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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많은 음식을 먹었다. 우리 부부는 아무 거나 잘 먹는 편이었고 한국음식에 대한 갈망도 없어 만족스러웠다. 스페인 음식은 모두 먹을 만했다. 순례자 메뉴(menu del dia)는 모두 가성비가 좋았다. 도시건 시골이건 큰 차이가 없었으며 가격은 11~15유로 수준이었다. 물론 중간에 아주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도 있긴 했다. 순례길에서 만난 바르나 베이커리, 레스토랑 가운데 기억에 남는, 추천할 만한 곳들을 정리해본다.
팜플로나 대성당 근처 마이라(Maira) 레스토랑 앤 카페 구글 평점 4.6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처음 메뉴 델 디아를 경험했지만 우리 부부가 처음 선택해 맛본 곳은 이 레스토랑이었다. 구글 평점이 높은 편이라 믿고 갔다. 보통 스페인 레스토랑은 오후 1시 30분 문 여는 곳이 적지 않은데 우리는 뭘 몰라 12시쯤 들어갔다. 웨이터는 처음 난색을 표하다가 말도 안 되는 이들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는 듯 이내 친절히 응대했다. 맛깔 난 음식을 정갈하게 대접하는 맛집이었다.
팜플로나 외곽 Zizur Mayor의 Panaderia(제과점) Tanoha 구글 평점 4.3
팜플로나 숙소를 일찍 나서는 바람에 아침을 챙기지 못했는데 이 빵집을 찾을 때까지 쫄쫄 굶었다. 2시간쯤 걸어 주택가를 벗어나 들판으로 접어드는 길로 갈라지는 길에서 이 가게가 800m 떨어져 있다는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고민됐다. 왕복 1.6km를 걸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결론적으로 꼭 갔어야 했다는 데 부부가 완전 한목소리였다. 빵도 맛있고 커피도 맛있었다. 화장실도 너무 깨끗해 정비하기에 맞춤했다. 독일인 외모의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데 딱딱한 외모와 달리 서비스 응대도 합격점이었다. 다시 프랑스길을 걷는다면 부러 꼭 방문하고 싶은 맛집이다.
사하군 레스토랑 라 롤다나(La Roldana) 구글 평점 4.1
엽기적인 요리를 레디고스 알베르게 레스토랑에서 먼저 맛볼 기회가 한 번 있었는데 다른 두 청년이 먼저 주문하는 바람에 맛보지 못했다. 해서 이 레스토랑에서 맛보며 즐거웠다. 와인도 맛있고 무엇보다 푸짐했다.투우를 소재로 한 벽화도 아름다웠다. 이 레스토랑은 특이하게도 스타터 메뉴로 치킨 파에야가 나왔는데 그것도 아주 먹을 만했다.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알베게리아 델 카미노 구글 평점 4.5
음식도 음식이지만 토속적이며 정갈한 레스토랑 분위기로 인상 깊었다.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숙소 주인 할아버지는 이 알베르게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지 이 레스토랑을 반드시 이용하라고 우리 부부에게 신신당부했고, 우연히 시내에서 만나 다시 큰 목소리로 레스토랑 위치를 알려줬다. 스타터, 메인 요리도 훌륭했지만 디저트도 매우 빼어났다.
레온 엘 토포(El Topo) 구글 평점 3.9
레온 대성당 맞은 편에 앉아 피자에 맥주 한 잔 기울이기 딱 좋다. 생맥주 2.5유로에 피자 한 조각을 덤으로 줘 우리 부부를 진심 놀래켰다. 저녁에 식당 안 2층에 들어가면 비싼 메뉴를 시켜야 할 것 같은 부담을 갖게 되는데 커다란 엘 토포 피자(15.5유로)를 시키고 생맥주 한 잔씩 더해도 괜찮다고 웨이터가 웃으며 말했다. 다만 화장실이 2층에 있어 노천에서 술을 마시던 이들이 들락거리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레온 Wok Hui Feng 구글 평점 3.8
한국인 순례객들이 오랜만에 배를 채우는 곳으로 알려진 폭식 명소다. 일인당 17유로를 받았는데 맥주나 음료 등을 주문해야 하므로 20유로가 된다. 육류와 해산물을 골라 셰프에 건네면 철판 위에서 굽거나 조리해준다. 국내에서도 비싸서 엄두를 못 내는 맛조개를 실컷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대하 새우도 마음껏 먹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 부부는 44유로를 내야 하는데 계산하는 직원이 신용카드로 결제하면서 54유로를 찍는 실수를 범했다. 당황해 하던 그가 계산기를 꺼내 열심히 두드렸다. 우리는 처음에 그 직원이 무슨 일을 하는가 궁금해 했는데 그는 한 번에 제대로 안 돼 계속 계산기를 두드렸다. 어이가 없었지만 우리는 꾹 참고 기다렸다, 54유로 결제한 것을 취소하고 다시 44유로를 계산한 뒤 신용카드를 돌려줬다. 우리는 식당이 있는 2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며 비로소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
레온 마마 테레 구글 평점 3.8
순례길 통틀어 가장 비싼 음식을 먹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문어 파예야인데 웨이터가 두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26유로만 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웨이터는 나중에 52유로를 내라고 했다. 물론 문어는 야들야들하고 맛이 빼어났다. 하지만 며칠 전 사먹었던 파에야보다 그리 많지 않은 양을 무려 세 배 가까이에 사먹은 셈이었다. 물론 주문하는 우리가 정확하게 확인하고 했어야 했지만 웨이터가 의도적으로 혼동을 유도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날 과소비를 하는 바람에 다음날 우리는 숙소 공용 주방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는 등 궁상을 떨어야 했다. 물론 그것도 추억 거리였다.
아스토르가 바르 라 페파(La Pepa) 구글 평점 4.7
고대 도시의 면모를 간직한 아스토르가는 아주 멋진 도시였다. 하필 제법 굵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우리는 옛스러운 멋을 간직한 이 도시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채 다음날 아침 이곳을 떠나면서야 하루이틀은 머물렀어야 했다고 가슴을 쳤다. 이 바르는 우리 숙소인 호텔 임프렌타 뮤지컬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오후 5시 30분부터 시에스타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객실에 여장을 풀고 샤워를 마친 뒤 부랴부랴 찾았는데 4시 30분쯤이었다. 한국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2시간 정도는 식사 시간이 필요해 손님으로 모시지 못하겠다고 했다. 점심을 건너 뛴 우리는 너무 배 고프다며 통사정을 했는데 남자 분이 안 된다고 했다. 허드렛일을 돕는 아주머니와 영어로 소통할 수 있어 얼마나 떨어진 곳에 가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돌아서는데 여주인이 그때서야 들어오라고 했다. 파스타 등을 시켜 서둘러 먹었다. 한국인은 한 시간이면 충분히 식사를 끝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사진에 보이는 것과 달리 음식 맛은 일품이었다. 일인당 15.5유로. 물론 굶주리고 많이 지쳐 있었던 덕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여러 손님들과 호스트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는 일도 정겨웠다. 나중에 순례길이나 스페인 북부를 돌아볼 기회가 있다면 아스토르가와 앞의 숙소, 이 레스토랑 모두 다시 찾을 것이다.
라바날 델 카미노 호텔 바르 레스토랑 라 포사다 데 가스파르 구글 평점 4.4
11월 중순에 들른 이곳의 숙박시설과 레스토랑 등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만 식사가 가능했다. 타블라는 이렇게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샐러드, 계란 등을 모두 한 데 올려 내놓는 음식을 말하는데 무엇보다 푸짐했다. 12유로를 받았다. 고기 질도 좋고 감자튀김 맛도 좋았다. 아스파라거스도 나중에야 캔으로 시판되는 것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일품이었다. 친절하고 정갈한 실내도 인상적이었다.
며칠 전부터 자주 만나 우리 부부가 일본인이라고 여긴 청년이 우리보다 30분 먼저 이 타블라를 먹고 있었다. 그는 늘 혼자서 꽤 값이 나가는 레스토랑에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우리는 그가 한국 청년이란 것을 알고 적이 놀랐다. 내가 아내에게 그 녀석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말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뒷날인가 앉아서 다리를 어루만지는 것을 보고 "많이 안 좋은가 봐요" 하고 말을 건넸더니 우리말로 "네 많이 힘드네요"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 식당에서는 우리 바로 옆자리라 눈인사라도 할 수 있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모른 척했을까 지금도 궁금하기만 하다.
폰페라다 바르 라 알퀴타라(La Alquitara) 구글 평점 4.4
금요일 밤 도심을 돌다 찾아낸 바르. 맥주만 시키면 안주를 가져다준다. 담배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현지인들이 오가며 정겹게 포옹하며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정겨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맥주만 시키면 감튀나 아이스크림을 가져다줬다. 스페인의 여느 바나 타파스 주점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바르는 특히 실내 장식이 독특하고 정감 있었으며 남자 웨이터 둘이 친절했다. 불금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 다시 이 멋진 도시를 찾는다면 이 가게에 가고 싶다.
폰페라다를 떠나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로 가는 길에 카카벨로스 마을에서 여행 중 처음으로 한국 라면을 사먹었다. 우리 말로 라면 김치 밥이라 표기한 것을 보고 들어갔다. 신라면 둘에 밥 하나 김치 하나를 주문해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주인 할아버지는 라면 끓인 경력이 상당한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손님들이 계속 말을 시켜 수다를 떠느라 그랬다) 수준급의 라면을 내왔다. 한국인들이 매운 것을 잘 먹고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지 아주 맵싸하게 끓이셨다. 김치는 스페인식으로 담갔는데 우리 배추가 아니라 한계는 있지만 우리 김치 맛을 그대로 살려내 신기하기만 했다. 아 그리고 바로 옆 가게가 빵과 쿠키 점인데 쿠키 10개 정도에 2유로인가 밖에 안돼 아주 쌌다. 비야프랑카 가는 길에 걸으며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호텔 베네치아의 아침 식사
아침에 짐을 싸서 식당에 내려갔더니 플라스틱 용기 위에 포스트잇으로 우리 방 표시가 돼 있었고, 순례길의 인삿말 '부엔 카미노'가 적혀 있었다. 빵을 아주 넉넉히 줘 배불리 먹고 남은 몇 개를 간식용으로 챙겼다. 냉장고를 여니 작은 용기에 또 방 번호가 적혀 있어 열어보니 햄과 치즈 등이었다. 뜨거운 커피도 준비된 것은 물론 냉장고 안의 주스와 우유를 컵에 따라 마실 수 있게 해줬다. 물론 숙소 비용에 포함된 것이긴 하지만 직원들 신경 안 쓰고 투숙객끼리 스몰 토크 나누며 든든히 속을 채울 수 있었다. 이 숙소에서는 아침 새소리가 장난 아니게 들려서도 좋았다.
라 라구나 바르 알베르게 라 에스쿠엘라 구글 평점 4.4
오 세브레이로 바로 앞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 레스토랑. 순례자 메뉴의 스타터로 우거지국과 닮은 갈리시아 수프 스타일 Caldo Gallego를 처음으로 맛봤다. 이 마을과 오 세브레이로 중간에 갈리시아 경계석이 있다. 지친 몸에 따듯한 국물이 들어가니 제대로 쉬는 느낌이 들었다. 여주인이 바로 옆 테이블에서 홈스쿨링을 하느라 공부하기 싫어하는 손자 녀석과 씨름하는 것이 신경 쓰이면서도 정겨웠다. 뒷마당이 널찍해 빨랫줄이 넉넉하며 대관령 목장 같은 목가적인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순례길에서 드물게 난방을 빵빵 틀어주는 것도 좋았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레스토란테 타라라 구글 평점 4.2
맛집들이 즐비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이틀 연속 찾아 점심을 정도로 맛있는 식당. 비좁아 정겨운 맛집이다. 위 사진은 스타터로 주문한 렌틸과 초리소 수프, 아기 오징어. 수프도 맛있고 보드랍기 그지 없는 아기 오징어도 맛있었다. 주인장과 아들 뻘 웨이터도 친절했고 살가운 서비스를 했다.
순례길을 11월 24일 마치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사흘을 쉰 뒤 스페인 비고와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을 관광했다.
비고 카페 바르 알카사르(Alcazar) 구글 평점 4.5
성탄 분위기로 벌써 들썩이던 비고는 항구 도시다. 도심에서 성채 쪽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가 800m나 깔려 있는데 그 길 끝 신호등 건너면 유난스럽게 웨이팅 줄이 서 있는 이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커피를 마셨는데 덤으로 나오는 토르띠야 맛이 일품이었다. 주인 내외가 아주 바지런했다. 칠판에 메뉴를 좍 적어놓았는데 메뉴 델 디아가 11유로인가 밖에 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싸지, 여긴 관광 도시인데 이렇게 싸다고? 의문이 떠올랐다. 성채를 둘러보고 숙소에서 잠깐 쉰 뒤 다시 찾아갔더니 웬걸 오후 1시를 한참 넘겼는데도 웨이팅 줄이 상당했다. 40분을 기다려 들어갔더니 그제야 흑인 주방장이 열심히 요리를 만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 내외가 참 마음을 다해 응대한다. 워낙 사람이 많아 음식을 먹는 데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나온 음식들은 기다릴 가치가 충분했다. 비고를 찾는 이들에게 강추한다.
포르투 Que-Bistro Vietnamita 구글 평점 4.8
구글 평점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가족 셋은 이틀 점심을 내리 이 집에서 해결했다. 국내 어느 베트남 쌀국수보다 맛있었다. 맛집이나 비싼 식당이 즐비한 포르투갈 식당 가운데 이 식당을 꼽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
리스본(Lisboa)은 특별히 세 맛집을 추천한다.
먼저 해산물 전문점 Bessa Restaurante 구글 평점 4.8
해물탕(찜?)과 대구 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위치가 좋아 다소 가격이 비쌌지만 음식 맛과 친절함으로 만족도를 높였다.
O Marques 구글 평점 4.5
숙소 옆은 공사 판이었다. 비수기에 리모델링이나 구조 변경, 보강을 열심히 하는 덕이었다. 공사판 옆 골목에 들어가니 맛집이 서너 군데 죽 늘어서 있었다. 그 끝집인데 값도 합리적이고 맛있었으며 친절했다. 사실 이 가게 옆 골목에 있는 식당 모두 맛있는 듯했다. 호텔로 즐비한 골목 바로 뒤라 그런지 투숙객들이 허름한 골목으로 몰려와 밤 9시쯤이 돼도 빈 자리가 없어 선 채로 웨이팅했다. 이 골목의 정겨운 풍경은 쉬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는 점은 흠결이다.
A Tigelinha 구글 평점 4.5
귀국한 날 마지막 점심을 조금 일찍 먹어야 해서 우리 가족은 검색 총력전을 했는데 내가 찍은 집이다. 그런데 숙소를 나와 구글 맵을 따라 가는데 험악한 골목을 지나 올라가야 했다. 그냥 다른 집 갈까 고민도 잠깐 했는데 조금 지나니 험악한 골목은 끝나고 가난한 배낭 여행자들이 들락거리는 골목이 가파르게 나왔다. 뭐 이런 고개를 다 올라가야 하는가 했는데 중턱에 이 집이 나왔다. 할배가 무척 무뚝뚝하다. 이른 시간이라 장사 준비가 안 돼 있었던 모양인데 30분 정도 지나자 몇 개 안되는 테이블이 모두 차버렸다. 세 사람 시킨 요리 아주 맛있었다. 시집 간 지 4년 됐지만 고맙게도 부모와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날아와 준 딸이 그랬다. "그동안 포르투와 리스본까지 하는 선택마다 나쁘더니 마지막에 홈런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