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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을 알게 한 여인
지독하게 추운 겨울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나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어림잡아 이십 리 길이었는데, 작은 산모퉁이 세 개를 지나야 했다. 나의 모습은 겨울이라는 계절에 비추어 너무도 험악했다.
양말도 신지 않은 채 검은 고무신을 신고, 내복도 입지 못한 상태로 여기저기 바느질로 기운 자국이 선명한 홑바지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셔츠만 입고 있었다.
이런 차림새를 본 학교의 상급생 형들은 나를 용감한 놈이라 불렀지만 속사정을 아는 몇몇은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하였다.
시커먼 보리밥마저 제대로 먹지 못하여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문득,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느낀 나는, 두 번째 산모퉁이를 힘겹게 돌아서 마지막 산모퉁이의 언덕에 발을 멈추었다.
눈앞이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지면서 의식이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 머릿속으로 힘을 내야 한다고 억척같이 생각하였지만, 나의 육신은 이미 내 생각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허우적허우적 허공을 걷는 듯, 나의 발길은 어느새 언덕의 작은 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곳은 친구들과 학교를 오가며 추위를 피하려고 잠시 들르던, 우리끼리 용어로 작은 바람막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한 나는 그곳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야박하게 휘몰아치던 매서운 칼바람이 순간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시려오는 몸을 오들오들 떨며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겨우 닦으며 눈을 감고 말았다.
가물가물한 의식의 저편에서 나는 환한 미소를 띠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언덕에 쓰러진 나의 육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미소가 점점 희미해질 즈음, 육신의 체온은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아홉 살 어린 소년의 삶이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의식 속의 무언가가 스스로 질문을 하였다. 그러나 질문의 답은 없고 희미한 미소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백마선 도련님! 백마선 도련님! 정신 좀 차리세요."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 의식 속의 나는 몸을 일으켰다. 누구일까? 누가 나를 백마선 도련님이라고 부를까?
"누구세요? 저를 잘 알고 계세요?"
나의 물음에 묘령의 여인이 모습을 나타냈는데,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묘령의 여인이 나를 부른 호칭인 백마선도련님을 떠올리니 아마도 그 여인은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도련님! 몸이 너무 싸늘해요. 이러다 정말 무슨 일 생기겠어요. 자, 내가 안아 줄게요."
의식 속의 나는 묘령의 여인의 품에 안겼다. 너무도 따뜻하였다. 몸에 따스한 기운이 찾아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다시 의식이 사라졌다.
의식 속의 나는 눈부시게 하얀 백마의 잔등에 밝은 얼굴의 할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었다. 백마에 올라탄 나의 얼굴에는 세상의 즐거움을 혼자 가진 듯 함박웃음이 가득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문중의 장손이었는데, 결혼 후 10년이 넘도록 자식을 얻지 못하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오매불망 손자 얻기를 기다리며 보낸 세월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셨고, 문중에서는 장손의 집안에 대를 잇지 못한 책임을 모두 아버지에게 돌렸다. 날이 갈수록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애 못 낳는 여자를 데리고 살지 말고, 새 여자를 얻어서 자식을 낳아 대를 이으라고 하였고,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면 첩이라도 얻어서 자식을 낳으라고 성화를 부렸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어머니는 아버지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항변할 수 없는 위치가 되고 말았으니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 시절에 시집와서 애를 못 낳는 것은 칠거지악에 해당되어 중죄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어머니가 무슨 말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던 어머니는 스스로 아버지에게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면 첩이라도 얻어서 자식을 얻으라고 사정을 하였다.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의 긴 장탄식이 흘러나올 때면 어머니의 눈물은 마치 두레박 물을 푸는 것 같이 솟아났다.
며느리를 끔찍하게 아끼시던 할아버지는 평상시에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가끔씩 장날에 나가셨다가 탁주라도 한 사발 하고 들어오시는 날이면 넋두리처럼 말씀을 하시곤 하였다.
"어이구, 베게 덩어리라도 좋으니 손자든 손녀든 한번 안아보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구나. 다른 집은 호박 넝쿨에 호박 열 듯 자식들이 주렁주렁 하건만 우리 집은 어깨 이 모양인고....
이러다가 내 생전에 대를 잇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것은 아닌지 원...."
할아버지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아버지의 고통도 심하였지만 어머니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한결같은 대답을 하시곤 하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하늘이 알아서 자식을 보내 주실
것이니, 너무 인간의 일을 억지로 하려 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오히려 하늘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짓곤 하셨다.
아버지는 해마다 추운 겨울만 되면 흰 눈으로 덮여 있는 깊은 설산을 찾아가 움막을 치고 겨우내 집에도 돌아오지 않은 채, 천지신명을 향해 기도를 하였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자식 하나만 얻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차가운 눈으로 몸을 씻고 칼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드는 추위를 참으며 눈물로 기도할 때, 하루해가 노루꼬리 만큼이나 짧았다. 아버지의 기도가 어떤 종교인지 신앙의 대상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하늘을 받드는 정성스러운 마음은 실로 대단하였다.
아버지가 눈 덮인 설산의 움막에서 기도를 하다 밖으로 나오면, 움막을 지켜주던 거대한 호랑이를 보곤 하였다. 해마다 반복되는 겨울 설산의 기도 때마다. 그 호랑이는 어김없이 아버지를 지켜주었고, 아버지는 그 호랑이를 하늘이 보낸 수호신이라고 믿고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의 하늘에 대한 공경심은 더욱 커져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거나 전해들은 동네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아버지의 정성 못지않게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도 대단하였다.
아버지가 산으로 기도를 하러 간 기간 동안 어머니는 아침마다 집안에 정화수를 떠놓고 절을 하며 하늘을 향하여 치성을 드렸다. 어머니가 떠오신 정화수는 동네의 공동 우물에서 길어왔는데, 이른 새벽마다 남들이 물을 길어가기 전, 가장 먼저 우물로 달려가서 물을 떠와서 그물로 목욕재계를 하고 하늘을 향하여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치성발원을 드린 것이다.
어머니가 치성을 드리는 장소는 마당 한 구석의 장독대였는데,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깊은 겨울날에도 치성은 멈추지 않았다. 정화수 앞에서 허리를 헤아릴 수도 없이 굽히며 절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칠거지악을 범한 죄 많은 여인네의 간절한 소원이 절규처럼 보여졌다. 하늘을 향하여 손을 비비며 기도를 하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는데, 매서운 칼바람에 얼어붙어 고드름이 맺히곤 하였다. 한해 두해가 아니고 벌써 십 년을 이어온 아버지와 어머니의 하늘에 대한 치성을 지켜보시던 할아버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어이구, 불쌍한 것, 너에게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하늘이 이토록 큰 시련을 주시는지 모르겠구나...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면 너의 정성을 모른 체하지는 않으련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을 얻기 위한 간절한 기도의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동네는 물론이고 멀리 이웃동네 그리고 친척들과 문중까저 잔잔한 감동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감동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하늘에 기도하여 아이가 생긴다면 세상에 자식 못 얻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오히려 하늘을 믿지 못하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냐 하시며, 그들의 말소리를 귓등으로 흘려보내셨다.
어느덧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성이 하늘에 사무칠 정도의 시간이 흘러간 십 년, 과연 하늘도 무심치 않았던지 어머니의 뱃속에는 태기가 있어 힘찬 박동을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나였다.
내가 잉태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백마를 탄 선인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이 때문에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백마선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으며, 장날에 백마를 직접 장만하여 집에서 길렀다.
내가 태어나던 날, 할아버지는 삶에서 최고의 기쁨을 얻은 날이라며 마당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그 소문은 동네를 지나 먼 이웃 동네까지 퍼져서, 이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며칠 동안 집으로 몰려들어서 집 앞 골목이 북적거렸다.
십년 동안 자식을 얻지 못하던 부부가 하늘에 치성을 드려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얻었다고 하니 몰려온 구경꾼들은 사실을 확인하며 신기하다고 하였고, 우리 집안의 경사를 따뜻한 마음으로 축복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구경 온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 하시며 떡과 음식을 마련하여 푸짐하게 대접을 하였는데, 이 잔치는 며칠 동안 이어졌으며, 밥과 떡으로 사용된 쌀이 몇 가마나 될 정도였다.
구경을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 집 대문에 걸린 금줄을 보고 나서야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온 고을이 떠들썩하게 축하를 해주는 과정에 태어난 나는 사내 동생이 태어난 네 살을 지나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온갖 호강을 다 누리며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었다. 이때 우리 집안은 내가 태어난 해부터 재산이 나날이 불어나서 마치 이런 행복이 천년만년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하였던가?
하늘을 진심으로 공경하며 정직하고 건강하던 아버지는 나이 불과 39세에 이름도 알 수 없는 큰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아 자리에 눕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허무하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여섯 살 철부지인 나에게 슬픔을 느끼게 하지는 못하였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였는지, 나는 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숱하게 보았다. 굶주린 이웃에게 쌀을 건네주시고, 헐벗은 이웃에게 옷을 전해주시던 아버지. 쌀자루를 메고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뒤를 따르던 나는 덩달아 세상이 밝아 보이고 가슴이 알 수 없는 기운에 뜨거워짐을 느끼곤 하였다.
옛 사람들의 말에 공들여 낳은 자식은 팔자도 세고 고생도 많이 한다고 하였는데, 그 대상자가 바로 나였다. 십 년 정성 끝에 태어난 귀한 자식인 나는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자 천애고아처럼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금지옥엽 받들어지며 자라던 철부지 어린 아이는 주변의 알 수 없는 멸시를 느끼며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었다. 설상가상이라 하였든가,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자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지고지순했던 어머니가 재혼을 하여 집을 나가 버렸고, 커다란 충격에 휩싸인 할아버지는 참을 수 없는 화병의 고통에 시달리다가 저세상으로 가셨다. 이제 남은 사람은 할머니와 나 그리고 갓난 남동생뿐이었다.
언제나 시끌거리며 북적거리던 우리 집엔 한 겨울에 파리가 날릴 정도로 찾아오는 이도 없었고, 쌀독에는 덩그러니 빈 바가지만 자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의 고단한 삶은 시작되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그토록 많은 이웃 사람들에게 베풀었지만 한순간 가세가 몰락한 우리 집을 살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땅이 있어도 농사를 제대로 지을 사람이 없어 항상 양식이 넉넉하지 못해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겨울이면 땔감이 부족해서 추위에 벌벌 떨고 지낼 때가 많았다.
지난 겨울에도 망측한 날씨 때문에 다 썩어 들어가는 보리밭을 보시며 서럽게 울던 할머니와 부둥켜안고 큰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렇게 어려운 살림이기는 했지만 할머니는 우리 형제를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부모 없이 자란다는 표식이 안 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은 우리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가정도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도 부모의 빈자리가 너무 컸던 관계로 다른 아이들보다 우리 형제와 할머니가 겪는 가난이 더 불행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 생각으로는 한 번도 우리 집이 궁핍하고 가난하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다만 부모님의 따뜻한 그늘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친구들이 부럽게 느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의식이 돌아왔는지 희미하게 누군가 나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느낌을 받고 살며시 눈을 떴다. 처음 보는 여인의 얼굴이 나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백옥같이 하얀 얼굴을 한 여인, 마치 학교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던 동화책에 나오는 천사와 선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백마선 도련님! 이제 정신이 들어요?"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 나는 묘령의 여인의 품에 안겨있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나의 몸은 따뜻해져 있었고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저를 잘 아세요? 누구세요?"
당신의 눈에 내 모습이 보인다니 과연 예측한 대로 보통사람은 아니군요. 저는 세상의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에서 왔으며, 이름은 연화라고 합니다.”
"연화라구요?"
나는 연화라는 여인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나보다 열 살쯤은 많아 보이는 아주 고운 아가씨였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왔다니 호기심과 두려움이 내 마음에서 일렁였다. 하지만 나는 연화의 품에서 어릴 때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따스한 모성애를 느끼고 있었다.
눈망울을 반짝이며 연화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눈과 연화의 눈이 마주치자 나는 쑥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백마선 도련님! 배가 많이 고파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민망한 듯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고운비단 천으로 만들어진 보자기를 내 앞에 펼쳐 놓았다. 보자기 속의 내용물을 보는 순간 나의 눈은 왕방울만하게 커지고 말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음식들이 내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 손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음식을 집어 입으로 넣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입안에 들어간 음식은 혀에 닿자 눈 녹듯이 사르르 하고 녹아버렸다. 처음 느껴보는 맛이었다. 꼭 집어 무어라 설명하기가 어려운 그런 맛이었다. 부잣집 친구 녀석이 마을 구판장에서 사온 알사탕을 주었을 때 그것을 입안에 넣고 감미롭게 맛을 느끼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날, 연화와 함께 있으니 따스한 봄날의 기운이 느껴졌으며, 사방이 눈에 덮여 꽃 한 송이 보이지 않았건만 들장미향기가 은은하게 코끝을 스쳤다. 나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으며 코를 벌름거리며 킁킁거렸다. 나의 코를 자극하던 들장미 향기는 다름 아닌 연화의 몸에서 나고 있었다.
연화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나의 모습을 보고 사랑스러운 듯 머리와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배부른 포만감을 느끼는데 이상하게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였다.
어린 형제를 버려두고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한 서러움과 알 수 없는 미움이 밀려왔다.
왈칵 눈물을 쏟으려는 데, 저만치 동네 친구 녀석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큰 소리로 녀석들의 이름을 불렀다. 여기 맛있는 음식이 있으니 먹고 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한 녀석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바보 같은 녀석들이라 외치며 다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잠시 후, 동네 어른들이 지나가기에 얼른 일어나며 인사를 하였지만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이 그저 갈 길만 갔다.
마치 사람들이 일부러 우리를 못 본 체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물끄러미 지켜보던 연화가 말을 하였다.
"백마선 도련님! 지금 저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요. 보이지 않는 기운이 도련님과 나를 감싸고 있기에 아무도 우리를 볼 수가 없어요."
"보이지 않는 기운이요? 그러면 누나는 도깨비 나라에서 왔다는 말인가요?"
나의 질문이 뜻밖이었는지 연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하였다.
"도깨비 나라가 아니랍니다. 저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도련님을
만나러 왔어요. 그곳에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어요."
연화의 말은 어린아이가 받아들이기에 너무도 심오한 이야기였다.
"연화 누나!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왜 내 눈에는 누나가 보이는 거죠? 혹시 나도 보이지 않는 나라에서 왔나요?"
동그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을 하는 내 모습을 본 연화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백마선 도련님은 저기 하늘에서 아주 귀한 존재로 계셨어요. 하늘의 선택을 받은 거룩한 백성들이 사는 나라예요. 그곳은 슬픔도 아픔도 모르고 살아가는 행복한 곳이죠. 도련님은 그곳에서 할 일이 있어 잠시 이곳으로 여행을 온 것 뿐이에요. 이 세상 일을 모두 마치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면 지금 겪고 있는 아픔들은 꿈처럼 다 잊어버리게 될거예요. 도련님은 이곳에서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꿋꿋한 모습으로 세상을 잘 살아야 해요. 무엇보다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은 아름다운 영혼이에요.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것을 얻더라도 아름다운 영혼을 상처 나게 하면 하늘이 슬퍼하고 땅이 통곡을 해요. 도련님이 다시 하늘의 거룩한 나라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름다운 영혼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되니 가슴에 깊이 새겨두세요."
내가 하늘의 거룩한 나라의 귀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귀로 들으며, 아직 그것이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음식이 담겨진 보자기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와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연화는 내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을 보더니 음식을 갈무리하여 보자기를 묶어서 내게 건넸다.
몸도 따뜻하고 배도 부르니 갑자기 세상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연화는 내 손을 잠시 쥐었다가 사르르 하고 사라졌다.
"연화 누나! 연화 누나!"
내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불렀지만 돌아오는 것은 희미한 메아리뿐이었다.
마치 깊은 꿈을 꾼 것 같았다. 언덕 아랫길로 내려오면서 손에 꼭 쥔보자기를 보니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신바람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향해 달렸다.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와 근처에 사는 고모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는 왜 이렇게 늦었냐 하시며 내 손에 쥔 보자기를 바라보았다.
나는 동생에게 빨리 오라고 소리를 지르며 보자기를 펼쳐 놓았다. 할머니와 고모할머니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이런 음식은 처음 보는구나. 어디서 난 것이
야?"
"할머니, 하늘에서 준거야. 많이 드세요."
"하늘에서? 인석이 할미를 놀리는구나. 그래 어디 한번 먹어볼까?"할머니와 고모할머니는 음식을 집어 입에 넣고는 다시 한 번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정말 맛있구나.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조카가 생전에 굶주린 집에 쌀을 열심히 날라주더니 그 음덕을 저 녀석이 받는 모양입니다. 세상에 과자도 아니고 떡도 아닌 것이 어찌 이리 맛나단 말입니까?"
고모할머니는 내 아버지가 많은 덕을 쌓아서 그 복이 나에게 온 것이라 하였다.
그제야 방에 들어선 동생 녀석은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기에 바빴다. 나는 방안의 풍경을 보며 세상에 더없는 행복을 느꼈다. 이렇게 행복한 모습만 보고 있으면 연화가 이야기한 아름다운 영혼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 연화를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마치고 쏜살같이 달려서 어제의 그 언덕으로 갔다. 숨을 몰아쉬며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연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체념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따뜻한 손길이 나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밝고 고운 차림을 한 연화였다.
"우리 도련님 나를 기다리셨어요? 얼굴을 보니 삐친 모양이네?"연화는 고운 손으로 내 볼을 가볍게 쥐었다. 나는 볼멘소리로 말을 하였다.
"삐치기는 누가 삐쳐요? 그냥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려고 했을 뿐이에요."
나는 연화를 간절히 기다린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일부러 그렇게 말을 하였다.
연화는 나를 자리에 앉히고 보자기를 끌러 음식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제의 음식보다 더 귀해 보였다. 아직 한번도 보지 못했던 과일도 있었는데, 한입 베어 먹으니 달달함이 꿀맛처럼 느껴졌다. 음식을 먹고 있는 나를 보며 연화가 말을 하였다.
"금지옥엽처럼 귀하고 귀한 우리 도련님이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되어서는 안돼요. 하늘에서는 귀한 몸인데 땅에서는 이렇게 박대가 심하니 제가 힘껏 지켜 줄게요."
"연화누나! 누나가 있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가보고 싶어요."
“도련님이 우리들 세상을 보고 싶다니 기뻐요. 제가 시간을 내어 초대를 할게요."
"정말? 와! 신난다."
나는 손뼉을 치며 좋아하였다. 연화는 나에게 자연과 소통하라고 하였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은 자기들만의 언어로 말을 한다고 하였다. 풀나무 꽃 벌레 등등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그 소리가 들리며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연화의 말이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연화는 음식이 담긴 보자기와 옷이 담긴 보자기를 내 손에 쥐어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에게 두 개의 보자기를 내밀자, 할머니는 서둘러 보자기를 끌렀다.
“세상에. 이 할미가 처음으로 만져보는 옷감이구나. 무슨 옷이 이렇게 가볍고 감촉이 좋을까? 이런 옷은 아무나 입지 못하는 것일텐데...."
할머니는 옷을 입어보고는 방안을 빙그르 돌면서 기뻐하였다.
나도 얼른 옷을 입어보았는데, 마치 햇볕을 몸에 감싸고 있는 것처럼 따뜻하였다. 동생에게 옷을 입혀주고 우리 세 사람이 마당에 나와서 행복한 표정을 짓자, 낮은 담 너머로 우리를 본 동네 사람들의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그들은 힐끗힐끗 우리 가족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골목을 지나갔다.
우리 집은 길가에 위치했고 담장이 많이 낮아서 길을 지나면서 집 안이 다 보이는 형세였다. 우리 뒷집에는 동네에서 소문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부잣집 사람들이 입는 옷보다 더 귀하게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 부잣집 주인은 아버지의 친구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우리 가족에게 냉랭하게 대하곤 하였다.
이렇게 귀한 음식과 좋은 옷을 입고 있자니, 겨울이 겨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동네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또래의 아이들이 영양실조가 걸리거나 감기에 걸려서 고생을 하였다. 하지만 우리 형제는 오히려 쌩쌩하게 동네 골목을 달음박질치며 누비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의 눈에 매우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처럼 기름진 음식을 먹은 것 마냥, 우리 형제는 언제나 화색이 도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밝고 명랑하였다.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날, 연화는 나를 자기들의 세상에 초대한다고 하였다.
연화의 뒤를 따르던 나는 어느새 울창한 소나무 숲에 들어섰다.
이곳은 학교를 오가다 보면 건너편에 위치한 산인데 아직 한 번도 가까이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이 산의 이름은 산 능선에 흙으로 쌓아올린 성이 있다고 하여 토성산이라고도 불리고, 옛날 전쟁 중에 망을 보던 자리가 있다고 하여 망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꼬불꼬불 이어진 소나무 숲길을 따라 산새소리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걸어 들어갔더니 처음 보는 마을이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항상 보던 작은 산속에 그렇게 아름답고 신기한 마을이 감추어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누구에게 들어본 적도 없었다.
산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하여도 온 산이 눈으로 덮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 이곳은 따뜻한 햇살이 가득하고 온갖 꽃들이 피어있었다.
분명 바깥세상은 깊은 겨울인데 이곳은 마치 따뜻한 봄날의 풍경이 펼쳐져 있으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처음 보는 과일 나무가 곳곳에 있어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천천히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을 한 선량한 사람들이 거리를 오갔다. 연화는 커다란 성처럼 지붕이 뾰족뾰족한 집으로 나를 안내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꺼내 놓으며 먹으라고 하고, 전망루 같은 높은 곳에 데리고 올라가서 멀리 떨어진 좋은 경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전망루의 모습은 활짝 핀 연꽃이 긴 대롱 끝에 매달린 모습이었고, 그곳에 올라 사방을 보니 아름다운 세상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성처럼 보이는 집들은 온갖 꽃과 수풀에 가려 보일 듯 말듯 하였다. 이곳 사람들은 작은 마차를 타고 이동을 하며, 말처럼 생긴 날개달린 짐승이 마차를 끌고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땅에서 구르는지 공중에 떠서 구르는지 쉽게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린 마음에도 그 세상의 풍경은 꿈속의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화가 살고 있는 집도 성처럼 생겼는데, 주변에는 넓은 호수가 거울처럼 맑은 모습으로 고여 있고, 호수 위에는 연꽃이 활짝 피어 만발했다.
연꽃 사이로 작고 큰 물새들이 날아다니고, 벌과 나비들이 연꽃에 앉아 꽃가루를 뭉치며 춤을 추고 있었다. 무척 평화스럽고 아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연꽃 호수의 풍경이었다.
연화와 함께 올라갔던 전망루는 그 연꽃의 호수 위에 지어져 있었다. 전망루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어 있으면서 연화와 대화를 나누었다.
"연화 누나 여기가 어디에요? 아직 나는 이런 마을이 산속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는데..."
"도련님과 처음 만났을 때 들려주었던 보이지 않는 세상이 이곳이에요. 보이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에 바깥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세상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지내지요."
"지금 내 눈에는 다 보이는데, 이곳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가 가는 듯 아닌 듯 표정을 짓자 연화가말을 하였다.
"이곳 세상의 모습은 이곳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고, 도련님이 살고 있는 바깥세상의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랍니다. 잠시 후 도련님도 이곳을 빠져 나가는 순간 이곳 세상의 모습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 거예요. 이곳은 보이지 않는 빛으로 가려져 있어서 바깥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고 바깥세상 사람들의 귀로는 들을 수 없어요."
"정말 신기한 세상도 다 있네? 이런 세상을 두고 요지경 속이라고 부를까요? 요지경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세상들이 보인다고 하던데..."내 말을 들은 연화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였다.
“요지경 속은 아니지만 바깥세상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별천지이겠지요. 이곳은 하늘도 새롭고 땅도 새로운 신성한 세계이니까요. 그러므로 도련님도 앞으로 보이는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지 말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세요. 보이는 세상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영원하니까요. 도련님이 떠나왔던 거룩한 나라처럼...."
"나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요. 그러면 부모가 없어도 흉보는 사람이 없고, 가난하다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없을테니까요. 난 그런 말들이 가장 듣기 싫어...."
나는 연화에게 내 신세를 말하며 은근히 짜증이 났는데, 이를 눈치챈 연화가 얼른 정색을 하며 말을 하였다.
“도련님!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으면 아름다운 영혼의 눈을 가지도록 노력해요. 보이지 않는 세상은 아름다운 영혼의 눈에만 보이니까요."
"연화누나! 아름다운 영혼의 눈을 가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해요?"
항상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면 아름다운 영혼의 눈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러면 남들이 부모 없는 아이라고 흉을 보든, 가난하다고 업신여기든 조금도 슬픈 생각이 들지 않아요. 아름다운 영혼의 눈에는 항상 축복된 세상의 모습들만 보이니까요. 작은 생명들을 사랑하고 양심이 좋아하는 일만 해봐요. 양심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 아름다운 영혼의 눈을 절대 가질 수 없어요. 도련님은 지금 들려주는 말들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나요?"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어요. 아무튼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렇지 않으면 천사 같은 연화 누나를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연화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펼쳐진 이야기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글자의 책들을 펴놓고 읽어주면서 하늘과 땅의 이치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우주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이라서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연화의 이야기는 어린 가슴에도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는 한 없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연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어린 나이에도 웬만큼 잘 이해되었고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처럼 흥미롭게 들렸다. 연화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갑자기 의식이 성장해버리는 것 같았고, 특히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방문했을 때는 그러한 느낌이 더 확실해졌다.
연화와 보낸 시간들은 실제적으로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데, 현실세계 시간으로는 여러 날과 여러 달이 흘러간 기분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세상에 도착하면 짧은 시간도 길게 늘어나는 마술이 걸려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잠깐 동안 꿈속에서 복잡하고 긴 사건을 경험하는 현상과 다르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의 시간과 현실세계의 시간은 다른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연화와 함께 지내다 돌아올 때는 너무 서운하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짧은 시간에 깊은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아니라면 바깥세상으로 정말 돌아가기 싫었다. 그러한 마음을 알고 그녀는 이렇게 달래주었다.
“도련님이 살아가는 세상의 시간은 길고 지루한 것 같아도, 우주의 시간으로는 찰나처럼 짧고 잠깐이랍니다. 지구의 현실세계는 우주에서도 가장 진흙탕 같은 세상이지만, 도련님이 선택해서 찾아온 곳이므로, 어차피 견디어 내야 할 어려움들이 많겠지요. 그리고 마침내 현실세계를 찾아온 도련님의 목표를 달성하고 아름다운 그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도련님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슬프고 마음 아픈 일들을 겪을 때 이 연화를 생각하세요. 그림자처럼 도련님 곁을 지켜줄게요."
연화는 여러 가지 격려와 힘이 되는 말들을 내게 들려주었다.
연화와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소나무 숲을 빠져 나오니 조금 전에 보이던 세상은 온데간데없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려주면, 일부러 꾸며낸 이야기라고 믿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녀석 참 말도 재미있게 지어낸다. 아무래도 커서 큰 이야기꾼이 되려나보다."
그해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까지 연화는 매일 나에게 음식을 전해주었고, 가끔씩 옷을 주기도 하였다. 나는 혼자서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들어가려고 다시 소나무 숲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그 통로는 보이지 않았다. 책에서 본 것처럼 넓은 잔디밭에 앉아서 두 눈을 질끈 감고 명상하듯 한동안 있었지만 눈을 떠보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었다. 버들가지에 파란 싹이 돋아나는 시절, 친구를 만나기 위해 동네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는 나의 귀에 어디선가 가냘픈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음.... 음.... 아~ 목말라...."
어린이 목소리처럼 가늘고 가냘픈 목소리였다.
소리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려서 바라보았지만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다시 터벅터벅 앞을 보고 걷고 있는데 또다시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나 이제 목말라 죽을 것 같아. 물..., 물...."
조금 전처럼 들리는 비명 소리에 다시 뒤돌아보았지만 여전히 사람 모습은 없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의 정체가 너무 궁금하였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천천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때 어느 집 담 너머에 버려진 화초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봉숭아꽃나무였다. 버려진 꽃나무는 시들시들 뿌리채 말라가고 있었다. 화초라고 하지만 시들어가는 모습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깐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신음소리가 또 들렸다.
"나 좀 살려줘요..., 나 좀 살려줘요."
그 신음소리는 시들어가는 봉숭아 꽃나무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꽃나무의 말을 듣자 나는 '이것이 연화가 말한 자연과의 대화로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살금살금 봉숭아꽃나무 곁으로 다가갔는데, 신음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그 봉숭아꽃나무를 집어서 들고 물이 흐르는 개울가로 가서 담가주었더니, 조금 전까지 시들어가던 줄기와 잎들이 싱싱한 모습으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보잘 것 없는 화초 한 그루이지만, 기운이 없이 시들어가다가 물을 머금고 다시 소생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되살아난 꽃나무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화단에 정성 들여 심어주었다. 그리고 밖으로 다시 나가 약속한 친구들과 놀다 돌아왔더니, 화단에 심어 놓은 화초는 따가운 태양의 열기를 견디지 못해 다시 시들시들해져 있었다.
시들해진 꽃나무에 물을 주고 이번에는 그늘까지 만들어 주었다. 축늘어져 있는 꽃나무이지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이튿날 일어나서 아침 일찍 화단으로 나가보니, 시들시들하던 화초는 어느새 생기 왕성한 모습으로 곧게 서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중에 그 꽃나무가 무럭무럭 잘 자라서 다른 꽃보다 더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볼 때마다 반가운 인사말을 보냈다.
“사랑해.. 사랑해...."
나도 그 꽃나무를 볼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되뇌이면서 다정하게 화초의 손을 잡듯 꽃잎들을 쓰다듬어 주곤 했다. 꽃잎을 쓰다듬으면 짜릿하게 떨리는 진동이 전달되어 왔다.
그 봉숭아꽃나무는 그해 유난히도 화려한 꽃망울을 많이 터뜨렸고, 자신의 분신인 예쁜 씨앗들을 화단에 잔뜩 뿌려놓고 삶을 마감했다. 보잘것없는 화초 한 그루와 나눈 감동적인 인연이며 추억이었다.
그 후부터 말 못하는 식물이라 하여 함부로 꺾고 뽑아버리는 습관이 내게서 모두 사라졌다. 아주 어릴 때는 내게도 작은 생명체들을 함부로 하고 괴롭히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친구들을 따라서 이유 없이 개구리나 뱀을 장난감 삼아 괴롭히고, 귀엽고 예쁜 곤충들을 붙잡아서 못살게 한 적도 많았다.
시들어가던 봉숭아꽃나무를 살려준 후 나의 감성은 매우 순화되고 어질게 변했다고 고백할 수 있다.
그 후로는 나뭇가지 하나라도 함부로 꺾거나, 작은 곤충의 생명이라도 함부로 여기는 버릇이 사라졌다. 모든 생명체는 작거나 크거나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모기나 파리 같은 해충이 주변에서 성가시게 굴더라도 살생하는 버릇이 없고, 멀리 가도록 쫓아주기만 하였다.
나는 고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 못하는 식물이나 미물들과도 얼마든지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체험을 얻었다.
봉숭아꽃나무와의 인연으로 더욱 화초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화초밭으로 달려가 무언의 대화를 속삭였다. 예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화초나, 아름다운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 저절로 말을 걸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대부분은 혼자 말을 건네고 혼자 대답하는 독백이었다. 가끔씩 내 말에 동조하는 화초를 만나게 되면 오랜 시간 동안 그 옆에 머물며 수다를 떨기도 하였다.
어느덧 연화가 알려준 자연과의 대화가 한층 영글어 가고 있었다.
내가 살던 시골집 마당의 화단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화초들이 자라고 꽃을 피웠다. 나는 천성적으로 화초를 좋아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얻어 온 화초들로 언제나 화단이 가득했다.
화단에 가득 피어난 화초의 꽃망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황홀해져 견딜 수 없었다.
특히 가을이 되어 화단은 물론 마당 구석구석, 대문 입구까지 온통휘늘어지게 피어난 국화나 코스모스 같은 꽃물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저절로 환상적인 기분에 들떠지곤 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흐느적거리는 꽃송이들은, 마치 하늘의 선녀들이 떼 지어 내려와 무아의 경지에서 천상의 군무에 열중하는 풍경 같기도 했다.
그러면 내 마음은 저절로 꽃과 하나가 되어 어울리고 싶지만, 꽃송이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릴 뿐 나를 외면하고 모른 체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마치 나 혼자서 화초들의 마음만 살짝살짝 훔쳐보며 짝사랑에 빠져있는 기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고독에 빠지기를 좋아했고 외로움을 잘 탔던 나는 너무 고독한 순간에는 방안에서 윙윙거리는 파리 소리조차 반갑게 들릴 때가 있었다.
외로운 순간에는 작은 벌레에게조차 말을 걸고 싶고, 풀섶의 작은 꽃잎에게조차 말을 걸며 외로움을 달랠 때도 많았다.
고독했기 때문에 주변의 사물과 자연들이 대화의 상대가 되고 교감이 통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자연과 벗하여 교감이 통할 때는 행복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속상했다.
그날도 화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코스모스 꽃물결에 도취되어 한참 고독한 생각에 젖어 외로움을 타고 있을 때, 홀연히 연화가 웃으며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 피부는 꽃잎을 닮았고, 그녀의 의상도 꽃잎의 향기로 물들어 있는 듯 아름다웠다.
연화는 장미와 백합꽃의 부부가 서로 사랑하여 만들어 놓은 꽃의 정령처럼 느껴졌다. 홀연히 웃음 지으며 나타난 연화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도련님 또 꽃님들을 짝사랑하다 마음이 토라졌나 보네? 불러도 대답 없는 임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고독에 젖어 있으려나?"
연화가 나타나 다정하게 나를 감싸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꽃향기보다 더 좋은 냄새가 코끝에서 감돌았다. 꽃처럼 예쁜 연화가 나타나 말을 건네주니 꽃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해 답답했던 마음이 저절로 풀려지는 듯 했다.
내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흐르자 연화는 또 이렇게 말했다.
?"
"꽃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응답이 없어 속상했나요
"응. 봉숭아꽃나무의 목소리처럼 국화나 코스모스의 목소리도 듣고 싶어요. 그런데 아무 꽃송이도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해요. 어쩌다 들릴 때도 있는데 그건 정말 가끔 있는 일일 뿐이에요. 내가 그동안 자기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잡초를 뽑아 주었는데...."
"그건 도련님이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저 화초들은 지금도 도련님을 향해 사랑한다고 반갑다고 수없이 말들을 걸어오지만, 도련님이 그 소리들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을 뿐이에요. 아주 가끔이라도 들린다면 이제 자연과의 대화가 시작된 거예요."
"그럼 연화의 귀에는 꽃잎들의 그러한 이야기 소리가 모두 들려오고 있어요?"
“그래요. 다 들려요. 도련님도 조용히 꽃잎들이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며 귀여운 몸짓들을 하는 장면들을 들여다보세요. 화초들의 귀여운 몸짓이 바로 화초들의 언어이며 우주의 메시지와 다름없어요. 그러한 우주의 메시지를 통해 꽃잎들이 도련님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도 전해주고 있어요. 왠지 알아요?"
“모르겠는데?”
“도련님은 봄이 되기 전부터 정성을 다해 화단을 가꾸고 화초들을 돌보았잖아요. 그러한 정성과 사랑을 화초들은 모두 알고 있어요. 그래서 화초들은 도련님이 나타나면 모두 행복한 기분에 젖어서 사랑의 기운을 잔뜩 뿜어내고 있어요. 그러므로 화초들이 도련님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지 않는다고 서운해 할 일은 없어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황홀한 생각이 든다면, 그보다 행복한 대화가 어디 있겠어요. 화초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들은 소리 내어 말을 하지 않아도, 생겨난 그 모습의 자체로도 우주의 메시지를 힘차게 전달하고 있어요. 이제부터 도련님은 자연을 향해 소리의 대화만 들으려 하지 말고, 마음으로 전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러면 삼라만상의 어떤 존재들과도 나누지 못할 대화가 없을 테니까요."
연화의 교훈을 듣고, 나는 우주와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다시 배웠다.
삼라만상의 모든 자연은 그냥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고,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무언의 메시지를 쉬지 않고 전달하며 세상을 깨우치고 있다고 연화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들과도, 하늘에서 흘러가며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을 바라보면서도, 그리고 이름 없이 피어난 길가의 작은 꽃망울 하나와도 마음의 깊은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워 나갔다.
어린 나이부터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터득하니, 마음이 커지고 생각이 깊어지며 우주와 자연을 향해 경외하는 생각들을 품을 수 있었다.
연화는 이렇듯 배고플 때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천사였을 뿐만 아니라. 생각과 사고를 깊게 단련시켜주는 스승이기도 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조숙한 관념들을 품었던 것은, 연화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두어 시간쯤 걸어 나가면 넓은 바닷가가 나타난다.
그 바닷가에서 바라보면 저 멀리 작은 섬들이 보이는데, 그중에 한 섬에 친척이 살고 있었다. 그 섬에 건너가기 위해서는 나룻배가 필요한데, 이쪽에서 "아저씨~. 저 좀 섬으로 데려다 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쪽 섬의 나룻배 아저씨가 "그래,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라!"라고 대답하고 친절하게 나룻배를 몰고 와서 건네주곤 했다.
.그 아저씨는 섬지기처럼 언제나 그 자리를 맴돌다가 섬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아무 보상도 없이 나룻배를 태워주곤 했다.
언제 봐도 말이 없으면서 입가에는 항상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아저씨였다.
그 섬지기 아저씨 덕분에 나는 항상 친척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을 찾아가고 싶으면 아무 불편 없이 건너다닐 수 있었다.
작은 섬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친척 집 낚싯배를 빌려 타고 바닷가로 밤낚시를 나가곤 했다. 고고한 달빛이 쏟아지는 밤바다에 나룻배를 띄워 놓고 낚시를 하고 있으면, 별별 현상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때로는 푸른 불덩어리들이 반딧불처럼 물 위를 날아다니기도 하고, 괴상한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도 했다. 날치라는 물고기들이 새처럼 떼를 지어 물 위로 튀어나와 멀리 날아가다 내려앉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고래처럼 생긴 시커먼 동물이 물 위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 사라지는 모습도 볼 수 있는 것이 밤바다의 풍경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밤낚시를 나갈 때마다 단골처럼 나타나는 괴상한 친구들이 있었다. 귀신처럼 머리를 늘어뜨리고 사는 동물인데, 얼굴모습이 사람하고 너무 비슷했다.
아마도 인어가 있다면 그렇게 사람처럼 머리를 늘어뜨리고 사는 괴상한 짐승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처음에는 그 동물도 나를 경계하고 나도 그 동물을 소름이 끼치는 눈으로 바라보곤 했지만, 나중에는 서로 아무 경계도 없이 친구처럼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실제로 그 귀신처럼 생긴 동물에게 놀라서 죽은 사람도 있었다. 친구의 해녀 할머니였는데, 해녀 할머니는 평생 동안 바닷가에 나가 해산물을 채취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분이었다.
해녀 할머니가 어느 날 바닷가에 나가 넓은 개펄에서 조개를 캐다 그 귀신처럼 생긴 동물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다 쓰러진 후 자리에 눕다가. 다시는 바닷가에 나가지 못하고 영영 눈을 감아버린 일이 있었다.
해녀 할머니가 죽기 전에 들려준 말에 의하면, 머리를 산발한 물귀신 몇이 "끼륵~ 끼륵~" 하고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물에서 튀어나와 달려오며 덤벼들더라고 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물귀신이 할머니를 잡아간 것이라고 전설처럼 소문이 나있었다. 물귀신에 대한 전설은 그 외에도 어촌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 동물이 사람을 해쳤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다.
나도 그 물귀신에 대해서 대충 들은 바는 있었지만, 밤낚시를 나갈 때마다 주변에 나타나 서성이는 모습들을 보니, 그렇게 사람을 해칠만큼 사나운 짐승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 물귀신들이 살고 있는 본거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물귀신들이 밤바다의 물 위에서 놀다 돌아가는 곳은 도깨비 섬이라고 부르는 바위섬이었다. 몇 마리씩 떼를 지어 놀다 바위섬으로 돌아가는 물귀신들은 섬에 오르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도깨비 섬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도깨비 섬은 비가 오려고 하거나 날이 흐리면 섬의 모습이 이상한 형태로 바뀌곤 했다. 때로는 상여 같은 형태로 보이기도 하고 가마 같은 형태로 보이기도 하고, 물 위에 피어난 커다란 꽃송이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도깨비 섬이 이상한 모습으로 바뀌는 모습은 그 주변 어촌마을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현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운 생각으로 그 섬에 함부로 접근하는 일이 없었다.
도깨비 섬을 뼈 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바위섬 둘레를 뼈처럼 생긴 암석이 빙 둘러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바위섬에 얽혀진 전설도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바위섬에 살고 있던 암컷 구렁이와 건너편 섬에 살고 있던 수컷 구렁이가 서로 사랑하며 부부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해마다 한 번씩 섬과 섬 중간의 바다 가운데서 두 구렁이가 만나 사랑의 교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러다 한번은 바위섬에 살고 있는 암컷 구렁이가 병이 들어 수컷을 만나러 가지 못했고, 암컷이 그리워 바위섬을 찾아온 수컷도 지쳐서 돌아가지 못하고 두 구렁이가 함께 엉겨 붙은 채 바위섬을 감고 숨을 거두게 되었다.
두 구렁이는 바위섬 전체를 감을 만큼 큰 몸집이었다고 하는데, 두구렁이가 함께 바위섬을 감고 죽은 후 나중에 뼈만 남게 되었다.
바위섬을 감고 있는 뼈 모양 암석들은 영락없이 구렁이의 척추뼈를 닮은 것처럼 희고 뾰족뾰족했다.
그처럼 바위섬의 모양이 수시로 변하는 현상과 구렁이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그 섬에 나는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충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물귀신 동물들이 그 바위섬에 은신처를 두고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 더욱 그 곳을 방문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어느 날, 그날도 밤낚시를 나갔다가 고요한 달빛 아래 저 멀리서 신비한 모습으로 외롭게 떠 있는 바위섬을 바라보다가, 스스로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으로 낚싯배를 저어가기 시작했다. 바위섬에 다가갈수록 물길은 제법 거칠었지만, 무엇에 홀린 듯 두려움도 없이 낚싯배의 노를 힘껏 저어갔다.
바위섬에 근접하자 파도 소리는 더욱 사납게 울부짖었고 바위섬이 불청객의 접근을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다. 그때 검푸른 파도들이 성난 괴물들처럼 달려들듯 바위에 부딪치기 시작하니 울컥 두려운 생각이 조금씩 밀려들기 시작했다. 더구나 거센 파도 때문에 마땅히 낚싯배를 정박시킬 장소도 눈에 띄지 않았다. 힘들게 겨우 한 장소를 잡아낚싯배를 묶어두고 뼈처럼 뾰족뾰족한 암벽을 타고 섬에 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아주 작아 보였는데 섬에 오르자 제법 넓고 규모가 큰 바위섬이었다. 바위섬에는 풀이나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고 있지 않았고, 섬을 둘러싸고 있는 구렁이 뼈 같은 하얀 암석들은 달빛에 반짝이며 기분 나쁜 기운들이 감도는 것 같았다.
뭔가 좀 음산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의 섬이었다.
다행히 대낮처럼 밝은 달밤이어서 처음 도착한 섬이지만 발을 잘못 디디거나 절벽 같은 곳으로 추락할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섬 주변에서 아우성치는 파도소리에 마음이 저절로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바위섬 한복판의 정상에 도달하니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몇 그루 나무가 서 있고 풀과 화초가 자라고 있었다. 풀과 화초가 자라는 곳으로 다가가니 달밤에도 꽤 깊어 보이는 우물 하나가 있었다.
우물이라기보다는 바위섬 한복판을 깊게 뚫어 놓는 구멍 같았는데, 구멍 속을 들여다보니 저 바닥 밑에 물이 고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이 일부러 뚫어 놓은 구멍은 아닐 텐데, 사람 손으로 다듬듯 매끄럽게 뚫려있는 바위 구멍의 우물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얼핏 보니, 깊은 바위우물 밑바닥에서 작은 불덩어리로 보이는 물체들이 반딧불처럼 움직이며, 물속으로 들락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디선가 낯익은 불빛들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물귀신 동물들의 눈에서 빛나는불빛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불빛들은 사라져 버렸는데, 그때 느낌으로 물귀신들의 은신처가 바로 그 우물 속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 물귀신 동물들이 살고 있는 우물에서는 따뜻한 기운이 모락모락올라오고 있었는데, 좀 쌀쌀한 날씨 탓인지 우물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자 이상하게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졸음을 참을 수 없어서, 우물 옆의 돌멩이를 베개 삼아 이마를 대고 엎드려 있다가 깜빡 정신을 잃은 후,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가 초여름이 시작되는 6월 초쯤의 일이었지만, 밤이 되니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들었다.
그 상태로 단잠을 청한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난 지도 모른 뒤 눈을 떴는데, 조금 전 바위섬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상한 풍물들이 살고 있는 처음 보는 세상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에 지어진 집들이나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무엇 하나 낯설지 않고 생소하지 않은 모습들이 없었다.
그곳 사람들은 생소한 차림의 나를 발견하고도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무표정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자기들끼리는 무어라고 재밌게 재잘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데, 내 모습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무표정한 모습들로 일관하는 그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두려웠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이런 의문과 두려움에 싸여 생소한 풍경과 집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를 한참 동안 방황하면서 걷고 있는데, 어느 커다란 집에서 노인 한 사람이 나오더니 나에게 손짓을 하며,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였다.
위아래 붉은 의상을 걸치고 머리에는 검은 천의 터번 같은 모자를 쓴 노인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두렵고 답답한 생각을 품고 있다가, 붉은색 의상의 노인이 불러주니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큰 집으로 안내한 노인은 넓은 정원의 의자에 나를 앉게 한 후 입을 열었다.
"여기는 자네가 오는 곳이 아닐세!"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눈에서는 불꽃 같은 광채가 났다. 또 그 말에는 힘이 있고 위엄도 있었다.
노인의 말을 듣고 내가 힘없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곳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세상 같은데 어디인가요?"
“이곳은 그대가 살아가는 현실세계와 물질구조가 다른 이차원 세상이야. 이곳에서 어떤 음식을 먹어도 자네의 배를 채우지 못하고 살로가는 양식도 되지 않아. 말하자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해도 바람으로만 배를 채우는 현상과 다름없지. 이곳의 양식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양식이 되고,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온 자네에게는 아무리 먹어도 배를 채울 수 없는 헛양식이란 뜻이지."
“그러면 저는 이곳에서 꼼짝없이 굶어 죽고 말겠군요?"
“그래서 이곳은 자네가 올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
"살아서 현실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단 말씀인가요?""하지만 걱정 말게 자네를 도와줄 기인이 곧 나타날 테니. 그 기인의
부탁을 받고 자네를 내 집으로 불렀다네."
“저를 도와 줄기인이 누구이지요?"
"곧 알게 될 걸세."
그 말이 떨어지고 조금 지나서 한 낯익은 여인이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화였다. 그곳에서 연화를 대하니 너무 반가웠다.
스무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연화는 붉은색 의상의 노인을 마치 친구처럼 대했다. 노인과 몇 마디 정담을 나눈 연화는 내게 이렇게 꾸짖듯 말했다.
“어쩌다 이런 무모한 일을 저질렀지요? 도련님은 방문하지 말아야 할 장소를 찾아온 거예요. 이 바위섬은 인간들이 함부로 접근하면 안되는 장소에요. 특히 그 주변은 물길이 사납기로 이름나서 웬만한 어부들도 섬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아요. 그 바위섬을 찾아갔다가 실종된 낚시꾼들의 이야기도 못 들었어요?"
"그런 소문이 사실일 줄은 몰랐는데..."
"도련님은 평소에도 가슴이 조일만큼 무모한 장난을 잘 부리는 걸 알아요. 앞으로는 할 일 안할 일을 가려가며 살도록 하세요. 조심성 있는 삶을 살라는 뜻이지요. 내말 명심하겠어요?"
"앞으로 그렇게 할 테니 빨리 이 무서운 세상에서 나를 구출이나 해줘요. 거리를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너무 이상해서 마치 유령의 땅에 도착한 기분이야...."
"호호호.... 이제 좀 겁이 드나 보지요? 그러나 걱정 말아요. 이 연화가 곁에서 지켜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기왕에 이곳 이차원 세상을 찾아왔으니 구경이나 잘하고 돌아가도록 해요. 다시 구경하기 힘든 세상이니까요."
이렇게 뜻하지 않게 이차원 세상에 도착한 후 연화를 따라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다양한 볼거리들을 구경했다.
이차원 세상의 땅을 밟으며 걸어 다니는 기분은 마치 구름 위를 밟고 다니는 기분 같았다. 그리고 그 세상의 사물들은 형체와 색채는 가지고 있는데 투명한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차원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현실의 세계처럼 희노애락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현실세계의 인류들이 겪고 있는 불행과 행복들을 겪으며 다양한 삶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차원 세상의 구경을 마치고 연화는 나를 안전하게 현실세계로 안내했다.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통하는 보이지 않는 문이 어딘가에 열려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곳은 예전에 연화가 안내했던 보이지 않는 세상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이었다.
연화는 자연과 우주의 목소리는 고독할 때 잘 들린다고 하였다.
세상 누구와도 대화의 상대가 없고, 자신의 말을 전달해 줄 상대가 없을 때, 자연히 우주에 대해서 작은 생명체들에 대해서 관심이 깊어진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와 엄마가 서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듯, 관심을 가지면 이 세상 무엇과도 대화가 통하지 않을 상대가 없다.
밤하늘을 향해 별빛을 바라보면 별빛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것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자연과 우주의 소리를 듣고, 그것들과 심연의 대화를 나누어 갈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자아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사랑의 유기체라고 단정할 때, 쉬지 않고 우주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받으며, 한층 순결하고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이나 느낌은 우주 에너지의 현상이다. 생각이 곧 에너지인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는 쉬지 않고 에너지가 발생하며, 그 에너지에 의해서 생각하고 다양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전기가 끊기면 전기장치들을 사용할 수 없듯, 인간의 몸에서 에너지가 고갈되면 어떤 정신이나 생각도 품을 수 없다.
생각의 에너지는 파동을 만들고, 그 파동은 우주전파의 현상으로 자연이나 우주에 전달하게 만든다.
인간들만 생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나 동물들도 생각을 한다. 논리적이고 조합적인 사고는 하지 않더라도 본능적인 사고력은 모든 생명체가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곤충이나 벌레도 잡으려고 하면 도망간다. 도망간다는 뜻은 붙잡히면 죽는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식물들도 생각을 하고 불행과 행복을 느낀다.
영양과 수분이 충분하면 좋다는 표정으로 싱싱한 모습을 나타내고, 그렇지 않으면 생기가 없고 축 늘어져 괴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식물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존재가 가까이 다가오면 행복한 파장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자기를 해치거나 상처를 입히려는 존재가 나타나면 고통스런 파장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식물들은 가까이 다가온 존재의 파장에 의해서 적인지 친구인지 구분한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들은 우주의 유기체 현상들이기 때문에 서로의 파장을 읽고 느낄 수 있으며, 그 파장을 통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한 파장을 우주의 공용어인 텔레파시라고 부른다.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텔레파시를 통해 의사를 교환할 수 있다. 식물과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우주의 텔레파시를 통해 우주의 모든 존재들과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우주 텔레파시는 초월적인 힘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현상인데, 불신의 고정관념 때문에 그 기능들이 인간에게서 퇴화되어 있다.
우주 텔레파시를 이용하면 산에 들어가 산새들과 대화를 나누고, 물가에서 물고기들과 대화를 나누며, 화단에서 꽃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우주의 소리를 경청할 수 있다면, 삶 저 너머 존재하는 또 다른 차원의 삶을 부정하지 않으리라.
우주는 다차원의 세상들이 서로 겹쳐있는 현상이다.
그 다차원의 세상들은 서로 겹쳐 있으면서도 간섭을 받거나 방해가 되지 않는다. 물질의 파장과 파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삶의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과 현상이 존재한다. 느껴지지 않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와 있어도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삶의 저 너머에도 보이지 않는 세상은 마찬가지다.
차원이 다른 보이지 않는 세상끼리는 서로 <이차원 세상>이라 부른다. 이차원 세상끼리는 경계가 없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경계를 쉽게 넘나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특정한 지역에 우주의 공간이나 지상을 막론하고, 이차원 세상끼리 통하는 관문이 있다. 이차원 관문이다.
이차원의 관문을 찾으면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의 통과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차원 세상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은 쉽지 않다. 자칫하면 다차원의 미아가 되어 영원히 실종될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은 마치 연화와 동행하지 않으면 소나무 숲에 감추어진 세상을 찾아낼 수 없던 것과 일치한다. 바깥세상으로 나오며 돌아올 때 표식까지 해 두었지만 다시 혼자서 찾아가면 그 표식들까지 사라지곤 했다.
결국 혼자서는 찾아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란 걸 나중에 깨달을 수 있었다.
연화의 모습은 내 나이 열세 살이 넘은 후 다시 볼 수 없었다. 연화는 그때까지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나를 보살펴 주었다. 연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이후로 연꽃 호수가 펼쳐져 있던 보이지 않는 세상은 꿈속에서나 찾아갈 수 있었고, 연화가 전해 주던 맛있는 음식도 다시 맛 볼 수 없었다.
연화와 보이지 않는 세상은 꿈속에서만 자주 나타났고,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손만 내밀면 가까운 곳에 연화의 웃는 모습이 나타나고 보이지 않는 연꽃 호수의 세상이 있을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빛으로 가려져 있는 그 세상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이후로 연화는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영원한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고아처럼 외롭게 세상을 살아갈 때, 힘들고 슬픈 일들을 만날 때마다 연화가 살고 있던 따뜻한 세상이 한없이 그리워지곤 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연화라고 하는 유령을 따라 유령의 세상을 방문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는 연화와의 만남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연화는 한 집에서 영원 전부터 살아온 식구 같은 기분이었고, 연화가 안내해 준 세상은 현실세계의 일부라고 느끼며 방문하곤 했었다.
그러한 연화는 어릴 때 나의 정신세계를 크게 일깨워주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우쳐 준 대 스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연화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내 곁에서 아주 떠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 들 때가 많았다. 그녀는 항상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곁에서 지켜보는 것 같았고,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갈 때는 무언의 위로를 보내주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녀의 몸에서 발산하던 따스한 기운이며 훈풍에 실려 오는 꽃향기같던 그녀의 향기가 항상 코끝에서 느껴지곤 했기 때문이다.
연화와의 인연을 계기로 나는 늘 우주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우주를 마음에 품을수록 우주에는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습이 더 크고 오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연화는 보이는 현실세계를 바깥세상이라고 표현했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안세상이라고 표현했다.
<과연 나는 연화의 말대로 이 진흙탕 같은 세상을 일부러 선택해서 찾아온 것일까. 일부러 찾아온 세상이라면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정말 이 세상 삶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곳은 슬픔과 어두운 그림자들이 보이지 않는 세상일까.>
이러한 생각들을 혼자 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그리워하곤 했다.
4차원 문명세계의 메세지 1 <우주의 목소리 > - 박천수 著
첫댓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