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이 물음은 삶이 질척거리다못해 나태의 나락에 빠져버린 사람을
죽비처럼 내리친다. 그리고 삶이 방향을 잃은 채 이리저리 방황하고 표류하는 사람을 흔들어 깨운다.
나아가 비계처럼 쌓인 자만과 오만을 사정없이 찌르는 삶의 송곳같은 물음이다.
언뜻 보기엔 '기억'이란 단어 때문에 과거 지향적인 물음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은 너무나
현재진행형이며 언젠가 다가 올 미래와 결부된 물음이다. 그래서 두렵기까지 한 물음이다. 제대로
살고자 한다면 누구도 이 물음을 피해갈 수 없다.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피터 드러커는 13세 때 김나지움(Gymnasium)에서 필리글러 신부의
수업 시간에 "나는 (죽어서)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물음과 처음 마주했다. 당시 드러커와
그의 급우들은 칠판에 써진 이 물음 앞에서 어리둥절해했다. 필리글러 신부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러분에겐 이 물음이 낯설겠지만 마흔이 지나 쉰 혹은 예순 고개를 지날 즈음엔
이 물음이 삶의 송곳처럼 다가올 겁니다."
드러커와 그의 동창들이 김나지움 졸업 60주년을 기념해 다시 모였을 때 일흔 살도 훌쩍 넘긴
그들 중에서 누군가 필리글러 신부를 떠올리며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물음이 삶의
송곳이 돼 오만하고 나태해진 자신을 찔러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모두 공감했다. 드러커 역시 이 물음을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화두처럼 껴안고 산 덕분에 아흔 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삶의 열정과 긴장을 늦추지 않은 지혜로운 현역일 수 있었다.
노벨상의 창설자인 알프레드 노벨 또한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물음이 삶의 송곳이 돼
그의 인생을 막판에 송두리째 뒤집어놓았다. 1895년 11월 27일 노벨은 미리 쓴 유서를 생전에
전격 공개하며 자기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의미 있는 상을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노벨이
이렇게 마음먹게 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그가 언론의 오보로 인해 살아서 자신의 부음 기사를 미리
봤기 때문이었다.
유서를 공개하기 7년 전인 1888년 알프레드 노벨의 친형 루드비그 노벨이 프랑스 칸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당시 한 신문이 이것올 알프레드 노벨의 사망으로 혼동해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라는 제목의
부음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를 본 알프레드 노벨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총 350개 이상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고 폭탄 제조 공장과 탄약 제조 공장을
포함해 90여 개가 넘는 사업체를 거느린 당대 굴지의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노벨은 자신이 평생
독신으로 고투하며 살아온 삶이 결국 사람들에게 '죽음의 상인'으로밖에 기억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접하고서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7년 동안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결심했다. '죽음의 상인'이 아니라 '인류에 수여되는 최고로 가치 있는 상'의
창설자로 기억되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던지기로 말이다. 삶의 송곳 같은 물음이 장쾌한 삶의
역전극을 연출한 셈이었다.
결국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삶의 송곳 같은 물음이 미래로의 길을 새로 뚫는다.
그 물음은 끊임없이 지나온 길을 성찰하게 만들며 스스로 '진정으로 기억되고 싶은 모습이 되기 위해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이제 저마다의 후반생에서 정직하고 단호하게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질 시간이 왔다.
- 정진홍 저, '남자의 후반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