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토요일에 친구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웬만해서는 토요일은 "가족과 함께" 가 우선이긴 하지만
더러 예외가 있기는 하다.
그렇게 예외 속에 맞는 친구들, 아주 한참 만에 만났어도 언제나 어제 만난듯한 초딩 친구들이다.
그렇게 초딩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한담을 나누고 원하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내어 인사아트센터로 달려갔다.
여고 동창생 남편이자 설치미술가인 최익규님의 개인전 "한 땀, 한 땀"을 들여다 보기 위해,
약속시간에 기다리는 또다른 여친을 위해 인사아트센터 2층 충북 갤러리도 찾아들었다는 말이다.
물론 인사동이니 눈요기 할 것도 많고 잠시 잠깐 한눈을 팔면서 소소한 행복으로 젖어들 아이쇼핑은 당연지사요
눈에 확 들어오는 상품이 있다면 망서리지 말고 구입해야 하는 법.
오늘도 예외 없이 그 과정을 즐기던 순간에 보너스로 초딩친구에게 옷을 선물받았다...고마운지고.
여행시에 착용하고 예쁜 사진 한장으로 기록해달라는 부탁과 함께....물론이다.
암튼 잠깐의 일탈과 행복을 누리며 들어선 갤러리에서 우선 눈에 들어오는 작품을 보면서는
작가의 고독과 외로움이 온 몸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3년 여에 걸친 작업은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일궈낸 작가의 결정체요 작가의 혼이었음을 직감했다.
늘 예술을 접한다는 것은 어느 종목이나 쉽게 대하면 아니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시류에 따라 흔들리거나 대중적 인지도에 의해 잣대를 들이대거나
자신이 느끼는 바를 치장형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모든 작품이 작가의 의도나 평론가의 평과 독자들의 시선으로 나뉘게 되어
작품을 대하는 태도나 방법, 의도에 따라 다양한 작품의 의미가 존재하기 마련이니
각자의 입장에서 오로지 편견 없는 감각적인 느낌과와 시선만이
작가나 작가의 작품을 존중하며 재해석하게 되는 것 일테니 말이다.
어쨋거나 최익규 작가의 "한 땀, 한 땀" 작품을 보는 순간 작가의 "무의미한 무한한 반복"은 의미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 한 땀 , 한 땀이 엮어내고 지어내는 세상은 아무리 고달프고 지난하였더라도 정교함 속에 고요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 느낌을 받는 순간에 그 안에서 작가의 우주를 만나고 세계관과 인생철학이 온 몸으로 전해지는 듯한 전율이 일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 작가의 첫 개인전 설치미술을 대했을 때와 시선과 느낌이 달라졌다.
작가도 변했고 그를 바라보는 쥔장의 시선도 달라졌으며 그 시선 속에 이번에는 그의 "초월주의"가 들어왔다.
게다가 미리 전자도록으로 그의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현장에서 바라본 시선과 현장감은 또 많이 달랐다.
예를 들면 "자화상"이라는 작품을 전자도록에서 만났을 때는 마음이 저릿저릿하고 아파왔다.
어쩐지 그의 작가적 투혼과 열망,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느껴져서 아파왔던 마음이 갤러리 현장에서는 완연히 달랐다.
그냥 이해가 되었다....였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현실 속에서 부딛히는 끝없는 "왜?"는 그의 존재이유와 정체성과 삶의 조각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그저 평행선을 이루며 흘러갈 뿐이라는 사실도 알게 한다.
와중에 설치미술이라는 이름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는 작가의 처연한 노력과 세상에 대한 항변조차도
결국 아무 의미 없음을 되뇌이는 순간, 무의미한 반복이 주는 평온함과도 타협을 하게 한다.
그러나 끊임 없는 자아세상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조차 사치이리라 싶은 순간에도
작가는 세상과 타협하기 싫어 하지만 저 근간에는 대중성과 타인의 인정에 대한 목마름과 욕망이,
꿋꿋하게 제 세상으로 진입하여 나아가고픈 열망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도 알겠다.
작가의 작품을 보노라면 3년 여의 인고의 세월을 얼마나 정교하게 엮고 싶었는지와
더러는 자신의 주관적인 작품 세상 속으로 들어와 자신과 일치감을 느껴줄 사람이 얼마나 될 것 인가에 대한 기대와
그에 반하는 반대급부적인 상실감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렇게 세상은 줄기차게 돌아가다 멈추고 다시 돌다 서기를 반복하는 일정한 패턴을 깨달은 듯하다.
산다는 것이 이해와 맞물려 돌아가는 듯 하다가도 별 것도 아닌 듯이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지만
끝내 "왜?"를 반복하며 살아버리겠노라는 작가의 세상은 그래서 더 고독하고 외롭고 이해받기 어렵다를 반복하고 있고
그런 무의미한 반복은 그 또한 겪어내고 시련의 세월을 거쳐와 이제는 당당함으로 단련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초월 의지로 자연 앞에 미미한 존재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끝끝내 도달할 자리 끝에 그가 열망하는 세상이 안전하게 정착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작가의 정신세계와 현실의 이분법은 이제 없는 듯 보였다는 말이다.
작가는 그저 모든 것은 습관처럼 공존한다는 것과 무의미한 반복은 결국 결이 같음을 알게 된 듯하다는 말쯤 되겠다.
그런 작가는 이미 평정심을 온몸으로 내뿜으며 편안의 중심에 서있다.
세상이 던지는 눈초리 따위는 두렵지 않다.
그저 자신의 작품 세계 속에 자신이 존재한다를 드러낼 뿐, 그렇게 작가는 나홀로 제길을 간다.
앞으로 계속 그는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계속 전진할 뿐이겠다.
아니 어쩌면 "작품"이라는 안전망을 방패삼아 현실과 마주할 용기를 버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 이겠다.
무튼 작가는 그렇게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쥔장이 보는 최익규 작가의 세계는 그저 세상의 잣대로 보여질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미 다른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작가와 많은 공감과 교감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누군가 제 자리에서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오르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적이던 연예인이던 대중적이던 문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
가고자 하는 길에 스스로 노력하여 혼자만의 이상과 열정과 애정만으로 자리매김을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일 터.
본인의 노력이나 신념, 능력, 타고남이 우선인 듯 하여도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서게 된다는 것.
뒤에서 받혀주거나 끌어주는 사람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나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는 것은 상식일 터.
그런 그들을 위한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듯 작가에게 가정과 병행하며 오로지 작품으로 세상에 도전장을 낸다는 것도 또한 보통 일은 아닐 듯하여
최익규 작가의 가족과 주변인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작가가 가고자 하는 길에 힘이 되어준 많은 이들이 있어
작가는 고단하고 힘들어도 버텨 나갈 힘을 얻게 될 터이니 말이다.
하여도 필부와 예술가의 사이, 본래 가까운 이들에게 인정받기 어려운...
첫댓글 에효 고되고 된
예술가의 길~!
그곁에서 같이 살아낸 친구
초선의 삶도 고되 보이긴
마찬가지인듯 하여 쨘~하더
이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누구 하나 제 길을 간다는 것은
상대적인 배려와 희생 끝에 이뤄지는 것 이라는 말.
통화하며 애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