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번역한 신당서 외국전 역주 중편에서 참조했습니다.
-------------------------------------------
발야고(拔野古)는 달리 발야고(拔野固)라고도 하고, 혹은 발예고(拔曳固)라고 했으며, 고비 사막 북쪽에 어지럽게 흩어져 땅이 천 리나 되었는데, 복골의 정동쪽으로 말갈족과 이웃했다. 백성의 숫자는 천막 수가 6만 장 정도였고, 병사는 만 명이었다. 땅은 초원이고 좋은 말과 훌륭한 철이 생산되었다. 하천이 있어 강간하(康干河)라고 했는데, 소나무를 잘라 그곳에 던져 넣어 3년이 지나 단단해져 돌이 되면, 돌의 색이 푸르고 치밀하여 나이테가 그대로 있어 세상에서 강간석(康干石)이라고 했다. 습속은 사냥을 좋아하며 농사를 조금도 짓기도 했으며, 나무를 타고 얼음 위에서 사슴을 쫓았다. 풍속이 철륵과 같았으나, 말(언어)은 조금 달랐다. 정관 3년(629년) 복골, 동라, 해, 습과 같이 당나라 조정에 들어왔다. 정관 21년 대사리발(大俟利發) 굴리실(屈利失)이 부락을 들어 내속하자, 유릉도독부를 두고, 굴리실을 우무위대장군으로 배수를 해 바로 도독으로 삼았다. 현경 연간(660년)에 사결, 복골, 동라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좌무위대장군 정인태를 시켜 공격해 그 우두머리를 죽였다. 천보년간에 이르자 스스로 조정에 올 수 있게 되었다.
주석 발야고: 종족 명칭으로 고대 투르크계 유목민인 철륵(鐵勒)의 일파였다. 고대 투르크어로 바야르쿠(Bayariqu)의 음사인데, 지금 몽골의 케룰렌 강과 내몽골자치구의 후룬 호수 사이에서 살았다. 용맹하여 말타고 활쏘기에 뛰어났고, 유목을 생업으로 살았다. 강간하: 현재 몽골 케룰렌 강으로 추정. 대사리발: 고대 투르크어로 울룩 엘테베르(Ulugh ilteber)의 음사이다. 부족장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굴리실: 고대 투르크어로 퀼리쉬(Kulish)의 음사로 추정된다.
복골(僕骨)은 또한 복고(僕固)라고도 하는데, 다람갈의 동쪽에 살았다. 장호는 3만 장이었고, 병사는 1만 명이었다. 땅이 가장 북쪽에 있었는데, 습속이 강건하고 오만해서 (당나라가) 불러들여 통솔하기 어려웠다. 이전에 돌궐에 복속했다가 이후에 설연타에 귀부를 했다. 설연타가 망하고 그의 추장 사복사리발(娑匐俟利發) 가람발연(歌濫拔延)이 비로소 당나라로 내속하자, 그 땅을 금미주(金微州)로 삼고, 가람발연을 우무위대장군 주도독으로 임명했다. 개원년간 초기에 수령인 복고가 살해되자 삭방에 와서 (당나라에) 항복했다가 관리가 죽였다. 아들을 복고회은(僕固懷恩)이라고 했는데, 지덕 년간에 공으로 삭방절도사에 이르렀고 그의 열전이 남아있다.
복골: 철륵의 일파였다. 고대 투르크어로 뵈귀(Bogu)의 음사로 추정된다. 지금 몽골 톨강의 북쪽에 살았다. 풍습은 돌궐과 거의 같았다. 당나라 초기에는 철륵을 이루던 15개 부족 중 하나였고, 나중에 위구르 9개 부족의 하나로 편입되었다. 사복사리발: 고대 투르크어로 샤드 벡 일테베르(Shad brg ilreber)의 음사로 추정된다. 가람발연: 고대 투르크어로 카라 바얀(Qara bayan)의 음사로 추정된다.
동라(同羅)는 설연타의 북쪽, 다람갈의 동쪽에 살았는데 경사(당의 수도 장안)에서 거리가 7천 리 정도 떨어져 있었고, 정예 병사가 3만 명이었다. 정관 2년(628년)에 사자를 보내 조정에 들어왔다. 오래 지나 내속을 청하자 657년에 구림도독부(龜林都督府)를 설치하고, 추장 사리발(俟利發) 시건철(時健?)을 좌령군위대장군에 임명하고, 바로 도독을 제수했다. 755년에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의 병사를 잡아 쓴 것을 예락하(曳落河)라고 했다. 예락하는 건강한 남자를 뜻한다고 했다.
동라: 철륵의 일파로 고대 투르크어로 통라(Tongra)의 음사로 추정된다. 지금 몽골 헨티 산맥 부근에있었다. 장안으로부터 17,500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호구는 1만 5천 이었으며, 풍속은 돌궐과 비슷했다. 시건철: 고대 투르크어로 이르킨 초르(Irkin chor)의 음사다. 예락하: 고대 투르크어로 엘라하(Elaha)의 음사로 추정. 그 뜻은 ‘힘이 센 용감한 전사’를 말한다. 안록산은 포로로 잡은 동라와 해와 거란족의 병사 8천 명을 자신의 친위군단으로 삼고, 반란을 일으키면서 이들을 최선봉의 돌격 부대로 활용했다. 자치통감 당기에 의하면, 동라 부족은 “천하 제일의 군대”라고 하며, 이들은 “질주하면서 공격하는 것에 뛰어나다.”고 기록될 정도로 정예의 기마 군단이었다. |
출처: 포도가 덩굴덩굴 원문보기 글쓴이: 포도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