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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스님의 삶과 깨달음 4
대행은 산과 들을 헤매면서 마을과 마을을 떠돌았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은 가시덤불에 할퀴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옷은 누더기가 되었고 맨발이었다. 어쩌다 산속 깊은 데서 길을 잃어 사찰에라도 들릴라치면 여지 없이 박대를 당했다.
"산속에도 웬 미친 년이 다 있어."
스님들은 세속 사람들보다 더 매정했다. 밥 한 술이라도 빌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잠을 청할 계제도 못 되었다. 나중에는 아예 스님들에게는 기대를 걸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직접 대면하지 않고 밤이 깊어서야 법당에 들어가 잠을 자고 새벽 일찌감치 나가버렸다. 법당 문이 잠겨 있을 때는 산신각이나 칠성각에서 잠을 잤다.
그런가 하면 마을 앞이라도 지나치노라면 아이들이 그녀에게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다.
"미친 년! 미친년!"을 합창하면서 돌을 던져댔다. 묵묵히 걸어갈라 치면 기가 오른 아이들은 꼬챙이 따위로 찌르거나 후볐다.
'다 내 탓이다. 내가 이 꼴을 하고 있으니 놀림감이 될 수밖에.'
차차 인적 없는 산 속에 머물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인간보다 나무와 짐승들이 더 다정한 벗이었다.
내면의 '아빠' 참나는 그녀를 가혹한 시련 속으로 몰아넣었다. 지쳐 쓰러지고 쓰러지기를 몇 번이었던가.
그녀는 별도로 누구한테서 화두를 받고 참구하지는 않았다. 내면에서 끊임없이 주어지는 질문이 화두였다.
나무를 붙들고 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길가에 버려진 감자 하나를 들고 한나절 내내 생각에 잠길 때도 있었다.
어느 때는 물이 마른 웅덩이에서 허우적대는 올챙이를 퍼서 물 있는 곳으로 옮기느라고 한나절을 보냈다.
또 어떤 때는 깊은 밤 사색에 잠겨 걷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마침 그 낭떠러지 밑에는 나뭇단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기 때문에 다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푹신한 나뭇단 위에서 그날 밤을 한숨 늘어지게 잘 보냈다.
한 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목숨을 연명할 최소한의 먹거리는 언제나 주어졌다. 굶어 죽는다 싶으면 언 밭에서 무 꽁지 하나라도 보이곤 했다.
또 신발을 얼음 사이에 빠뜨렸던 어느 날, 그녀는 야생 댓잎으로 발을 엮고 십리 길을 걸었다. 산속에서 그녀는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는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들에게서 신발 한 켤레를 받았다. 그런 일은 한두번이 아니라 번번이 되풀이 되었다.
내가 이제 죽는 것이로구나 싶은 순간 꼭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어느날 숲 속을 거닐고 있을 때 나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쪽으로 가지 마. 낭떠러지가 있거든."
"그래. 네 말이 맞을 거야. 하지만 가고 가지 않는 건 내 뜻대로란다. 난 그쪽에 낭떠러지가 있는 지 미리 알고 싶지 않아. 가다가 낭떠러지가 있으면 되돌아오면 되지."
또 어느날 눈내린 언덕을 걷다가 문득 배고픔을 느껴졌다. 순간 언덕 아래 구덩이진 곳을 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눈을 두손으로 헤집고 보니 그 속에 놀랍게도 싸리버섯 한 무더기가 오롯하게 자라고 있었다. 무심코 버섯을 따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는 갑자기 번갯불을 얻어 맞은 듯 내밀던 손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버섯도 하나의 생명이거니, 내 어찌 배고프다고 저걸 죽여 나의 배를 채울 수 있으랴.
그녀는 버섯과 대화를 나누었다.
"얘야, 난 배가 고프단다. 네가 나를 불렀지?"
"네 그래요. 제가 불렀어요. 어서 나를 뜯어 잡수세요."
"하지만 얘야, 너도 생명이기는 마찬가진데 내가 어떻게 널 뜯어서 내 입속으로 넘길 수가 있겠니?"
"나와 당신은 둘이 아니에요. 나를 잡수세요. 나는 기뻐요. 당신이 나를 먹는다면 난 당신의 일부가 되어요.
그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우리는 무수한 윤회 끝에야 인간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당신이 나를 먹는다면 나는 단번에 당신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기쁜 일이에요. 어서 날 잡수세요. 나는 죽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 사는 거에요."
"오오, 너는 참으로 기특한 녀석이로구나"
그녀는 즐겁게 그 버섯의 소망과 자기의 필요를 일치시킬 수가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여름 깊은 밤 그녀가 지친 몸을 무덤에 기대어 쉬다가 막 잠에 빠져들 무렵이었다.
문득 무덤 속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어떤 녀석이 왔군."
굵은 남자의 음성이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받아 다른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신발을 훔치려고 온 거야."
"맞아 단단히 지키자구. 도둑 맞으면 안 되니까."
그런데 문득 그녀의 마음 속에서 저 신발을 꼭 가지고 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서는 신발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이 야무진데, 자기는 그것을 꼭 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녀는 이 자생 화두에 깊이 몰입했다. 한참 후 그녀는 무릎을 쳤다.
"아하! 너와 나는 둘이 아니다. 내가 왜 그것을 잊었던가.
어이, 거 무덤 속의 친구들아! 그대들이 곧 나와 한 뿌리요, 내가 곧 그대이거늘 무엇을 빼앗고 또 무엇을 빼앗길 것인가?
이제 장난질은 그만하고 밤도 깊었으니 우리 푹 쉬세 그려."
그러자 무덤 속은 쥐죽은듯 조용해졌고 그녀는 무덤가에 기대어 한 숨 푹잤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커다란 소나무 밑에서 몸을 기대 쉬고 있던 그녀가 깜빡 잠에 빠지고 말았다.
눈을 떠 보니 새벽녘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눈이 내려 발이 푹푹 파묻힐 만큼 쌓여 있었는데 자신의 몸에 아무런 탈도 없는 게 아닌가.
이미 동사하고도 남았을 터였는데 말이다. 그녀는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자기가 기대고 누웠던 소나무 근처에는 눈이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짐승의 발자국들이 보였다.
짐승들이 그녀를 둘러싸 추위를 막아주었던 것이다.
어느날 길을 걷는데 내면의 목소리가 찔레가 우거진 골짜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이 길이다. 이곳으로 가거라."
그녀는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곧 그 길로 들어섰다. 이미 자신의 몸은 버린 그녀였다.
그녀는 성큼성큼 가시덤불을 헤치며 걸어갔다. 그렇게 길을 헤매이던 그녀는 문득 그 '길'의 참된 의미를 깨우치게 되었다.
몸 없는 몸으로 갈 때 가시밭이건 바다건 길 아님이 없다는 것을, 허공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가시밭길을 길이라 한다고 곧이곧대로 따랐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가지 않았으면 길이 길이 아닌 이치를 몰랐을 터였다. 그 이후 몸 아닌 몸을 자유로이 나툴 수 있게 되었다.
발길은 남산에서 국립묘지로, 국립묘지에서 관악산으로, 그리고 청계산 일대를 헤매다 마침내 수원 용주사 근처의 화산능을 거쳐 헌인능에 이르렀다.
생식만으로 살아온 그녀의 몰골은 반 야수와도 같았다. 헌인능에 도착한 그녀는 사당 한 채를 발견했다.
그녀는 낮에는 무덤가에서 앉아 깊은 선정에 들었고 밤이면 사당에서 낙엽을 깔고 잠을 잤다. 수행은 계속 깊어 가고 있었다.
누진통을 얻은 그녀의 앞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펼쳐졌고 천안, 천이, 숙명, 타심, 신족통의 신통력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확인과 검증을 요구하였고 어디에 어떻게 쓰여져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당시 그녀는 헌인능을 중심으로 수십리 안팎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영적인 능력을 시험하고 점검했다.
특히 당시 그녀가 관심을 가진 것은 질병이었다. 사람들의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영적으로 치유하였다.
누가 알았을 것인가.
커다란 무덤 가에 앉아 깊은 선정에 든 한 여인이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갖가지 질병들을 진찰하고 투약하며 치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대행은 아침녘에 한 예감을 받았다. 그것은 틀림 없었다.
한낮이 되었을 때 경찰관들이 와서 그녀를 체포했다.
그녀는 웃었다. '내 이럴 줄 다 알았으면서 왜 고초를 겪어야 하나.'
근처를 쏘다니는 그녀를 발견한 능지기가 경철서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빨치산들이 극성을 부리던 때였기 때문에 그녀는 여자 빨치산으로 오인되었던 것이다.
대행은 경찰관들의 모진 취조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통할 리가 없었다.
그 초라한 복색에 산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노라는 대답이 경찰관들에게는 가당치도 않게 들렸던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녀는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야 경찰서에서 그녀를 석방해 주었다.
노량진 경찰서에서 그녀에 대한 신원조회 회신이 왔던 것이다.
헌인능으로 돌아오던 길에 마을 앞에서 그녀는 어머니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처참한 딸의 모습을 본 순간 어머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까무라치고 말았다.
당시 대행의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손발은 얼어터져 있었고 씻지 않은 얼굴은 험하게 갈라진 채로였다.
그것은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랄 수가 없었다.
대행은 어머니를 부축하여 근처의 오두막집으로 옮겼다. 그 집에는 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대행은 할머니한테 어머니를 부탁했다.
어머니는 경찰서에서 대행의 신원을 묻는 조회를 받고서 수소문 끝에 잃어버린 딸을 찾으러 그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이틀 뒤 대행의 여동생 영조가 그곳에 도착했다. 영조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그때까지도 영조는 언니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거의 모르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과는 같이 겪으며 자랐지만 언니는 영조가 어렸을 때부터 밖으로 다녔기 때문에 기억에 없었다.
자라면서 언니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사실들은 한결같이 기분 나쁜 것들뿐이었다.
당시만해도 영조는 도니 불법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밖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언니에 대해 크나큰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언니가 헌인능에 있다가 경찰관들한테 체포되었다는 연락이 집으로 왔고 어머니가 그곳으로 부랴부랴 떠나자 영조가 어머니를 모셔 오리라며 뒤를 좇아 온 것이었다.
그 때 그녀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한 여자 때문에 불쌍한 엄마만 고생하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찻길에서 내려 논밭 사잇길을 첩첩이 지나 헌인능 근처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 영조는 마침 나오시던 어머니와 마주쳤다.
"네가 오려고 그러셨구나."
어머니가 영조보고 말했다.
"이생님(당시 대행은 사람들에게 이생님으로 불렸다)이 그러시더구나."
'어머니, 어머니께서 세상에서 제일 귀애하시는 사람이 저기 옵니다. 나가 보셔요.'
어머니는 대행에게 늘 경대했다.
그래서 그녀를 호칭할 때도 '얘'라든지 '너'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영조는 늘 그것이 싫었다. 영조는 어머니와 함께 대행이 있는 뒷산으로 갔다.
이 기회에 저 미친 여자한테 분풀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의 몰골은 아주 비참해 보였다.
동정심 같은 건 일지 않았고 다만 저 징그럽고 보기 싫은 여자가 자기 집안, 어머니나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여자이길 바랬을 뿐이었다.
영조는 언니를 보자마자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구 퍼부어대던 영조의 입이 그만 꽉 봉해져 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마 더 이상 듣기 거북했을 언니가 어떤 손을 쓴듯 여겨졌다.
영조는 집을 떠나 친척 형님과 차를 타고 헌인능으로 오면서 내내 언니를 욕했었다.
그런데 언니의 입에서 영조가 했던 말, 행동이 낱낱이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언니의 태도나 말투로 보아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언니는 아주 의연 침착하게 동생을 꾸짖었다.
그러는 동안 영조는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영조는 마음 속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영조는 왜 어머니가 그토록 언니를 중히 여기는 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고, 언니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이 사건은 훗날 영조가 대행에게 귀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행은 어머니를 동생한테 맡기고 새로운 길을 떠났다. 그 뒤로 대행은 어머니를 생전에 볼 수 없었다.
처참한 딸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집에 돌아가자 곧 병을 얻어 몇 년 뒤에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또 다시 겨울이 왔다. 대행의 발길은 광나루의 백사장에 이르게 되었다.
강바람은 매서웠다. 그러나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칼바람이 부는 모래톱에서 그녀는 구덩이를 파놓고 잠을 자면서 수행을 계속하였고, 근처 건초더미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한겨울 들판에 널린 얼어터진 무꼬리와 배추시래기 따위를 먹는 것도 지쳐버렸을 때 그곳을 지나던 한 노인이 그녀를 발견했다.
뜻밖에도 그 노인은 대행의 가혹한 수행방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와 동정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네 집으로 가기를 청했다. 그러나 대행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노인은 곧 마을로 가더니 보자기에 강냉이 떡 두 개와 날콩이 한 줌을 싸가지고 돌아왔다.
당시 그녀의 식사량은 아주 극미한 것이었기 때문에 노인이 갖다 준 음식은 여러날 치의 식량이 되었다.
헌인능에 있을 때는 보리 아홉 알로 하루를 견딘 일도 있었다.
때문에 날콩 한 줌이면 그녀에게는 거의 한달치의 식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광나루에서 겨울을 난 대행은 이듬해 봄이 되자 그곳을 떠났다.
남한산성을 지나 이천을 거쳐 강원도 영월 쪽을 다 밟고 마침내 충북 제천의 백련사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풀뿌리와 산열매를 먹으면서 산으로 산으로 걸었다.
풀뿌리 하나면 이레를 먹던 그녀에게 그런 풀뿌리조차도 구할 수 없는 때가 왔을 때 대행은 초식동물처럼 생풀을 먹어야 했다.
혹시 몸에 상처라도 날라치면 아무 풀이든 뜯어서 쓱 문질렀다.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묘공대행선사(한마음선원)
첫댓글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남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나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 지장보살마하살_()()()_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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