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다는 1만 개가 넘는 전화번호 가운데 내 번호도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홍보실장'으로 통했던 홍선옥 사무관이 2일 오후 지병으로 세상과 작별했다는 소식에 먹먹해졌다. 66세 한창 나이라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런데 한 포털에 실린 그의 부고 기사에 달린 댓글들에 무척 심란해졌다.
댓글 가운데 정부 부처 사무관의 부고까지 실어야 하면 대한민국에 태어나 죽는 모든 사람 부고를 실어야 하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 눈에 띄었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관계를 맺고 있는 이의 삶과 죽음에 각별한 마음으로 다가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출입처의 홍보 담당자 죽음에 애틋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홍 사무관은 정부 모든 부처나 모든 지방자치단체를 통틀어 가장 친절하고 헌신적인 공무원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신문사 밥을 33년 6개월 먹으면서 모든 부처나 모든 지자체를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고인만큼 오래 한 부서에서 기자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아서다.
출입 기자들에게 늘 친절했고, 늘 환한 웃음으로 대했으며, 진심으로 문체부 일에 앞장서고 헌신적이었던 고인이다. 그런 평가를 알기에, 적어도 공유한다고 믿기 때문에 정부 부처 사무관에 불과하지만 어느 장차관 못지 않은 비중으로 부고 기사를 쓴 것이라 믿는다.
공직 근무 기간만 42년이 넘었다. 사실 문체부에는 홍보 실장이란 공식 직함이 없다. 하지만 문체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그 비공식 직함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1982년 국립중앙박물관 섭외교육과 고용직으로 임용돼 1989년부터 17년 동안 ‘박물관신문’ 발행과 홍보 업무를 맡았고, 2007년 문체부 대변인실로 옮겨 최근까지 언론 홍보 일을 담당했다. 2021년 정년 퇴임 후에도 매년 계약을 맺어 일해왔다. 모두 그가 없으면 문체부 홍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전해 듣기로 후임을 물색하고 혹 찾기도 했지만 일을 배울 만하면 달아나 버리더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일을 놓지 못하는 천성 때문에 주위의 만류를 무릎쓰고 복직하는 바람에 세상과 일찍 작별했다고 보는 지인들도 있다.
기자들끼리 농을 섞어 주고받는 얘기 중 "성질 더러운 기자 녀석들 상대하려면 홍보 담당자들 속깨나 썩는다"는 것이 있다. 내 기억으로도 '정말 고약한' 성정의 기자들이 간혹 있다. 그럴 때마다 홍 사무관처럼 착하고 헌신적인 홍보 담당자들도 꽤나 속앓이를 했을 것이다. 해서 문체부를 출입한 기자 모두가 고인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이 있지 않을까 돌아봐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고인과 주고받은 카카오톡을 뒤져보니 마지막 대화가 2019년 1월 주고받은 것이었다. 문체부에서 다르게 해명할 수 밖에 없는 내 기사에 대해 보도자료를 낸 것을 보고 '조금 더 빨리 반영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답한 것이었는데 그는 늘 그렇듯 고맙다고 대꾸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늘 다정다감했다. 그는 여전히 맑고 친절하며 다사로운 사람이었고, 적어도 많은 기자들 사이에 앞으로도 그런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2023년 4월 복막암이 발견돼 항암 치료 끝에 복귀해 1년 반 동안 현장을 지켰으나 최근 병세가 악화해 다시 입원한 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전두환부터 윤석열까지 대통령 아홉 명을, 문공부와 문화부, 문체부를 통틀어 모신 장관만 서른한 명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등에 공헌한 바 등으로 대통령 표창도 여러 차례 받았다.
유족으로 남편 이두열씨와 1남 2녀가 있다.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빈소가 차려졌다. 발인은 오는 5일, 장지는 인천 강화도 전등사다. 암 치료 끝에 요양했던 전등사를 장지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