들여와 조립합니다. 조립된 완제품은 다시 소매상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팔리지요. 1차, 2차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특히 소매상의 대부분은 터미널이나 역전 같은 목이 좋은 상권 요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비싼 월세를 내야 합니다. 같은 외제 보청기라도 판매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존의 국내 보청기 시장은 공급자가 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소비자는 그 가격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중기청서 2000만원 사업지원금
김 대표는 자사 제품은 철저히 가격 거품을 빼는 방향으로 나갔다. 우선 업계 최초로 온라인 판매와 선주문 후제작 방식을 도입했다. 주문을 받은 후 제품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재고 비용을 줄였고 온라인 판매로 유통 비용을 절감했다. 제품 표준화를 통해서도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보통 보청기는 구매할 때 각 개인의 귀에 맞게 귀본을 뜨고, 청력 검사를 하는 등 부대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청기를 표준화해 귀본을 뜨는 과정을 없앴고 보청기 생산 기간도 단축했습니다. 구매자에게는 보청기 주문 전에 직접 이비인후과에 가서 청력검사를 받고 오라고 했죠.”
딜라이트의 출발은 2009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사업 지원금 2000만원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여러 사회적기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김 대표는 2009년 4월 중소기업청에 저가 보청기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고, 이것이 통과되면서 2000만원을 받았다. 당시 보청기 기술력 확보를 위해서는 연세대 내 의료기기 연구센터가 파트너로 나섰다. 보청기를 자체 기술로 만들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첫 모델이 나오기까지 1년이 걸렸다. 김 대표는 보청기라는 사회적기업 아이템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어려운 사람이나 장애인들을 고용해 도움을 주는 것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게 더 의미가 있고 파급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접 설비 갖춰놓고 자체 제작
▲ 김정현 대표(오른쪽)가 연구원과 보청기 제품 조립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보청기 기술을 확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앰프리파이어, 마이크, 리시버 등의 핵심 부품은 모두 외국 부품회사들로부터 조달이 가능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아라빈드병원은 1992년 오르랩이라는 회사를 세워 인공수정체를 생산했다. 그 후 오르랩은 보청기사업에도 손을 댔는데 실패했다. 오르랩 측과 메일을 주고 받으며 조언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딜라이트는 귀 안에 집어넣어 사용하는 ‘귓속형’과 귀에 걸어 사용하는 ‘귀걸이형’ 두 가지 모델의 보청기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 그는 “보청기의 핵심 부품인 앰프리파이어는 반도체 업체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반도체 제품을 응용해 만들기 때문에 대동소이하다. 부품 선택의 폭이 좁아 제조사마다 약간씩 소리를 튜닝하는 것 외에는 기본 품질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딜라이트사의 임직원은 모두 18명. 처음에는 보청기를 하청 생산했지만 벤처기업 지정 이후에는 직접 설비를 갖춰놓고 자체 제작하고 있다. 자동화 설비를 갖춰놓고 있기 때문에 18명의 직원 중 제조 인력은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관리직과 영업직으로 직원들의 나이가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일 정도로 젊다. 특히 4명의 임원 중 3명은 처음부터 김씨와 사업을 함께 한 동료 대학생들이고, 1명만 보청기 분야에서 10년간 일했던 30대 중반의 직장인 출신이다. 김 대표는 “최근 보청기 80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10억원어치의 부품을 주문했다”며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어 오프라인 매장도 차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젊은 나이에 남다른 사업 모델로 꿈을 펼치고 있는 김 대표는 천성이 사업가다. 서울 인창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돈을 버는 것이 목표였다. 학업보다는 중고 MP3 중개 등 돈버는 일에 하루 14~16시간씩 매달렸다. 스무 살이 되기 전 매월 800만~9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등 적지 않은 돈을 손에 쥐었다. 그는 “정말 돈 되는 일은 뭐든지 다 했다. 친구들이 커피숍을 창업할 때 선뜻 1억원을 투자할 정도였다. 돈이 되겠다 싶으면 다 덤볐다”고 말했다.
“청년창업 여건 조성됐으면”
돈 잘 벌던 그는 원래 대학 진학에 뜻이 없었다. 2005년 지원한 대학마다 다 떨어지자 “대학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뒤늦게 2007년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미문화학부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돈 버는 데 집중하다 보니 나중에는 힘들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잠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쉬고 싶었다.” 그는 현재 가톨릭대 4학년이다.
“명분이 있어야 결국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기업에 주목했다”는 그는 자신의 사업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를 불과 15년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보청기가 필요한 인구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 등 대기업이 의료기기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대기업들이 과감히 투자하기에는 아직 600억원대에 불과한 국내 보청기시장이 너무 규모가 작고, 대기업이 뛰어들더라도 저가 보청기가 아닌 고가 보청기에 주력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모든 젊은이가 창업에 나설 필요는 없지만 창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됐으면 좋겠다”며 “지금처럼 창업자에게 큰 부담을 지게 하는 구조에서는 젊은이들의 창업 열기가 제대로 피어나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