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맨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다. 바로 베르너 증후군 환자들이 그렇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조로증이라 불리는 이 병은 희귀 유전 질환이다. 보통 속도보다 3배쯤 빨리 늙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 40대에 '늙어서' 죽는다. 남들의 하루가 이들에겐 사흘쯤 된다.
한 남자가 있다. 50대인 그의 신체 나이는 100세가 넘는다. 전 세계에 천여 명 정도밖에 없는 베르너 증후군 환자 중 하나가 그다. 보통 30~40대엔 죽는 병을 앓고 있는데 이미 50년 넘게 살았으니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 그의 현재 몸무게는 23kg. 7세 아이 정도의 체격이다. 점점 말라간다.
그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그는 전 재산인 79만 원을 통장에서 뽑았다. 35만 원을 써서 세탁기를 샀다. 낡고 고장 난 세탁기를 볼 때마다 늙고 점점 더 아파가는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꼭 바꾸고 싶었단다. 그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 달성이다.
남은 돈 중 8만 원을 써 친구들에게 밥을 샀다. 늘 가난해 주위에 식사 한 끼 제대로 대접해 본 적 없던 게 서러워 친구들에게 고기 한번 사주고 싶었다. 밥 먹다가 친구들 몰래 나와 계산한다. 겨우 밥 한 끼 산 것뿐인데 그렇게 신날 수 없다. 이렇게 두 번째 버킷리스트 성공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복을 맞췄다. 볼품없는 외모 탓에 50이 넘도록 입어 볼 용기가 안 나던 옷이다. 어릴 때 자기를 버리고 간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양복을 맞추고 꽃을 산 후 백발의 어머니를 만나 큰절을 올리고 왔다. 이제 남은 돈은 없지만, 모든 버킷리스트를 이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SBS '궁금한 이야기 Y'에 나온 조로증 환자 장인철 할아버지의 마지막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어 글로 정리해 봤다. 유튜브에 영상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못 찾겠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SBS에서 직접 찾아보길 추천한다. 짧은 시간에 참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