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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행사를 맡기라
잠 16:1-8
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잠 16:1-8 / [사람의 계획은] 사람이 온갖 계획을 다 세워도 그 계획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2) 사람이 하는 일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여도 여호와께서는 속마음을 헤아리신다. 3) 일을 성사시키는 분은 여호와이시니 하려는 모든 일을 여호와께 맡겨라. 4) 여호와께서 그렇게 지어내셨으니,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쓸데가 있는 법이다. 못된 짓만 벌이면서 살아가는 자들도 재앙이 내리는 날 살아온 대로 벌하시려고 그냥 놔두셨다. 5) 남을 우습게 여기며 저 잘난 멋에 사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역겨워하시나니, 스스로 벌인 짓은 그대로 되받는다. 6) 이웃을 따뜻하게 아끼고 진실하게 대하면 허다한 허물도 용서받으며, 여호와를 참으로 모시고 살면 불행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7) 하는 일마다 여호와를 흐뭇하게 해드리면 원수까지도 가까운 이웃이 되게 해주신다. 8) 바르게 살면서 적게 벌어 들이는 것이, 남 등치고 짓누르며 속여서 많은 재산을 모으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라.
본문은 사람의 경영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 이루어지고, 어떤 경우에 이루어지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영이 이루어지기 위해(1-4) 사람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세웁니다. 수입과 지출을 따져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경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경영을 잘 한다고 해서 원하는 목표를 다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이루어주심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심령이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다 알고 계십니다. 겉으로는 “이번 일이 잘 되면 헌금 많이 할거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진실한 마음, 순전한 마음으로 하는 고백이 아닐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셋째,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가장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맡기다’라는 말은 ‘옮기다’라는 뜻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 놓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경영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악인을 통해서도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쓰심에 적당하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경영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5-8) 사람이 경영을 아무리 잘 해도 일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교만의 원조는 마귀입니다. 그 근원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죄를 품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 근심이 되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표 설정을 하기 전에 우선 자신의 행위를 살펴야 합니다. 넷째, 공의롭지 못하고 욕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성공이나 경영이 이루어지는 것이 반드시 소득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의롭지 못한 방법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고 한들 그것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성공은 과정의 아름다움을 동반해야 합니다.
적용: 경영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신앙적인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실천하나요?
예언자는 말 할 수는 있지만 성령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들의 언어는 아름답지만 심령에 불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신비를 제시하지만 하나님은 신비 속에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십니다. 그들은 계명을 전달하지만 하나님은 지킬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들은 길을 보여 주지만 하나님은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외적 필요에 목말라 하지만 하나님은 내면에서 일깨우십니다. 정원에 물을 대지만 하나님은 식물이 자라나게 하십니다. 하지만 주여, 그들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사랑을 동반한 지식과 순종하는 믿음을 보이게 하소서.
< 설 교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잠언 16:1~9 / 김준범 목사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 16:3)고 하셨습니다(잠 16:9,33 참조). ‘행사’라는 것은 “행위(deeds), 일(work), 모든 노력과 수고”를 말합니다. “너의 일과 너의 삶, 너의 모든 노력과 수고를 여호와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것저것을 계획하고 경영하지만 사람의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많은 것을 계획하지만 사람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다”(1절)고 하셨고,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한다”(9절)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이것저것을 계획하고 경영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람의 계획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1절)고 하셨고,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시니라”(9절)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진로나 결혼, 자녀의 출산과 양육, 사람의 살고 죽는 것, 어느 것 하나 자기 계획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말도 우리가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사람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사람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되는 줄을 알고, 오만하고 허탄한 자랑을 그치고(약 4:13-14),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약 4:15 참조).
우리의 계획과 경영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인해 우리는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계획하고 소원하는 대로 안 되면 큰일 나는 줄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우리 계획한 대로 했다가 큰일 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6:25)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짧고 악해서, 인간의 계획이란 언제나 불완전한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경영, 우리의 기대와 우리의 소원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경영에 우리 자신을 맡기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맡깁시다.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천직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여, 충성스럽게 일하라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의 경영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하나님이 일을 이루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고 아무 것도 계획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고 게으르게 행동해도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겨주신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해 주신 일이니까, 자기의 소명으로 알고 성실히 그리고 감사히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천직으로 알고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이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본연의 일을 아주 소중하게, 고귀하게, 신성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자기 일은 시시하게 생각하고, 남의 일은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은 시시하게 생각하고 허황된 꿈만 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다고 하셨습니다(잠 12:11).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우리 본연의 위치가 있고 우리 본연의 일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입니다. 각자에게 맡겨주신 본연의 일이 있는데, 바로 그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 언제까지 그 일이 주어질지 모르고, 언제 우리의 본향으로 부름을 받을지 모르는 우리인 것을 알고, 지금 자기 본연의 일을 열심히 감당해야 합니다. 각자에게는 소명이 있고 자기 위치가 있으니, 최선을 다하여 자기 위치(포지션)을 잘 지켜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천직인 줄 알고 후회할 것이 없도록 충성스럽게 감당합시다.
자기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는 자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일해야 한다
우리의 일을 열심히 하되,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서 모든 일을 처리해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는 것입니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8절). 의롭게 나가다가 적은 소득을 얻는 것이, 불의하게 나가다가 많은 소득을 얻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만 많이 벌고 좋은 학교 가고 많이 움켜쥐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황금만능주의입니다. 성경은 불의한 방법으로 많은 재물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적은 소득을 얻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도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군자의 미덕이요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대의와 가치를 지킬 수 있다면 가난하게 되더라도 그 도로 만족하여서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의 지혜가 이보다 못합니까? 아무리 많이 움켜쥐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복주심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악으로는 굳게 서지 못합니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잠 12:3). 하나님은 악한 행동을 미워하시는 공의의 왕이십니다(5,12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면서 우리의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삽시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라
우리의 모든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자들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7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나머지 일을 처리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원수라도 화목하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맡기고 사는 사람은 소득이 적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더 바랍니다. 하나님의 복주심을 더 크게 여기고 더 바라기 때문입니다(8절). 이것이 참된 경건이고 참된 신앙입니다.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잠 16:15)고 하셨습니다. 왕이 기뻐하고 왕이 인정하면, 왕이 우리를 높여주시고 우리의 필요한 것을 왕이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께 맡기는 것은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맡기는 것은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결과를 떠나서 무엇이 최선의 신앙적 결정이 될 것인지만을 따질 뿐입니다. 최선을 다해도 어떤 때는 그 결과가 반드시 우리가 믿고 기대했던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3,9절). 일의 결과들이 우리가 당장 바라고 기대하는 것과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니, 인간이 오만하게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악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4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고 그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사 55:8,9). 우리는 에스더처럼 최선의 신앙적 선택을 하고,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우리의 계획과 소원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안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기고 나갑시다.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바라고 그를 신뢰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인도해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친히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3절)고 하셨습니다(시 37:5-6 참조). 이것이 신자가 가진 확신이고 담대함이고 위로입니다.
인생 경영의 지혜
잠 16:1-9 / 송원영 목사
오늘 읽은 말씀에 '경영'이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잠15:22절에는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된다."고 말합니다.
잘 아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전형적인 농사꾼이었는데 땅콩 농사로 돈을 벌었는데 한 친구가 농기계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기술과 자본을 서로 투자하여 사업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회사의 규모가 비대해지자 이제까지 주먹구구식으로 경영하던 방식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빚이 얼마인지 총매출액과 자산규모가 얼마인지 순 이익이 얼마인지 파악이 되질 않습니다. 합리적인 경영을 이루지 못해 누수현상이 일어나 탄탄한 기업이 하루아침에 도산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경제학 이론 중에 경영계획( business planning)이라는 용어를 자주 씁니다. 경영계획은 경영의 합리성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간이나 조직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지 않으므로, 그 행동에는 불확정성(不確定性)과 위험이 따르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목표달성을 저해하게 만듭니다. 불확정성이나 위험을 줄이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합리적인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영환경을 분석하고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경영 성과를 저해하는 요인 무엇인지 면밀히 검토하여 두 가지 이상의 대체 방안을 연구하여 대안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영계획은 합리성 향상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이 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경영이라는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장이나 중역들이나 생각할 문제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하고는 거리가 먼 단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정을 이끌어 가는 데도 가정 경영이 필요합니다. 가정 경영이 안 이루어지면 효과적인 가정 운영을 이룰 수 없습니다.
흔히 월급쟁이들이 겪는 고초는 봉급을 타서 이리저리 쓰다보면 보름도 안돼서 바닥나 버릴 때가 있습니다. 가정 경영을 이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경영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인생경영 계획이 없다면 그 사람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도 경영이 필요합니다. 본문 말씀에는 세상의 그 어떤 경영보다도 신앙생활의 경영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이 이를 잘 뒷받침해 줍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사람들이 여러 가지 경영하고자 하는 계획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경영의 실질적 Oner는(경영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경영이라는 말이 약 30회 정도 나옵니다. 공동번역이나 영어 성경상의 의미로는 △생각하는 것 △결정하는 것 △계획하는 것 등을 지칭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결정하는 것들은 모두가 다 경영에 속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경영자인 셈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경영을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처럼 신화를 창조하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갖고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경영의 응답이 여호와께로서 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미숙한 경영자 일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절대 권한을 가지고 계신 최고경영자 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의 경영을 폐하기도 하시고 또 일으켜 세우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계획과 경영에 있어서 최고의 경영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뒷받침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경영 환경을 개선하라
아무리 좋은 계획과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고 경영을 저해하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인생 경영, 신앙 경영에 있어서도 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경영 환경 개선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장벽을 허무는 일입니다. 최고의 경영자이시고 내가 경영하는 모든 일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실 하나님과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의 경영은 실패하게 됩니다.
본문 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경영환경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5절에도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 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느니라."
생각해 보십시오 대기업의 회장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미움을 받는 사원이 있다면 그 사원의 계획이나 입안을 받아 주려 하겠습니까?
우리는 6월 달에 지방 방백을 선출해야 하고 연말에는 통수권자를 선출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유능한 사람인가를 말하기 전에 얼마나 청렴한가를 먼저 따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올바른 경영의 지혜를 가진 성도라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본문 말씀에는 경영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올바른 경영을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경영에 대한 말씀이 병행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절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내 속에 있는 죄성을 추방하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인자와 진리 즉 사랑과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씻어지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 안에 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죄를 고백하여 죄를 멀리하게 됩니다. 하나님 가까이 섬기면 죄와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의 경영권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과 수고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을 이루리라."
우리는 인생의 경영자가 되는데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죄성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바 죄를 행하는도다."라고 탄식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죄성이 인생의 경영권을 올바르게 이끌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향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죄성과 연약성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넘어지고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명암이 엇갈리는 두 연예인의 행적을 보면서 인생 경영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연예계에 유승준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이 가수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고 국내에 들어와 10대들이 열광하는 댄스 가수로서 폭팔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술과 마약과 담배에 손을 댔던 과거를 참회하는 간증은 방황하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문화관광부에서는 그를 금연 홍보대사로 세워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예인들에게는 큰 걸림돌인 병역의 의무가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는 단언하기를 떳떳하게 군 복무를 마치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군 훈련 입대 일이 가까워지자 미국에 들어가 미국 시민권을 받음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게 되었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은 약속을 저버리고 얕은꾀를 쓰는 연예인은 국내에 받아들여서는 안된 다는 여론이 들 끌었습니다. 결국 국내에 입국하려했던 유승준은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해 한국에 들어와서 연예활동을 할 수 없는 매우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비슷한 형편에 처했던 차인표라는 탈렌트가 있습니다. 그도 역시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 생활을 하다가 본국에 들어와 연예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 복무기간이 다가오자 그는 미련 없이 머리를 깍고 병영에 들어가 훈련을 받고 현역 군인으로서 복무를 다 마치고 제대를 하였습니다. 2년 2개월이라는 군 복무기간으로 인하여 인기를 되찾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그는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 받는 중견 탤런트로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미국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007 영화에 북한 장교로 출연할 것을 제의 받았습니다. 이는 큰 행운으로서 세계적인 배우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대본을 검토해본 차인표씨는 북한과 우리나라의 국위를 저하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고 그 역할을 자신이 해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출연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에게 찬사를 보내고 인터넷을 통해 차인표를 칭찬하는 글이 연일 올려졌습니다. 차인표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던 것인데 오히려 이런 일로 시선 집중을 받게 되어 부담스럽다고 했습니다. 차인표씨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그가 크리스챤으로서 아주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칭찬합니다.
차인표씨야 말로 인생의 경영권을 주님께 맡기며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인생의 경영권을 주님께 맡기며 삽니까?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하였는데 내가 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주님께 맡기고 있습니까?
어떻게 내 인생의 경영권을 주님께 맡깁니까? 1절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말의 응답이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째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성도는 말과 행실에 있어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야 하는 데 그렇게 되면 우리 하나님께서 내 인생 경영에 큰 도움을 주십니다. 내가 말과 행실로 그 분을 인정했을 때 그 말에 대한 응답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둘 째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말의 응답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기도 응답임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계획하고 경영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반듯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는 일들 중에서 기도 없이 경영하는 일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큰 경영자가 되려면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 중의 하나가 포용성입니다. 지나치게 편협한 마음을 가지고는 모든 일을 원만하게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향하여 늘 적대적 감정을 가지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거느리고 다니실 때 이미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반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돈궤를 맡은 사람으로서 공금을 횡령하고 있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시고 그를 받아주시고 늘 가깝게 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늘 곁에 따라다닌 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못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들도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천차만별의 다양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다 용납하고 포용하며 살 줄 아는 사람이 유능한 인생의 경영자사 될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유능한 사람이든지 무능한 사람이든지 아니면 잘난 사람이든지 못난 사람이든지 저들 모두가 하나님이 지으신 존귀한 창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의 잣대를 가지고 사람들을 편견의 울타리 안에 가둡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평등하게 대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요나는 편견의 벽을 깨트리지 못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하셨을 때 "원수의 나라에 내 어찌 가서 그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는가?"하며 니느웨의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탄 배에 큰 풍랑을 일으켜 고기 뱃속에 던져 넣음으로 인하여 요나가 회개하고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만듭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을 여기저기 다니며 "만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40일 후에 이 성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3일 동안 외치며 다녔습니다. 요나의 외침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왕으로 시작하여 모든 백성들이 회개함으로 그 성이 멸망당하지 않고 건짐 받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받은 것이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원수의 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요나는 성 밖에 초막 집을 짓고 니느웨 성을 바라보면서 그 성이 어떻게 되나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여 요나의 초막 집에 기어올라가게 하여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나는 박넝쿨 그늘로 인하여 시원하게 되니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벌레 한 마리를 준비하여 박넝쿨 줄기를 갉아먹게 하니 곧 방넝쿨이 시들어 그늘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몹시 심기가 불편하여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으니이다."하고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심지도 않은 이 박넝쿨을 이처럼 아꼈거늘 하물며 이 큰 성읍에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12만 명이나 살고 있고 육축도 많이 있어 내가 이들을 아끼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하시면서 요나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도성 니느웨에 살고 있는 12만 명의 생명을 아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 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보십시오 악인도 악한 날에 쓸데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선한 사람만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다는 겁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지으신 존귀한 창조물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편견 없이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용납하고 관용할 수 있는 마음이 진정한 경영인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소득을 취해야 합니다.
모든 운동경기에 운동 규칙이 있습니다. 규칙을 위반하면 아무리 좋은 경기를 펼쳤다 하더라도 우승할 수가 없습니다.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김동성 선수가 쇼트 트랙서 우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2위로 들어온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가 금메달을 걸게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미국을 향한 반미 감정이 극도로 달했고 젊은 청년들은 미국 제품 안 사기 불매운동까지 벌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매달을 취함으로 국익에 큰 타격과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소득이 무엇입니까? 정직한 경영, 정직한 노동의 대가로 얻은 수입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8절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이 많은 사람이 제왕 노릇을 합니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모으려고 듭니다.
성도 여러분 채소 하나를 먹으려 해도 무공해 채소를 먹으려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재물을 취하는 것은 온갖 불의와 더러움이 가득 찬 재물을 먹으려 합니까?
더러운 재물을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병들게 되고 먹은 것을 모두 토하여 내게 됩니다. 비록 적은 소득일찌라도 의를 겸해야 합니다.
일본이 지금 쓰러지기 직전까지 몰려 있습니다. 10년 동안의 경기 침체로 인하여 국가는 1년 예산의 100에 가까운 빚을 지고 있는데 이 빚을 갚을 길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2차대전의 전범으로서 고통을 안겨준 국가들과 개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독일은 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는데 일본은 지금까지 보상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경제 대국에 걸맞게 베풀며 살아야 하고 다른 국가에 물건을 팔아먹었으면 상대국의 물건도 적당히 사 주어야 하는데 경제 벌레라고 할 만큼 절약하고 이기심 많은 일본 국민들은 도무지 다른 나라의 물건들을 사다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본 은행들이 파산 직전에 있는 것은 적절한 여신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 경제가 야쿠자와 깊숙이 관련되어 있어서 소생하기 힘들다는 말도 흘러나옵니다.
일본은 우상을 많이 섬기고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라고 할 만큼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경영과 소득을 취하면 일본 경제와 같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불의의 소득으로 배불리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적은 소득이라고 의롭고 떳떳하게 얻은 재물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소득이 되게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16:9) 우리의 경영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 져야겠습니다. (16:7)
내게 주어진 인생의 경영권을 지혜롭게 운영하고 행사하려면 매일매일 전능하신 경영자이신 하나님의 자문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잠언 16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잠언 16장 성경주석>
16:1 사람에게. 이 절은 히브리어에서 분명한 대조를 나타내기 위하여 “마음의 경영은 사람의 것이고, 말의 응답은 여호와의 것이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이 잠언의 진리는 발람의 경험에서 예시되었다. 그 탐욕스러운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발락이 주는 상급을 받기로 계획하였지만 그가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노라고 주장한 여호와께서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통제하셨다(민 22~24장). 특히 사람이 하나님을 대변할 때는 말이 주어진다(출 4:12; 렘 1:7; 마 10:19).
16:2 깨끗하여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의 결점을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고, 자기들의 배경과 어려움에서 볼 때 최소한 그들도 다른 사람들만큼은 선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혹은 그들은 여호와께서 의로부터 이따금씩 분리되는 것을 용서하실 것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이 특정한 약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변명할 수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표준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지킬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자기 자신에게 율법이 되어 있는 사람은 그들의 길이 순결하다고 확신한다. 판단의 유일한 표준이 자기 자신인데 어찌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겠는가? 자기의 자만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장 분명하게 말하고,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예시되고 예증된 절대적인 표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성령의 일이다. 오직 인류의 창조주만이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의 마음에 깔려 있는 동기를 아시고, 하늘의 모든 힘을 사용하여 구주의 필요성과 중생(重生)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의 효능을 알려 주고자 하신다(참조 잠 21:2; 24:12; 렘 17:9, 10; 요 16:8; 약 2:12).
16:3 맡기라. 히브리어 갈랄(galal), “굴리다.” 우리는 문자적으로 “너의 길을 여호와께 굴려 보내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시 37:5). 16:3 이루리라. 사람이 자신의 필요를 깨닫고 모든 행동과 결정에 지도와 도움을 받고자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하늘의 능력이 그를 돕고 그가 성령의 감화 아래 결심한 것들을 이루어지게 한다. 그가 이렇게 능력을 입으면 마귀들조차도, 본래 연약하고 우유부단하고 더욱이 교만하고 완고하던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변화를 보고 놀란다.
16:4 씌움에 적당하게. (「제임스왕역」에는 “for himself”[자신을 위하여]로 되어 있음-역자 주). 이 절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창조하신 목적이 마침내 그들을 벌하고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의미하는가?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영원히 고통받게 하려고 지으셨다는 무서운 영벌(永罰)의 교리를 지지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문자적으로 번역된 첫째 구절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그 목적(혹은 대답, 혹은 반응)에 따라 지으셨다”로 해석된다. 여기에서 “씌움”으로 번역된 단어가 15:1과 16:1에서는 “대답”(응답)으로 번역되었다. 이 번역은 성경 기자가 영벌의 교리에 대해서가 아니고 죄가 고통과 죽음을 가져온다는, 사물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이치에 관하여 단순히 말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를 내고 죄를 짓게 되자(전 7:29), 사람은 만물의 마지막 날에 그 자신이 다만 파멸에 적합하게 되었다. 그들의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다시 태어나는 길을 택하는 자들(요 3:3, 7)은 영생에 적합해져서 순결하게 된 세상을 마침내 상속할 것이다(벧후 3:13). 하나님은 각각에 마련된 적합한 운명을-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선택함으로써, 그리고 다른 지상의 피조물들은 인간이 초래한 파멸에 무고하게 연루됨으로써-맞이하도록 모든 것을 지으셨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종말을 예견하시고 그것에 대하여 준비하셨다고 우리에게 확증하신다. 그가 영원토록 고통당하는 것 때문에 하늘을 슬프게 하는, 불멸의 죄인은 결코 없을 것이다(참조 출 4:21 주석).
16:5 마음이 교만한 자.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 교만한 마음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 영적인 자기기만은 가장 위험한 형태의 자만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령께서 필요를 깨우쳐 주지 못하도록 막는 자아만족의 마음으로 영혼을 채워주기 때문이다.16:5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이 표현의 정확한 의미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이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은 피차 손의 힘을 합하여 하나님께 저항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으로 시사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여기에 나의 손을 얹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확인하는 형태라고 믿는다. 마지막 견해는 거의 맞지 않을 것 같은데, 이는 솔로몬의 시대에는 악수가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만한 마음은 결코 무흠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는 것이다(참조 잠 29:23; 사 25:11; 마 23:12; 빌 2:8).
16:6 인자와 진리.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약속과 의무를 이행하는 데 충실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굳게 붙잡는 것은 죄인이 되기를 그치고 하나님의 참된 종이 되는 길이다. 사람이 하늘의 은총을 받는 것은 선물을 드리거나 많은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생애와 사업에 필요한 정결은 없으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사기 위한 희망으로 희생제물을 증가시킨 많은 사람의 태도와는 크게 달랐다(참조 잠 3:3; 14:22; 20:28; 마 22:37).
16:7 화목하게. 비록 야곱과 에서의 경우처럼 여호와께서는 필요하다면 개입하시고자 준비하고 계실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람이 살아갈 때는 하나님이 특별히 개입하시지 않아도 원수들의 적의가 그의 선(善)으로 때때로 진정된다(창 32:6~11).16:8 의. 이 표현은 거룩한 생활과 정직한 거래 중 어느 하나에 대하여 말할 것이며, “불의”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와 반대되는 것을 말할 것이다. 의가 없는 재산은 마음에 평안을 주지 않고, 몸의 건강을 보장할 수 없고, 잘못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을 소유할 때는 만족도 없다. 그러나 의인이 올바른 방법으로 얻은 작은 재물은 충분한 행복의 보상을 가져다주고 시기나 물욕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참조 13:7, 25; 15:16).
16:9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빌려주신 생명으로, 따라서 그분의 허락으로 수행된다. 사람이 계획을 하지만 그의 계획을 이루는 생활을 할 것인지의 여부는 모른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이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장래 계획을 발표할 때 “하나님의 뜻이라면”이라고 말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참조 약 4:13~15). 사람은 장래 활동에 대하여 현명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그런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표준들과 일치되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그것들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율법에 견주어 검토해야 한다. 지도를 받기 위한 기도와 의도된 계획들을 여호와의 뜻에 따라 변경하거나 중단하고자 하는 기꺼운 마음으로 심의가 이루어져야 한다(참조 눅 12:17~20).
16:10 하나님의 말씀. 히브리어 크셈(qesem), 일반적으로 거짓 복술에 대하여 사용되었다(신 18:10; 렘 14:14; 겔 13:6). 여기서는 이 단어가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시사하는 바는 왕이 인간의 지혜 이상의 것으로 영감된 말을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솔로몬의 경우에 이것은 사실이고, 사울과 다윗도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는 증거를 가지고 통치를 시작했다(참조 삼상 10:6, 7; 16:3; 왕상 4:29, 30). 아마도 이 절은 “왕이 인간의 지혜 이상의 것으로 말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들은 결정할 때에 죄를 짓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6:11 여호와의 것. 하나님의 정부의 영원한 원칙이 거래에서 정직에 적용된다(참조 11:1).
16:12 미워할 바니. 왕들은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을 다스리기 때문에 왕의 악은 평민의 악보다 더 나쁘다. 그런 이유로 악한 왕들은 그들의 보좌를 빼앗기고 반면에 의로운 정부는 계속 존재한다(참조 단 4:17; 롬 13:1~6).
16:13 의로운 입술. 선한 왕은 자기 자신이 진실하기 때문에 신하들과 백성 중에서 정직하고 의로운 자들을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긴다(참조 8:6, 7).
16:14 진노. 폭군은 멋대로 권력을 휘두른다. 그의 진노는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왕의 호의를 얻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참조 19:12; 20:2). 전제 군주제를 옹호하기 위한 의도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폭정 아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하여 사람들이 권고를 받고 있다(참조 전 8:2~4).16:15 늦은비. 이 말은 14절과 대조된다. 늦은비를 몰고 오는 구름은 지난 해 가을의 이른비 때 심은 곡식을 자라나게 한다(참조 욥 29:23; 렘 5:24). 이와 같이 왕의 은택으로 보호받는 것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참조 시 72:6).
16:16 얼마나 나은고. 왕의 호의는 지적인 진보보다 더 큰 물질적 번영을 가져오는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면서까지 통치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예속되어 그를 순종할 때는 지혜와 명철은 분명히 위축된다. 여기서 솔로몬이 의도한 바는 금이 은보다 귀하듯이 지혜가 명철보다 귀하다기보다는, 이 두 특성은 사람들이 그처럼 열심히 찾는 금속들보다 얼마나 더 나은지를 가리키고자 한 것 같다(참조 3:14; 8:10, 11).
16:17 대로. 의인의 길은 멸망으로 끝나는 죄악의 길로 들어가게 하는 유혹물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높이 들려진 위치에 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되게 하는 데 관심을 가진 자는 그의 발이 잘못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그가 가는 길을 주의 깊이 숙고한다(참조 잠 4:26; 15:19; 딤후 2:19).
16:18 교만. 교만에 대해서 자주 반복된 권고가 있음에도 각 세대는 사람들이 교만하고 오만해져서 다만 어려움과 수치를 당하는 것을 보여 준다(참조 19절; 11:2; 17:19; 18:12). 이생 동안 내내 교만과 높은 지위를 고수하는 자들도 심판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겸손히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6:19 겸손한 자. 진노의 날에 사라져 버리고 사람을 지켜줄 수 없는 재산보다는 빈곤이 더 낫다(참조 15:17; 16:8).16:20 말씀에 주의하는 자. 첫째 구절은 “말씀에 유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렇게 번역하면 이 절은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긴요한 진리를 진술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주의를 기울이면 그는 지적으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번영하는 데 실패하지 않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다(참조 요 13:17; 약 1:25).
16:21 명철하다. 스스로 지혜를 사용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에게도 지혜는 인정을 받을 것이다.16:21 입이 선한 자. 유쾌하고 매력적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둘째 구절의 진리는 언제나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의 전자 장비에 의해 전 세계 많은 지역을 넘어가는 인간의 음성은 상업적인 업무에서뿐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데도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진 매력적인 음성이 되게 했다(참조 23, 24, 27절; 27:9).
16:22 징계. 히브리어 무사르(musar), 이것은 “징계” 혹은 “징계하는 것”을 의미하고 때때로 그렇게 번역했다(참조 신 11:2; 잠 3:11; 사 26:16; 53:5). 명철은 그 소유자에게 원기와 힘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지만 미련한 것은 미련한 자에게 징계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참조 잠 1:7; 7:22; 15:5).
16:23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아마도 “그 말을 슬기롭게 하고”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혜로운 자의 명민한 말은 듣는 자들의 마음을 끌고 진리를 더 유쾌하게 만든다.
16:24 양약. 선한 말이 달다는 것은 늘 알려져 왔지만 말과 기분과 건강 사이의 명확한 관계는 과학자들이 입증해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 불평하고 적대적으로 하는 말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에게 똑같이 건강에 해를 끼친다. 그러나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은 온몸에 치료를 가져다준다.
16:25 보기에 바르나. 참조 14:12 주석.
16:26 식욕을 위하여 애쓰나니. 사람은 대개 의식주(衣食住)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일에 매진한다. 그 세 가지 필요 중 먹는 것에 대한 필요가 가장 급하다. 사람은 얼굴에 땀을 흘림으로써 자기의 필요를 채운다(참조 창 3:19; 전 6:7; 살후 3:10).
16:27 불량한 자. 문자적으로 “벨리알에 속한 사람”, 즉 “가치 없는 사람.”16:27 악을 꾀하나니. 아마도 악인이 그의 이웃을 빠뜨리기 위하여 구덩이를 파고 그에게 악을 꾀한다는 뜻으로 쓰인 듯하다. 또는 이 구절은 사람이 물을 얻기 위하여 우물을 파듯이 악인도 악을 찾아내기 위하여 판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악인의 말이 불과 같이 태운다고 일컬어진다는 사실은 이 첫째 구절이 악인이 악을 배울 때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에서보다는 그의 이웃에게 악을 도모하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참조 약 3:6).16:28 말쟁이. 중상은 때로 사실이 아니거나 거의 언제나 과장된 것들을 퍼뜨림으로 분쟁을 일으키고 친구들을 적대시하게 만든다(참조 17:9; 18:8).
16:30 입술을 닫는. 문자적으로 “입술을 다무는”, “입술을 물어뜯는” 혹은 “입술을 누르는.” 교활하고 악의에 찬 사람은 너무도 결연하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악한 행위를 계획하기 위하여 눈을 가늘게 뜨고 잔인한 미소를 숨기기 위해 입술을 다물고 있기만 하면 계획된 악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나 진배없다(참조 6:14; 10:10).
16:31 백발. 노인들이 의의 길에 있을 때 그들은 현명한 조언과 선한 영향력으로 그들의 삶의 업적들을 장식한다. 그러나 악의 길을 걸어가기를 고집하는 백발의 남녀들에게는 슬픈 부조화가 있다(참조 20:29).
16:32 용사. 성공적인 군대 지도자들은 언제나 많은 찬양을 받고 큰 인물로 인정을 받아왔다. 그러나 자제는 영광을 받기에 더 나은 자격이다(참조 약 3:2.
16:33 제비. 사람이 제비를 뽑는 것과 같은 절차로 모든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여호와의 바라는 바가 아니다. 결정을 하도록 마음을 지도할 명백한 증거나 적절한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비를 사용하는 것은 마음과 품성을 모두 약화시킨다. 제비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실 때만 쓰여야 한다. 그 외의 상황에서는 영감받은 응답이라고 결코 확신할 수 없다. 유대인들이 제비를 뽑는 방법에는 다소 의문이 있다. “제비”(lot)로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 “조약돌”을 의미하는데, 아마도 돌들이 여러 가지 모양이나 색깔로 사용된 것을 시사하는 것 같다. 이 절은 어쨌든 때로는 예복 흉부의 품에 넣고 흔든 다음 다시 꺼냈던 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참조 수 18:10; 잠 18:18; 행 1:23~26).
하나님과 함께하는 지혜
잠언 16장 1-9절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많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영어의 표현으로는 “Image of God” 이라고 합니다. 포스터나 그림을 보면 작가가 무엇을 표현 하려고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면서 하나님을 많이 닮게 만드시고 인간과 교제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모든 동물 까지 만드시고 아담을 지으셨을 때 아담은 동물을 다스리기는 하여도 아무 동물과도 교제 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다른 어떤 피조물과는 교제를 하지 아니하시고 인간과 교제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닮은 인간을 하나님과 교제 하면서 살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본래의 형상을 찾아 하나님의 주신 지혜를 회복하여 이 땅에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세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마음의 경영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획을 말합니다. 그 계획이 누구를 위한 계획이냐. 하나님을 위한 계획이어야 합니다. 나의 욕심을 채우는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입으로 선포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들으시고 그 말의 응답을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 십니다. 여러분에게 “예” 로 대답하시든 “노” 라고 대답하시든 “조금 기다리라”고 하시든 우리 입의 말을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말의 응답이라는 것”의 깊은 뜻은 하나님께 우리가 말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2.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합니다.
이것을 영어성경은 “Commit your works" 라고 써 있고 원문에 가까운 뜻입니다. 우리말로는 조금 의미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맡기다“ 라는 것의 바른 의미 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내가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물을 판다는 것을 예를 든다면 물이 나올 때 까지 파는 것입니다.
3. 사람이 계획 한 걸음을 인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 십니다.
오늘의 이 구절에서 주목 할 것은 인도 하신다가 아닙니다. “걸음”입니다. 걸음이라는 것은 걸을 수 있는 모든 인간이나 짐승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각자의 자기 보폭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갑자기 날아가게 하시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쩜 축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떨어 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장 아장 걷다가 한 발 한 걸어가는 아이가 이제 축구 선수가 되어 뛰어 다니는 것처럼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그 발걸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한 이것을 방향성을 말합니다. 한 발짝 씩 발을 움직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결론: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런 잠언서를 주신 것이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께 맡기라
잠언 16:3 / 이승선 목사
우리 다함께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잠언 16장 3절입니다.
네 일들을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생각하는 것들이 굳게 세워지리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주께 맡기라”입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우리의 삶 속에는 아주 다양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여러 가지 일들을 대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생각이 너무 많아 잠을 설치기도 하고, 하루 종일 나사가 빠진 것처럼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계획한다든지, 또는 어떤 일들을 걱정하게 될 때 우리는 많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일들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굳게 세워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일들을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애착과 애정과 사랑하는 것들, 아끼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미련 없이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권능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일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았을 때, 그 결과로 우리의 생각하는 것들이 굳게 세워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지고,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 주님이 주신 평강 안에서 생각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이든지 나의 고집을 내세우거나, 나의 주장을 굳게 붙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맡기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앞에 놓인 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는 우리들, 새로운 진로의 시작을 하는 우리들이 주님과 어떻게 동행해야 할 것인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삶
먼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어떤 혜택을 받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함께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예비하는 것과 혀로 대답하는 것은 주로부터 오느니라.
성경은 사람이 마음으로 예비하고, 예비한 것을 혀로 대답하는 일들이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함부로 말하고 악하게 말하는 것까지 다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내가 부족하고 어리석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 올바른 마음으로 어떠한 일들을 예비하게 될 때, 주님께 모든 일들을 맡긴 가운데,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게 될 때, 주님께서 그 모든 과정을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올바른 마음으로 예비된 말들을 하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입에 진리의 말씀을 넣어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함께 9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주께서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느니라.
성경은 사람의 마음이 그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결국 주님께서 그 걸음을 인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의 계획이 쓸모없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계획하거나, 아무 계획도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알아서 모든 걸음을 인도해 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내가 부족하고 어리석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 올바른 마음으로 어떤 일들을 계획하게 될 때, 주님께 모든 일들을 맡긴 가운데,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게 될 때, 주님께서 그 모든 과정을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올바른 마음으로 우리의 앞길을 계획하고 예상하게 될 때, 실제로 주님께서 그 모든 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오직 한 번뿐인 짧은 인생을 살면서, 어떤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까? 어리석고 연약한 내가 입을 열어서 조금 말했을 뿐인데, 주님께서 그 모든 대답을 주셔서 지혜롭게 말하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놀랍고 행복한 삶이겠습니까? 부족하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어떤 일들을 예상하고 계획하여서 조금 일했을 뿐인데, 그 모든 걸음을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면 그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삶이겠습니까? 여러분은 한 번뿐인 짧은 인생을 어떻게 걷기를 원하십니까?
선생님은 입을 열 때마다, 주님께서 넣어주시는 말을 할 수 있기를 사모합니다. 선생님은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진행할 때마다, 내 계획대로 되든지, 아니든지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걸음을 걷기를 원합니다. 선생님은,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다 그렇게 걷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함께 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네 일들을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생각하는 것들이 굳게 세워지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고 순종하고자 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대답을 예비할 수 있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선한 걸음을 계획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들을 주님께 맡길 때, 비로소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입을, 우리의 걸음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들을 주님께 맡김으로써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맡기는 것
이제 우리 함께 과연 자기 자신을 주님께 맡긴 사람의 길이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함께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의 모든 길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나 주께서는 영(靈)들을 다시느니라.
옛날에 어떤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려고 감옥에 갔는데 한 사람도 구원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감옥에는 자기가 지옥에 갈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죄수들마다 자기는 억울하고 감옥에 들어올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무엇인가 잘못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혼나게 될 때, 여러분도 이러한 경험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객관적으로는 사실이지만, 본능적으로, 순간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하고,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정당화하고 변명하고, 또 심지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잘못을 오히려 분석하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 말씀은 사람의 모든 길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 눈에 깨끗하다고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영들을 달아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이 겸손의 영인지, 교만의 영인지, 순종의 영인지, 거역의 영인지 달아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내가 무슨 문제냐고 말할 때, 내 눈에 깨끗하게 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들을 저울에 달아보고 계십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지 아니면 육신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 부드러움, 선함, 믿음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내 말이 맞냐 틀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영들을 달아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 자신의 일을 맡긴 사람은 성령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뜻이 없고 오직 주님의 뜻만 있습니다. 다만 주님께 순종해야 하는 사명만이 있습니다. 그러한 길은 자기 눈에 깨끗해 보이는 길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한 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될 때, 우리의 생각이 바로서고, 우리의 혀가 새롭게 되고, 우리의 발걸음이 달라지고,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자
이제 우리 함께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의 길들이 주를 기쁘게 하면 그분께서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우리와 화목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의 길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입니다. 자기의 일을 주님께 맡긴 사람은 더 이상 자기의 일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의 일을 주님께 맡긴 사람은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길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 그의 원수들까지도 화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과 일들에 주목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주님께서 그 모든 일들을 해결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일들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주목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어떤 공부를 많이 해서, 그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지혜를 짜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길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겠습니까?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에 의하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일들을 주님께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주께 맡긴다는 것은 주님을 믿고 모든 것을 그분의 손에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다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리
오늘 우리는 주께 맡기라는 제목으로 잠언 16장의 말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우리의 일들을 주님께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눈에 깨끗하고, 나의 눈에 문제가 없는 길을 고집하지 말고,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며, 다만 주님께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길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길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영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의 영, 겸손의 영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고,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길을 친히 주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예비하는 것들에 주님께 복을 주셔서, 어리석은 우리가 입을 열게 될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말들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계획하는 일들에 주님께서 복을 주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친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우리와 화목하도록 인도하실 것이고,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선하게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모든 일을 맡기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은 잘못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일들을 주님께 맡기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로 서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일들을 주님께 맡기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오직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복된 발걸음을 날마다 경험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