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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참 과 거 짓 의 역 사 . . . 정 용 석
汗民族의 역사는 왜 茫茫大海를 표류하는 난파선의 모양일까.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를 한민족의 역사라고 배우고 가르치는가.
또한 거대하고 찬란했던 汗民族의 歷史를 망설임없이 한반도 강역으로 국한시켜 역사논리를 펼칠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필자가 구려,백제,신라는 대륙 中原과 대륙 東方에 존재했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럼 한반도에는 어떤 나라가 존재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곤 했다.
歷史書에 입각한 나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한반도에는 또다른 인간시대는 존재했지만 분열과 의존, 식민지배의 역사시대인 구려, 백제, 신라, 後신라 라는 나라는 결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列島에 倭와 日本이라는 역사시대가 없었던 것과 같다.
구려, 백제, 신라, 왜, 일본이라는 나라는 모두 大陸 中原의 東方에 포진하고 있었던 民族들이다. 正史는 물론 野史의 기록 문헌들에도 분명하게 그렇게 쓰여있다.
그런데도 半島史觀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이 땅의 관변사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열도의 황국사학론자들과 사관을 같이하는 學脈과 人脈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汗民族의 역사가
왜곡 그 자체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혹 왜곡된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層層侍下의 보수의 계보 하에서는 그 사실을 밝힐 엄두도 낼 수가 없다. 이것이 지금의 汗國 역사학계의 현실이다.
汗해협 건너 열도의 皇國이라는 日本은 그들의 거창한 神話를 만들어놓고 있다. 그러나그들에게는 歷史가 없다.
그런데도 이 땅의 많은 관변사학자들은 지금도 日本 역사가들의 한반도 역사연구에 관한 각종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歷史는 단순히 지난 날 하챃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엮은 것만은 아니다.
歷史 속에는 역사를 創出시키고 발전시킨 그 民族 先祖들이 함께 호흡을 나눴던 史實들이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펼쳐져 있다.
사실과 사건에 대한 高見과 지혜가 가지런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배우고 가르치고 있는 汗民族의 歷史에는 그걸 정리할 뿌리가 없다.
마구잡이로 각색, 윤색해놓아 역사서의 原典과 다르게 한민족의 역사가 해석되고 풀이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역사의 주체민족으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하는 것이다.
역사연구의 목적은 무엇인가. 과거 선조들의 行蹟을 찾아가는 행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실들과 숨결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현재 어느 역사가든지 도서관과 서가에 꽂힌 역사서를 뒤적이며 갖가지 기록들 사이에 펼쳐진 과거 흔적을 더듬어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汗민족의 역사연구와 서술은 歷史書 원전에 기록된 그 자체를 외면하고 열도인들이 왜곡시킨 그대로 연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광활한 大陸에 존재했던 화려한 汗民族의 歷史 무대를 半島라는 협소한 강역으로 국한시키는 역사해석을 계속 행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가슴아픈 현실이다.
어느 역사서 원전에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삼한, 구려, 백제, 신라, 後구려 가 한반도에 존재했다고 기록돼 있는가.
같은 文章의 기록을 놓고서 한반도의 관변사학자들처럼 汗민족의 疆域을 한반도 중심으로 한정하여 歷史 설명을 하는 것을 필자로서는 진정 이해할 수 없다.
歷 史 를 바 로 세 우 고 자 하 는 큰 흐 름 앞 에 이 렇 게 말 하 고 싶 다 .
"汗민족의 역사서라고 하여 正史, 野史로 인정, 채택되고 있는 원전들의 기록들을 믿는다면
汗民族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대륙의 中原과 東方의 주인이었다."
태 백 일 사 의 저 자 . . . 이맥 선생의 시
遼西엔 아직도 옛 성터가 있다네 . 회고컨대 나라는 빛났고 왕조는 길었네 .
연나라 험한 산 싸움도 많았고 , 遼河는 도도히 하늘빛으로 흘러라 .
바람숲은 빈 골짜기에 흔들리는데 , 학은 높은 가지에서 울며 단장한다네 .
군기와 장수는 하룻밤에 변해도 , 장사꾼 방울 소리 요란키도 하여라 .
연 (燕:하북성) 도, 량 (凉:섬서성) 도 본디는 우리 땅이었나니
高 句 麗 (위대한 구려) 군사 진치고 말먹이던 곳이었지 .
영 웅 은 나지않고 세 월 만 흘러가니 , 다시는 양떼처럼 적을 몰지 못하고
이 제 와 서 끝 없 이 옛 일 을 슬 퍼 하 며
핵 랑 의 만 리 붕 정 이 별 노 래 부 르 네 .
최 치 원 의 " 상 태 사 시 중 장 "
高 麗 와 百 濟 는 전 성 기 때 강 병 100 만 으 로
남 으 로 는 오 (吳:양자강) . 월 (越:절강성) 을 침 략 하 고
북 으 로 는 유 (幽:북경) . 연 (燕:산서성) . 제 (齊:산동성) . 노 (魯:하남성) 등 을 흔 들 어
중 부 국 가 의 頭 痛 (두통) 거 리 가 되 었 다 .
태 백 일 사 高 句 麗 國 본 기
"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애들아 요동을 향하지 마라 개죽음을 부른다
문무(文武) 고루 갖춘 우리 선조 '환웅' 이라 불렀으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도 많단다
주몽, 태조(태조대왕), 廣開土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 나위 없고
유유, 일인, 양만춘님 나라 위해 스스로 몸 바꿔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유철(한무제), 양광(수양제), 이세민(당태종)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영락기공비(광개토 대제의 비)는 1천 척 만 가지 깃발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 "
아 ! 高 句 麗 . . . 허 성 정
파미르고원의 '마고성' 과 '복본사상' 을 아는가 ?
환국의 '오훈' 과 배달국의 '오사' 를 아는가 ?
구려와 발해의 '다물사상' 을 알고 있는가 ?
환국 7세 3301년, 배달국 18세 1565년, 단군조선 47세 2096년을 아는가 ?
당나라 '장안'을 점령하고 高麗(구려)가 중국을 석권한 사실을 아는가 ?
신라의 '경주'와 '토함산'이 대륙의 안휘성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
하북성 '석문'에서 신라가 당나라와 8년 전쟁을 치른 사실을 아는가 ?
하남성 '숭산'에서 백제 개로왕이 '국토개발'을 행한 사실을 아는가 ?
대륙의 '사천성' 전투에서 백제 책계왕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
산동성 일대에 백제 패망지명이 20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
중세의 르네상스 운동은 잠들어 있던 유럽의 영혼을 흔들어 깨웠도다 !
이스라엘의 역사 재해석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를 낳아 그리스 로마의 헬레니즘 세계를 유태인들의 '헤브라이즘' 세계로 바꾸어 놓았도다 !
汗國史의 진실을 밝힐 '위대한' 문서가 발견되었도다 !
조작된 동양사를 교정해 줄 증거문서가 발견되었도다 !
"환 단 고 기" 는 민족의 DNA를 바꾸어 놓을 기념비적인 역사서이도다 !
'삼국사기' '구려사' 는 고구려 침략을 방어해 줄 위대한 역사서이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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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선비들에게 만주의 '봉황성'이 평양이었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더구나 만주의 '요동 땅' 에도 평양이 있었다고 하면 해괴망측한 소리라고 꾸짖을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영토의 경계를 밝힐 생각을 하지 않아 조선의 영토는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 . .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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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화유산 " 환 단 고 기 " 는 민족의 正史로 지정되어야 한다 !
삼국사기, 高麗史가 전하는 우리의 대륙역사를 바로 가르쳐야 한다 !
중화주의 마약교과서와 식민주의 노예교과서는 폐기되어야 한다 !
겨레여 일어나라 ! 들불처럼 일어나라 ! 1천 년의 함성으로 일어나라 !
8,000 만 겨레여 깨어나라 ! 반도에서 대륙까지 ! 대륙에서 환국까지 !
* * 몽골과 거란 만주는 구려의 후예이다 * * http://cafe.daum.net/koreanandjapanese '한일 양 국민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하여!' '한일(韓日) 토론의 데이터 베이스'
高麗史열전 유검필 조에는 려진을 정벌하러 갔던 윤관장군이 "려진은 본래 구려의 후손이다."라고 말한 기사가 있고, 금사본기 권일에 금태조 완안아골타가 금나라를 일으키려 할때 발해인들은 "발해와 려진은 본래 하나의 겨레이다.(발해려진본동일가.)"라고 말했으며 '발해인'이라는 이름은 요,금,원,청을 거치면서 명예로운 이름으로써 존중되었다. 요나라와 금나라가 교체할때 발해인 곽약사의 내용과 청나라시기를 거쳐내려오면서 발해가 망한지 1000년이 다되어가는 20세기인 1920년대 만주족으로 취급받는 진균이 스스로 '발해국 솔빈부 출신'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면서 발해인임을 자부심으로 여기는것을 보면 분명히 려진은 발해인이다. 또한 高麗시대 거란이 침입하여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우리 나라는 본래 고구려의 후손이며 구려의 정통을 이어받았으니 너희 高麗(구려)의 땅은 모두 우리것"이라며 땅을 내놓으라고 하자 고려의 사신 서희가 "우리나라 역시 高 句 麗(위대한 구려)를 이어받아 국호를 高麗(구려)라 하였고 수도를 평양에 두었다." 라고 하자 소손녕이 연회를 베풀며 서희를 극진히 대우하고 요태종 야율덕광이 강동6주를 고려에 넘겨줬다고 나와있다. 만일 거란이 진정 다른민족이어서 고구려의 후손이 아니라면 구려의 후예라고 칭하지 않을뿐더러 땅욕심이 있어 구려의 후예라고 칭하며 공격한다면 서희가 아무리 高麗가 고구려 후예이라고 주장해봤자 억지를 써가며 공격했을것이다. 아울러,발해를 일으킨 대조영은 만주의 전신인 여진족의 걸사비우와 거란족 장군인 이진충과 함께 발해를 일으켰다. 몽골역시 쿠빌라이가 아래와 같이 "高麗는 만리 바깥에 있는 나라이다. 일찍이 당나라 태종이 몸소 공격하였어도 항복받지 못하였다. 지금 그 나라의 세자가 나에게 돌아 왔으니 하늘의 뜻일진저" 이러한 말을 하며 구려의 사신들과 왕을 반겼으며 비록 高麗를 공격하였으나 서방지역이나 이슬람국가에서 처럼 도시를 파괴하고 도시를 약탈하며 내부의 주민들을 모조리 몰살시키거나 하는 야만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몽골군대는 자신들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모조리 몰살시키는 전술을 사용하여 서방의 이슬람권을 정복하고 러시아를 정복했던것이었다.유럽의 폴란드에서는 아직도 그때의 공포심을 잊지 않기 위해 몽골의 침입이후 군인들이 모여 미사를 드리고 있으며 체코에서는 종탑에서 종을 쳐서 경고를 했다(그당시 그 체코인은 침입을 알리다가 몽골군의 활에 맞아 숨짐) 하여 그것이 관습이 되어 요즘도 종탑에서 현직 군인이 나팔을 불며 종을 친다. ) 누르하치의 만주족은 임진왜란당시 전략적인 의도도 있었겠지만 스스로 원군을 파병한다고 조선에 요청하였으나 '오랑캐의 군사는 필요없다'는 李朝 조정의 거부에 원군을 파병하지 않았으며, 강홍립군대가 明나라를 도우러 출병했을당시 출병한 군인중 한 사람의 딸이 길을 잃고 누르하치에게 투항하려하는 부족의 족장에게 구출되어 결혼하고 누르하치로의 귀부를 위해 누르하치를 방문했을때 누르하치는 '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우리는 형제'라고 말했다. 또한 만주군의 정예병력인 팔기군에는 한족중화인으로 구성된 군대도 있었지만 高麗人으로 구성된 팔기군도 있었다. 청태종역시 북경을 점령한 황제인데 병자시의 전쟁에서 李朝를 충분히 멸망시킬수도 있었다. 하지만 멸망시키지 않고 단순히 삼전도비를 세우고 인종의 삼배고두를 받은이유는 그들 역시 동족임을 인지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에 있어서도 97년 당시 한국의 우랄,알타이어계통의 언어를 연구하는 알타이학회의 탐사단이 만주족의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만주족 마을에 갔을때 만주족노인은 휴대폰을 통해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中共의 당관계자의 허락을 받아야했으며 또 거절당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中共이 왜 만주어와 汗國語의 연관관계 연구를 방해하거나 가로막을까?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소련의 압력으로 支那의 압박에서 벗어난 1930년대 몽골에서는 역사학자들에 의해 대대적인 탐사활동과 논문편찬이 펼쳐졌는데.. 그 내용은 거의 다수가 몽골이 구려의 후손임을 입증하는 내용의 고고학적인 탐사와 논문편찬이었다. 또한 현재 몽골에는 高麗 성터와 고분군이 발견되고 있으며 동몽골의 탐사단이 솔롱고스(汗國)에서 왔다고 하니까 놀라면서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우리가 다물을 통해 잃어버린 땅을 회복한다면 잃어버린 역사도 수많은 유물과 올바른 증거를 통해 밝혀질것이고 모든 역사를 되찾게 될것임이 분명하다. 다만 지금 중공과 일본,러시아,미국학계에 얽매여있는 한국역사및 고고학계는 그것을 밝힐수없다. 中共이라는 나라는 "구려"의 유적을 댐공사를 통해 수장시켜버리고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유적만 남겨두고 관람시켜놓고 있으며 그나마 조작인 경우가 다수고, 高麗를 중국 북방 흑룡강성의 말갈족의 지방정권 따위로 생각하고 있으며, 러시아역시 전혀 다를바가 없는 입장이다. 日本은 中共의 입장을 지지하며 美國역시 중공,일본,러시아의 견해에 동조하고있다. 아울러 당나라와 연합하여 동족으로써 잘 지내고자하는 구려와 백제를 무너트린 신라는 그 비석에서 구려와 발해를 폄하하여 '말갈'로 표현하고 있는것이 많은 유물을 통해 증명되고 있으며 당나라의 유적에서도 高麗,발해를 '말갈'로 표현하고 있는것이 많다. 즉 말갈은 구려이며 발해이고 구려와 발해의 후예는 요,금,원,청인것이다. 구려,발해의 영토역시 현재교과서에 실려있는 영토가 전부라고는 생각할수가 없다. 널리봐야한다. 단순히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닌 진정한 민족의 단합을 위해. 대 구려와 발해앞에서 유적을 날조하며 동족을 착취하는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이 내걸은 한반도기 ? 따위를 흔들며 북한의 '평양(고구려의 평양이 아님)'에 있는 단군릉을 곧이곧대로 신뢰할 때가 아닌것이다. 그것은 민족에 대한 모독이자 배신이며 조상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의 평양은 결코 그런곳에 있지 않으며 우리의 강역은 결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따위가 아니다. 우리의 국민과 동족은 결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며 우리의 역사 역시 교과서에 쓰여진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럼... P.S. 발해의 국명인 辰과 여진인들이 세운 金은 漢語로 읽으면 "진"으로 같은 발음을 낸다.
우리나라 歷史학자들의 7할 정도가 친일 사학자들의 제자들 또는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라고 보면 거의 정확하게 보는 것이다. 이들이 國史교과서를 만드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친일 사학자들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하기 위해 外國유학을 몇 년씩 다녀오면서 경력세탁을 하고, 마치 새로운 사람인 양 행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의 경우 자세히 살펴보면 답은 한 가지로 통일된다. 이들의 이론은 親日 식민사관을 그냥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며 더 이상 발전된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이병도나 신석호의 이론을 넘어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더 깊이 공부하여 새로운 학설을 내놓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 총독부가 만든 李朝鮮史 편수회의 총무나 감수관 일을 보던 사람들이 다른 시각으로 눈을 돌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것이 현 북한의 평양이 한사군 때의 낙랑이라는 것이다.
[ 식 민 사 관 이 교 과 서 망 쳐 ]
중국의 모든 문헌들이 그렇게 많이 증명해 놓았는데도, 보지 못하고, 또 보지도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서 식민사관 역사인 평양(낙랑)이라고 우겨대니 이러한 일련의 사고방식과 역사 연구방식이, 구려를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으로 만들어 교과서에서 교육을 하고 있으니 中共이 동북공정에 넣어서 高麗는 支那의 동이족인 우리 민족의 조상인 염제 신농씨나 구려족(뒤에 고구려가 됨)의 황제였던 치우천황도 우리는 조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다 보니 중공은, 그렇다면 하고 그동안 支那의 각 왕조마다 역사왜곡을 해왔지만 특히 명나라 때는 그 이전의 역사를 너무 많이 왜곡 날조하다 보니, 뜻있는 학자들은 明이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지금은 明때의 기록이 어떠했는지를 도리어 참고하고 있으니, 역사란 기록이기 때문에 한 번 잘못 쓰여진 역사라 하더라도 후대에 가면 중요한 기록으로 남게 되며 후세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동안 배워왔던 國史라는 것이 얼마나 엉터리이며 거짓말투성이인지 우리는 모르고 지내왔다. 신라가 백제나 구려보다 역사가 훨씬 긴 나라인 것처럼 만들었다는 것이 첫 번째 잘못이요 그것을 한 번도 더욱더 깊이 연구해 보지 않고 그냥 베껴 쓰듯이 하며 몇 십 년을 허송세월로 지내온 것이 두 번째 잘못이며, 민족사학자들의 심혈을 기울인 논문들을 연구 검토해 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휴지 넣듯이 버린 것이 세 번째 잘못인 것이다. 일본은 자기네들 역사를 날조하고 엉터리로 만들다 보니 상고사가 흐리멍덩하게 되어 있으나 자랑스러운 조상이 있었다는 것 하나와 선배들의 정신을 받들 줄 아는 장점이라도 있으니 국민들이 자부심을 얼마간 가질 수 있고 중공사람들은 모든 주변 민족의 역사와 문화까지 스펀지 마냥 빨아들여서 자기네들 것으로 만들고 있으니 그 많은 인구들이 단결이라도 잘되고 있는 것이다. 전체 몽골과 화북성 일대와 더 (지금 제주도 사투리와 강원도 사투리가 서로 사투리로만 말하면 통하지 않아도 한민족이듯이). 고구려는 본래 치우 천황 때부터 구려족 또는 구리족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부여가 합쳐지면서 구려의 옛 영화를 다시 찾는 다물정신으로, 더욱더 강하고 한때 한나라의 왕망은 고구려를 하구려로 비하시킨 때도 있었을 정도로 구려의 역사는 부여를 이어받은 오랜 역사를 가진 강력한 나라였으며 동양 전체뿐만 아니라 전세계 최고의 강력한 나라였다. 이러한 크고 강력한 나라였기 때문에 수나라나 당나라가 요동과 안시성만을 상대로 수나라가 살수대전 싸움을 걸어올 때만 해도 구려에서는 수나라에 미리 경고를 했었다. “싸움을 걸어오면 전멸할 것”이라고. 도원수 강이식 장군과 부원수 을지문덕 장군의 작전에 말려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여 열에 아홉이 죽었는데, 수나라는 이것을 표현하기를 나쁜 기후로 인하여 군사들이 죽었다며 전쟁에 패한 사실을 숨기고 그 당시의 적장 도원수 강이식의 이름을 빼버리는 등 춘추필법을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 동 이 족 후 예 자 랑 스 러 워 ] 이렇듯 支那사람들은 이웃을 표현할 때 야만적인 주변국으로 표기하였으며 자기네들은 항상 중심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支那 한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75년에서 3백 년 이상 오래 가는 나라가 없었고,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들을 보면 통상 2천 년, 1천 년, 5백 년씩 그 역사가 오래 유지되었음을 볼 때 우리 민족이 훨씬 문화민족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지금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우리 민족의 독창적인 문자로서 세계사에 빛나고 있는 것과 같이 日本말의 뿌리가 전부 우리말이라는 것과 中共말인 漢字(옥편에 보면 가을에 해당하는 입성 발음인 ㄱ, ㄹ, ㅁ, ㅂ 받침이 있는 한자가 약 30% 정도 되는데 이것은 支那族이 발음을 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강 동 민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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