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목요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1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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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목요일 강론>(2026. 4. 30. 목)(요한 13,16-20)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 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요한 13,16-20).”
1) 예수님의 수난 때에 사도단 안에서 배반자가 생긴 일은,
사도들의 위신을 크게 추락시키고,
그들의 권위를 많이 손상시킨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신자들이 그 일로 사도단을 비난하지는 않았더라도,
사도들 자신들이 스스로 위축되고 기가 꺾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황을 예견하셨고, 그래서 그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들을 격려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라는 말씀은, 당신이 사도들에게 권한과 권위를
주신 일은, 또 그 권한과 권위는 변함이 없음을
확인해 주시고 보증해 주신 말씀입니다.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그 권한과 권위는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일이 생겨도, 또 구름 때문에
인간들이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생겨도,
태양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변함없이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처럼 주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시는 분이고, 그분의 권능과
영광과 사랑은 언제나 항상 똑같이 빛을 내고 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일은, 구름 한 조각이
태양을 잠깐 가리다가 사라진 일과 같습니다.
2)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라는 말씀은, 사도들은, 신자들도,
인간들보다 훨씬 더 높으신(위대하신) 분께서
뽑으시고 파견하신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파견된 이 자신의 힘은 보잘것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견하신 분의 힘은 어떤 인간도 대적할 수 없는
위대하고 강력한 힘입니다.
파견된 이는 바로 그 ‘큰 힘’을 받아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고난과 시련을 겪더라도 굴하지 않고
그것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를 예고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요한 15,18.20).”
제자들이(신앙인들이, 또는 예수님의 종들이)
박해를 받는 것은 곧 예수님이 박해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박해자들의 힘은 예수님의 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신앙인은 바로 그것을 믿기 때문에, 어떤 위협이나 압박을
받아도 흔들림 없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신 것은
그를 회개시키기 위해서이고,
제자들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배반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신 것은,
유다가 ‘스스로’ 회개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라는 말씀은, 제자가
배반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일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결과를 보면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되는 ‘신비’입니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에서 ‘내가 나임을’은
‘내가 메시아임을’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의 배반을 포함해서, 예수님께서 겪으신
수난은 모르고 당하신 일도 아니고,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당하신 일도 아니고, ‘인간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이 스스로
목숨을 내주신 일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4)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고난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지만, 기쁘고 행복할 때도 많습니다.
사탄과 악의 세력을 경험할 때도 있지만,
‘하느님 체험’과 ‘하느님 나라 체험’을 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평생 고생만 하다가 순교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에, 누구나 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어야 한다고
말하면 신앙인이 되겠다고 나설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사도들이
‘기쁨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지금의 인생이 끝나면 ‘큰 기쁨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 믿음은 아무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한 근거가 있는 믿음입니다.
크든지 작든지 간에, 누구든지 신앙생활 과정에서 체험하는
순수하고 참된, ‘영적인 기쁨’이 바로 그 근거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기쁨의 생활’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부활 제4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