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피는 들꽃
근래 어떤 계기 야생화를 찾아 떠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게 되었다. 사진작가에 해당할 전문가도 있고 야생화 이름에 박식한 이도 있었다. 내야 블로그를 개설하지 않아 그쪽 사정에 어둡다만 야생화 동호인들은 블로그를 통해 탐방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발행 수부가 꽤 되는 중앙지 한 논설위원은 식물학자에 뒤지지 않을 야생화에 대한 식견이 풍부함에 놀란 적 있다.
야생화에 푹 빠진 사람들은 겨울 한 철이 어서 지났으면 싶을 것이다. 겨울이면 풀꽃들은 시들고 낙엽활엽수들도 나목이 되지 않던가. 남녘 해안에서는 수목으로는 선홍색으로 피는 애기동백꽃이나 동백꽃은 쉽게 볼 수 있다. 해동이 되는 우수경칩 무렵이면 본격적인 화신이 들려온다. 그 꽃이 매화와 산수유꽃이다. 이즈음에도 초본에서는 더디게 더 더디게 꽃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눈 속에 피어나다는 복수초가 풀꽃 화신의 전령사다. 복수초가 눈 속에 핀 것이 아니라 꽃이 피고 나 뒤 어쩌다 눈이 내린 경우일 것이다. 복수초를 기점으로 산기슭 가랑잎을 비집고 피어나는 야생화들이 줄을 잇는다. 노루귀, 바람꽃, 산자고, 얼레지, 제비꽃 등이다. 이런 꽃들이 피는 시기는 삼월 말에서 사월 초에 해당한다. 나는 이때가 되면 발길 뜸한 서북산 기슭으로 찾아간다.
나는 본격적인 제철 봄꽃이 피기 이전 한겨울 피어나는 들꽃도 잘 알고 있다. 엄동설한에 피는 들꽃으로 세 가지 꼽을 수 있다. 녀석들은 한두해살이풀로 냉이와 광대나물과 봄까치꽃이다. 봄까치꽃운 큰개불알꽃이라는 어감이 어색해 바꾸어 부르는 이름이다. 겨울 텃밭이나 들판으로 나가면 흔히 만날 수 있다. 가을에 씨앗이 싹 터 잎줄기를 펼쳐 자라 겨울을 나면서 꽃을 피운다.
이들 셋의 공통점은 꽃을 피우는 시기가 이듬해 봄이긴 해도 그 중 조숙한 녀석은 가녀린 겨울 햇살에도 꽃잎을 펼쳐 보였다. 들녘에 절로 자라는 냉이는 국이나 나물거리가 되는 채소이기도 하다. 무나 배추를 거둔 밭이나 시든 고춧대가 선 이랑에 잘 자란다. 땅이 얼어붙는 동지 무렵부터 한겨울 냉이가 제철이다. 봄이면 꽃대가 올라와 뿌리에 심이 굳어져 찬거리로 재미가 적다.
북면이나 대산 들판 김장 채소를 거둔 밭뙈기로 나가면 냉이가 흔히 자란다. 겨울 추위가 닥치면 땅이 얼어붙으면 꽃삽이나 호미가 들지 못해 냉이를 캘 수 없게 된다.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길 기다리거나 볕 바른 자리에 자란 냉이는 겨울에도 캘 수 있다. 다수의 냉이는 따뜻한 봄날에 꽃을 피우나 한겨울 좁쌀 같은 꽃을 피우기도 한다. 꽃대가 올라온 냉이는 캐도 먹기 곤란하다.
광대나물이 피우는 자주색 꽃은 은근히 예쁘다. 날씨가 풀린 봄날에도 꽃을 피우나 한겨울 양지바른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땅거죽에 줄기처럼 잎맥을 펼쳐 자라면서 피우는 꽃은 단연 눈길을 끌게 된다. 텃밭에서는 잡초처럼 뽑아도 자꾸만 세력을 뻗쳐 자라는 광대나물이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라는 광대나물은 한겨울에도 봄인 줄 착각하고 자주색 꽃을 무더기로 피기도 했다.
끝으로 한겨울 꽃을 피우는 봄까치를 소개하련다. 이 꽃은 엷은 보라색으로 피는 꽃이다. 어찌 보면 하늘색에 가깝다. 광대나물처럼 양지쪽 잎줄기가 떼로 펴져 자라면서 한겨울에도 꽃을 피운다. 물론 제철 개화는 날씨가 따뜻해진 봄날이지만 소한대한도 끄떡 않고 조건만 되면 꽃을 피운다. 양력으로 해가 바뀌지 않은 동지 전후도 성질 급한 녀석은 점점이 꽃을 피우는 봄까치다.
내가 근무하는 교정 뒤뜰에는 겨울이 오던 길목까지 민들레와 씀바귀 꽃을 보았다. 코스모스도 늦게까지 알록달록했다. 내일모레 동지가 다가온다. 교정 앞뜰 향나무 그루 아래 광대나물과 봄까치가 겨울비를 맞고 생기를 띠고 자란다. 그 가운데 봄까치 잎맥에서 점점이 꽃이 피기 시작했다. 앞으로 빙점 아래 내려갈 날들이 연일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봄까치는 아랑곳 않는다. 18.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