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메인 오닐
1978년 10월 13일 콜롬비아 사우스 케롤라이나 출생
오클레어 고등학교 출신
211cm 102kg
포지션 파워포워드,센터
1996년 NBA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17번픽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지명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996-2000)
인디애나 페이서스 (2000-2008)
토론토 랩터스 (2008-2009)
마이애미 히트 (2009-2010)
보스턴 셀틱스 (2010-2012)
피닉스 선즈 (2012-2013)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2013-2014)
올스타 6번 선정 2002부터 2007년까지
NBA 세컨드팀 1번 2004년
NBA 서드팀 2번 2002년 2003년
NBA 기량발전상 MIP 수상 2002년
FIBA 아메리카 챔피언십 금메달 2003년
국내 NBA팬들한테 '작은오닐'로 불렸던 선수
한때 샤킬오닐의 친동생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두사람은 핏줄이 아니고 그냥 농구 선후배임
2003년 올스타전에서 마이클 조던의 위닝 페이더웨이 점프슛 성공 이후 코비한테 파울해서
조던의 마지막 파이널MVP가 날라갔음 지금도 오닐은 올스타기간만 되면 이때를 기억하는 팬들한테 욕먹음 ㅋ
얼굴이 귀염상이고 어깨가 좁았지만 호리호리한 몸매로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준 선수
어린시절 빌러셀과 윌트체임벌린, 하킴올라주원의 비디오를 보면서 개인연습을 했다고함
이때부터 수비에 대한 중요성을 숙지하고 밀레니엄 초반 인디애나시절 수비력을 인정받음
16살때 미국 ABCD 여름농구캠프에서 고교농구 최고의 선수였던 팀토마스를 능가하는 유망주라고 평가받음
고교시절 최고수준의 유망주였지만 미국 대학시험 SAT 점수 미달로 대학진학 실패 NBA에 바로 도전함
몇해전 NBA에 먼저 진출한 케빈가넷을 보면서 고졸출신 NBA선수로써의 꿈을 가졌음
96년 1라운드 17번픽으로 포틀랜드에 입단했지만 동포지션에 라쉬드월러스 어비다스 사보니스, 클리포드 로빈슨이 존재해서
경기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음
벤치를 지키면서 동갑내기 친구 코비 브라이언트가 주목받는걸 부러워 하기도 했음
96년에 18세 1개월 22일의 나이로 최연소 경기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었지만 훗날 레이커스에서 뛰었던
엔드류 바이넘이 그 기록을 깸
포틀랜드에서 4시즌을 뛰었지만 기회도 못받고 기회를 받아도 기대이하의 활약을 보이면서
실패한 유망주가 될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음
2000년 8월 31일 저메인 오닐의 농구인생이 바뀌는 트레이드가 일어남
인디애나의 데일 데이비스와 트레이드가 되면서 주전으로 80경기를 뛰게됨
인디애나에서의 첫시즌 NBA입단후 처음으로 두자릿수 득점을 올리면서 평균 12.9득점 9.8리바운드를 기록
레지밀러와 제일린 로즈,오스틴 크로셔,트레비스 베스트와 함께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음
인디애나 입단후 2번째 시즌엔 팀내 최고 득점자가 되면서 19.0득점 10.5리바운드로 첫 더블더블시즌을 기록함
그리고 기량발전상 MIP를 수상하면서 NBA팬들의 눈에 확실하게 각인됨
그러나 저메인 오닐 개인적으론 계속 승승장구해도 인디애나는 계속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을 하면서 좌절함
2003-2004시즌 드디어 팀의 리더이자 에이스로 정규리그MVP 투표 3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NBA의 톱스타의 위상을 가지게됐음 그리고 인디애나를 동부파이널까지 진출시킴 하지만 디트로이트한테 4-2로 지면서 탈락함
하지만 저메인 오닐의 상승세는 다음시즌 2004-2005시즌에 무너짐
우승에 도전할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왔지만 2004년 11월 19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의 경기에서
NBA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 된 대형 폭행사고가 일어남
론아테스트와 벤월러스의 싸움에서 시작된 감정싸움이 관중폭행으로 까지 번지면서 팀의 주축선수들
경기출전금지 저메인 오닐도 폭행에 가담하면서 200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때 뛸수있었음
그래도 레지밀러가 선수생활 마지막을 불꽃같이 보내면서 2004년 11월 19일 그 폭행사건의 상대팀
디트로이트와의 동부 세미파이널에서 4-2로 탈락했지만 아름다운 은퇴를 하면서 그나마 훈훈하게 마무리 됨
이 당시 레지밀러의 마지막 우승도전이 끝나서 인디애나팬들은 아직도 이때만 생각하면 울화통 터짐
레지밀러가 은퇴하고 인디애나는 그냥 추락할 일만 남았음 잘되야 플레이오프 1라운드 진출이 고작
저메인 오닐도 팀던컨,케빈가넷급까지 성장 할수도 있을꺼란 기대가 아주 잠깐은 있었지만
그건 옛날얘기가 됨
결국 토론토로 트레이드 되고 존재감 없이 또 다시 마이애미로 이적함
마이애미에서 드웨인 웨이드와 뛰면서 살짝 상승할꺼 같았지만 기대치이하였고
2010년 여름 르브론제임스,드웨인 웨이드,크리스보쉬 빅3가 결성 될 예정이였기에 오닐은 여러선수들과 함께 정리됨
보스턴시절엔 벤치멤버로 우승을 노렸지만 2012년 동부파이널에서 마이애미한테 깨지면서 탈락함
(이때 한때 친형제라는 루머가 있었던 샤킬오닐과 같이 뜀)
하여튼 저메인 오닐은 인디애나에서의 전성기가 끝나고 토론토 렙터스,마이애미 히트,보스턴 셀틱스,피닉스 선즈,골스를 가치면서
슈퍼스타이자 레전드급 선수가 될수도 있었지만 결국 저니맨이 되고 점점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짐
첫댓글 파이널mvp가 날라간게 아니라 올스타mvp죠? 오타신것 같아서ㅎㅎ;;
저도 인터넷 왕성해지기 전엔 샼 친동생인줄 알았습니다.
JO가 몰락한 이유는 급격한 기량저하일까요? 몸관리 실패같은것은 아니었던것같은데..
부상으로 인한 운동능력 저하가 가장 큰 이유였죠.
아 한가지더 기억나는 일화가 ㅋㅋ JO는 조던의 마지막 올스타전 더샷이후에 어이없는 파울해서 연장으로가게되서 당시때 쌍욕했던...
블락샷이 상당히 좋은 선수 였죠. 리바운드 능력은 그렇게 높지 않았고, 터프한 골밑싸움에 조금 약했던 느낌입니다.
인디애나 시절에는 그래도 잠시나마 던가노와 같은 티어로 묶이기도 했었죠. 말년에 저니맨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는 팀마다 백업으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어요.
당시 밀러 팬으로써 애증의 선수..ㅜ.ㅜ
03년경 키드와 같이 샌안으로 올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줬었는데..그때 샌안왔었다면..
이상하게 멋진 하이라이트 장면보다 번너클이 먼저 기억나는선수
인디때는 공격도 잘했는데.. 커리어 말년에는 수비클라스는 간간히 보여줘서 쏠쏠했죠
샤크 동생이냐 아니냐로 얘기가 돌았죠 ㅋㅋ
당시 신문기사에는 동생이라고 나왔었어요 ㅋ 어처구니 없었다는 ㅋㅋ
팀 던컨, 케빈 가넷, 덕 노비츠키, 크리스 웨버 등이 날아댕기던 서부 파워포워드진에 대항할 수 있던 몇 안되는 동부 파워포워드 였지요(나머지는 캐년 마틴이나 라쉬드 월러스 정도)
진짜 인디팬으로써 정말 아쉬운 선수중 하나 입니다...슈퍼스타가 될 기회가 있었는데 폭행사건만 없었어도 ㅜ.ㅜ
좀 폼나게 농구하는 선수중 한명이었어요.. 인디애나에서 피크찍고 쭉 갈 줄 알았는데....
빈스카터보다 어린데 추억의 농구선수 됐네요 ㅎㅎ
유난히 어깨가 좁아보였던 선수^^
론 아테스트... 진짜 쓰레기 선수... 이제 갱생했다고 이름도 메타 월드피스라고 바꾸고 뛰었지만, 그 성격 안바뀌더군요. 진짜 쓰레기...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올스타전 위닝슛을 날려버린 ㅋㅋㅋ
2002~2003년부터 그 사건이 터지기전인 2004-2005시즌까지는 노비츠키와 거의 동급 취급을 받지않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