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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는 유방 확대, 브라질은 유방 축소
2016년 8월 국제미용성형협회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를 통틀어 성형수술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미국, 브라질, 한국 순이라고 한다. 2015년 한 해에만도 전 세계 여성들은 1,800만 건 이상의 성형수술을 받았다. 부위별로는 유방 확대, 지방 흡입, 눈꺼풀, 복부, 코 순으로 밝혀졌다.
물론 이것은 목욕탕이나 피부 관리실 등에서 이루어지는 속칭 ‘야매’라 불리는 자잘한 시술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일 것이다. 그런데 유방 확대가 1위라니, 좀 놀라운 일이다. 성형수술의 역사로 보자면 단연 코가 중요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서양 역사에서 코의 생김새가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사람의 이목구비 그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특별히 ‘코’는 박해나 타자화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성형수술의 역사는 코를 복원하는 수술에서부터 출발했다.
15세기 말부터 유럽에 매독이 유행하면서 코를 잃어버린 사람이 많아졌다. 코뼈에 매독균이 감염되어 연골조직이 붕괴되면서 망가진 코는 성병과 관련되어 도덕적 타락의 표지로 여겨졌다. 그 때문에 코를 복원하는 수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이마의 피부를 절개해서 그대로 뒤집어 코 위에 덧씌우는 등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매우 끔찍한 방법들이 사용되었는데, 사실상 이런 수술은 초창기 미용성형이었던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 역사에서는 오랫동안 성형수술을 곧 코 수술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후 제국주의와 더불어 나타난 인종주의의 영향 속에서 유럽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른 코 모양, 특히 납작한 코에 부정적 함의를 투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18세기 이후 인종 담론에는 작은 코가 열등한 인종을 나타내는 표시라는 주장이 많이 나타났다, 네덜란드 해부학자 페트루스 캄페르(Petrus Camper, 1722~1789)가 안면각(顔面角)과 비지수(鼻指數; nasal index)를 발명하면서 그런 편견에 ‘과학적’ 토대를 제공하게 되었다.
비지수는 이마에서 코를 거쳐 윗입술을 연결하는 선이었고, 이것의 반영인 안면각은 비지수와 턱에서 그은 수평선을 교차시킴으로써 결정되었다. 캄페르는 아름다운 인간의 얼굴은 유럽인의 얼굴처럼 얼굴선이 수평면과 100도를 이룬다고 주장하며 아프리카인들을 유인원과 가장 근접한 인상을 지닌 추한 존재로 규정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도 얼굴이 과학적으로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표시한다고 주장했다. 서구인들에게 얼굴은 주로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대상이지만 야만인에게는 주로 “베어냄”의 대상이라고 비아냥거리며 말이다. 지독하게 인종차별적인 이 발언은 이목구비 가운데 코를 가장 주목한 것이었다.
네덜란드의 해부학자 페트루스 캄페르가 1871년에 발표한 논문에 실린 안면각과 비지수 측정 도해. 꼬리 원숭이, 오랑우탄, 흑인, 칼미크인 등을 통해 진화에 따른 안면각의 차이(위)와 함께 유럽인의 얼굴 특징(아래)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Bibliothèque interuniversitaire de médecine>
흥미롭게도 19세기 유럽 사람들은 유대인이 유럽인보다 아프리카인에 가깝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유대인은 흑인과 피가 섞여 있거나 혹은 최소한 인종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 보편적 가설이었다. 그런데 물욕과 큰 관계가 없는 흑인과 달리 유대인은 재물 욕심이 많은 탐욕스런 집단으로 여겨졌고, 유대인의 긴 코 혹은 매부리코(hawk-nose)는 악덕의 표상이 되었다.
아래로 굽은 코는 결코 진실하거나, 진정으로 쾌활하거나, 고상하거나, 위대하지 않다. 그들[유대인들]의 생각과 경향은 항상 땅을 향해 있다. 폐쇄적이고, 차갑고, 냉혹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때때로 악의적으로 냉소적이고, 성질이 나쁘며, 혹은 극도로 위선적이거나 혹은 우울하다. 코의 윗부분이 휜 경우는 소심하고 주색에 잘 빠지는 경향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의 코에 대한 편견은 근대 성형수술의 발달에 큰 촉발점이 되었다. 베를린의 외과의사 요한 프리드리히 디펜바흐(Johann Friedrich Dieffenbach, 1792~1847)는 아직 마취나 방부소독이 이루어지기 전인 1840년에 유대인을 대상으로 코 성형시술을 감행했다. 디펜바흐가 특화했던 피부 이식과 성형수술 방식은 혁신적이라고 불렸으나 실제로는 매우 야만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유명한 의사에게 몰려들었다. 디펜바흐는 재건성형 수술과 미용성형을 구분한 최초의 의사로 의학사에 이름을 남기며 ‘성형외과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는데, 흥미롭게도 정작 자신은 미용성형 수술을 경멸적인 시각으로 보았다. 의료적 기능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19세기 말 독일에서 활동했던 뛰어난 의학자 요제프 야다손(Josef Jadassohn, 1863~1936)은 자신이 유대인이었던 탓인지 미용성형에 대해 훨씬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본래 피부학자이자 매독학자였던 야다손은 베를린에 외과병원을 연 뒤 주로 코와 귀의 축소 수술을 시행한다. 귀를 수술한 이유는 당시 유대인의 귀에 대한 편견도 심각했기 때문이다. 살집이 두둑한 귓불과 크고 불그스레한 귀는 ‘돌출귀’라는 별명을 얻었는가 하면, 오스트리아에서는 그런 귀를 ‘모리츠(당시 가장 흔한 유대인 이름) 귀’라고 부르기도 했다.
1898년 야다손은 자신이 시행한 수많은 수술 경험에 근거하여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왜 성형수술을 받는지 그 이유와 효과를 베를린 의학협회에 보고했다. 성형수술의 심리적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요제프는 성형외과의사에게 예술가의 자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그 덕에 그는 ‘조각가로서의 의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세기 초 나치스 독일은 신체적 인종주의를 내세운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을 시행했다. 가장 순수하고 우수한 인종은 “금발에 큰 키와 긴 두개골, 갸름한 얼굴, 우뚝 솟은 높은 턱, 높고 뾰족한 코, 부드러운 직모의 머리카락, 큼직하고 연한 색깔의 눈, 하얀 연분홍 피부”를 지닌 아리안 종이라고 설파되었다.
반면 유대인은 열등한 인종의 전형으로, 독일의 정치를 부패시키고, 경제를 마음대로 휘두를 뿐 아니라 매독의 기원이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기생충으로 간주되었다. 유대인은 ‘매부리코’, ‘검은 머리’, ‘안짱다리’와 ‘엄청나게 큰 성기’를 가진 육체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악을 퍼트리는 인간으로 묘사되었다.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많은 유대인이 반유대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유럽을 떠나 미국 등지로 이주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유대인의 신체적 표지는 차별의 근거이자 인종적 표지로 작동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1921년 미국성형외과학회가 발족하여 미용성형이 전문적 의료 영역으로 귀속되었고, 많은 성형외과 의사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성형시장을 개척하느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성형외과 의사들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코 성형을 적극적으로 권고했다. 이 때문인지 미국에서 코 성형의 빈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을 때가 바로 나치스의 반유대주의가 최고조에 달했던 1940년대였다. 1960년대에도 코 성형수술을 받은 환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유대계 미국인 1세와 2세들이었다.
유대인 대상의 성형수술은 이스라엘로도 전파되어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는 서아시아 지역 미용성형의 중심지가 되었다. 최근에는 이란에서 미용성형수술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절대다수가 코 성형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이란인들의 코 수술 목적은 유대인과 차이가 있다. 유대인이 굽은 코를 교정하기 위해 수술을 감행했다면 이란 사람들은 히잡에 어울리는 예쁜 코를 만들려는 목적에서 수술을 받는다고 한다.
사실 미의 기준은 문화권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동양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들의 기준보다 큰 코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중국인들은 유럽인을 ‘하얀 피부와 튀어나온 코를 가진 흉측한 족속’으로 여겼다. 17세기 중국인들은 심지어 실론 섬 주민들의 코가 너무 우뚝 솟아 있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구인의 기준에서 볼 때 실론 섬 원주민의 코는 절대로 큰 것이 아니지만, 몽골인종의 납작한 이목구비에 익숙해 있던 중국인들에게 실론 섬 사람들의 코는 너무 우뚝해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서구 제국주의의 물리적 · 문화적 영향이 동양의 구석구석에까지 미치면서 미의 기준에도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19세기 말 일본에는 서양의학이 수입되면서 더불어 쌍꺼풀 수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한쪽 눈에만 쌍꺼풀이 있는 사람들이 눈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술을 받았는데, 점차로 오뚝한 코와 더 큰 눈 등 서구식 외모를 닮기 위한 열풍이 일면서 성형수술이 확대되었다.
1923년 니시하타(西端)와 요시다(吉田)는 상아 삽입물을 이용해 일본인의 납작한 코 모양을 바꾸는 융비술(隆鼻術)에 대한 논문을 최초로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일본을 점령한 시기부터는 실리콘을 삽입하여 유방을 확대하는 수술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서구식 근대화가 도입될 무렵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일본인 고유의 신체적 특징을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세기 말 일본의 의사와 인류학자 들을 중심으로 ‘진짜’ 일본인의 얼굴이 어떤 것인가를 찾아내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이 심혈을 기울인 문제는 일본 내의 열등한 집단, 즉 아이누(アイヌ, 일본의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 열도 등지에 분포하는 소수민족)의 ‘미개한’ 얼굴의 특징을 찾아내고 그것과 대비되는 일본인 고유의 얼굴 이미지를 정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서양식 근대화에 대한 동경 속에 사라져버렸으며, 미용성형외과가 전공과로 인정되는 1978년 훨씬 이전부터 외모를 서구형으로 바꾸는 성형수술이 만연하게 되었다.
1890~1900년경 홋카이도 지역에 살던 아이누족. 19세기말 일본에서는 일본인 고유의 특성에 대한 연구라는 미명하에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을 대상으로 이들의 ‘열등함’과 ‘미개함’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자료를 축적해갔다. 아이누족을 찍은 사진들은 ‘기념엽서’로 서구 세계에 소개되기도 했다.
<출처: www.flickr.com>
이런 현상은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베트남전쟁(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1960~1975) 이전 시기에 베트남에서도 서구식 미의 기준에 부합하고자 하는 미용성형수술이 활기를 띠었다. 그런데 참혹한 전쟁을 치른 뒤 1975년 미군이 철수하자 통일 베트남 정부는 서구식 잔재를 일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진짜 베트남 사람의 얼굴 모습을 규정하려 했다.
미용성형을 시행하는 의사들에게 베트남인 고유의 눈의 형태며 이목구비 간의 적절한 비율 등을 명시한 지침이 내려왔다. 그런데 이런 조치는 미용성형수술의 침체를 가져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 이전의 경향이 되살아나게 되었다. 오늘날 베트남에서는 ‘유럽인처럼 보이기 위해’ 코를 높이고 쌍꺼풀을 만드는 수술이 붐을 이루고 있다.
2007년 어느 신문기사는 베트남 사람들이 수술에 따르는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무허가 의사에게서 “300달러짜리 코 수술과, 500달러짜리 쌍꺼풀 수술, 혹은 2,000달러짜리 유방 확대 수술”을 받곤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서구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싸구려’ 성형을 감행하는 부위가 코와 눈, 그리고 유방이라는 사실이다.
외국인 거주자, 여행자 및 호찌민 시의 영어를 사용하는 베트남인을 대상으로 한 잡지 《어이(O’i)》는 2013년 9월호에서 ‘성형수술’을 테마로 의료관광을 제안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출처: issue.com>
오늘날 유방 성형 하면 보통 확대 수술을 떠올리지만 원래 유방 성형수술은 축소술에서 시작되었다. 1880년대부터 외과의들은 큰 가슴을 축소하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암이나 다른 종양을 제거한 뒤 형태가 망가진 유방을 수정하기 위한 수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방 성형은 일반적으로 미용성형이 아닌 재건성형의 영역에 속했다.
그런데 어차피 할 수술이라면 유방을 예쁘게 만들 필요도 있을 터였다. 이 당시 유럽인들이 생각한 여성의 이상적인 가슴 모양은 비교적 작고 둥글며 처지지 않은 것이었다. 이 말은 대륙마다 이상적으로 여기는 여성의 가슴 모양이 다르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이 시기에는 제국주의와 발맞추어 민족지학(民族誌學, Ethnography)이 발달하면서 인종별로 다른 신체 모습에 대한 관심도 커져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인종마다 각각 다른 유방의 모습을 파악하고자 하는 ‘진지한 연구’도 많이 진행되었다.
독일의 의사이자 인류학자인 헤르만 하인리히 플로스(Hermann Heinrich Ploss, 1819~1885)는 1884년 《자연사와 민속학에서의 여성(Das Weib in der Natur- und Völkerkunde)》을 펴냈다. 이 책이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인종별 가슴의 형태를 자세하게 구분해놓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백인종과 황인종의 가슴은 처녀들처럼 탱탱하지만 흑인의 가슴은 염소 유방처럼 생겼다고 말한다. 또한 유대인 여성은 가슴이 처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륜의 모양 및 크기도 인종별로 다른데,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유륜이 커지고 가슴은 처진다는 묘하게 독일중심주의적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1927년에 11번째 판이 나왔을 때는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실은 페이지가 1,000장 이상인 네 권 분량의 책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독자의 호응이 뜨거웠던 탓이다.
헤르만 하인리히 플로스의 《자연사와 민속학에서의 여성》 (1897년판)에 실린 ‘독일 식민지와 그 주변 지역 여성들’ 부분. 이 지면에서는 아프리카 지역 여성들의 가슴 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 © beBooks Inc. & AbeBooks Europe GmbH, alle Rechte vorbehalten.>
1930년대가 되면 유방 축소 수술이 재건성형에서 미용성형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크고 처진 가슴을 작고 팽팽하게 만들어서 어려 보이도록 하는 수술뿐 아니라, 보형물 등을 넣어 확대하는 수술도 유행하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보형물로 상아, 유리로 만든 공, 고무, 황소의 연골, 폴리머 스펀지 등이 사용되었다. 1960년대 들어 식염수 보형물과 실리콘 보형물이 등장하면서 유방 확대 수술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된다.
오늘날 유방 확대 수술이 가장 널리 시행되는 곳은 아르헨티나이다. 문화적으로 가슴이 큰 여성에 대한 에로틱한 판타지가 팽배한 탓인데, 심지어 가슴 성형수술을 성인식 의례 가운데 하나로 여길 정도이다. 클럽이건 쇼핑몰이건 젊은이가 모이는 곳에서는 ‘유방 확대 전문 성형외과’ 광고지가 날아다닌다. 미국과 독일, 스페인에서도 유방 확대 수술이 가장 인기 있는 성형수술로 자리 잡았지만, 아르헨티나는 저렴한 비용과 수준급의 의료진 때문에 1인당 실리콘 삽입술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같은 남아메리카 국가인 브라질에서는 반대로 유방 축소 수술이 훨씬 더 많이 이루어진다. 브라질의 상류층 가정에서는 성년이 된 딸에게 유방 축소술을 ‘선물’하곤 한다. 문화사가 샌더 길먼(Sander L. Gilman)은 상류층 여성들의 유방 축소 수술은 하층계급 여성과 자신들을 구별 짓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브라질에서는 1888년까지도 흑인 노예제가 폐지되지 않고 있었다. 특히 흑인 여성 노예는 단순히 노동력만 착취당한 것이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도 이용되었다. 풍만한 노예의 몸은 에로틱한 대상이자 식민적 종속의 상징물이었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금까지도 흑인들은 대부분 하층 계급에 속하며, 흑인 여성들의 큰 유방은 강력한 인종적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브라질 상류층 여성들은 이런 노예-하층민의 표지는 일찌감치 없애버려야 마땅하며, 특히나 사회 엘리트가 되려면 너무 큰 가슴은 일찌감치 제거해야 할 신체적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성형수술이 이루어지는 횟수 그 자체로만 본다면 미국이 가장 많지만, 브라질은 인구 대비 성형수술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오늘날 브라질은 그야말로 미용성형수술의 메카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특히 관광 상품과 연계된 성형 프로그램이 매우 잘 개발되어 있어 전 세계로부터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의 호화로운 호텔 객실에는 테이블 서랍마다 성경 대신 성형관광 패키지 안내서가 들어 있다. 이런 수요를 감안하여 브라질의 많은 젊은이들이 성형외과의사를 지망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해당 분야의 의료진이 넘쳐나면서 나라 전체가 거대한 성형 리조트가 되어버렸다는 분석도 있다.
성형 대국인 브라질에서는 특히 엉덩이 성형 수술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심지어 브라질에서는 매년 엉덩이 미인을 뽑는 ‘미스 붐붐 미인 대회(Miss Bum Bum Pageant)’가 개최되고 있다.
<출처: www.mirror.co.uk>
이처럼 브라질에서 성형수술이 발달하게 된 것은 뛰어난 성형외과의였던 이보 피탕기(Ivo Pitanguy, 1923~2016)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브라질 올림픽 때 휠체어에 앉은 채 성화를 봉송한 후 바로 다음 날 심장마비로 숨진 바로 그 인물이다. ‘성형 수술의 철학자’라 불리는 피탕기는 빈민에게 무료로 성형수술을 해주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브라질 국민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런던과 파리에서 의학을 공부한 피탕기는 초기에는 재건수술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는데, 어느 날 ‘애플힙(apple hips)’이라고 불리는 브라질식 힙업 수술을 개발하여 그야말로 미용성형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다. 그 덕분에 1980년대에 브라질은 엉덩이 성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게 되었다.
피탕기가 엉덩이 수술의 대가가 된 이유는 가슴을 덜 강조하는 대신 엉덩이를 강조하는 브라질의 문화 때문이었다. 실제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임신과 출산 비율이 높은 브라질에서 여성들은 남성을 유혹할 수 있는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 속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여성성의 상징인 탄력 있고 풍만한 엉덩이를 만들기 위해 여성들은 서슴없이 수술대에 오르곤 한다. 특히 1977년 이혼이 합법화된 이후에는 싱글맘 사이에서 성형이 더욱 활성화되었고, 어머니와 딸이 나란히 성형외과를 찾는 일도 많아졌다.
인류학자인 알렉산더 에드먼즈(Alexander Edmonds)는 브라질이 성형 대국이 된 이유가 아름답고 완벽한 몸에 대한 문화적 집착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브라질에서 외모는 사회적 계급과 직결되는 일종의 신분적 표지이자 자본이기 때문에 몸을 가꾸어야 한다는 강력한 규범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브라질은 ‘미의 신화’가 강력한 나라로, 아름다운 외모가 심지어 국가 정체성의 하나라고 여겨지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외모가 곧 신분적 표지이자 자본이라는 인식은 비단 브라질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1994년 미국과 캐나다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외모가 금전적 이익과 결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결론은 평균 이상의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12% 정도 더 높은 소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는 이후 외모와 자본주의적 이익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수많은 연구를 촉발하게 되었다. 2012년 한국인 2만 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조사에서도 외모가 본인 혹은 배우자의 수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런데 성형수술로 외모가 달라진 경우에는 어땠을까? 흥미롭게도 결과는 성형수술로 외모가 개선되어 수입이 증가하더라도 그 수준이 성형수술 비용을 충당할 만큼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측면에서 성형은 ‘투자’라기보다는 본인의 즐거움을 위한 ‘소비’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띤다고 결론지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형소비의 내셔널리티 - 아르헨티나는 유방 확대, 브라질은 유방 축소 (소비의 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