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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잠 15:13-21
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19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21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 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
잠 15:13-21 /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도 환해지나 근심으로 가득찬 마음은 속부터 썩어 간다. 14) 분별력을 지닌 사람은 깨달음의 길로 매진하나, 숙맥같이 미련한 자 어리석은 짓만 거듭할 뿐. 15) 가난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천년처럼 괴롭지만 일이 잘되어 잘사는 사람은 날마다 잔칫날 같다. 16) 가진 것 많지 않아 비록 가난하여도 여호와 모시고 살아가는 나날은, 가진 것 많아 걱정거리 많은 부자들보다도 행복한 나날이라. 17) 값싼 채소만 먹고 살면서도 서로 우애 있게 아껴 주며 사는 것이, 값비싼 갈비짝 뜯으면서도 서로 못미더워 증오하는 것보다 행복하다. 18) 참지 못하고 벌컥벌컥 화를 내는 사람은 툭하면 싸움질을 하나, 기분 나쁜 일 있어도 속으로 삭히는 사람은 하던 싸움도 그치게 한다. 19) 게을러서 빈둥거리며 사는 사람은 가시밭길 걸어가듯 그 앞길 뻔하나, 손놀 틈 없이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그 앞길이 활짝 열리리라. 20) 슬기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지만, 미련한 자녀는 어미를 업신여긴다. 21)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은 것만 좋아하게 마련이고 깨달음이 있어 슬기로운 사람은 자기가 갈 길을 바르게 간다.
내면의 평강이 없이는 진정한 즐거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13-17)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반드시 밖으로 표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마음의 근심은 내면에 영향을 미쳐서 심령을 상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는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열정적으로 지식을 찾고 구하면서 더 지혜로워집니다. 그러나 지혜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지혜의 유익도 경험하지 못한 미련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기며 살아가기에 그가 찾는 것 역시 어리석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자초합니다. 16-17절을 보시면 가난하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니고, 부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조건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17절은 가정의 행복의 조건을 말하고 있는데, ‘채소’는 별다른 반찬이 없는 가난한 식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식탁에 사랑이 있다면 빈약한 음식이라도 달고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이와 다르게 ‘살진 소’ 즉 풍성한 식탁을 앞에 놓고도 가족이 서로 상처를 주며 미워한다면 그 가족들의 삶은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18-21)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인격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절의 쉽게 화를 내는 것은 참을성이 없고 조급한 성품 때문인데 이런 사람은 늘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사소한 일을 큰 문제거리로 만듭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는 싸움을 그치게 하고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또한 19절은 게으름은 자신의 인생을 막는 장애물과 같다고 말합니다. 게으름 때문에 인생길이 늘 궁핍하게 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부지런함은 정직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배워서 성실하게 일하고 자기 직무에 최선을 다하며 정직하게 노력합니다. 결국에는 이러한 삶의 태도가 인생의 대로를 열리게 합니다. 20절에서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지혜로운 자는 부모의 훈계를 듣고 순종함으로 부모를 즐겁게 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아들은 부모의 교훈을 무시하고 업신여깁니다. 부모를 업신여기는 사람이 타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적용: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계십니까?
미국의 산업구조가 크게 변화됐던 1900년대 초 그 정점에 ‘강철 왕 카네기’가 있었습니다. 카네기는 크리스천 실업인으로 번 돈을 하나님과 국가, 사회를 위해 써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는 물질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말년에 “소매 끝에서 소매 끝으로”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기업인의 재산상속이 덧없다는 말로 창업주의 후손은 언제나 맨손으로 시작한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 설 교 >
행복한 가정
잠언 15장 13~17절 / 정필도 목사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이 기록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인류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의 조건을 잘 갖추고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장 2절에 보면 솔로몬이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살아보려 했지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전도서 2장 17절에는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괴롭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무익하여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괴로워하며 살다가 6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도서 2장에 보면 솔로몬은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아볼 수 있을까를 생각했는데, 3절을 보면 술로 인생을 즐겁게 살아보려고도 했고, 4절을 보면 사업을 크게 벌여보기도 하고, 집을 짓고 포도원을 가꾸고, 과수원을 만들고 연못을 만들고, 또 노비들을 많이 데리고 살아보기도 하고, 소떼나 양 떼 등 소유를 많이 가져보기도 하고, 과거 어느 왕보다 금은보화를 많이 가지고 살아보기도 하고, 노래하는 남녀와 처와 첩을 많이 데리고 살아보기도 하였습니다. 10절(상반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눈으로 보고 좋으면 가져보고, 맛보고, 자기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것은 다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봤더니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라며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에 즐거운 대로 다 해보아도 전부 쓸데없고 헛된 짓이었다고 합니다.
솔로몬에게 가장 큰 아픔을 준 것은 가정의 실패를 통해서 주는 아픔이었습니다. 가정은 항상 편안하고, 기쁘고, 즐거워야 행복한데, 솔로몬의 가정은 그렇지 못해서 고통스럽고, 삶을 불행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처럼 살라고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며 살라고 가정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만드신 에덴동산에서 이루어진 가정을 생각해보십시오. 천국과 비슷합니다. 아픔도, 걱정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환경에서도 모든 것이 깨어진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그것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과 같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는 부부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책망하시자, 아담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그 여자가 주어서 먹었다고 말합니다. 책임을 하나님과 여자에게 돌리고 자기 책임은 없다고 합니다. 아마 이렇게 말하는 것을 하와가 들었을 때, ‘자기만 살고 나는 죽어도 된다는 말인가’라고 이를 갈았을 것입니다. 가정의 사랑과 신뢰가 완전히 깨지고 만 것입니다.
솔로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의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사신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깨어진 것입니다. 또한 부부는 일남일녀, 일부일처일때, 가장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솔로몬은 1대 1,000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가정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여인들과 결혼해 살았으니 그 가정이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전도서 9장 9절에 보면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혼자 즐기지 말고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 자신은 행복할지 몰라도, 천 명의 아내들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신랑을 한번 만나려면 삼 년이 걸리니, 신랑을 만나는 날에는 이를 갈고, 서로 물고, 뜯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이 가정은 행복할 수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날마다 후회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할 수는 없고 자식은 수백 명이고, 날마다 문제는 터지니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요. 솔로몬은 뼈를 깎는 고통을 당했을 것이고, 많은 후회를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이 이런 경험을 통해서 얻은 교훈이니, 참으로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얻은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지위나 재산이나 많은 여자가 있느냐가 아니라 마음에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행복하기 원하십니까? 서로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기 원하십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기 바랍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이 있으면 얼굴에 빛이 납니다. 얼굴만 봐도 압니다. 그러나 마음에 근심과 고민이 있으면 심령이 상할 뿐 아니라 얼굴에 수심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또 잠언 15장 15절에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잔칫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즐거우면 그 집은 항상 잔칫집이 된다는 것입니다. 라면을 끓여 먹어도 마음이 즐거워 웃음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먹새가 좋았지만 가난해서 잘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잔칫날에 있었던 일이나 음식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천국을 잔칫집, 특히 혼인 잔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2절에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며 천국은 혼인 잔칫집과 같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주일 동안 먹고 즐기며 잔치를 했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9절에 보면 「7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9:7~9)」라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어린양 예수님의 혼인 잔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신부 된 우리가 가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때 청함을 받은 사람은 복이 있고, 그 자리에 못 가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천국 생활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혼인 잔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즐거운 가정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가정은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마음의 즐거움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솔로몬이 세상 향락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향락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은 그순간 뿐입니다. 술로 낙을 누리는 사람은 술을 먹을 때는 좋지만, 간이 붓기 시작하고 재산이 날아가고 가정이 파괴됩니다. 세상 향락은 즐거움을 주되 잠시 뿐이고 엄청난 고통을 가져옵니다. 세상 향락은 절대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하박국 3장 17~18절에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괜찮은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쁘고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솔로몬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기 원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로 첫째는 온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불신결혼을 하면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과 결혼하면 신앙이 점점 약해지고, 신앙문제로 싸우다 보면 행복한 가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솔로몬이 실패한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여자들을 데려다가 처를 삼았으니 행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잠언 15장 16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고 뜨거울수록 자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미워하는 악을 자기도 미워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악에서 떠납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6장 6절에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자기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어떻게 악함 가운데 살겠습니까. 악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욥기 1장 1절에서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에서 떠나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시편 147편 11절에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45편 19절에는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모두 이루어주신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왔는데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저의 소원을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얼마나 구체적으로 저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지, 소원을 이루시고, 부르짖을 때 응답해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시편 128편 1~4절에 「1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시편 33편 18~19절에서는 「18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4편 7절은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라고, 9절에서는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시편 103편 8~14절 「8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도 죄 지을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죄악을 따라 진노하지 않으시고 돌봐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수지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9장 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생명줄을 붙잡은 사람이고, 축복의 줄을 붙잡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도, 경외하지도 않으니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많고 낙심과 절망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번뇌가 많아서 아무리 부요해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두 번째 비결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잠언 15장 17절에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채소를 먹는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이고, 살진 소를 먹는 것은 부유함을 말합니다. 여기에 살진 소는 일을 시키는 소가 아니고 잔치를 위해서 일도 시키지 않고 살을 찌우게 해서 잔치를 위해 준비한 소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잣집에서 이런 살진 소를 먹으면서도 서로 미워하면 지옥이 됩니다. 그러나 채소를 먹으면서 사는 가난한 가족이라도 서로 사랑한다면 그 가정은 천국이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줄 믿습니다. 행복은 사랑을 주고받을 때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사랑을 주고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며 사랑을 주고받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행복의 묘약이고 사랑하는 만큼 행복이 옵니다. 사랑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좋아하는 것은 일방적이어서 사랑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사랑은 섬기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으면 그 어린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완전히 종노릇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까운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면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은혜를 잊으면 사람도 아닙니다. 어머니의 은혜를 보답하고 싶어서 효도하고 싶다면 그것은 간단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에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라면서 자기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합니다. 존귀하게 여기는 만큼 행복해집니다. 아무리 훌륭한 아내라도 남편이 천하게 여기고 말을 함부로 하면 천한 여자가 되고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자기 아내를 보배로 여기고 소중히 하면 존귀한 여자가 되고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여기에서 행복이 생기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희생해서 우리를 살리신 것처럼 위대한 사랑은 희생하는 만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대로 살면 행복한 가정이 되는데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행동이 안 됩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 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행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기쁨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첫째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생기면 화평하게 되고, 희락이 생기고, 오래 참고 견디게 되어서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저와 여러분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원하지만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으니 성령께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010.07.01 23:13
즐거운 마음을 가져라 / 잠 1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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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마음을 가져라
잠언 15장 13-15절 / 논산중앙교회(최약순 목사)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명철한 장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고난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잠언 15장 13-15절>
더위가 계속 되니까 신경질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덥다 덥다 그러면 더 더운 것입니다. 신경질을 부리면 속에 열이 생겨서 더 더위를 느낍니다.
더워미치겠다는 분도 있습니다. 더위 때문에 미치면 세상 미치지 않을 날 없습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름이니까 덥지 겨울에 덥습니까? 여름은 더운 계절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면 세상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세상도 다스리지 못하고 패배자가 됩니다.
마음은 집의 기초와 같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중요합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그 집이 튼튼히 지어지는 것처럼 마음은 중요합니다. 마음은 꽃의 뿌리와 같습니다. 뿌리가 튼튼하니까 아름다운 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뿌리가 약하거나 뿌리가 병들면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튼튼해야 되고 마음이 아름다워야 됩니다. 내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하면 미움의 행동이 나옵니다. 사랑이 가득하면 사랑의 행동이 나옵니다.
내 마음이 파랗다면 파란행동이 나오고, 내 마음이 검다면 검은 행동이 나옵니다. 내 마음이 즐거우면 즐거운 행동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에 “마음을 즐거워하라!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 그러면 너의 얼굴에 빛이 난다” 할렐루야!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에 빛이 난다. 그리고 오늘 말씀 마지막 15절을 보면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마음이 즐겁고 기쁜 사람은 항상 잔칫집처럼 즐거운 삶을 누립니다.
그런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마음에 대해서 중요성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왜 그러냐? 마음은 안보이기 때문입니다. 안보인다고 무시하면 큰일납니다. 집을 지을 때 안보인다고 기초를 아무렇게나 해보세요! 비바람이 치면 그 집이 무너져서 큰일납니다. 인생도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중요합니다. 또 사람들이 마음을 중요시하지 않는 이유가 남들이 볼 때 내 마음은 못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나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아주 잘 꾸밉니다.
남자분들도 요즘 화장품을 많이 사용하는데 여자분들은 참 많더라구요!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세수하고 그냥 맨얼굴로 나온 분들 없을 것입니다. 화장대 앞에서 적어도 10분이상 앉아서 그렸다가 지웠다가 하고 방울도 달고 그렇게 오셨을 것입니다. 옷은 아무렇게 입고 오셨습니까?
이옷 저옷 비춰보고 골라서 입고 나오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보이는 곳의 얼굴화장이나 옷을 예쁘게 입으려고 노력하는 만큼 내 마음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지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도 마음이 즐겁지 않으면 그 인생의 얼굴에는 빛이 안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화장을 해도 화장발이 잘 받지.. 아무리 좋은 것을 바르면 뭐합니까?
마음이 어둡고 난리인데.....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이 늘 힘써야 할 것이 마음을 단장하고 마음을 꾸미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하여 마음이 즐거우면 그 얼굴에는 빛이 나고 그 생활에는 항상 잔칫집 같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니까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단장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질문해 보세요! 왜 나는 몇 십년을 믿는데 왜 내게는 기쁨이 없을까?
왜 기쁘게 주님을 믿고 따르는 데 왜 내 삶은 잔칫집같은 기쁨이 없을까?
한가지를 소홀히 했습니다. 마음을 꾸미는 일, 마음을 단장하는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의 외적인 모습을 꾸미는 데는 한주간씩이나 필요치 않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찬송부를 때 같이 부르고 성경찬송 가지고 다니면 겉모습은 금방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모습만 그리스도인처럼 된다고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항상 마음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을 동양에서는 마음을 감정의 장소로 생각합니다. 감정이 모두 마음에서 나옵니다. 서양에서는 마음을 생각의 장소로 인식을 합니다. 둘다 맞는 말입니다.
성경에서의 마음이란 인간의 생각, 인간의 감정이 솟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내 마음을 늘 살펴야 합니다.
요즘 한나절만 어디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땀과 냄새 때문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죠?
육신은 그렇게 깨끗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육신은 단장하기를 원하면서 왜 마음은 그대로 둡니까? 아마 여러분 중에 한주일이 지나도 한달이 지나도 내 마음을 살피는 일에 한시간도 투자안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겉보다 네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 옷은 땀이 나서 벗을 줄 알면서 왜 더 중요한 마음은 나의 모든 감정과 나의 모든 생각이 솟아나는 이 마음은 바꾸줄을 모릅니까? 이것을 안하고 사니까 몇십년 교회 다녀도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얼굴이 빛난다는 말은 은혜스러운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내 마음을 지켜라!” 아멘!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새벽기도때 나오면서 보면 노인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구름산에 가는 것 같습니다. 운동하러 갑니다. 대단합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또 내 가정을 지키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내 사업도 잘 지켜야 합니다.그런데 더욱 잘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고하니 내 마음입니다. 마음을 더 열심히 지켜야 되는데 우리는 마음을 지키는 일에 소홀합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야 되고, 또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빼앗기지 않게 잘 지켜야 되는데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용을 많이 잊어버리고 빈 자루만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해 보세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더욱 지키고 있습니까? 마음입니까? 물질입니까? 세상의 어떤 지위입니까?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 다음 마음을 열심히 가꾸어야 됩니다. 마음은 정원과 같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잡초가 많아지고 흉해집니다. 가꾸어야 됩니다.
잡초가 나면 그때그때 뽑아야 되고 아름다운 꽃을 심어야 되고, 씨를 뿌려야 되고 물을 주며 가꿔야 합니다.
우리교회 오는 분들마다 칭찬하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이 교회는 꽃이 많아 참 좋습니다!” 여러분! 이 꽃들이 저절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관리집사님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어제 그 뜨거운 날씨에 화분을 닦아서 갖다 놓고 이렇게 고생을 합니다.
그러니까 아름답잖아요?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두면 잡초들이 나옵니다. 교만의 잡초도 나오고 욕심의 잡초도 나와서 우리의 마음이 흉해집니다. 그러니까 매일매일 바꿔야 됩니다.
열심히 뽑을 것은 뽑아버리고 심을 것은 심고 시들어 버린 꽃은 치워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복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러분! 행복은 집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좋은 침대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자동차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 마음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가꾸지 않으면 그 가정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내 가정이 정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내 가정에 무엇을 장만하는 것 이전에 먼저 내 가족들의 마음을 믿음으로 가꾸도록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정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무엇을 갖기를 원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가꾸어야 합니다. 아무리 궁전같이 꾸며도 내 마음이 시궁창같으면 아무런 소용없습니다.
내 마음을 정원이라고 생각하고 이곳에 하나님의 말씀, 약속의 씨를 많이 뿌리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32000가지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 하나 내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축복의 씨앗입니다. 정말 이런 것들을 내 마음 밭에 많이 뿌려야 됩니다.
정원의 잡초들을 제거하는 방법 중에 뽑는 방법도 있지만 정원 가득 꽃을 심는 방법도 있습니다.
잡초가 돋아날 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내 인생을 아름답게 할, 복되게 할 말씀의 씨앗을 많이 뿌려 가꿔 보세요!
씨뿌리고 열심히 기도로 물을 주고 그러면 내 마음이 아름다워집니다.
변화는 마음에서부터 되어야 합니다.
조금 죄송한 예인데 돼지는 끌어다가 아무리 목욕시키고 깨끗한 곳에 놔둬도 또 더러운데 또 들어갑니다. 돼지의 마음을 바꾸기전에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10년 20년 교회를 다녔는데 그 다음에 보면 그냥 세상에 빠져가지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버립니다. 저 사람이 교회다닐때는 그래도 열심히 다니는 듯 했는데.. 아! 교회에서 집사도 하고, 전도회에서 일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습니다. 겉만 변화됐지 마음이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돼지가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다시 더러운 곳에 들어가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주일날 아무리 한번 변화되어도 소용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다시 돼지처럼 돌어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신다면 뭘 보실까요? 얼마나 아름다운 옷을 입었나? 그걸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보십니다.
지난번에 증거한데로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느니라”
그러니까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 중심을 아름답게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십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게 꾸밀 때 하나님이 은혜주시고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늘 즐거운 사람이 그 얼굴에는 빛이 나고 그 삶의 길은 항상 잔칫집같은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왜? 마음이 그래야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을 아니까....
현대인들이 너무나 겉을 꾸미는데 힘을 씁니다. 근데 그 잘못된 풍조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겉을 꾸미는데에만 그냥 힘을씁니다.
제가 어제 신문을 보면서 참 씁쓸했습니다. 어떤 서울 여대생이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땀흘려 열심히 했습니다. 그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그 다음 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버냐고 했을때 사람을 실망시키더라구요 무엇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했는가 하면 가방 중에 루이비통인가? 하는 유명가방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명품, 유명한 회사제품, 그런 것을 하나씩 갖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여대생의 소원이 뭔고하니 2학기 개강하면 그 루이비통인가? 그 가방을 메고 친구들 앞에 나타나는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입니다. 등록금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고 루이비통가방을 메고 싶어서...
대학생의 정신상태가 그 정도라면 참 문제입니다. 물론 그것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이들이나 어른들이나 교인들이나 속을 꾸미려는 생각은 안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사랑받기 원한다면 마음을 꾸미시길 바랍니다. 마음을 꾸며야 됩니다.
예배도 몸가짐보다 더 중요한게 마음가짐입니다. 마음가짐, 예배는 하나님과 내가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가짐을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지 않으십니다. 예배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착각하면 안됩니다. 내가 교회에 나와 앉아 있으니까 나는 지금 예배를 드린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앉아 있는 몸을 보시는게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보십니다.
정말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지 않는다면 예배가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이 보십니다. 여러분 지금 보신다니까요? 그렇게 졸고 있는 마음을 가지고 무슨 예배입니까?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찬송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입에서 소리가 나면 찬송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소리가 나는 목소리보다 그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정말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부르는가?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겉을 꾸미기 보다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으로 꾸미는데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세가지입니다.
첫째, 바른마음입니다!
마음이 삐뚫어지면 인생도 삐뚫어집니다. 세상도 삐뚫어지게 삽니다. 마음을 바르게 해야합니다. 바른 마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마음입니다.
또 현대인들이 잘못 가지고 있는 생각중의 하나가 목적만 좋으면 수단은 어떻든 괜찮다라는 생각입니다. 목적만 좋으면 수단이야 좀 나쁘면 어때? 그래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그런 생각! 더 쉽게 이야기하면 돈을 벌기 위해서 남을 속이고 그러면 어떠냐? 돈만 벌면 되지....내 목적만 달성하면 되지.... 안됩니다. 그것은 신앙하고는 정반대입니다.
기독교하고는 정 반대입니다. 그것은 공산주의 이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고싶어도 촛불을 훔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수단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바른마음, 하나님 말씀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세요! 바른 마음이 없으니까 얼굴에 빛이 안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른 마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까 기뻐서 그 얼굴에 빛이 나타납니다.
마음속으로 참 안타까우면서 조금 슬프고 그럽니다. 이제 처음으로 여자 국무총리를 세우려고 장상씨를 세웠는데 여러 가지 도덕성이 나쁘다고해서 부결됐습니다. 그것을 가만히 보면서 “야! 지도자는 모든면에서 깨끗해야 되는구나!”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무슨 생각을 했냐하면 그 사람이 그랬다고 따지는 자들을 어떠냐? 너희들은 어떠냐? 이 사람보다 났냐?
내가 판단할 때 이 사람이 훨씬 낫지.. 그래도 장상씨가 훨씬 낫지 저 사람들보다...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우리 바르게 살아야합니다. 바르게... 요즘은 그런 노래 안부르는데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라는 말이 가짜’라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 넓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넓은 마음입니다. 넓은 마음이란 사랑의 마음입니다.
바다 같은 마음,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용서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그렇게 못된짓 해도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는 그 넓은 마음!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마음은 어떤가요? 입만 넓지 마음은 좁습니다. 마음이 넓고 입이 좁아야 됩니다. 성경 어느 부분을 보아도 서로 미워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만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한번 구부러지면 안펴집니다. 야! 무섭습니다. 예수쟁이들! 한번 구부러지면 안펴집니다. 안믿는 사람은 술한잔 나누면 딱 펴지는데 왜 예수믿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어떤 사람은 참 은혜스러운 사람! 얼굴만봐도 은혜스럽습니다. 빛이 납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들은 몇십년을 교회다녔는데도 보면 그냥 죄송합니다. 마귀상입니다.
마귀상! 누구 못잡아먹을까? 마음이 변화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마음은 깊은 마음입니다. 깊은 마음! 이것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 깊은 행동을 하고 품위 있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하세요! 기도하면 마음이 깊어집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세상이 즐겁습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신앙생활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마음이 즐거운 자는 그 얼굴에 빛이 나고 항상 잔칫집 같은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을 꾸미는 일에 더욱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 설교를 똑같이 여러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네가지 유형으로 나눠집니다.
어떤 사람은 길가와 같은 마음으로 설교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돌작밭같은 마음으로 어떤 사람은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으로 어떤 사람은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길가와 같은 마음이라 전혀 은혜가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설교를 듣고도 시험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옥토와 같이 큰 은혜를 받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똑같은 씨를 뿌려도 밭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마음밭을 고치세요!
그러면 내 마음에 옥토가 되어 언제나 말씀의 씨가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언제나 풍성한 열매를 맺으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얼마나 좋겠습니까? 날마다 말씀들을 때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으니까 그 얼굴엔 자연히 빛인 나는 것입니다.
그 삶은 잔칫집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 같은 예화를 들으니까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께요!
최후에 만찬이라는 그림을 아시지요? 우리 식당에 가면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데리고 최후에 저녁식사를 하는 광경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수님의 모델을 찾기 위해서 많은 교회를 돌아다녔답니다.
이곳 저곳을 다녔는데 어느 찬양대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은혜스러운지 예수님의 모델로 정해서 그를 모델로 예수님을 그렸답니다. 열두제자를 그리는데 마지막 한명 가롯유다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가롯유다 모델을 찾기 위해 어디를 다녔는고하니 많은 죄를 지를 진 사람들이 있는 감옥을 찾아다녔답니다.
그래서 가룟유다와 같이 어떻게 음허하게 생기고, 교활하게 생긴사람이 없는가 봤더니 한 사람이 있더래요! 그래서 그 사람을 가룟유다의 모델로 그리는데 모델이 자꾸 우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우느냐고 가룟유다의 모델이 되어서 기분이 나빠 우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사실은 선생님! 제가 과거에는 교회를 잘 다니다가 지금은 타락해서 이젠 감옥에 들어와 있는데 전에 선생님이 저를 예수님의 모델로 삼았었습니다.”라는 말을 했답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런 예화를 많이 들어요. 어쨌든 교훈이 있잖아요?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에 은혜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니까 예수의 모델이 됐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시궁창처럼 냄새나고, 더러워지니까 같은 사람의 얼굴이 가룟유다의 모델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림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그려놓고..... 그래서 최후의 만찬의 다른 별명이 미완성걸작품입니다.
마지막까지 손질을 안하고 가룟유다까지만 그리고 그냥 끝내버렸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그래요. 내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내가 예수님의 모습을 가질 수도 있고, 가룟유다의 모습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마음이 즐거우면 그 얼굴에 빛이 나거늘 마음이 즐거우면 항상잔치하는 것 같으니라” 마음을 아름답게 믿음으로 꾸며서 날마다 여러분의 삶이 빛이나고 여러분의 삶이 잔칫집 같은 즐거움이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지혜
잠언 15:13-18
하나님이 만든 공동체는 교회와 가정밖에 없습니다. 흔히 하나님께서 아담의 옆구리를 쳐서 가정을 만드셨고, 예수님의 옆구리를 쳐서 교회를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경험하며 살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가정을 통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경험하며 살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성도님들의 가정은 어떠십니까? 성도님들은 어디에서 행복의 근거를 찾고 계십니까?
■ 그렇다면, 지혜의 왕 솔로몬이 제시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가정입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6절) 재산이 적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재산이 많고 다투며 사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비록 가난할 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디서든지 행복할 수 있지만 부자라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자는 불행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서로 사랑하는 가정입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7절) 집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다투는 것보다 주먹밥을 먹어도 화목하고 마음 편한 것이 낫습니다. 한마디로, 몸의 편안보다도 마음의 평안이 귀한 것입니다.
셋째는,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13절) 어떤 가정은 물질의 어려움 때문에 늘 불평하고, 어떤 가정은 과거의 실패와 아픔 때문에 마음의 기쁨을 빼앗기고 삽니다. 어떤 가정은 서로 용서하지 못하는 고통에서 살아갑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앓던 병도 낫고, 속에 걱정이 있으면 뼈도 마른다.”(잠 17:22,공동번역) 그렇습니다. 행복이란 누가 더 기쁜 마음 더 즐거운 마음으로 사느냐의 문제이지 누가 더 많이 가졌느냐, 누가 더 출세했느냐, 누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것을 소유해도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적은 것을 소유해도 마음에 기쁨과 감사함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심으로 앓던 병도 낳고 날마다 잔치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의 경제 대 공황시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황보다 더 두려운 존재는 좌절하고 절망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을 가지고 남은 것에 감사한다면 불황은 두렵지 않다.” 근심대신 희망, 불평대신 감사를 가지고 살아갈 때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가정, 서로 아껴주는 사랑의 가정,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감사의 마음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지혜로운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쁨공식
잠언 15장 13-17절 /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저는 한주간을 보내면서 기쁨공식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김인강교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분은 2살 때에 소아마비가 되었습니다. 비료부대 위에 엎드려 한손으로 땅을 짚고 다른 한손으로 부대를 잡아 끌며 흙바닥 위를 다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평생 비어먹거나 거지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분은 1966년생입니다. 저보다 5살이 적은 분입니다. 1968년 여름에 몇칠동안 고열에 헛소리를 심하게 하고 부어 오른 살이 누르면 쑥 들어간 채 올라오지 않자 어머니는 나를 읍내 병원으로 대리고 갔습니다. 의사는 감기에 체한 거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보름쯤 알고 열이 떨어졌지만 나는 일어설수 없었습니다. 병원으로 한의원으로 그리고 순천에 있는 고모님의 소개로 미국에서 온 의사에로 갔지만 너무 늦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충남 논산군 연무읍 마전리에서 평생을 거지로 사는 줄 았습니다. 아버지는 술만 먹고 오시면 어머니를 때리고 그리고 자신을 갖다 버리던지 당장 파묻어버리고 고함을 치며 자는 준욱이 들어서 숨도 제대로 못쉬고 살았습니다.
9살이 되었을 때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려고 하였지만 교장선생님이 거절하였습니다. 서지도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일언지하에 입학을 거절하였습니다. 이렇게 불구가 심한 학생은 대책이 없습니다.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찰스다윈이 식물학자 에이서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자애로운 신은 왜 살아 잇는 모충의 몸속에 알을 낳도록 해서 부화한 유층이 살아있는 숙주를 몸속에서부터 먹어치우도록 맵시벌을 설계한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고양이가 장난 삼아 생쥐를 괴롭히게끔 설계한 것일까요? 왜 뇌 손상을 입어 백치상태로 살아갈 아이가 태어나도록 하는 것일까요?
작은 누나가 쌀 한말을 모래 들고 대전으로 도망가 대전여상에 입학하여 그 누님따라서 재활원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활원은 지체불구자와 그리고 고아들을 모아놓고 교육한 기관입니다. 집단생활을 하고 나이순서대로 아랫목부터 시작하여 한방에 6명씩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가끔씩 영구차가와서 영양실태가 좋지 않는 자들이 죽으면 실어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각양각색의 장애아들이 있습니다. 벼려진 아이들, 부모에게 마저 외면당해 갈 곳이 없는 고아들, 지체 불구자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곳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늘을 부정하지도 하나님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인간들의 고통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는 하늘을 원망할 뿐입니다.
10년이상 근육이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는 상태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재활치료사들이 와서 끔찍한 고문을 시작합니다. 뜨러운 팩으로 20분가 다리위에 올려놓고 20분이 지나면 굳은 다리를 펴기 시작합니다. 목이 쉬어라 울고 불고 소리를 지르고 치료사를 물어뜯고 침도 뱉었지만 인정사정없이 굳은 뼈을 뼈기 시작합니다. 나는 평생에 굳은 마음을 펴는데 얼마나 노력했지는 모릅니다. 6학년 때에 처음으로 보조기를 목발을 짚고 일어났습니다. 처음으로 직립 보행하는 인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좋은 선생님 최화복선생님을 만나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리고 대전중학교를 그리고 충남고등학교를 그리고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그리고 미국의 UCLA박사학위를 6년동안 마치고 서울대 교수가 되었고 지금은 고등과학원교수로 스톡스 정리와 위상공간, 표현론에 대하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정말 불행한 인생을 시작하여 불행으로 마칠 것 같았지만 대학교 시절에 비오는 날 목발을 집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누나의 우산을 바처주는 고마음으로 성경공부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지금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고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교수님입니다. 그가 기쁨 공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김인강교수의 책 내용은 자신의 자서전이고 자신의 기쁨 공식을 말하고 있는 한 chapter입니다. 김인강 교수님이 말하고 있는 기쁨공식의 본문은
요 15:11-12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인생은 기쁨이 없으면 신앙생활이 하더라도 죽은 사람일고 말할수 있고 신앙생활의 가장 큰 의미는 살아서 살면서 기쁨게 살면서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이유도 바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의 공식은 무엇일까?
1.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기쁨의 공식입니다.
잠 15:13-15 /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 고난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성경에서는 마음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잠 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어떻게 먹는냐에 따라서 기쁨이 오기도 하고 슬픔도 오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속담에 사람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였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행복도 불행도 마음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84장에서는 이렇게 찬송합니다. 마음속에 근심있는 사람 주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무엇이든 근심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괴로움과 두렴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무엇이든 근심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유럽을 뒤흔들어놓았던 프랑스 제 1대 대통령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나의 생애 동안 단 6일만 행복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황제요.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였지만 전 생애를 살면서 모든 날이 불행했고 6일만 행복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헬렌켈러는 나는 행복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먹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권력을 잡으면 그 날부터 행복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누가 나를 죽이지 않는가? 국민들은 어떻게 잘 다스려야할 것인가? 우리 지동현권사님도 대통령을 위하여 늘 근심하십니다. 홍대를 지나려면 권사님이 목사님 저 많은 인간들 대통령이 어떻게 먹어야지요. 저는 혼자 생각합니다. 권사님 저들 너무 잘사는 사람들입니다. 대통령은 그런 걱정하지 않을 것니
나만 보면 울고 있는 민서를 보면서 저는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가까이 가려고 해도 민서의 마음이 불편하니 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 앞에있으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할머니가 안아주면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에 안겨서 잠을 잡니다. 편한 침대도 아니데 할머니의 품이 가장 편하고 행복한 장소입니다. 왜요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모습을 보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얼굴도 이상하고 눈도 크고 코도 큰 목사님이 자신을 바라보니 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즐겁게 사는 가 즐겁지 않는가는 성경에서 얼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얼굴은 얼마나 즐겁습니까? 늘 짜증스러운 얼굴을 가지고 삽니까? 아니면 기쁘게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중에 예수님이 그 마음속에 성령님이 그 마음속에 있다는 증거는 바로 즐거움입니다. 얼굴의 웃음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웃음)을 선물로 주실 때에도 사라는 그렇게 될까 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짜로 즐거움의 이삭이라는 웃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잔치하고 있는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도 그 신혼부부에게 자신의 때가 되지 않았지만 기쁨을 주셨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웃지 않았기 때문에 웃을 필요가 없다고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슬퍼하시고 고통당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찬송을 선택할 때에도 기쁨 찬송을 하십시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사요 나는 주님에 귀한 어린양입니다. 정말로 푸른 초장같지 않습니다. 늘 공동묘지 앞에서 우는 사람처럼 겟세마네 동산만 찾으면 어떻게 합니까? 부활하고 기쁨을 주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서서 기쁨으로 웃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고난주간에는 슬픈 찬송도 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할 때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잔치하면 사람이 많이 모일 때에 행복합니다. 여러분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 그리고 성전에서 예배 드릴 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할 때에 행복합니다. 지금 핵가족 시대입니다. 한명이나 두면이 전부입니다. 저희들 클때에는 5명입니다 김옥자 집사님 가정에 장례식때에 자녀들이 많으니까/ 얼마나 쉽게 일을 처리했는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종진이 결혼식때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행복한 결혼식을 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그것이 나타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잠 15:13 /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사람의 심령이 얼굴로 나타는 것입니다. 사람이 몸이 아플때에 얼굴에 그 질병이 나타납니다. 제가 위가 좋지 않으면 뽀도록지가 납니다. 몸상태가 않좋으면 얼굴이 붙습니다. 영혼이 좋지않아도 얼굴에서 나타난다고 성경을 말씀하고있습니다. 얼굴에 수심이 있고 근심있습니다.
얼굴이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얼굴 얼은 사람의 혼과 영혼을 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굴을 보고 얼빠졌다고 합니다. 굴이라는 것은 굴속 동굴과 같은 의미입니다. 사람의 혼을 담는 통로입니다. 혼이 오고하고 영혼이 오고가는 통로입니다.
2. 여호와를 경외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잠 15:16 /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기쁨공식의 책을 요약하면 간단하게 자신은 불행하게 태어났지만 여호와를 만나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기쁨의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은 지금 정말 좋은 아내를 만났고 (프랑스에서 첼로를 전공한 믿음좋은 여자), 그리고 건강한 자녀 2명 그리고 좋은 직장에 해외를 인도, 프랑스 미국 가보지 않은 곳이 없도록 다 가보았습니다. 고난 끝 행복 시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경외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 6:7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위대하고 광대한 하나님입니다. 정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하나님을 우숩게 알고 하나님을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우리의 생각대로 교회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농담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섭섭하고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정말로 경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 모세요, 다윗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것을 볼때 하나님이 그게게 복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지혜와 복을 얻고 싶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주일 안식일날은 거룩하게 지킵니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평생에 복을 받고 삽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지 않고 여오와를 의지하면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이 조금씩 조금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아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만 배척하지 않아도 정말로 위대한 민족이 될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잠 1:7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기본이 잘 되어있어야 합니다. 기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할 할 줄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무례하고 무엄하게 하는 행동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알고도 죄를 짖는 사람들입니다. 죄를 또 짖고 죄를 또 짖는 행동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내가 벌을 받지, 내가 이렇게 예배 드리다가는 하나님께 혼나자, 내가 이렇게 헌금 생활하다가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형제지간과 그리고 부모 지간에도 싸우려고 하다가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주일이되면 하나님께 늘 예배하고 하루종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사업장의 문을 닫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우숩게알고 예배를 드리는 것을 우숩게 아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성당에 헌금하는 것을 아무러 가치 없는 일이라고 목사의 아들이면서 기독교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타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맷돌은 서서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팔복과 시편1편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복의 헬라어로는 마카리오스입니다. 이 뜻을 다시 번역하면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즐거움은 행복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복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율법을 즐거워할 때에 복이 있고 복이 바로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진정한 복음 소유나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태에서 오는 것을 말하는것입니다.
전도서의 주제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그러니까 인간의 모든 문제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로 귀결된다는 것이 히브리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사상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해주고, 그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인간을 기쁨의 삶으로 인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3. 사랑할 때에 기쁨이 넘처납니다.
잠 15:17 /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그를 믿는자는 영생을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랑할 때에 행복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때에 아내가 행복하고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할 때에 자식이 행복합니다.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서로 사랑하고 성도님과 성도님들끼리 사랑할 때에 행복합니다. 우리 성도님을 모시러 갈때에 제가 행복합니다. 그 밝은 얼굴을 볼때에 우리 성도님들이 멀리서 일산에서 그리고 왕십리에서 오는 모습을 보고 행복합니다.
싸우고 다툴때에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가산이 적어도 연한 채소를 먹고 사랑하면 기쁨이 넘처납니다. 요즘 삼성의 이건희회장님이 한마다 하셨습니다. 형제들과 제산싸움을 하는데 한푼도 줄수 없다는것입니다. 저같은면 그렇게 돈이 많은데 조금씩 나누워 주고 싶습니다. 둘째 형님이 조카가 죽었는데 아무도 찾아가지 않습니다. 그러한 가정이 어디있습니까? 돈을 얼마나 더 벌어야 만족하고 행복할까요? 매일 5만원짜리 초밥 뷔페를 먹어야 행복합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돈이 많아도 이병철회장이나 정주영회장님은 초밥 3조각만 먹고 죽었다고 합니다.
김인강교수님은 자신이 장애인들 사이에 재활원에서 서로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중학교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목발을 짚고 다니기 때문에 병신으로 보고 경멸하는 시선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늘 모욕감에 시달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영순집사님) 그는 무엇으로 이겼을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에서 온잦 모욕을 당하시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모욕과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헤롯은 무슨 굉장한 이적이라도 행하는 걸 볼까하여 예수님을 호기심으로 만나게 되었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빌라도 앞에서 고소함으로 십자가에 처형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침을 뱉고 희롱하고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래도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책에 후미에 기쁨 공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학적인 내용은 잘모르고 제가 수학학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대입니다.
하박국선지자는 이렇게 하나님께 항변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벌러지는 부조리를 보고 절망하였습니다. 세상에 악한자들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못마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서슬퍼런 바벨론제국도 한 줌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독한 무솔린 히틀러 모택동, 김일성도 죽고 이념도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세상에 악은 유한하다는 사실입니다. 더울 희망적인 것은 유한한 그것들을 무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누면 제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의 공식입니다.
기쁨의 변수를 Y에 의존하는 함수라고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쁨 (Y) = Y * (하나님의 사랑) (Y의 sign)
기쁨 = (세상의 죄악) * (하나님의 사랑)-1 = 0
기쁨 = (서로사랑, 믿음) * (하나님의 사랑) +1 = 무한대 ( )
예배만 살짝 드리고 돌아가면 기쁨이 적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할 때 기쁨은 부한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공동체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서로 모순도 있고 말도 많고 상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불안하지만 세상에 등대요 희망을 주는 장소입니다.
2) 사랑의 힘이 증가되는 예배 (기쁨의 예배)
교수님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가난과 비참함을 경험하고 테레사 수녀님이 계신 곳에 가서 그곳에서 봉사하고 계신 한 수녀님과의 대화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내가 지금 전공하는 공부를 할 해서 무엇하나, 실제적으로 타인을 도울 수는 있는건가" 고민하는 것에 대한 답을, 바로 그 수녀님은 교수님께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나는 그저 작은 일에 충성할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제 책상에 붙어 있는 그 수녀님의 말씀입니다.
The fruit of Silence is prayer / The fruit of prayer is faith
The fruit of Faith is Love. / The fruit of love is service. / The fruit of service is peace.
“나의 가치를 똑똑한 것에 두면 늘 불행하다. 지구 위에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해변 가의 모래알보다 많으니까. 결국 미치거나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공부할때에 예배고사 일등한 한국 학생이 프린스톤 대학에서 정신병자가 된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의 차원으로 볼 때에 기쁨이 있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엉킨 매듭도 4차원에서는 헛매듭이 된다. 영국의 수학자 크리스토퍼 제만의 연구에 따르면 임의의 엉킨 끈은 충분히 높은 차원으로 옮기기만 하면 마법처럼 풀린다는 것이다. 신비롭지 않은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들이 당하는 문제들은 더 높은 차원에 계시는 하나님의 눈으로는 이미 다 해결이 되어있다는 뜻이다.” "돈+명예+1등=행복"이라는 세상적인 공식이 틀렸음을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하나님 한분만이 기쁨의 근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