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vs 추신수, 누가 최고타자일까(최종)[더 스포츠] 국제대회 활약상-누적 스탯 상 이승엽>추신수
6년 터울의 이승엽과 추신수는 각각 영남권인 경북고와 부산고를 졸업했다. 고교시절엔 140km/h 이상을 던져대는 ‘좌완 파이어볼러’였고, 최고의 왼손 거포였으며, 청소년대표팀 소속으로 세계무대에서 맹활약했다. 게다가 둘 다 타자보다 투수 쪽에 관심이 훨씬 많았다.이승엽은 고교 2학년이던 1993년 군산상고와의 청룡기 결승전에서 홈런을 때려내고, 승리투수가 되면서 MVP를 수상했다. 이듬해 캐나다 브랜든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3홈런과 13득점을 기록하며 홈런왕과 득점왕에 올라 우승을 이끌었다. 95년 신인 1차 지명을 통해 투수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지만 코칭스태프의 권유로 타자로 전업하게 된다.추신수도 비슷했다. 1999년 제18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그는 투수로 뽑혔지만 이승엽과 마찬가지로 마운드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한다. 2000년 19회 대회에서는 연장 13회 접전 끝에 미국을 꺾고 우승하는 순간 마무리 투수로 나섰고, MVP와 왼손투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시애틀 매리너스는 추신수를 ‘투수’가 아닌 ‘차세대 외야수’로 스카우트했다.이승엽은 프로 첫해 121경기에 출장해 타율 0.285, 13홈런, 73타점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이듬해 0.303의 타율과 9홈런, 76타점을 기록한 뒤 1997년부터 매년 30홈런 이상을 때려내며 단숨에 한국 프로야구 최고선수로 뛰어올랐다. 1999년 54홈런으로 아깝게 ‘아시아신기록’에 실패했지만 2003년에 56홈런을 기록하며 ‘아시아의 거포’로 자리매김한다.2004년 일본으로 떠난 이승엽은 퍼시픽리그 롯데 마린스 소속으로 타율 0.240, 14홈런 50타점을 기록하며 숨을 고른 뒤 이듬해 타율 0.260, 30홈런, 82타점을 기록하며 30년 만에 마린스를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6년에는 일본 최고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옮겨 타율 0.323, 169안타, 41홈런, 108타점, 101득점으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하지만 부상이 겹치고, 약점이 노출되면서 이듬해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으로 주춤한 뒤, 하라 감독의 신임을 잃으면서 2008년 8홈런, 2009년 16홈런으로 페이스가 떨어졌다. 올해 5개의 홈런만 기록한 뒤 팀에서 방출됐고, 오릭스 버펄로스로 팀을 옮겨 절치부심하고 있다. 요미우리 시절 6억엔(약 80억원)이던 연봉도 1억5000만엔(약 20억원)으로 깎였다.2001년부터 미국에서 뛴 추신수는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타자로 활동했지만 잠재력에 비해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05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지만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출전했고, 2006년 7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됐다. 이적 후 타율 0.297, 3홈런, 22타점으로 가능성을 보였지만 이듬해 부상으로 재활에 몰두한다.하지만 추신수는 2008년 타율 0.309, 14홈런, 66타점으로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3할을 기록한 뒤, 팀의 기대주로 인정을 받다. 2009년 WBC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홈런을 때려내며 대한민국의 준우승에 기여한 뒤, 시즌을 3할(583타수 175안타)에 20홈런, 86타점으로 마치며 20-20을 기록했고, 올해도 20-20을 기록하며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이끌었다.하향세에 접어든 이승엽과 상승세가 뚜렷한 추신수. 현 상태만을 놓고 보면 추신수가 낫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서의 활약상과 누적 스탯을 비교한다면 리그의 수준차를 감안하더라도 아직까지 추신수가 이승엽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6살이나 어린 추신수가 어떻게 이승엽을 극복할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야구팬에게는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