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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 사람을 따라 고도성장하고, 그 후 이 사람을 등지고 쇠퇴했다...지금, 일본이 배워야 할 천재 경제학자의 이름 / 12/29(일) / 프레지던트 온라인
이노베이션의 이론을 확립한 천재 경제학자 슘페터가 일본에 끼친 영향이란. 평론가 나카노 타케시 씨는 「일본은 슘페터의 가르침을 탐욕스럽게 흡수해 전후의 발전을 손에 넣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자, 슘페터적인 핵심을 가진 일본적 시스템을 스스로 자진해 파괴해 버렸다」라고 한다――.
※ 본고는, 나카노 타케시 『입문 슘페터』(PHP신서)의 일부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 슘페터는 일본의 전통문화에 매료되었다
'이노베이션 이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경제학자 조셉 알로이스 슘페터는 일본과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요(*1).
메이지 유신 이후, 경제 발전을 목표로 하는 일본에 있어서, 「경제 발전의 이론」의 저자인 슘페터는 매우 중요한 경제학자였습니다. 이 때문에 전쟁 전에 많은 경제학자들이 슘페터에게서 배우려고 했습니다. 후에 전후 일본의 경제학계의 중진이 된 나카야마 이치로와 히가시하타 세이이치는 본 대학에 유학해 슘페터에게 공부했고, 하버드 대학에서는 츠루 시게토가 그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또한 1924년 은행장을 사퇴한 후 슘페터에게 가장 먼저 자리를 제안한 것은 도쿄 제국대학이었다고 합니다. 1931년 슘페터는 일본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일본 방문 시 슘페터는 도쿄, 닛코, 하코네, 교토, 나라, 고베를 방문하여 일본의 전통 문화를 접하고 크게 매료된 것 같습니다.
■ 슘페터 이론, 전후 일본 기적적 발전 결실
슘페터가 저술한 11개의 서적 중 10개가 일역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로 슘페터의 저작의 번역이 나온 언어는, 일본어 뿐이라고 합니다(*2).
이처럼 전쟁 전의 일본인들은 상당히 이른 단계부터 슘페터에 주목하여 그 이론을 탐욕스럽게 흡수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후 일본의 기적적인 경제 발전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슘페터의 평전을 쓴 토마스 마크로우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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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점령군이 철수한 1952년부터 석유 위기인 1973년까지 정책 담당자들이 슘페터의 시사점의 대부분을 매우 주의 깊게 채택한 것이다(*3).
물론 순수하게 케인즈적, 마르크스주의적, 슘페터적, 혹은 하이에크적인 국민경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1953년부터 1973년의 기적적인 경제성장기에 있어서의 일본적 시스템의 핵심이 슘페터적이었던 것은 틀림없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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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경제 발전은 바로 슘페터의 이론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슘페터파의 연구자들로부터도 그렇게 간주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노베이션 연구의 일인자 크리스토퍼 프리먼은 일본의 산업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5).
슘페터의 이론을 계승한 경제학자 윌리엄 라조닉도 일본의 자본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슘페터 등지고 쇠퇴한 나라, 일본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은 구조개혁이라고 칭하며 슘페터적인 핵심을 가진 일본적 시스템을 스스로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그 구조 개혁을 높이 선언한 2001년의 「뼈 굵은 방침」은,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를 하는 것이라고 쏘아 올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일본의 경제 구조나 기업 경영의 본연의 자세에도 문제나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개혁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슘페터의 이론에 전혀 어긋나는 개혁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런 개혁의 방침을 슘페터의 말을 인용해 각의 결정까지 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상당히 형편없다. 그 후의 일본 경제의 쇠퇴나 일본 기업의 몰락은, 그 당연한 보답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슘페터를 따라 발전하고 슘페터를 등지고 쇠퇴한 나라. 그것이 일본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 아닐까요.
■ 슘페터를 제대로 다시 배우는 것이 중요
독자들 중에는 이 일에 충격을 받아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알려달라' '어떤 정책을 하면 좋을지, 처방전을 제시해달라' 라고 생각하신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사실 슘페터는 그런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내놓으라'는 성급한 요구에 응하기를 꺼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경제 이론은 가치 중립적인 과학이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슘페터의 이론은 장기적이고 장대한 경제 시스템의 비전이기 때문에 그가 제시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정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슘페터의 화폐에 대한 이해를 이어받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이단 경제학자들이 발전시킨 '화폐순환이론', 앞서 언급한 경제학자 라조닉의 '혁신적 기업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슘페터파의 한 사람인 마리아나 마츠카토의 '기업가 국가론' 등 슘페터의 흐름을 이어받은 현대 경제이론은 일본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 혹은 행해서는 안 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 일본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슘페터를 다시 한 번 확실히 배우는 것입니다.
■ 슘페터가 맹렬히 반박한 이유
그런데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붕괴를 예측한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6)에 대해서는 그 출판 당시부터 이를 슘페터의 '패배주의'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비판에 대해서, 슘페터는, 동책의 제2판의 서문에서, 맹렬히 반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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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주의는 행동과의 관련에 있어서만 의미를 갖는 일정한 정신상태를 말한다. 사실 그 자체나 그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비록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결코 패배주의적이거나 그 반대일 수 없다. 어떤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보고는 결코 패배주의적이지 않다. 단지 이 보고를 받는 사람의 정신만이 패배주의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원은 이 경우에 앉아서 술을 마실 수도 있다. 또한 배를 구하기 위해 펌프에 돌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보고가 이미 실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도피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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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슘페터 정신의 고귀함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꼭 되고 싶은 것입니다.
*1 McCraw(2007,p.182,n.41)
*2 McCraw(2007,p.182,n.41)
*3 McCraw(2007,p.182)
*4 McCraw(2007,p.182,n.41)
*5 Freeman(1987)
*6 J. A. 슘페터 저, 나카야마 이치로·히가시하타 세이이치 역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동양경제신보사)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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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 타케시 / 평론가
1996년 도쿄 대학 교양 학부 교양 학과 제3(국제 관계론) 졸업 후, 통상 산업성(현·경제 산업성) 입성. 2001년 에든버러대학으로부터 우등 석사학위(정치이론), 2005년 동대학으로부터 박사학위(정치이론) 취득. 특허청 제도심의실장, 정보기술이용촉진과장, 제조정책심의실장, 대신관방참사관(글로벌산업담당) 등을 거쳐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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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나카노타케시
https://news.yahoo.co.jp/articles/7072a817f64719d23b84f3d72bcd591ded94ca67?page=1
日本は、この人に従って高度成長し、その後この人に背いて衰退した…今、日本が学ぶべき天才経済学者の名前
12/29(日) 17:17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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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レジデントオンライン
※写真はイメージです - 写真=iStock.com/Rawpixel
イノベーションの理論を確立した天才経済学者シュンペーターが日本に与えた影響とは。評論家の中野剛志さんは「日本はシュンペーターの教えを貪欲に吸収して戦後の発展を手に入れたが、1990年代に入ると、シュンペーター的な中核をもった日本的システムを自ら進んで破壊してしまった」とい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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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は、中野剛志『入門 シュンペーター』(PHP新書)の一部を再編集したものです。
■シュンペーターは日本の伝統文化に魅了された
「イノベーションの理論の父」といわれる経済学者ジョセフ・アロイス・シュンペーターは、日本とどのような関わりがあったのでしょうか(*1)。
明治維新以降、経済発展を目指す日本にとって、『経済発展の理論』の著者であるシュンペーターは非常に重要な経済学者でした。このため、戦前、多くの経済学者がシュンペーターから学ぼうとしました。後に戦後日本の経済学界における重鎮となる中山伊知郎や東畑精一は、ボン大学に留学してシュンペーターに学び、ハーバード大学では都留重人が彼の指導を受けました。
また、1924年、銀行の頭取を辞した後のシュンペーターに、最初にポストをオファーしたのは東京帝国大学だったそうです。1931年、シュンペーターは日本に招かれて講演を行ない、大きな反響を呼びました。この来日時、シュンペーターは、東京、日光、箱根、京都、奈良、神戸を訪ねて日本の伝統文化に触れ、大いに魅了されたようです。
■シュンペーターの理論が、戦後日本の奇跡的な発展に結実
シュンペーターが著した11の書籍のうち、10が邦訳されています。これほどシュンペーターの著作の翻訳が出た言語は、日本語だけとのことです(*2)。
このように、戦前の日本人たちは、かなり早い段階からシュンペーターに着目し、その理論を貪欲に吸収しようとしていたことが分かります。
そして、それは、戦後日本の奇跡的な経済発展へと結実しました。シュンペーターの評伝を書いたトーマス・マクロウは、こう書い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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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では、占領軍が撤収した1952年から石油危機の1973年まで、政策担当者たちが、シュンペーターの示唆の多くを非常に注意深く採用したのである(*3)。
もちろん、純粋にケインズ的、マルクス主義的、シュンペーター的あるいはハイエク的な国民経済というものは、存在しない。しかし、1953年から1973年の奇跡的な経済成長期における日本的システムの中核がシュンペーター的であったことは間違いな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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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後日本の経済発展は、まさにシュンペーターの理論を立証するものだったのです。そして、シュンペーター派の研究者たちからも、そう見なされていました。例えば、イノベーション研究の第一人者クリストファー・フリーマンは、日本の産業政策を研究しています(*5)。
シュンペーターの理論を継承した経済学者のウィリアム・ラゾニックも、日本の資本主義に関心をもっていました。
■シュンペーターに背いて衰退した国、日本
ところが、1990年代に入ると、日本は、構造改革と称して、シュンペーター的な中核をもった日本的システムを、自ら進んで破壊し始めました。しかも、その構造改革を高らかに宣言した2001年の「骨太の方針」は、シュンペーターの言った「創造的破壊」をやるのだとぶち上げていました。
もちろん、それまでの日本の経済構造や企業経営のあり方にも問題や限界があったのでしょう。時代の変化に応じた改革が必要だったのも事実でしょう。
しかし、だからと言って、シュンペーターの理論にまったく反するような改革をや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しかも、そんな改革の方針を、シュンペーターの言葉を引きつつ閣議決定までしたというわけですから、これは、相当にたちが悪い。その後の日本経済の衰退や日本企業の没落は、その当然の報いだと言うほかありません。
シュンペーターに従って発展し、シュンペーターに背いて衰退した国。それが日本だと言ってもよ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シュンペンターをしっかり学び直すことが大切
読者の中には、このことにショックを受けて、「私たちは、具体的にどうしたらいいのだろうか、教えてほしい」「どんな政策をやればいいのか、処方箋を提示してほしい」と思われた方もいるかもしれません。
実は、シュンペーターは、そういう「具体的な政策提案をよこせ」という性急な求めに応じるのを嫌がる人だったようです。それは、経済理論は価値中立的な科学であるべきだという彼の信念によるものだと思われます。
また、シュンペーターの理論は、長期的かつ壮大な経済システムのヴィジョンなのであり、彼が提示している資本主義の問題は、そう簡単に解決できるような性質のものではないという事情もあ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
とは言うものの、シュンペーターの貨幣に関する理解を受け継ぎ、イタリアやフランスにおける異端派の経済学者たちが発展させた「貨幣循環理論」、前述の経済学者ラゾニックの「革新的企業の理論」や、同じくシュンペーター派の一人であるマリアナ・マッツカートの「企業家国家論」など、シュンペーターの流れを汲む現代の経済理論は、日本政府がどのような政策を行なえばよいか、あるいは、行なってはならないかをはっきりと示しているはずです。
私たち日本人にとって大切なことは、シュンペーターをもう一度しっかりと学び直すことです。
■シュンペーターが猛然と反論した理由
ところで、資本主義の不可避的な崩壊を予測した『資本主義・社会主義・民主主義』(*6)に対しては、その出版当時から、これをシュンペーターの「敗北主義」だとして批判する声があったようです。そういう批判に対して、シュンペーターは、同書の第2版の序文において、猛然と反論し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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敗北主義とは、行動との関連においてのみ意味をもつ一定の精神状態をいう。事実そのものやそれから導き出される結論は、たとえそれがいかなるものであろうとも、けっして敗北主義的でもその反対でもありえない。ある船が沈みつつあるとの報告は、けっして敗北主義的ではない。ただこの報告を受け取る人の精神のみが敗北主義的たりうるにすぎない。たとえば、船員はこの場合に座して酒を飲むこともできる。また船を救うべくポンプに突進することもできるのである。その報告がたんねんに実証され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ただ単にそれを否定するような人があれば、そのような人は逃避主義者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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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に、シュンペーターの精神の高貴さが表れていると思います。こういう台詞が言える人間に、是非ともなりたいものです。
*1 McCraw(2007,p.182,n.41)
*2 McCraw(2007,p.182,n.41)
*3 McCraw(2007,p.182)
*4 McCraw(2007,p.182,n.41)
*5 Freeman(1987)
*6 J・A・シュムペーター著、中山伊知郎・東畑精一訳『資本主義・社会主義・民主主義』(東洋経済新報社)1995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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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野 剛志(なかの・たけし)
評論家
1996年東京大学教養学部教養学科第三(国際関係論)卒業後、通商産業省(現・経済産業省)入省。2001年エディンバラ大学より優等修士号(政治理論)、2005年同大学より博士号(政治理論)取得。特許庁制度審議室長、情報技術利用促進課長、ものづくり政策審議室長、大臣官房参事官(グローバル産業担当)等を経て、現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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評論家 中野 剛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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