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세 현역 화가, 전설의 재즈 피아니스트,
조각가 ─ 당신에게 필요한 멘토들 1^^
저는 어렸을 때 '나이 많은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자주 바랐어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제제에게 뽀르뚜가가,
<시네마 천국>의 토토에게 알프레도가 있었던 것 처럼요.
어린 나이의 낭만적인 바람이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요. 현실에 치이고,
다가올 미래가 버겁게만 느껴질 때 나보다 수 천 걸음 앞서
인생을 경험한 이의 말 한마디가 절실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종종 그들 인생의 어떤 장면이나, 그들의 말에서 뜻밖의 힘을 얻고 가야할 방향을 잡기도 하니까요.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을 흔히 '거장'이라고 부릅니다.
정직하게 오르고, 부단한 노력으로 자리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요.
결과는 물론, 과정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세 거장의 이야기에서
내 인생에 새길 장면과 말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포스팅의 첫째는, 올해 무려 101번째 생일을 맞는 '현역' 화가 할아버지랍니다:·)
1. Wayne Thiebaud (1920. 11 ~ )
웨인 티보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미국의 화가로
케이크와 파이 등을 밝은 색상으로 그린 정물화와 더불어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풍경화로 유명하다.
1920년생인 티보는 생애의 대부분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내며 그곳의 일상과 풍경을 그렸다
40대에 접어든 1960년경 시작한 디저트 그림으로 일약 주목받으며,
이후 60여 년간 현대미술 사조와 유행을 벗어난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한 독보적인 대가이다.
그의 작품은 휘트니 미술관, 스미소니언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을 비롯하여 수많은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그는 미국 예술가 최고의 영예의 국가예술훈장을 수훈했으며, 2010년 캘리포니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진열장 안의 케이크' ─ '캔디 애플' ─ '나폴리 파이'
1920년생 현역 101세 화가 웨인 티보. 50여 년간 살고 있는
새크라멘토 근교 자택에서 여전히 그는 동틀 무렵 일어나 이층에 있는 작업실로 출근한다.
정오엔 헐렁한 바지와 긴팔 셔츠를 입고 테니스 코트에 나가 두 게임씩 운동을 한다.
그리고 오후 2시, 그는 스튜디오의 이젤 앞에 앉아 작업을 이어 나간다.
예외가 있다면 UC 데이비스 강단에 서는 날이 그렇다.
1976년 70세로 정년퇴임한 뒤에는 무보수로 강의한다.
그에게 왜 은퇴 후에도 가르치기를 멈추지 않냐고 물으면 배우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There's the art of almost anything that you can say.
웨인 티보 그림의 대표적인 주제인 '디저트'와 '도시 풍경' 시리즈의
60년 여정을 담은 <웨인 티보 달콤한 풍경>이 출간되었다.
어느 제과점 쇼윈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정신없이 도넛을 들여다볼 때처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건물들을 올려다볼 때처럼, 천천히 책장을 넘겨 보자.
이 맛있는 도시를 둘러보는 여정에 여러 큐레이터와 평론가,
화가들이 투어 가이드가 되어 우리 시대의 상징이 된 예술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선사해 줄 것이다.
2. Keith Jarrett (1945. 5 ~ )
1945년 5월, 미국 팬실베니아에서 태어난 키스 재럿은
어린 시절부터 작곡과 피아노 연주 두 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1965년에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 재즈 메신저에서,
이듬해 66년부터 69년까지는 찰스 로이드(Charles Lloyd) 밴드의 사이드 맨으로 활약한다.
드러머 잭 디죠넷(Jack Dejohnette),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이 멤버로 있었던
찰스 로이드 내에서 그의 활동은 범상치 않은 피아니스트의 출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솔로 피아노 연주 앨범으로 이름을 떨치던 1970년대 초반부터
그는 피아노 하나로 클래식, 재즈, 가스펠, 팝송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연주 세계를 펼쳐냈다.
빌 에반스 이후 가장 독창적인 피아니즘을 선보였다는 키스 재럿.
그는 1970년대 초 ECM 레이블의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를 만나면서 만개했다.
키스 재럿 솔로 피아노 콘서트 포스터, 1970년대
키스 재럿(가운데), 마일즈 데이비스(왼쪽), 마이클 핸더슨(오른쪽) © Jean-Pierre Roche
ECM에서 앨범을 녹음해 줄 것을 제안한 만프레드 아이허의 설득으로 탄생한
첫 앨범 Facing You(ECM 1017)로부터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피아노 솔로를 담은 이 작품과 함께, 재럿은 피아노 솔로 콘서트를 시작하는데,
이는 이후 재즈의 역사를 바꿀 전혀 새로운 포맷으로 진화한다
1973년 발표된 Solo Concerts-Bremen/Lausanne(ECM 1035-37)을 시작으로
최근 발표한 Budapest Concert(ECM 2700/01)까지,
오늘날의 재럿을 있게 해 준 일련의 솔로 콘서트 시리즈는 수십 장에 이른다.
이 작품들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재럿은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The Köln Concert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피아노 솔로 앨범이라는 위치에 있다.
키스 재럿의 솔로 공연은 재즈 팬들에게 전설로 통한다.
재럿은 공연장과 악기는 물론 공연장을 찾는 팬들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 한 절대로 공연을 하지 않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연주자라고. 한 미국 공연에서는 갑자기 공연을 중단하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2010년, 키스 재럿의 첫 내한공연 중 사건 하나가 있다. 재럿은 자신의 공연 중 사진 촬영을 절대 못하게 한다.
공연 전 이례적으로 관계자가 나와 "연주 도중 손뼉을 치지 말고 절대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첫 번째 앙코르가 끝나고 2층 객석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 것.
재럿은 "카메라가 없는 모든 분께 감사하고, 사진 찍는 사람들을 저주한다."고 말했다
국내 팬들의 걱정에도, 재럿은 불과 8개월 만에 다시 내한공연을 진행했다.
약간의 사고는 있었지만, 한국 재즈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년간의 공연 중 최고의 청중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고.
Keith Jarrett’s left side is still partially paralyzed by a pair of strokes in 2018.
“I don’t feel right now like I’m a pianist,” he said.
그러나 2017년 2월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솔로 공연을 끝으로
키스 재럿은 공연을 진행하고 있지 않다.
최근, 뇌졸중으로 마비된 왼손 때문에 더 이상 연주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밝힌 그.
자신이 피아니스트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너무 늦게 알게 된 그의 음악. 앞으로 공연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남겨준 예술들을 들으며 기억하고, 기다려보려 한다.)
키스 재럿을 사랑한 이들의 글을 공유하면서
[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기적을 꿈꾸게 하는… 재럿의 ‘밤의 멜로디’
2011년 6월 2일 저녁, 에스프레소 샷이 3개나 들어간 카페라테를 들고 향한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75)의 독주회장. 동행한 음반사 대표인 M 씨는 클래식을 전…
www.donga.com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다급한 속삭임이 날아왔다.
저기요. 손목시계 좀 풀어주시겠어요?"
발화자는 바로 뒷줄 청년. 초침 소리로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진짜 마니아의 등장에 우리의 '재럿 권위자'는 머쓱해져 시계를 주머니에 박아 넣었다. (...)
재럿은 특유의 난해한 즉흥연주로 본 공연을 이끌었다. 앙코르에서 객석이 큰 흥분에 싸였다.
'Don't Ever Leave Me' 'I Loves You Porgy'...
익숙한 멜로디가 흐를 때마다 여기저기서 낮고 깊은 탄식이 터졌다.
[Music] 그 순간들을 나누었다 - 키스 재럿 《Budapest Concert》
재즈 뮤지션들은 다 외워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불필요해서 악보 없이 무대에 오른다.
최소한의 틀만 가지고 즉석에서 변주, 발전시켜가는 방식으로 연주하기 때문이다.
직접 손을 놀리기 전까지는 연주자 자신도 어떤 음악이
만들어질지 모른다는 이 즉흥성이 재즈라는 장르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의 솔로 콘서트 시리즈는 이 특성이 궁...
www.cine21.com
예술가의 수명은 유한하고 우린 기록과 재현으로 그들이 남긴 유산을 더듬는 일에 익숙하다.
하지만 무엇을 연주하고 무엇을 들을지 뮤지션도 관객도 모르는 채 만나
불꽃같은 순간을 공유하는 키스 재럿의 콘서트는 그런 식으로 보존되지 않는 종류의 예술이다.
그가 실재하지 않으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음반은 영원히 아프게 기억될 것이다.
3. Manfred Eicher (1943. 7 ~ )
Manfred Eicher, ECM Office ca. 1976 c ECM Records . Roberto Masotti
1969년 설립되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재즈와 현대음악 레이블'로 인정받는
ECM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
그는 직관을 믿고 뮤지션들을 한데 모으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불을 지피고, 소리를 조각하고,
음악의 한계를 넘어서며 50년간 ECM을 이끌었다.
ECM Records
www.ecmrecords.com
시작은 작았지만 독특했던 ECM은 곧 주목받았다.
ECM에 관한 언론의 첫 기사는 1972년 <슈피겔>의 리포트였다.
기사는 뮌헨의 스물아홉 살 외톨이가 미국의 유명 뮤지션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고 적었다.
<슈피겔>에 따르면 그 이유는 "음향과 디자인과 음반의 품질 면에서
최적의 기준"으로 "최고의 재즈 레코드"를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 뮌헨의 레이블은 설립 2년 반 밖에 되지 않았다
그 뮌헨의 외톨이 만프레드 아이허는 독일 린다우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더블 베이스 연주자로 고전음악을 전공했다.
빌 에반스, 폴 블레이, 마일즈 데이비스 같은 음악가들에게도
매료되어 있던 그는 곧 재즈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도이치 그라모폰의 프로덕션 부서에서 일하며 얻은
클래식 음악 레코딩 노하우를 재즈에 적용하기로 한다.
클래식처럼 정교한 녹음을 재즈와 즉흥음악에 도입한다면!
Manfred Eicher, Avatar Studio ⓒ ECM Records . Bart Babinski
뮌헨 소재의 레코드 레이블 ECM은 오랜 시간 즉흥음악과
기보된 음악(notated music)을 위한 독특한 광장이 되어 왔다.
또한 끊임없는 도전과 확고한 독립성의 상징이 되었다.
스스로 정의한 목표를 조용히 추구하면서.
카세트 테이프를 포장지에서 뜯어낼 때 소리와
테이프에서 나오는 잡음,
나는 그것이 음악이라는 범위 안에 다 포함된다고 여긴다.
LP 같은 경우도 판에 비늘이 닿을 때 나는 잡음과
판을 재킷에서 꺼낼 때 느낌이 다 음악적 경험이다.
ECM의 목록은 1,600장이 넘는다. 2017년부터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음악을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만프레드 아이허가 작품을 위해 선호하는 매체는 여전히 CD와 LP다.
음악적으로 정교하게 연출된 앨범만이 감상자의
'청각적 풍경(audible landscape)'으로의 여행을 완성한다고 설립자와 ECM은 믿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ECM의 음반은 종합예술(Gesamtkunstwerk),
즉 음악과 음향과 디자인과 아트워크가 통합적인 미적 경험을 지향한다.
는 ECM 레코드의 50년 여정을
50장 앨범으로 안내하는 해설서이자 한 음악 애호가의 애정 어린 에세이이다.
좋은 책이 여러 다른 책으로 새로운 독서를 이끌듯,
이 책은 50장에서 무수히 많은 음반으로 감상자를 이끈다.
에 빠져들면,
각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주고받은 영향과
그들이 이후 전개한 새로운 작품들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