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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음출판(미디어)book 원문보기 글쓴이: 관리자
일붕 서경보 큰 스님 <1914년 5월 9일 제주 출생. 1996년 5월 10일 열반 >
일붕 서경보 대선사
해외포교의 선구자. 최고의 선사 최고의 학자. 희대의 인물. 자비사상 평화사상. 보살승. 인자하시고 몸을 낮추시고. 한국불교 최초의 세계포교사. 세계불교 초대법왕.
다비식 할 적에 경남 경찰서에서 일개 중대가 여기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그 다음에는 경찰청장까지 여기 나와서 상황실을 했고 외국 기자단이 또 한 300명 오셔가지고 복지회관 저기에다 본부를 두고 했는데 다비식 날 한 4만 명이 운집했는데 너무 많이 사람들이 모여서 교통이 통제가 안 돼 가지고 굉장히 수고를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혜운스님>
NGO에 소속된 사람입니다만 거기 가서도 늘 그걸 떠들고 있어. 세계평화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에 옮겨라. 불교의 불상생주의를 전세계 인류가 인식이 잘 되면 된다.
원래 서경보 스님은 5개국 말로 하십니다. 인도 가면 인도 말로 해주고 일본 가면 일본 말로 해주고 설법은 그분이 그렇게 해주시니까 미국 가면 미국 말로 설법을 해주시니까 <붕해스님>
책은 노상 가지고 다니시는 거예요. 가방째 들고 다니시는 거예요. 가령 침소에서 주무실 때 들어가 보면 노상 책을 보시는 분이죠. 어디 외국에 나가서도 마찬가지고.
일붕 선교종의 종지는 재단을 그야말로 누구든지 각 사찰이 들어올 수 있는 과정을 만드는 거고 그 다음 내 자신이 그야말로 누구든지 어느 사찰이든지 올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주는 것이 종지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느 종단이냐 차별 안 하시고…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 자국민보다 스님을 대단히 존경하고 미8군이 외국에 주둔한 이래 아무라도 명예 사령관을 추대하지 않았는데 큰 스님을 명예 사령관으로 추대했다든가 또 일본사람이 일본 천태종이 관록 있습니다만 천태종의 최고 본산주지 다이겐이란 분이 스님한테 와서 삼장법사 학위를 받아가지고 그러니 외국의 불교나 외국인들이 스님을 우리보다 대단히 추앙하고 인정하고… <도기스님>
전통불교는 분명히 지켜가면서 그러니까 모든 불교의 방향은 다 필요로 했지요. 전통불교만 세워가지고는 현대 생활불교가 어렵고 구석구석 모든 사람이 적응해 가지고 다 믿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려면 그만큼 성직자가 필요하고 성직자가 필요할 때는 대처승도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스님들이 법사들이 많아야 곳곳이 다 포교가 돼 할 수 있다.
스님이 미국 갔을 때 영어로 모든 교계와 대화했고 또 태국이라든지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어로 말을 다했고 중국에 갔을 때는 중국어로 모두 답변을 해가면서 세계 다니면서 불교교화를 시켜가지고 <동봉스님>
태국 가면 태국 말씀도 곧잘 하시고 스리랑카 가면 스리랑카 말도 곧잘 하시고 영어도 곧잘 하시고 이렇게 하시니까 우리는 감히 그렇게 생각을 못해 각국마다 가서 거기 말을 아주 능통하게 통역은 안 되지만 거의 다 하십니다 <지산스님>
그 당시 그 연배에 5개 국어를 능통하신 그 바탕에서 포교를 하셨기 때문에 그 어떤 큰 스님보다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런 탁월한 포교를 이 시대에 하시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되고 또 90년도에는 WFB 세계대회를 한국에 유치하셔서 세계불교지도자들에게 한국의 불교 한국의 선불교 한국의 장엄한 사찰의 모습 이런 것을 다시 한 번 인식시켜서 우리나라 불교와 위상을 세계만방에 심은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의현스님>
한 번은 어느 세계대회 갔다 오다가 비행기 연결이 잘못돼서 홍콩에서 쉬게 되었는데 그 없는 나라 대표자들에게 전부 보시하시고 자신은 숙박비가 없으시더라 구요.
이곳은 서경보 큰 스님께서 석굴암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오실 때마다 참선을 하시고 또 상좌들한테 수행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법문도 많이 해주시던 곳입니다 <연종스님>
도량석 하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법당에 앉으셔서 2시간 정도씩 참선하시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또 절에 있는 게 아니라 딴 데 외국을 가도 마찬가지고 <지산스님>
첫째 중은 마음의 부처를 보려면 항상 마음이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부탁을 하고 그 분을 한 10년 동안 모신 걸 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예불에 참여하시고…
첫째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서 출가한 마음을 열반까지 잘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법을 다스리기 위해서 만중생이 찾아왔을 때는 내 전생의 부모형제가 찾아온다고 하는 그 마음을 가지라고 했고 세 번째는 많은 불자들이 갖다 놓은 시주돈이라도 전세계를 다니든 대한민국이든 꽃밭을 하나 만들던지 쓰레기통이라도 하나 만들어놓고 열반에 들면 부처님 일을 다한 것과 똑같다는 그 3가지를…<동봉스님>
평상시 생각했던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보통 학구열이 강한 것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한두 가지 자기 학문이 끝나면 그걸로 만족하는데 이분은 학문이 문제가 아니고 불교를 전세계적으로 펴야 되겠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거든 <활안스님>
오직 불심이요. 딴 생각 없습니다. 자기 생각보다는 어떻게 해서 불교를 바로 이해시켜서 세계평화를 만들까? 내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다른 종단 스님들이 오해를 할지 알 수 없지만 그분 생각은 종단분규 때문에 불교가 잘 안 된다 이렇게 본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초종파 범불교적인 운동을 하기 위해서 하나를 만들어야 되겠다. 그것이 일붕 선종회인데 사실은 여러 개의 종파가 있는 가운데서 하나를 만들어버리니까 종파만 하나가 더 생겨버리고 만 거예요.
아 축사하시다가 탁 내려 앉으신다 말이에요.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냥 주저앉으셨어. 나중에 검사해 보니까 과로로 인해 간염이 됐는데 다 삭어 있는데도 모르고 산 거요. 벌써 몇 년 전부터 그렇게 돼 있는데. 그러니까 신심과 원력으로 생을 살았다 이렇게 봐요.
박사학위는 처음 콜롬비아 대학 교환교수로 초청을 받고 각 대학에서 6개월 동안 선강의를 하다 끝에 가서 필라델피아 주에 템플대학이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 대학에서 종교학교수로 동양관계 종교를 강의해 달라 그러니까 교양과목이죠 그리고 미국만 해도 논문을 내야 합니다. 논문을 직접 내서 따야 하거든 교수하면서 동시에 내가 강의를 받으면서 논문을 제출해 가지고 처음으로 받은 것이 그 철학박사입니다. 조당집을 통한 한국선불교 연구라는 제목으로 그때만 해도 한국승려가 미국에 건너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한국불교는 전연 제로였어요.
러시아 국립 티베르 대학
한국 최초로 승려가 불교철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그러니까 당대 승려로서는 가장 그 덕망과 학식을 갖춘 스님으로 대표되는 그런 분이었죠 <의륜스님>
국가의 분단된 아픔을 생각하시다가 여러 민족들의 그 혼을 담아 전국유명 각지에 통일기원을 발원하는 그런 비를 세우면 국민들 모두가 다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국민들이 통일을 염원할 적에 곧 우리나라의 통일이 빨리 앞당겨질 수 있다. 아마 그런 확고한 정신으로 통일기원비를 세운 것 같습니다.
늘상 새벽 4시만 되면 당신 방문을 개방하십니다. 언제든지 새벽 4시만 되면 큰 스님을 찾아 뵐 수 있고 또 의심스러운 것을 물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고 또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뭐 10시 밤 10시를 한하고 많은 대중들과 대화를 하고 그 대화를 하고 나오는 분들을 보면 언제나 명쾌한 답을 얻어 만족감을 표시하고 돌아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서경보 큰 스님을 옆에서 볼 적에는 그야말로 대단한 수행자이면서 대단한 포교사였고 수행자이면서 학자이고 포교사였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죠 <종우스님>
한국불교를 알리기 위해서가 첫째인데 그 양반은 꼭 법어하시라 하면 꼭 시국에 대한 말씀을 하셨거든요. 이 양반 법어가 그러니까 스리랑카라면 스리랑카와 한국과의 관계는 불교와 불교문화로 인한 하나 이런 말씀에서 세계는 불교도들의 힘으로 전쟁이 없어지게 해야 된다. 그건 하나 되면 전쟁이 없어진다는 거지요 <무찰스님>
언제든지 제일 앞에 있는 일이 뭔지부터 확인하고 처리하라. 손님으로 가도 나는 손님이다 하고 앉아있지 말고 손님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라. 확인했거든 직접 처리하라. 이런 거를 하나 안 빼놓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17차 세계 불교도 대회 – 1990년 10월 22일
전 세계에 대표적으로 16개국의 상임위원회가 있어요. 그 상임위원회에서 인도가 역시 부처님의 탄생지니까 인도에서 그 해 6월 달에 세계법왕으로 공식 서경보 스님을 만장일치로 추천했지요. 그래서 스리랑카에 가서 세계 전체가 모여서 대관식을 했어요. 대관식은 취임식인데 사회적으로 그쪽에도 공식이지요 <도기스님>
신도가 있어야 불교가 커지는 거다. 그러니까 항상 누구든지 오면 관세음보살처럼 대하고 그 사람을 항상 부처님 대하듯이 해서 포교를 많이 하면 앞으로 우리의 불교가 발전되지 않겠는가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거든요 <청운스님>
보살이든 모든 분들이 걸림 없이 오시면 존댓말을 하시면서 또 반말하는 것을 절대 못 봤거든요. 그리고 또 스님이 아이들도 또닥거려 주고 법문을 하나라도 더 하시려고 하는 게 귀감이 되었구요.
국내 및 세계 유명대학에서 126개 박사학위 취득
그 당시 모 기독교대학 총장께서 110개를 받으신 기록이 기네스북에 오르신 것을 보고 나는 이 분보다 더 능가해야겠다 이 분을 제쳐야겠다 아주 큰 스님께서는 집념이 아주 강하십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성질이에요. 때문에 뭐든지 일등을 해야 되요. 때문에 큰 스님께서 각국 대학교에서 초청하면 강연하고 그 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고 하다 보니까 126개의 박사학위를 받으셔 가지고 아마 세계최다기록이 보유된 것 같습니다 <서병렬 - 일붕신문사>
심지어 남산 도서관에 가면 그 당시 일붕 큰 스님의 책을 보관하는 방이 따로 있었어요. 남산 도서관에 그 정도로 큰 스님께서 많은 책을 저술해 가지고 국내외적으로 불교포교에 많은 기여를 했지요.
큰 스님께서는 많은 휘호를 쓰셨습니다. 특히 일붕선원에 주석할 때 많이 쓰셨는데 예를 들어 지방행사에 가면 그 지역의 주지스님께서 휘호를 부탁하면 호텔에서도 바로 그냥 지필묵을 비서가 가지고 다니다 호텔방에서도 바로 그냥 휘호를 쓰시죠.
불교사상 교양전집을 비롯 1,040종류 저서 발행
그 분이 저서를 많이 냈는데 체계화돼 있어요. 그 저서가 중고등학교 대학 교육을 가르치듯이 불교방식의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방식으로 불교를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정치권 내 속한 학교들 하고는 별개로 종교에 치중한 열정적인 학문저서가 많아요 <경우스님>
언제 봐도 그런 스님은 역사적으로 나기 어려워요. 스님에 대한 찬양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누구보다 부지런해서 그 많은 저서와 많은 기념비와 그 많은 역할을 할 때는 학위를 받고 그런 역할을 할 때는 그만큼 강경한 육체적인 뒷받침과 정신력이 앞장섬이 있었기에 성공을 이끈 것입니다. 희대의 인물이죠. 불보살의 화현이라고까지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불교포교를 위해 50만장의 휘호를 씀.
일체 모두 마음으로부터 창조된다.
자식이 효도하면 어버이는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느니라.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기는 쉬워도 입으로써 사람을 가르치기는 어려우니라.
큰 부자는 하늘에서 연유하고 작은 부자는 부지런한 데 연유하느니라.
최남단 마라도에서 최북단 통일 전망대까지 800여 개의 남북평화통일기원비 건립.
세계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 스님 특집 중에서
[출처] 79.일붕 서경보 스님|작성자 Inkfly

첫댓글 일붕서경보큰스님의 위대한 업적과 행적은 이루 말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할 수 있지요. 그 가치가 이 시대에 높이 평가받지 못함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