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
최용현(수필가)
1881년 가을, 전직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헨리 폰다 扮)는 세 동생과 함께 멕시코에서 사들인 수천 두의 소를 몰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애리조나 주 툼스톤 부근에서 야영을 하던 어프 형제는 막내에게 소떼를 맡기고 시내 이발소에 들렀다가 돌아와 보니 퍼붓는 빗속에서 동생은 총에 맞아 죽어있고 소떼는 사라지고 없다.
와이어트는 이곳에서 목축업을 하는 흉악한 무법자 클랜턴과 그의 네 아들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죽은 동생의 복수와 함께 잃어버린 소들을 찾기 위해 툼스톤 시장의 보안관 제의를 받아들인다. 와이어트는 두 동생을 보조원으로 채용하고 클랜턴 부자(父子)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와이어트는 툼스톤 시내에서 술집 겸 도박장을 운영하는 전직 의사이면서 유명한 총잡이인 닥 홀리데이(빅터 마추어 扮)와 인사를 나누고 의기투합한다. 이 술집은 홀리데이의 정부(情婦) 치와와(린다 다넬 扮)가 상주하고 있고, 폐병을 앓고 있는 홀리데이는 가끔씩 피를 토하는 기침을 하면서도 분주히 바깥일을 하러 다닌다.
어느 날, 와이어트는 보안관 사무실 앞에서 홀리데이를 만나러 동부에서 온 클레멘타인(캐시 다운스 扮)이라는 아가씨를 보고 한눈에 반하여 그녀를 호텔까지 안내해준다. 치와와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와중에 외출에서 돌아온 홀리데이는 클레멘타인을 보자마자 ‘왜 왔어? 여긴 당신 같은 여자가 있을 곳이 못 돼.’ 하면서 내일 당장 떠나라고 소리친다.
다음날 아침, 교회 기공식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교회 부지로 몰려간다. 댄스파티도 있을 거라고 한다. 이발소에서 한껏 멋을 낸 와이어트는 짐을 싸들고 동부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는 클레멘타인에게 마차가 오후에 출발하니 행사장에 가자고 한다. 다정하게 걸어간 두 사람은 그곳에서 커플 춤을 춘다.
며칠 후, 살해된 막내 동생의 목걸이를 치와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와이어트는 목걸이의 출처를 추궁한다. 클랜턴의 아들 빌리와 함께 방에 있던 치와와가 ‘빌리가 줬다’고 실토하는 순간 창가에 숨어있던 빌리가 치와와를 쏘고 달아난다. 와이어트의 동생 버질이 쫓아가서 빌리를 사살하지만, 버질도 빌리의 아버지 클랜턴이 뒤에서 쏜 총에 맞고 쓰러진다. 중상을 입은 치와와는 닥 홀리데이의 응급수술에도 불구하고 숨을 거둔다.
그날 밤, 클랜턴은 버질의 시신을 보안관 사무실 앞에 던져놓으며 ‘OK목장에서 기다리겠다.’고 소리치고 사라진다. 해가 뜨자, 와이어트는 남은 동생 모건, 홀리데이와 함께 OK목장으로 향한다. 총격전이 시작되고 어프 형제는 클랜튼의 두 아들을 사살한다. 홀리데이는 클랜턴의 한 아들을 사살하지만, 기침을 하다가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이 마을에 새로 생기는 학교의 선생님을 맡게 된 클레멘타인이 마을 입구에 서있다. 동생 모건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뵙고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오기로 한 와이어트가 클레멘타인의 뺨(!)에 키스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오프닝 크레디트와 마찬가지로 엔딩 크레디트에서도 주제곡 My Darling Clementine이 흘러나온다.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는 존 웨인이 나오는 ‘역마차’(1939년)와 ‘수색자’(1951년) 등과 함께 정통서부극의 전설로 불리는 존 포드 감독의 걸작 흑백영화이다. ‘OK목장의 결투’(1957년)와 ‘툼스톤’(1993년), ‘와이어트 어프’(1994년) 등은 모두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미국의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이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뛰어난 보안관도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세 가지 시퀀스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첫 번째는 초반부에 나오는 이발소 장면이다. 와이어트가 면도를 하려는 순간 총성과 함께 총알이 날아들자 이발사는 도망쳐 버린다. 면도거품을 칠한 채 나온 와이어트가 짱돌을 집어 들고 창문으로 들어가 난동을 부리던 인디언의 두 발목을 잡고 질질 끌며 나온다. 와이어트가 인디언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그 결과만 보여주는 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연출방식이다.
두 번째는 후반부에 나오는 댄스파티 장면이다. 와이어트가 이발소에서 몸단장을 하고 나와서 클레멘타인이 묵는 호텔 앞에서 기다린다. 그녀가 나오자 팔짱을 끼고 교회 부지로 걸어가서 바이올린의 경쾌한 선율에 맞춰 폴카(polka)를 춘다. 서부극의 친사회적인 성향을 보여주면서 아울러 두 사람이 연인이 된 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세 번째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OK목장에서의 결투 장면이다. 역마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면서 결투가 시작된다. 어프 형제와 홀리데이는 총격전 끝에 클랜튼의 세 아들을 모두 사살한다. 와이어트는 아들을 잃은 고통을 느껴보라면서 클랜턴을 살려주는데, 클랜턴이 뒤돌아서며 총을 쏘려하자 모건에게 사살된다. 악질 범죄자들을 제거함으로써 법질서 회복이라는 서부극의 이상이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야의 결투’의 원제목인 ‘My Darling Clementine’은 7080세대들이 어릴 때 즐겨 불렀던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로 시작되는 바로 그 노래이다.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 때 광부들이 즐겨 부르던 곡으로, 클레멘타인은 한 광부의 딸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광부의 노래’가 일제강점기 때 ‘어부의 노래’로 개사(改詞)되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다.
이 영화는 닥 홀리데이를 만나기 위해서 동부에서 온 클레멘타인이라는 아가씨가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의 연인이 되어 툼스톤에 정착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서부극치고는 제목이 이색적이고, 스토리 또한 상당히 낭만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