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설'
출처 강원일보 : http://www.kwnews.co.kr/nview.asp?aid=222012700013
설 연휴가 시작된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하면 닷새에 이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맞는 ‘언택트(Untact) 설'이다. 당나라 때 시인 고적은 시 ‘제야'에서 “여관 차가운 등불 아래 몸을 뒤척이며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루네/ 고향에선 오늘밤 천리길 나를 생각할 터인데/ 흰머리는 또 한 해가 지나가는구나”라고 했다. 문득 사정이 여의치 못해 설 연휴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이러지 않을까 싶다.
▼설을 제대로 쇠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1895년 고종 때의 을미개혁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 태양력 사용이 공식화된 게 단초다. 대한제국 시절과 일제강점기에 이어 광복 이후에도 양력 1월1일의 신정(新正)이 장려됐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대다수가 음력설인 구정(舊正)을 설날로 삼았다. 결국 1985년부터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의 하루 공휴일이 됐다가 1989년부터 음력설을 전후한 3일간이 공휴일로 지정됐다. 설날이 2년째 코로나19로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곧 회복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품는 이유다.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 등에 따르면 설날에 제를 올리는 것을 차례라 한다. 또 새 옷 입는 것을 ‘세장'이라 했다. 어른 찾아뵙는 것을 ‘세배'라 하고, 시절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 이때에 마시는 술을 ‘세주'라 했다. 한 해의 소망을 붓으로 써서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풍속도 있었다. 봄이 시작되는 날이고 만물이 생장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선비들은 설날이야말로 만물이 새로운 날이라고 여겼다. 새해 각오를 다시 다질 때다.
▼설 연휴가 끝나면 곧바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2월4일)이다. 한자로 ‘들 입(入)' 대신 ‘설 립(立)'을 쓰는 까닭은 ‘봄기운이 막 일어선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아직은 계절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얼었던 땅은 풀리고 느슨해진 흙과 싹은 제자리를 잡는다. 코로나19로 꽁꽁 닫혀 있는 우리 사회가 봄과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제자리를 찾기 바란다.
박종홍논설위원·pjh@kwnews.co.kr
빛viit명상
효, 근원에 대한 감사
설은 비단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근간이 되는 가족들과 선조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일 년 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과 가족들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 아침,
가장 먼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선조들께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고 부모님께 세배를 드린다.
이것을 효孝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말로 하면 내 생명의 ‘근원에 대한 감사함’을 갖는 것이다.
‘근원에 대한 감사’는
어떤 일이나 물질에 대한 대가가 아닌,
지금 내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그 자체에 대한 순수의 감사다.
부모님과 선조님이 나에게 무엇 무엇을 해주셨고
어떤 것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이 아닌,
지금의 ‘나’라고 하는 존재가 있기까지 뿌리가 되는 그분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 96
개울가 맹금쟁이
엊그제 내린 단비로 산청 본원 산사 뒤뜰 개울가에 맑은 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처럼 들어보는 개울물 소리가 정겨워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창동이와 윤정이, 종성이가 따라왔다. 얕은 물 위에 오랫동안 안 본 적이 없었던 ‘맹금쟁이’ 열댓 마리가 모여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같이 갔던 어른들도 그놈들이 얼마나 반갑고 정다운지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논둑 언저리나 비온 후 팬 작은 웅덩이에서 그 놈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아무 곳에서나 잘 볼 수 없게 돼버렸다. 이젠 기억 속에 하나의 물벌레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맹금쟁이란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그놈이 신기하게 생겼는지 호기심에 부풀어 잠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그 놈들은 계속 쉼없이 물 위를 떠다니며 돌고 있는데 어지럽지도 않은가보다.
어린 시절 고모댁에 갔을 때 들었던 부친의 이야기가 생각나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부친께서는 할머니가 오랫동안 병으로 누워 계셨는데 약 3년을 조석 문안이 아닌 무려 하루에 여섯 번씩이나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잠에서 깨면 큰댁으로 가서 기침인사를 드리고, 시장에 나가시면서 문안 올리고, 아침 드시기 전에 들러 조찬문안 올리고, 점심 식사 전에 그 사이 안부 물으시고, 저녁식사 문안과 잠들기 전에 편히 주무시라는 절을 올린 후에야 잠자리에 드렸다고 한다.
그것도 부족하여 하루는 할머니께서 어지럽다고 하시자 효성이 지극한 부친께서는 ‘맹금쟁이’를 잡아서 먹으면 어지럼증이 없어진다는 동네 어른들의 말을 듣고 한겨울에 그놈들을 잡으려고 얼어붙은 마을 논둑의 얼음을 깨면서 마을을 다 휘젓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렇게 얼음 밑 볏집 사이에 붙어 겨울잠을 자던 놈들을 몇 마리 잡았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들은 부모님께 하루 한 번은커녕 한 달에 한 번 전화로 문안드리는 것조차 어렵게 생각한다.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또 거리가 멀어서도, 전화가 없어서도 아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 같은 부모요 자식이건만 무엇이 이토록 우리들의 삶과 인정을 각박하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맹금쟁이가 잃어버린 효孝를 새삼스레 일깨워 준다.
내일 귀가 길에는 어머니께 문안부터 올려야겠다.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정광호 지음) 1996.6.30. 초판 1쇄 P.237~241
나의 존재를 있게 한 뿌리가 되는 부모님 선조님께 감사합니다 ~
자연에 감사합니다 ~
근원에 감사합니다 ~
효를 지극정성 실천하신 부친께서 하루에 6번 문안 인사를 올리심에
휼륭한 아들들을 두셨나 봅니다.
저절로 고개숙여 집니다.
존경과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효 근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잘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효 근원에 대한 감사.
조상님들께 감사마음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