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부활 제5주간 수요일>(2023. 5. 10. 수)
(요한 15,1-8)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요한 15,1-6).”
이 말씀은, ‘약속’이면서 동시에 ‘경고’입니다.
<신앙생활을 끝까지 충실하게 한 사람에게는
구원과 생명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잘라내겠다는 경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올리브 나무에서 몇몇 가지가 잘려 나가고,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인 그대가 그 가지들 자리에 접붙여져 그 올리브 나무
뿌리의 기름진 수액을 같이 받게 되었다면, 그대는 잘려
나간 그 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내가 접붙여지기
위해서였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들은 믿지
않아서 잘려 나가고 그대는 믿어서 그렇게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만한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본래의 가지들을 아까워하지 않으셨으면,
아마 그대도 아까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로마 11,17-21).”
이스라엘 민족이냐, 이방 민족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자만심에 빠져서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잘릴 것이고,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구원받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는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도”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교회에 속해 있고, 교적에는 신자로 등록되어 있어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 밖에 있는(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라는 말씀은,
“심판 때에 하느님께서 멸망을 선고하실 것이고” 라는 뜻입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끝까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고,
“깨끗이 손질하시어” 라는 말씀은
“은총을 더욱 풍성하게 내려 주시어”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하느님께서 어떤 시련이나 시험을 주시는 말로만
생각하는 것은 너무 좁은 생각이고, 틀린 생각입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구원하신다.”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구원과 생명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나 차별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열매’는
‘구원의 은총의 풍성함’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열매가 아니라.>
‘열매’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마르코복음에 있는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가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마르 4,26-29).
우리가 할 일은, 하느님(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는 일을 하실 때,
구원받는 당사자로서 능동적으로 그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니 내가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라는
말씀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신앙인들이 구원받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일 뿐이고,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라는 말씀은,
신앙생활이란,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생활이고,
동시에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시는 생활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한 마디로 줄이면,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생활입니다.>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라는
말씀과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앞의 14장에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었으면서도, 자만심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한눈을 파는 사람도 있고,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안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라는 말씀은
심판과 처벌의 무서움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심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마태 3,12).”
여기서 ‘쭉정이’는 겉으로는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즉 껍데기만 신자인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탈렌트의 비유’를 보면, 주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종에게
다음과 같이 준엄한 선고를 내립니다.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5,30).”
울며 이를 갈 것이라는 말은, 후회와 절망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씀들은 단순히 겁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알곡이 되라는, 또 쓸모 있는 신앙인이 되라는 ‘호소’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