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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오펜하이머」감상 후기 / 강인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로 분한 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 「오펜하이머」 의 한 장면
바로 위에 보인 장면을 위해 촬영하고 있는 현장 사진. 이런 보통의 장면들조차 모두 아이맥스 전용 필름으로 촬영하는 불편한 낭비.
뭔가 지시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주연 배우 킬리언 머피, 촬영기사.
어제(8월 22일) 용산 아이파크몰 CGV 12시 50분 프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킬리언 머피 주연의 3시간짜리 영화 「오펜하이머」를 관람했습니다.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 자자한 명성의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여서 정말 기대가 컸습니다. 400석 좌석의 상영관인데 화요일 2회 프로건만 관객들은 3/4 정도 찼습니다. 단지 원자폭탄을 개발한 물리학자의 일대기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배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정도의 배경지식을 지니고 영화관을 찾았지요. 영화 시작 전 화장실을 미리 다녀왔기에 영화 끝날 때까지 도중에 화장실 가는 불편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두 명의 저자가 25년간 자료를 섭렵하고 인터뷰를 하여 쓴 1천 쪽 이상의 『오펜하이머 평전』이 영화의 원작. 나는 언제쯤인지 영화 초반 20분 정도를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감독이 소화해 낸 재구성이 아니라 원작의 평전만 졸랑졸랑 따라다닌 줄거리여서, 너무나 많은 인물과 그들의 대사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솔직히 말해 지루하고 따분한 영화였습니다. 놀란 감독은 지나치게 평전 자체에 얽매어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대사가 많고 많아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스크린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대사들은 마치 장편소설 대화 문장을 자장가처럼 듣는 것 같았습니다(잘 만든 영화일수록 대사가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과 끝없이 이어지는 대사를 가진 영화는 아마도 이 영화가 유일할 것입니다. 수많은 자료(1천 쪽 이상)를 취사선택하여 다시 작가(영화감독)가 영화 미학의 관점에서 재구성했더라면 하는 나 혼자만의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감독이 그 많은 자료를 차라리 소설로 써서 발표하지, 왜 이런 영화로 만들었을까 한심한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3시간 정도 분량의 오래전 감명 깊게 본 영화로 감히 데이비드 린 감독, 오마 샤리프와 줄리 크리스티 주연 「닥터 지바고」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수려한 영상과 감미로운 음악 등 「닥터 지바고」는 영화미학으로 볼 때 평점 10점 만점짜리라 한다면, 이건 잘해야 평점 6.5밖에 못 줄 것 같습니다. 종합예술로서의 영화가 지니는 강점을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는 깡그리 무시하고 과학자의 일대기와 관련된 수많은 자료를 늘어놓은 평전만 정신없이 따라다니느라고, 고매하고 훌륭한 주제를 간신히 소화해 냈을 뿐. 영화로서의 낙제 점수는 차마 면해주고 싶습니다. 한두 장면의 사치스러운 감동적 쾌감을 위해 굳이 아이맥스 영화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비효율적인 낭비에 불과합니다.
「오펜하이머」 전기(傳記)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1천 쪽 이상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을 읽고 영화관을 찾는 착한 관객들이 얼마나 될까요. 일제 식민지 시대를 모르며 6.25 전쟁의 체험을 갖지 못한 우리나라 장년 이하 세대들에게는 이 영화를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귀중한 애국심과 생명에 대한 외경, 그리고 휴머니즘의 주제를 지닌 영화라는 점을 값진 소감으로 나는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팁을 하나 소개할까요. 지루하면 밖에 잠시 나갔다가 중간에 다시 들어와서 끝까지 봐도 좋습니다. 중반 이후 영화적 즐거움과 중요한 주제를 놓치는 건 별로 없을 영화가 「오펜하이머」입니다.
한 물리학자의 영예와 몰락을 기록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2006년 퓰리처상 수상작입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그 명저에 드리운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오펜하이머)
(2023.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