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이동국 관련 기사들 外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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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 오타 있으면 양해를~ * 심한 의/오역 있으면 너그러운 양해/지적을~ * 혹 퍼가실 때는 전/후 출처를.... 이번에는 좀 길고...어려운 부분도 많아서, 문맥상 특별히 맞지 않는 부분을 제외한 부분은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 * 절대복종하는 한국선수들의 특징과, 그런 애제자들을 데려가는 유럽 명장급 감독들로 보는 한국 - 중국 선수들간의 차이 (이 기사는 싸월 회원이신 기자분이 쓴 글 중의 일부입니다.) 제니트의 감독은 2006년 월드컵 한국 감독이었던 아드보카트이다. 월드컵 후 한국감독직을 물러난 그는, 러시아로 가면서 그의 애제자 3명을 데려갔다. 이는 또한 러시아리그가 한국선수들의 또 다른 천국이 되게 했다. 이는 이전에 히딩크가 이영표와 박지성을 PSV로 데려간 일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기회에 대해 중국선수들은 단지 부러워하기만 하는 입장이다. 이런 국면을 만들게 된 것은, 중국선수들의 실력이 한국선수들보다 많이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중국축구계나, 중국축구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한국 축구계들의 인사들도, 한중 선수들의 실력차이는 그렇게 크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신체, 파워, 스피드 등의 하드웨어적인 조건에서는, 중국선수들이 한국선수들보다도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한국선수들은 중국선수들이 가지지 못한 귀한 품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독에 대한 절대 복종이다. 2000년 말, 한국축협 국제국 가삼현 국장이 유럽으로 히딩크를 요청하러 갔을 때, 당시 히딩크는 질문을 했다. "만약 내가 아무 이유없이 한국 선수들에게 나무에 올라가라고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가삼현 국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들은 분명히 올라갈 것이다." 히딩크도, 아드보카트도, 한국선수들의 이런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로 복종하는 태도를 특히 칭찬했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는 월드컵 후 클럽팀을 맡았는데, 낯선 환경에서 자기에게 절대복종하는 심복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강한 실력에다가 자기에게 절대복종하는 한국선수들을 지녔던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한중 선수들간의 차이를 비교할 때, 중국축구계에는 여지껏, 히딩크나 아드보카트급의 세계적 명장이 없었다. 이는 중국선수들의 그런 길을 개척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근 몇년간의 중국 대표팀과 클럽팀들이 요청했던 감독들 중에는, 세계적인 유럽의 명장이 없었다. 아리에 한, 밀루티노비치, 투바 등의 감독이 유럽에 가서 중상류 클럽팀을 맡는 것은, 중국선수들의 해외진출보다 그 난도가 더 높을 지도 모른다. 전 중국팀 감독 스라푸나가 독일로 돌아 갈 때, 에이젼트의 신분으로 독일 클럽에 양천과 시에휘이 등을 추천했었다. 나중에 양천은 자신의 노력으로 분데스리가에 진출해서, 해외진출에 성공한 선수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게 되었었다. 하지만 만약 스라푸나가 분데스리가 중상류 클럽을 맡았다면, 양천 등의 선수들의 성공은 분명히 더 높은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다. http://titan.sports.tom.com/2007-04-26/03PT/00322449.html 중 =================================== * 아래부터는 이동국선수에 관한 줄줄이 기사들~~~ 동일한 여기자의 글들이라서 문장이 길고 시적이어서... 한글로 옮기는 데에 좀 힘들었습니다. 부디 양해를 ~~~ (이동국 전담 여기자인 듯한데...문장솜씨가 괜찮은 듯....) =================================== 보로의 클럽 홀로 들어오면서 이미 이동국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클럽 직원에게 부근에 프랑스 식당을 어떻게 가야하는지 물었다. 짙은 색의 청바지와 회색 티셔츠, 황회색의 구찌 가방을 들고, 노란 머리로 염색한 이동국은 여전히 10년 전의 그 멋진 오빠의 모습이었다. 단지 얼굴에는 젊은 티가 다소 가셨고 비바람을 겪은 후의 성숙한 중후함이 늘었을 뿐이었다. 기자가 클럽 대문으로 들어선 것을 보고 그는 주동적으로 웃으면서 손을 들어 인사했고, 죄송한 듯이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말했다. 이동국은 직원과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했으며, 때때로 지나가는 다른 선수들과도 동료의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를 했다. 많은 선수들은 본 기자를 보고 이동국의 여자친구가 아니냐고 오해를 했다. 그래서 이동국에게 다같이 큰 소리로 말했다. "헤이~ 이동국! 빨리 빨리!" 이동국은 웃으면서 그들에게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감독인 사우스게이트는 기자에게 다가와 이동국을 칭찬해주었다. "나는 이동국의 감독인데 이동국은 매우 재미있다." 이동국과 동료, 감독과의 사이좋은 모습을 보면서, 그가 이 팀에 입단한 지 겨우 2개월여 밖에 되지 않았음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동국의 미소는 히딩크에 의해서 탈락된 후에 4년간을 부상치료로 보냈던 그 이동국을 잊게 했다. 단지 그 때의 일을 꺼내면 그의 얼굴에는 그래도 그 때의 감상이 나타날 뿐이었다. 아마도 그는 젊은 시절 너무 운이 좋았었고 너무 총애를 받았었기에, 나중에 갑자기 일일 안 풀리자 더 힘들었음을 그 역시 인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동국이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훈련장에서 그는 가장 적극적이고 훈련 종료 후에도 그는 먼저 나서서 동료들과 농담도 한다. "이렇게 열심히 해도 몇 분의 출전기회밖에 없다. 나 역시 힘들지만 가족이 와서 모든 것은 좋아졌고 나도 끝까지 잘 버텨나갈 것이다." 그의 눈에는 온통 끝까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같은 날에는 한국의 축구잡지와의 인터뷰도 있었다. 인터뷰 후, 이전에는 사진찍히는 것을 싫어했던 이동국은, 그 날은 한 시간을 내어주면서 사진을 찍게 했다. 이동국은 우리를 잘 이해해주었다. "사실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모두들 힘들지 않겠냐." 인터뷰 후 그는 예의바르게 기자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후 자신의 자동차인 현대자동차로 갔다. 잉글랜드에 와서도 이동국은 한국의 현대자동차를 이용한다. 그는 그것은 자신의 습관이라고 말했다. 이동국의 뒷모습을 보면서 주변의 한국기자들은 감개를 느끼며 말했다. 이동국이 변했다고, 예의바르고 신중해졌고 겸손해졌고 진실(성실)해졌고 자신감도 생겼다고, 아마도 이는 한 남자가 풍상의 고초를 겪은 후의 성장의 탈바꿈일 지도 모른다고.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동정하지 말고 축복을 생각하자. 그가 이 곳에서 정말로 자리를 잡고 다시 한 번 월드컵 무대에 서기를 바란다. 또한 그가 말한대로 잘 생활하기를 바란다. http://2008.sports.tom.com/2007-04-26/03LI/00442160.html 중 * 참.... 이동국선수도 굴곡의 축구인생이지요~ 이제는 그 열매를 맺어나갈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 중국에 대해서 말하자 이동국은 감정이 충만해졌다. 매번 중국팀과의 경기에서 그는 좋은 플레이를 했었다. 이것은 또한 그가 대표팀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기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역시 다소 난처한 듯이 쑥스러워하면서 말했다. "중국팬들은 모두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가? 당시의 순간들은 나 역시 잊기 힘들며, 바로 나의 축구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이며 중요한 기억들이다." 1999년 당시 갓 20세였던 이동국은 이미 한국 올대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축구 예선전에서 그가 이끄는 한국팀은 거센 기세로 순조롭게 9강대회에 올랐음을 그는 정확히 기억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서 그가 가장 그리워하는 중국선수는, 이동국과 마찬가지로 명성을 떨쳤던 중국올대의 우상급 공격수 장위닝이었다. 비록 과거의 일이라서 이동국은 장위닝의 이름을 말하진 못했지만, 이동국은 장위닝의 근황에 대해서 매우 알고싶어했다. "그 공격수는 참 잘 생겼었다. 그는 매우 뛰어난 공격수였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축구를 하는가?" 이동국은 당시를 매우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중국 올대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나는 마크가 없는 상황에서 동료의 코너킥을 받아서 득점을 해서, 한국의 중국에서의 경기가 1:1이 되는 것에 도움을 했었다. 비록 장위닝도 골을 넣었지만 한국은 올림픽에 나가게 되었었기에, 그 때의 경기는 내가 이겼었다." 이동국이 가장 좋다고 여기는 중국선수는 리티에이다. 그는 리티에는 절대적으로 중국 최고선수 중의 한 명이라고 여기며, 한일월드컵때나 그 후 에버튼에서 모두 매우 빛나는 활약을 했다고 했다. 현재 리티에가 셰필드유나이티드의 2군에서도 기회를 못잡고 있을 알게되자, 이동국은 잠시 감상에 잠기는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축구선수의 생애에는 부침이 있는 법이다. 힘든 시기를 벗어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팬들은 그런 것들은 잘 알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왕 축구를 직업으로 선택을 했고, 그 말은 곧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모두 선택했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앞으로 언젠가 이동국은 리티에와 다시 한 번 경기를 뛰고 싶어하길 바랬다. "리티에는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중국선수이다. 체력이 좋고, 말을 아끼는 편이었으며, 경기장에서는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리티에같은 선수와 경기장에서 다시 한 번 함께 경기를 하고 싶다." 순지하이에 대해서 말을 하자 그는 웃기 시작했다. "그 선수도 괜찮은 선수이다. 맨시티에서도 괜찮은 플레이를 하고 있다. 나는 그의 많은 경기를 봤는데 그는 줄곧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래된 친구에 대한 감상평을 하는 듯한 기색이 엿보였다. 정즈에 대해서 이동국은 솔직히 말했다. 함께 경기를 많이 해보지 못해서 정즈에 대한 이동국의 인상은 EPL 입성 후의 인상이 훨씬 더 많았다. "정즈가 EPL에서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고 들었다. 현재 중국선수들은 정말로 갈수록 대단해지고 있다." 올대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와 함께해오는 중국선수들에 대해 이동국은 감명깊게 말했다. "비록 모두의 길은 다르지만, 모두 평탄하지는 않았다. 이전의 아시아, 현재에는 또 유럽에 왔고, 이후에는 또 다시 아시아에서 다시 상대선수로 만날 것이다." 이동국은 심지어 이런 농담도 했다. "언젠가 나와 그들과 어떤 팀에서 동료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http://2008.sports.tom.com/2007-04-26/0480/86323421.html 중 =================================== "한국의 전설에 따르면, 부부가 전생에 10년을 수도하면 후생에 쌍둥이를 얻는다고 하는데 지금 하늘이 은혜를 베풀어 내 부인이 쌍둥이를 임신했다." 이동국은 행복하게 말했다. (축구)사업적으로 이동국은 빛나는 순간, 시련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가 가장 감사하는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이다. 이제 곧 태어날 아이들, 그 아이들은 그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있다. 한국 기자들은 모두 ,모든 한국선수들의 아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안정환의 아내가 아니라 이동국의 아내라고 말한다. 이동국의 아내 이수진씨는 미스코리아 진 출신이며, 하와이에서 자라난 한국인이므로,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이동국과 그녀는 이미 10여년을 함께 했지만, 10년 전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될 때의 이동국은, 꽃밭에 둘러싸여있던 빛나는 스타였다. 수많은 여성팬들과 축구팬들, 수많은 찬사에 둘러싸였던 이동국이었다. 비록 두 사람은 빠르게 연인사이로 발전했었지만, 당시의 이동국은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와 같아서, 소중함을 몰랐었고 두 사람은 헤어졌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동국을 사랑하는 이수진씨는 묵묵히 헤어진 사실을 받아들였고, 친구의 신분으로 멀리서 이동국을 바라보았었다. 2002년 한국 전체가 축구에 열광하던 때, 이동국의 축구인생은 오히려 인생의 가장 깊은 골짜기로 빠져들었었다. 한국이 경기를 거듭할수록 용맹해짐에 따라 이동국도 그에 따라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갈수록 멀어져만 갔었고, 이동국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도 그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었다. 당시 이동국은 매일 술로 근심을 풀었고, 모두가 그를 떠났을 때 이수진씨는 오히려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동국은 그 당시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 이동국이 취해서 어지럽게 구토를 했을 때 그 모든것을 치워주었고, 그의 숙취해소를 위해서 설탕물(꿀물)을 내어왔던 것도 그녀였고, 그가가 가장 힘들었을 때 묵묵히 그의 옆을 지키며 눈물을 닦으며 그를 위해 수건을 전해주던 것도 그녀였고, 그가 절망했을 때 끊임없이 다음 번이 있지 않냐고 말했던 것도 그녀였다. 그녀의 격려로 이동국은 점점 절망에서 벗어났고, 그들은 다시 함께 하게 되었다. 2004년 그들은 결혼을 했다. 하지만 운명은 다시 한 번 시련을 주었다. 2006년 월드컵 전에 이동국은 부상을 당했고, 2번째로 월드컵에 참가하려는 꿈은 다시 한 번 무너졌다. 그 때도 이수진씨는 이동국의 가장 큰 위안이었다. 그녀로 인해 이동국은 극도의 실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2007년 초, 이동국은 부인의 동행하에 EPL의 보로팀을 자신의 축구인생의 새로운 기점으로 선택했다. 이 곳에서 그는 더 이상 어려운 독일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부인의 유창한 영어실력이 이동국의 EPL 생활의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에 부인이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것이다. 부인은 늘 남편에 대해 말한다. "조급해하지 말고, 1분을 출장하더라도 평정한 심리를 유지해요." 훈련 후 그는 부인과 함께 쇼핑센터에서 쇼핑을 했다. "내가 부인을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부인이 나를 데리고 다닌다고 해야 맞겠다. 비록 이 도시는 작지만 그녀가 가장 잘 하는 것은 바로, '무료함 중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을 잘 한다는 것이다." 부인에 대한 말을 하는 이동국의 얼굴에는 행복이 충만했다. 하와이에서 자란 이수진씨의 영어는 일류수준이다. 그녀는 어떤 이탈리아 음식이 맛있는지, 어떤 커피가 가장 맛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 밖에, 그녀는 이미 이웃들과의 관계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웃들이 그들에게 직접 만든 간식도 줄 때도 있다. 그 둘은 심지어 이 작은 마을의 모든 강아지들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었을 정도이다. 이동국은 말했다. "감독이 버리고, 팬들이 떠나고, 부상을 당하고, 클럽마저 부진해도, 나의 모든 것이 편안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가장 큰 정신적 지주가 바로 가족이라는 점 때문이다.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서, 나는 부인이 말했던 '다음 번'을 이루어낼 것이다. 부인과 아이들이 2010년 월드컵에서의 나의 모습을 보게 할 것이다." http://nba.sports.tom.com/2007-04-26/0480/00773050.html 중 * 아.... 한 편의 수기를 보는 듯한... ================================= 잉글랜드 북부의 보로의 봄날이 찾아오는 때, 동양인으로 보이는 선수가 고독하게 훈련장에서 계속해서 볼을 골문으로 차고 있다. 모든 선수들은 이미 훈련을 끝내고 떠나갔지만, 그는 여전히 볼을 쫓아다니면서 훈련장의 모든 볼을 골문에 넣고서야, 비로소 웃으면서 탈의실로 향한다. 그는 바로 이동국이다. 중국팬들에게는 낯선 이름이 아닐 것이다. '사자왕'으로 불리는 그는, 사상 최강이었던 중국 올대를 철저히 절망하게 했던, 감독을 조기에 보따리를 싸게 만든 한국의 스트라이커 이동국. 잉글랜드에 온 지 이미 2개월 여가 된 이동국은, 초기 이곳에서의 고민들을 하나도 감추지 않았다. 잉글랜드 북부의 맑은 밤하늘 아래에서, 그는 뒷뜰에서 무수하게 한국 방향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계속 자문했다. 왜 고향에서 갖고 있던 모든 영광과 팬들의 사랑을 버리고, 외로이 이 곳에 왔는데도, 여기에서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은 3~5분의 출장기회에 불과한 것인가? 그는 인정한다. "어느 때는 나 자신도 의문이 든다. 나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하지만 그동안의 자신의 영욕부침을 돌아보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보기엔 다소 희극적인 축구인생을 돌아보면서, 나는 나에게 말한다.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지금까지 이동국은 스스로 자신의 현대자동차 승용차를 몰고 보로의 길을 달리면서, 길가의 황화(국화) 풍경을 볼 때면, 그의 머릿속에는 늘 2002년의 한국 전체의 붉은 물결이 떠오른다. 그를 잘 보았던 히딩크가 월드컵 전에 그를 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한국인들이 붉은 옷을 입고 환호할 때, 그의 세계는 온통 검은색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처음 잉글랜드에 와서 가장 힘들었을 때, 그는 늘 자동차를 몰고 작은 도시 보로의 길을 달렸고, 차안에는 한국의 슬픈 노래를 틀어놓았는데 그의 머릿속은 그의 마음을 쑤시는 듯이 붉었다. (* .... 쓰고보니 해석이 좀 매끄럽지 않은데...양해를... _._;) 그는 말했다. "어느 때는 나는 고의로 그 차마 돌이켜볼 수 없는 지난 일들과, 뼈에 사무친 아픔들을 가지고, 보로에서의 외로움을 희석시키고, 더는 위축될 수 없다는 의지를 굳혀가기도 한다." "사실 잉글랜드에서의 생활은 독일에서보다 많이 좋은 편이다. 최소한 이 곳에서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아 듣을 수 있어서, 나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독일에서의 실패 경험은, 조기에 팀에 녹아들어가는 것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매번 훈련 후, 다른 선수들이 웃고 떠드는 때에, 이동국은 주동적으로 거기에 끼어들고, 또한 이동국은 영어로 정확하게 모든 선수와 직원들의 이름도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우의를 쌓으려면, 우선 그 사람들의 이름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이동국의 노력은 결국 보로에서 동료들의 호감을 얻었다. 훈련 중에서의 조금도 소홀함이 없는 태도 역시 코칭스텝의 인정을 얻었다. 지난 라운드에서 보로는 어웨이에서 거의 맨유를 이길 뻔했었다. 이동국은 교체로 출전했고 마지막 순간 PK구역 돌파를 할 때, 오셔가 다급히 전형적인 반칙동작을 범해서 그를 넘어뜨렸지만, 심판은 분명히 존재했어야만 했던 PK를 묵살하고 말았었다. 이동국은 기자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주전 자리에서 한참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감도 날로 좋아지고 있으니, 몇 분밖에 안 되는 출전기회에서도 열심히 할 것이다." 현재 이동국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첫 골'이다. 그는 이전에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었다. 첫 골을 넣은 후에야 입을 열겠다고 했다. 최근 아내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마도 기뻐하면서 기자에게 마음의 문을 연 모양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득점 동작은, 바로 맨유가 홈에서 AC밀란과의 경기를 할 때, 루니가 세 번째 골을 넣었을 때의 세리머니 동작이다. 양 무릎을 땅에 깔고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동작 말이다. 아쉽게도 현재 나는 그런 동작을 할 수가 없다. 좌측 무릎이 아직도 부상이기 때문에, 45도로 구부릴 수가 없다. 그래서 꿇어앉을 방법이 전혀 없다. 하지만 현재 그런 동작을 하기에 앞서서 우선은 선채로 할 수 있는 골세리머니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 이동국은 당초 히딩크가 했던 말을 종종 떠올린다. 나는 우상(스타)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한 명의 축구 선수이다, 라고 했던 히딩크의 말. 맞다. 이동국은 일찍이 한국에서 여성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스타였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안정환을 좋아하는 사람들보다도 많았었다. 해외에서의 축구생활은 그로 하여금 사람됨됨이의 평범함과 인생의 부침을 인식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부인이 임신한 후, 인생에 대한 깨달음은 더욱 심각해졌다. "나는 더 이상 전 세계의 사람들이 나를 알고 주목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서야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단지 축구를 열렬히 사랑하는, 축구를 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이 축구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나는 그만둘 수 없고 견디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 번 월드컵에 참가할 것이다." http://www.news365.com.cn/wxpd/ty/gjzq/200704/t20070426_1391219.htm 중 * 엥? 이 기사가 4/26 기사인데...무릎을 구부릴 수 없는 부상??? 저만 몰랐던 것인가요? 아니면 이동국선수가 참고 뛰는 것인지... ============================ * 짧은 날 동안 이렇게 많은 말을 했던 인터뷰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동국선수 말도 참 잘 하는군요. 진짜 축구인생을 꼭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번 월드컵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구요. 진짜 진짜 이동국선수 화이팅~!!!!!!!!!! 참, 찾아보니까 저 많은 양의 기사들을 모조리 작성한 중국 여기자에 관한 기사가 따로 나와있더군요. 권향란기자...추안싱란(취엔싱란)기자.... 궁금하시면 다음의 링크를 한 번 보심이~~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4231007592248 |
첫댓글 중국축구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한국 축구계들의 인사들도, 한중 선수들의 실력차이는 그렇게 크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중국선수들의 실력이 한국선수들보다 많이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중국선수들의 실력이 한국선수들보다 많이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감동이네요...
맨 위 기사만 읽었는데 히딩크에게 psv는 낯선 환경이 아닌데...... 낯선 환경에서 절대복종할 심복이 필요하고 ㅎㅎ 이딴게 아니라고;
끝까지 다 읽었는데 감동
이동국선수 감동주네요~~~~~~~~~
뭐야 아직 부상이 남아있는 건가? 아님 부상후유증이 남은건가? 안되는데 동국이형..
오늘부터 나의 완소 공격수다.
마누라 복이 있네.......정말.......
감동..
우리 동국선수 정말 많이 성숙해졌죠~ 어서 골 세레머니 보고싶다는!!!!
정말최고다... 역시 나에게있어선 언제나 NO.1... 아쉬운것은 이런 좋은기사를 쓴 기자가 중국인이란거... 우리나라기자는 선수 헐뜯거나 흥미위주의 소재만 기사화하는데... 이런 기사는 우리나라 기자로부터 나와야하는거 아닌가?
어이없네 중국....... 한국선수와 기량차이는 안난된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언제 아드보캇이 3명을 데려갔냐. 2명이지 이호,김동진,현영민은 예전에 먼져 이적했던거지.
원래 중국은 자기실력 인정 절대 안하잖아요 그러니 발전이 없지 ; 그냥 그케 생각하고 살라 그래요 ㅋ
선수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느껴지는 기사들이네요....번역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잘 읽었어요....
ㅋㅋ 중국은 실력은 우리가 나은데 다 감독탓이다.이러고있네 ㅋㅋ.하지만 저글도 기자가 썼다는거.어딜가나 기자들은 쑤레기가 많아요
이름이 장위닝~~~~ ^^;;;;;
일레븐 저도 저만 눈에 띄나 생각한 ㅎ
이름이 위닝이 뭐냐 ㅋㅋ PES가 낫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