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아이버슨
1975년 6월 7일 버지니아주 햄튼풀 출생
조지타운 대학교 출신
183cm 75kg
포지션 포인트가드,슈팅가드
1996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번픽 필라델피아 76ers 지명
필라델피아 76ers (1996~2006)
덴버 너게츠 (2006~2008)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008~2009)
멤피스 그리즐리스 (2009)
터키리그 베식타스 (2010~2011)
준우승 1번 (2001년 필라델피아 76ers)
NBA 올스타 11번 (2000–2010년)
NBA 정규리그 MVP 1번 (2001년)
NBA 올스타 MVP 2번 (2001, 2005년)
NBA 퍼스트팀 3번 (1999, 2001, 2005)
NBA 세컨드팀 3번 (2000, 2002, 2003년)
NBA 서드팀 1번 (2006년)
NBA 신인왕 수상(1997년)
NBA 루키 퍼스트팀 선정 (1997년)
NBA 득점왕 4번 (1999, 2001, 2002, 2005년)
NBA 스틸1위 3번 (2001–2003년)
등번호 3번 필라델피아 76ers 영구결번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2016년 명예의 전당 입성
'엔써'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NBA 역사상 가장 유니크한 스타일의 선수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선수
한국 NBA팬들한텐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방영당시 소지섭의 별명 '소간지'가 유행할때
'아간지'란 별명으로 불렸고 겨울연가시절 잘나가던 배용준의 별명 욘사마를 따라한 '답사마'라고도 불렸음
아이버슨의 안티팬들한테 아역귀,난사쟁이로 불림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중 하나로 뽑히는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1번픽
역대 최단신 득점왕이란 타이틀과 역대 득점왕중 필드골 성공률이 가장 떨어지는 선수란 악평도 받음
베텔 고등학교 다닐때부터 미식축구와 농구로 주 챔피언을 했던 고교시절부터 지역스타였음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태어났고 가난한 환경속에서 자랐지만 어머니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자란 NBA의 대표적인 효자중 한명
학창시절 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어머니가 사준 에어조던 농구화를 신고 농구선수의 꿈을 키웠음
코비,르브론과 함께 NBA를 대표하는 성공한 조던덕후임
18살에 친구들과 볼링장에서 패싸움해서 징역 5년형 선고받고 인생망칠뻔 했지만
가족과 친구들 주변 사람들의 탄원서 제출과 도움으로 무죄가 선고 됨
하지만 이때 평판이 많이 나빠져서 명문 대학들은 그의 스카웃을 꺼려했음
아이버슨의 어머니가 존 톰슨 조지타운대학 감독한테 찾아가 아들을 받아달라고 사정했음
존 톰슨감독은 아이버슨을 만나본 후 아이버슨을 조지타운대학교에 받아줌
조지타운대학 2년동안 평균 23.0득점, 3.6리바운드, 4.6어시스트를 기록했음
대학시절 날라다니면서 팬들한테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베드보이스의 전설 아이재아 토마스와 비교됨
NBA 데뷔시즌부터 돌풍을 일으킴
현란한 드리블과 스피드와 운동능력 폭발적인 득점력 평범한 플레이를 해도 화려함이 묻어나는 몸동작
엄청난 거구들을 상대로 183의 단신선수가 거침없이 돌파해서 덩크하고 더블클러치하고
득점하는 모습을 보고 팬들은 열광하고 난리가 남
5경기 연속 40점대 득점을 기록하고 50득점을 하고 마이클 조던을 상대로 크로스오버 드리블하고 점프슛 성공해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음 아직도 이장면은 꾸준히 언급됨
마이클 조던도 아이버슨의 플레이를 보고 '나도 저나이땐 저렇게 못 뛰었다'고 하면서 극찬함
(본인은 더 뛰었으면서....)
하지만 팀성적은 시원치 않았음 제리 스택하우스와의 호흡은 생각보고 별로였고 이기적인 선수고 무례하고 건방진 신인이라고 선배선수들과 언론의 비난을 받았음
97-98시즌 아이버슨의 농구인생의 큰 변화가 찾아옴
NBA의 대표적인 명장중 한명인 래리브라운 감독이 필라델피아의 감독으로 임명됨
그리고 공격형 포인트가드인 아이버슨을 183의 단신 슈팅가드로 만듬 그리고 아이버슨이 슈팅가드 포지션 선수들
수비에 한계가 있는 약점을 190의 신장을 가진 수비력 좋은 포인트가드 에릭스노우를 영입해서
공격할때 아이버슨이 슈팅가드지만 수비할땐 에릭스노우가 상대팀 슈팅가드막고 아이버슨이 포인트가드들을 수비하게 만듬
그리고 제리 스택하우스도 디트로이트로 보내버리고 아이버슨에 최적화 된 팀으로 필라델피아가 탄생됨
그후 2년연속 동부 세미파이널에 진출하고 래리브라운 감독의 그림이 완성됨
에릭스노우,에런맥키,조지린치,타이론 힐,디켐베 무톰보가 주축선수들로 있었음
이시절 멤버들은 아이버슨한테 최적화 된 선수조합이였음 이타적이고 수비력 뛰어났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씩 슛성공도 시켜줄수 있었고 네임벨류는 무톰보말곤 전부 떨어졌지만 강했음
2000-2001시즌은 말그대로 센세이션 그자체 였음 아이버슨은 2번의 50점대 득점 15번의 40점대 득점 18번의 30점대 득점을 꾸준히
기록하면서 득점왕과 시즌MVP를 수상하고 56승 26패의 팀성적을 올리면서
플레이오프에서 인디애나 밀워키,토론토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명승부를 만들면서 18년만에 대망의 NBA파이널 진출함
당시 압도적인 최강팀 LA레이커스와 파이널에서 1차전에 48득점을 기록하고 타이론루를 상대로 크로스오버 드리블해서 점프슛 성공하고 자빠져있는 타이론루 넘어가는 장면은 아이버슨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모습으로 각인 됨
1차전에 레이커스한테 유일하게 플레이오프 패배를 기록하게 만들고
아직도 2001년 파이널 1차전은 전설의 경기로 팬들의 뇌리에 남아있음
그리고 1차전이후 내리 4연패하면서 준우승함
비록 준우승에 그친 2000-2001시즌 필라델피아였지만 래리브라운은 감독상 아이버슨은 시즌MVP,득점왕
무톰보는 수비왕,에런맥키는 식스맨상을 받으면서 아이버슨의 필라델피아시절 최고의 시즌으로 기억되고 있음
아이버슨의 위상은 하늘높은줄 모르고 상승함
마이클조던 은퇴후 NBA 최고의 슈퍼스타이자 농구선수 이상의 임펙트를 가진 아이콘이 됨
코트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뛰는 열정적인 플레이와 부상투혼 그리고 그 당시 힙합문화와 길거리농구 일명 '힙훕' 스타일의 농구를 NBA에 유행시키면서 좀 과장하자면 문화 아이콘이라 할 정도의 신드롬을 일으킴
그리고 아이재아 토마스 케니엔더슨,팀하더웨이 같은 대표적인 드리블 기술자들의 간결하고
속전속결한 느낌의 크로스오버 드리블과 차별화 된 지금은 대중적인 드리블기술인 리듬감 넘치고
춤추는듯한 현란한 크로스오버 드리블을 본격적으로 대중화 시키고
팔에 아대끼는게 유행이던 시절에 '암슬리브'를 대유행 시키고 옥수수머리 일명 콘로우 머리를 선수들한테 따라하게 만듬
지금 NBA에서 대부분의 선수들은 암슬리브를 착용함 이게 다 아이버슨이 최초로 유행시킨것!
마이클조던이후 이런 전방위적 임펙트와 유행을 만든 NBA선수는 아이버슨이 유일함
젠틀하고 신사적인 모습을 원하는 NBA에서 인터뷰 자리에 정장을 입고 나와야 했던 그시절
힙합스타임의 의상을 입고 목걸이 주렁주렁 차고 인터뷰하는 아이버슨을 비난하는 꼰대들도 많았지만 아이버슨은 좆까!!!
자기 스타일 고수하면서 젊은 팬들을 열광시킴 그냥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위로하는 그런 수준의 존재였음
하여튼 2001년이후 파이널진출 우승도전엔 실패했지만 꾸준히 최고의 득점기계로
코비,카터,티맥,알렌,피어스와의 맞짱뜨는 득점대결함
화려한 플레이를 계속 보여주면서 최강의 슈퍼스타의 위상을 유지함
하지만 래리브라운이 떠나고 새롭게 변화가 필요한 아이버슨과 팔리델피아는 작별하고 아이버슨이 덴버로 이적함
이때 필라델피아 팬들 난리남 슬픔의 눈물을 흘림
덴버에서 카멜로 엔써니와 역사에 남을 멋쟁이 듀오를 결성하고 1라운드 탈락만 하던 덴버의 새로운 해답으로
아이버슨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기대이하의 성과를 남기고
2008년 11월 3일 디트로이트의 천시빌럽스,안토니오 맥다이스와 트레이드 됨
아이버슨이 떠나고 덴버는 덴버출신의 천시빌럽스와 함께 24년만에 서부파이널에 진출함
덴버에서 3시즌뛰고 떠나고 디트로이트,멤피스(고작 3경기뿐이 안뛰었지만)에서 뛰면서 저니맨이 됨
NBA 마지막시즌 다시 필라델피아로 복귀하고 은퇴함 전성기시절과는 비교도 안될 실력이였지만
팬들은 그냥 필라델피아 76ers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앨런 아이버슨을 보는거 그 자체로 감동의 도가니탕
근데 감동도 잠시...
2010년 2월 22일 아이버슨은 자신의 4살 된 딸 메시아가 아프다고 병간호한다고 휴가를 요청하고 결국 개인적인 문제로 필라델피아와 자연스럽게 이별하고 NBA와도 이별하고 터키리그의 베식타스 팀과 2년간 400만 달러에 계약을 맺고 해외리그에서 뜀
당시 터키에서 뛰는 아이버슨의 모습을 본 팬들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면서 아쉬움을 느낌과 동시에
그래도 터키리그라도 농구하는 아이버슨을 볼수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모습도 보였음
2010년 11월 16일 터키리그 데뷔전에서 아이버슨은 23분정도 뛰면서 15득점을 기록함
전성기 지난 아이버슨이라도 터키리그 정도는 초토화 시킬거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별다른 존재감도 없이 2011년 1월 종아리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고 흐지부지하게 해외리그 생활 정리됨
2013년 10월 30일 필라델피아 홈구장인 웰스 파고 센터에서 공식적으로 은퇴 발표함
은퇴후 래퍼 아이스 큐브가 창설한 3대3 농구리그 BIG 3에서 잠시 뛰기도 했음
은퇴후 선수시절 2억 5천만달러를 벌었지만 그 돈을 다 탕진해서 빈털털이 됐다 파산했다 루머가 있었지만 개뻥임
흑인들 특유의 호미문화로 가족,친인척,친구들 먹여살리는거 때문에 돈 많이쓰고 사치도 하긴 했지만 리복이 아이버슨이 전성기시절
당시 3천만달러 규모의 신탁기금을 들어논게 있어서 노후걱정은 없고
NBA에서도 45살부터 연금받고 돈걱정 없이 살고있음
다시는 볼수없는 최고의 단신 득점왕
현재 브루클린 네츠의 카이리 어빙을 보고 앨런 아이버슨과 비교하는 팬들도 많음
근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카이리어빙이 1인자로 득점왕하고 시즌MVP받고 파이널진출 시키기전까진
아이버슨과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봄
첫댓글 저 필라데피아 검정 저지 입은 아이버슨은 진짜 멋지네요
NBA 아이콘...
은퇴하고 나서야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실감됨
조던 앞에서의 크로스 오버를 학교에서 친구랑 정말 침튀기며 이야기 했었는데.........
점점 재평가받는 단신가드죠 저 사이즈로 MVP에 득점왕 4회라는건 ㄷㄷㄷ
요즘 실제 키를 다시 재던데 아이버슨도 다시 재면 170대 후반 정도 되겠죠??ㄷㄷㄷ전성기때도 팬이었지만 생각할수롣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조던이 복귀하면서 끊었던 엔비에이를 다시보게했고 한땐 아이버슨 경기확인과 무한도전이 삶의 낙인 때가 있었는데 추억의 선수네요ㅎ
올여름에 제주도에서 kbl프로농구 시범경기 첨보면서 선수들 기럭지보고 갑자기 팍 생각든게 아이버슨은 말이 안되는 플레이어라는걸 느꼈습니다. kbl선수들 그 장신들도 큰데, nba선수들 키&덩치&파워&운동능력만땅인 괴물들사이에서 득점왕!! 이건 진짜 말이 안되는 생물체예요. 작은거인입니다!!! 아이버슨은 최고입니다!
nba도 연금이 잇엇나요?
제일 싫어하는 선수지만 실력만큼은 끄덕일 수밖에 없는 선수죠
영원한 필라델피아의 아이콘
코트에서 날아다닌다는 느낌이든 첫 선수
아간지형ㅠㅠ느바에 입문하게 되었던..어렸을때 답형 크로스오버를 보고 미친듯이 연습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5번 사진에서 눈에 독기가 완전 살벌 ㄷㄷ~ 조던이 수비하는 사진이랑 코비가 수비하는 사진이 진짜 멋있네요~
20대 시절엔 열광했고 20대 후반엔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이버슨같은 스타일이 조직생활에 얼마나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됐지만 30대 들어선 그가 왜 그럴수밖에 없었는지, 그게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더라구요. 단 한명의 인물이지만 인간을 다각도로 보는 법을 배우게 해준거 같아요.
엄청난 선수죠~ 대단 대단~!
그리고 글에서 엄청난 애정이 느껴집니다~ ㅎㅎ
제일 좋아하는 선수. 군대에서 상병때 내가 nba입문시킨 고참에게 아이버슨 얘기 맨날 하다가 우연히 덴버경기 봤는데 진짜 너무 어거지로 플레이 하는거에요. 15초정도 혼자 볼끌다가 억지슛 하거나 죽은 패스하고.. 선임이 너가 좋아하는 아이버슨 내스타일 아니라고.. 창피했음ㅠㅠ 거의 1년만에 시청했던건데.. 그경기 나헤라가 겁내 허슬 했던게 기억이 남..
농구를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