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영장이 날아왔습니다.
1991년 7월12일은 논산 훈련소 입소일이었습니다.
7월6일 오후 12시쯤 부산사상터미널에서
화엄사가는 버스를 놓치고 구례로 향했습니다.
구례에서 화엄사에 도착하니 오후5시더군요.
매점에서 대충 이것저것 먹을 거 사서 배낭에 쑤셔넣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길은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안개는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갑자기 깜깜해졌다가 다시 밝아지고...
길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한참을 가다가 작은 물줄기를 여러번 교차하면서
얼핏얼핏 길을 찾아 가다가 어느 순간 길을 잃었었습니다.
화엄사-노고단 코스는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가파러더군요.
다행히 조금 더 오르다 길을 찾았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오르고 있었지만,
앞으로도 뒤로도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약간의 두려움도 있고해서 항상 땅만 보고 오르던
길을 이제는 앞뒤로 경계를 하면서 오르게 되었습니다.
얼마를 갔을까!
저 뒤쪽에서 인기척이 납니다.
뒤돌아 봤습니다.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시커먼 우의를 머리까지 덮어쓰고,
뛰는 걸음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1991년 4월에는 제가 자전거 전국일주를 했었습니다.
부산-삼척-속초-양평-서울-예산-부안-순천-진주-부산
14박15일동안의 여행이었습니다.
산속에서 텐트를 치고 자면서 느끼는 건
산짐승이 무서운 게 아니고 사람이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지리산에서 다시 한번 그 두려움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혹시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마침내 바로 뒤까지 왔을 때
저는 반사적으로 뒤를 휙 돌아봤습니다.
...
...
...
그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휙 지나쳐 뛰어가더군요...
휴~~
...
머리끝까지 솟구쳤던
공포, 두려움은
서서히 가라앉았습니다만,
여전히 혼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는 않더군요.
다시 얼마간 올라갔을까,
아까 지나쳐간 그 사람이 이번에는
뛰어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아까보단 덜 했지만,
역시 경계를 하게 되더군요.
우의모자에 덮여진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고
노고단까지 얼마나 남았냐는 질문은 떠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휙 하고 지나쳐서 저 멀리 멀어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뭐하는 사람일까 궁금증은 더 해 갔습니다.
한 시간여를 더 가서 다른 일행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은
산에서 특히 지리산에서 만나는 사람은
어느 한 사람 나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고단 일박(텐트),
연하천 일박(텐트),
장터목 일박(산장).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그리고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구간은 비가 조금씩 왔지만,
노고단에서 장터목까지는 그야말로
장대비를 맞으면서 걸었습니다.
이 폭우 쏫아지는 장마철에 지리산에 뭐 하러 갔을까!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천왕봉에 올라 내 각오를 외치고 오리라고.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xx아 사랑했었다. "
"행복해라"
"군생활 잘하고 오겠습니다."
"......."
돌아보면 쓴웃음이 납니다만,
그때 그 시절에는 나름대로의 운치를 느끼던 때였죠..
상혁이 데리고 산에 오를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페 게시글
♡ 여행스케치 ♡
혼자서...
1991년 7월 6일 장마철.. 그리고 종주
상혁이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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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0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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