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차범근을 까는글을 봤을때 대처해야되는 우리들의 자세
→차범근을 폄하하는 대표적인 주장들에대한 반박
1. 차범근은 허접한 팀에서만 뛰고 챔스도 나간적 없음
당시 uefa컵은 지금의 챔스리그만큼 수준 높고 권위있는 대회였습니다.
유러피안 컵- 챔피언스 컵 - 챔피언스 리그
이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옛날에 챔피언스 리그에 왜 컵이라는 명칭을 붙였을까요?
그렇죠 리그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챔피언들(1위팀들) 끼리 모여서
하는 어쩌면 왕중왕전 형식의 대회가 유러피안 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UEFA컵은 분명 그 경기수에 있어서나 상금(유러피안컵보다 큰 상금)에
있어서나 참가팀수에 있어서나 분명 유러피안 컵에 뒤지는 대회가 아니었습니다
혹자는 유러피안 컵보다 더 권위있는 대회라고 하지만
1위팀이 참가하지 않는 대회이니만큼 '권위'보다는 오히려 관심과 인기 면에서
더욱 컸던 대회지요
첼시 혼자 참가하는 대회와 맨유,리버풀,아스날,토트넘까지 참가하는 대회에
어느쪽이 더 관심이 갔겠는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챔스리그가 처음 생길때 나왔던 말이 UEFA컵의 인기를 챔스가 다 가져갔다...라는 말이 나왔던 것은 허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약팀으로 불리던 레버쿠젠의 순위입니다
Bundesliga
1979/80 12th
1980/81 11th
1981/82 16th
1979/80 12th
1980/81 11th
1981/82 16th
1982/83 11th
---------------차범근 입단
1983/84 7th
1984/85 13th
1985/86 6th
1986/87 6th
1987/88 8th
1988/89 8th
차범근 입단 이전과 이후 성적의 차이가 보이십니까?
차범근 입단 이후는 84/85시즌을 제외하면 다 10위권 이전이었고
이전에는 다 10위권 밖입니다
오히려 약팀을 끌어올린 차범근의 능력을 칭찬하는꼴이 됬네요.
2. 공격수가 골기록이 낮다 / 유명선수치고 커리어가 부족하다
차범근은 전형적인 골을 넣는 골게터가 아니었습니다
80년대에 윙포가 어딨냐고 하시겠지만,, 차범근이 윙포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에 윙포었다면 조금 오바일까요?
그당시 분데스리가의 대표적 포메이션은 3-4-3 시스템이엿고, 그자리에서 차범근은 오른쪽 포워드로 뛰었기때문이죠
베켄바워는 그를 가르켜서 "전에 없던 공격수다, 골을 넣기도 하지면 사이드에서도
활약하고 때론 미드필더에서 볼을 공급하기도 한다. 분데스리가의 다른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했던 선수" 라고햇죠.
위대한 축구선수인 조지 베스트와 베르캄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얘기가
차범근에게 적용되니 좀 억울하네요. 조지 베스트와 베르캄프의 경기당 골수를 비교
해보세요(조지 베스트와 베르캄프는 모두 윙포가 아닌 그냥 포워드죠).
또한 차붐은 분데스리가 시절 단 한개의 PK도 차지 않았습니다.
단 한개도요. 비공식 기록에 따르면 차범근의 PK 유도는 20개 였다고 하지만 비공식이
라 확인할수는 없는 얘기고 어쨌가나 그의 골은 전부 순수한 필드골임을 감안할때 117골/345경기의 기록은 무시될만한 기록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는 기록을 하나 알ㄹ드릴께요.
그외에 유럽컵(uefa컵) 포함 국제 컵 대회 기록입니다
대회 성적 팀 출전 골
79-80 UEFA컵 우승 프랑크푸르트 11출전 3골
80-81 UEFA컵 16강 프랑크푸르트 5출전 2골
81-82 컵위너스컵 8강 프랑크푸르트 6출전 4골 -> FA컵 우승으로 참가자격 확보
86-87 UEFA컵 32강 레버쿠젠 3출전 2골
87-88 UEFA컵 우승 레버쿠젠 10출전 2골
88-89 UEFA컵 1회전 레버쿠젠 2출전 0골
통산 37경기 출장 13골 입니다 (UEFA 컵 9골, 컵 위너스 컵 4골)
통산 기록은 345경기 출장 117골 입니다
그리고 현재도 외국인선수 역대득점 5위입니다 .. 쉽게 깰수있는 기록이 아닌거죠 ;
http://www.weltfussball.de/spieler_profil.php?id=1785&modus=6&content=gegner
이걸 보시면. 강팀 약팀 구분없이 골을 잘넣엇다는걸 아실테고..
UEFA컵 2회 우승, DFB POKAL(FA컵) 1회 우승이 우승이 아니시라면 할말은 없네요
UEFA컵 2회 우승을 하는동안 결승전에서 결승 어시스트, 동점골....
DFB POKAL 결승전에 쐐기 골을 넣은 선수가 차범근입니다
중요경기에도 강햇죠.
3. 그래봣자 차범근은 야쿠부급밖에 안대는 인지도를가졌음.. 세계최고선수는 아니였음
위에도 언급했듯이 차범근선수는 득점력있는 윙포워드였다는걸 감안한다면
세계 최고의 윙포워드였라고해도 딱히 손색이 없을거같네요.
득점 4위인 17골 넣은시즌이 최고순위여서. 득점왕기록은 없었지만..
키커지선정 mvp는 수상한적 있구요. (현재도 키커지가 mvp 줍니다)
키커지와 프랑스 잡지에서 세계축구 best11을 뽑앗는데 거기에 두차례 뽑힌적은 있습니다.
젤 유명한건 피파선정 20세기 100대 선수에 뽑힌것이죠..
그리고 최근에 키커지에서 독일축구 역대 최고의 공격수 열명을 뽑는 투표를 한적이 있습니다.
1. Gerd Muller(뮌헨) 60.3%
2. Uwe Seeler(함부르크) 15.9%
3. Klaus Fischer(샬케) 5.1%
4. Ulf Kirsten(레버쿠젠) 4.9%
5. Stephane chapuisat(도르트문트) 3.3%
6. Giovane Elber(뮌헨) 2.7%
7. Horst Hrubesch(함부르크) 1.8%
8. Klaus Allofs(쾰른) 1.7%
9. 차범근(레버쿠젠) 1.6%
10. Dieter Muller(쾰른) 1.3%
이 투표결과만 봐도 차범근을 아직도 기억해주는 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그당시 독일리그의 선수규정은 비독일선수 3명만을 보유할수있고,
그중에서도 오직 한명만이 경기에서 뛸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차범근선수는 어느팀을 가던지 언제나 꾸준히 출장했었죠..
차범근선수의 일화를 빌려 표현하자면 '다른선수와 교체되는것은 생각도 못했을 만큼' 말입니다.
이정도면 그당시를 풍미햇던 선수임에는 분명하죠.
예를들어 맨유에서 비 잉글랜드 선수를 단한명 출전시키라면 누구를 출전시키겠습니까?
대부분의 의견이 얼추 모아질거같은데요..
게다가 약팀을 강팀으로 이끈점, 돈에 끌려 팔려가지 않고 끝까지 자존심을 지킨점등..
이점이 차범근의 당시 인지도가 최소 현재의 에투정도의 인지도는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요즘 차범근 까는글이 많아졌더군요.. 자료를 챙겨서 만들어봤어요 ㅎㅎ
첫댓글 잘 쓰셧는데 일단.. 링크가... 링크불가로 해놓으셧으면.. 도움이 안되죠... 그리고 오타 2개인가 발견..
흠.. 그런데.. 10년간 옐로 하나라는거 진짜 인가요 <---- 이게 진짜 신기한..ㅠㅠ
네.. 차범근 자서전에 자신은 양심에 꺼리는짓을 하기싫어서 페널티안에서 아예 넘어지려고 들질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게다가 밀란으로 이적하지 않은이유는 승부조작을한 비신사적인 팀이여서 라고하니.. 대단히 신앙심 깊은 선수가 아닐수없죠; 옐로 하나는 공식기록이니 패스 ㅎㅎ
대단하심~~!!!!이 자료는 앞으로 차붐의 선수시절을 인정하지않는 분들에게 두고두고 쓰일듯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