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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잠 16:9-15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10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
11 공평한 저울과 접시 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
12 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13 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14 왕의 진노는 죽음의 사자들과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
15 왕의 희색은 생명을 뜻하나니 그의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
잠 16:9-15 / 사람이 일을 하려 이리저리 궁리하여도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10) 임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공수를 받은 것이라, 그 입으로 그릇된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11) 저울과 천평칭은 다 정직하게 쓰라고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며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저울추도 그분께서 지으신 것이다. 12) 못된 짓을 꾸미고 남 등치고 착취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것 등은 모두 임금으로서 마땅히 역겨워해야 하는 것이니, 정의를 바로 세워야 왕위도 오래간다. 13) 임금은 마땅히 바른말을 하는 이를 기꺼워하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이를 아껴 주어야 한다. 14) 임금이 화를 내면 누구든 그 앞에서 죽음을 면하기 어려우나, 슬기로운 이는 임금의 노여움을 가라앉힌다. 15) 메마른 대지에 내리는 봄비와 같이 임금의 얼굴에 기쁜빛이 돌아야 모든 이들이 두려움 없이 안심하리라.
이스라엘은 왕이나 백성과 관계없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유익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9-11) 사람은 계획이 세워지면 그 길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짜임새 있는 계획이 선행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계획보다 선행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나름대로의 계획으로 같은 동족을 도우려 했습니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가 왕일지라도 함부로 재판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에 있으면 왕이 그릇된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거래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거래를 할 때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힘을 인정하는 자(12-15) 왕은 악을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권력을 이용한 악은 훨씬 그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왕이 악을 행하려고 할 때는 권력을 남용하고 싶어할 때를 말합니다. 그리고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욕망 때문입니다. 보좌는 공의로 굳게 세워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왕은 자기에게 아첨하는 자를 옆에 두면 안 됩니다. 오히려 의로운 입술을 가진 자를 옆에 두어야 합니다. 의로운 입술이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윗 왕 옆에 그런 용사들이 있었다는 것은 다윗에게 복이었습니다(삼하 24:3절 이하). 이렇게 정직한 말을 하는 자들은 사랑받게 됩니다. 왕도 진노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는 진노를 그치게 될 것입니다. 왕의 진노와 대조적으로 왕의 희색이 있을 때는 생명의 기운이 넘칩니다. 곡식을 여물게 하고 가뭄을 지탱해 주는 데 필요한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묵상하는 삶이란 자신의 소리를 죽이고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 침묵할 줄 아는 삶을 말합니다. 사람들의 평가와 칭찬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말과 행동, 생각을 비춰보는 겸허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켄 가이어의 말처럼 “남에게 더 맑은 물을 퍼주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 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묵상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내면세계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유능한 인간이 되는 것보다 깊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 설 교 >
계획을 이루시는 분
잠언 16장 9절 / 이지원 목사
할아버지 할머니는 바보 라는 글이 있어서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바보라고 합니다.
사례가 있는데, 첫 번째, 자식들이 놀러가기 위해 손자를 맡아달라고 해서, 기존에 했던 약속을 파기하며 손자를 봐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바보. 두 번째 늙으면 자식들이 용돈을 매달 꼭 챙겨줄 것이라고 믿고, 재산을 넘겨주고, 자식들 눈치를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바보. 세 번째, 자식들이 놀러왔다가 자고 갈 때, 혹시나 불편할까 싶어서 방이 여러개 있는 큰집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바보
부모님의 자식사랑에는 끝이 있겠습니까? 그 끝없는 사랑의 모습이, 마치 바보같이 끝이 없다고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끝없는 사랑의 모습도 무계획적일때, 그렇게만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지 않나 합니다.
사랑도 계획적으로 지혜있게 해야 합니다. 아니 세상에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지혜롭게 잘 해나갈 때,
그 열매는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사람은 계획없이는 어떤 일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계획은 설계도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큰 건물일수록 설계도는 더욱 중요해지는 법입니다.
우리나라에 한때는 63빌딩이 제일 높은, 건물인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63빌딩이 제일 높은 빌딩입니다. 하지만 곧 63빌딩은 저리라가이고, 100층이 넘어가는 빌딩들이 여기저기 들어선다고 합니다.
인천 송도에도 100층이 넘는 건물이 곧 들어선다고 합니다.
그런데 100층이 넘어가는 건물이, 설계도 없이 지어지는 건물이 있겠습니까?
어떤 장인이 있어서, 마음속에 생각만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100층이 넘어가는 건물을 지어 올릴수 있겠습니까? 어마어마한 설계도.. 골조계획, 냉난방 계획, 심지어는 상수도 하수도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확실하게 설계도를 만들 때, 그 건물은 완성되어 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집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도, 잘 짓고 잘 지세...라고 찬송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나의 인생은 100층 200층 멋있게 올리려고, 한 치에 어긋남 없이 준비한, 훌륭한 설계도를 있으십니까?
설계도도 없이, 인생의 훌륭한 계획도 없이, 100층 200층 화려하게 인생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그것만큼 무책임한 생각도 없다 하겠습니다.
인생의 집을 잘 올리려면, 올리려고 하는 만큼, 훌륭한 설계도, 인생의 계획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8월달을 보내면서, 날씨는 덥지만, 하반기를 바라보며, 인생의 계획을 점검하는 시간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1. 악한 계획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잠언 16:9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설계도도 좋은 설계도가 있는 반면에, 부실한 설계도도 있습니다.
100층 높이로 건물을 올리려고 하는데, 기초공사는 날림으로 10층도 못올릴 정도로 대충 설계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설계대로 기초는 10층짜리, 올리기는 100층으로 올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르기는 몰라도, 10층 더 올리기 공사를 하면, 그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계획도 살펴보면, 부실계획이 있습니다.
무책임한 계획, 계획이 없이, 인생을 방치하는, 무계획 인생. 더욱이 악한 생각으로 가지는 계획하는, 악한 계획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러한 계획들이 성공을 하겠습니까?
이사야 29:15에는 말씀합니다.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이사야 32:7 /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자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악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일까요? 무책임하고, 방관자적이고, 악한 생각으로...악을 도모하는 왜 이런 악한 계획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는 분명히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에, 악한 계획들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충, 건물을 설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큰 사고가 예상되는 엉터리 설계도에 허가가 나겠습니까? 절대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획도 없는, 무계획 인생.. 날림으로 계획한 인생... 악한 마음으로 계획한 인생... 하나님께서 허가를 내 주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 17:11에는 말씀합니다.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창세기 6:5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살펴보시고, 악한 계획들은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달란트 가진 청지기가 나옵니다. 계획이 없습니다. 한달란트는 오늘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4억원이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일반인들은 만져 볼 수도 없는, 로마에 세금을 바칠때 정부기관 간에 통용하던, 엄청난 돈의 단위입니다.
어마어마한 기회를 주시고, 능력을 맡겨주시고,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맡겨준 주인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돈을 맡기는 주인은, 그냥 맡기 지는 않을 것입니까?
능력을 보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되었기 때문에 맡겼을 것입니다. 또 맡겨도 되겠지 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맡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잘 남길 것을 기대하며 맡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달란트 받은 청지기는, 주인이 그렇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깡그리 외면하고, 땅에 파묻어 버립니다. “한달란트 해서 뭐하겠습니까?...이것 가지고 장사해봐야 뭘 남길수 있겠습니까?”
하긴, 수 조원을 만지는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돈이 모자란다, 돈 가뭄이라고 아우성 치는것을, 뉴스를 통하여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와서 한달란트를 땅에 파뭍었던 정치기를, 내어 쫓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계획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부인하는 불신앙에서부터 시작 되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생에 많은 달란트를 주셨지만 불성실하고, 무계획적이고, 악한 마음을 세우는 악한 계획들을 하나님께서는, 무너지게 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계획은 성공합니다.
잠언 16장 9절 말씀을 한번 더 읽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
■ 어느 목사님이 식당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 종업원을 보게 되었는데, 아름다운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십자가 목걸이가 참 예쁘네요. 교회다니세요?” “예" 목사님이 장난스례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는데, 십자가를 등에 다는 것이 정상 아닌가요?” 종업원이 말했답니다. "네, 열심히 일하면, 십자가가 뒤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무릎을 탁 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십자가가 등 뒤에 돌아간다.
십자가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지어주는 것이지,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십자가를 지어주시지 않는 것이구나.. 하나님 열심히 일하겠으니, 제 등에 십자가를 지어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십자가를 지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는 제자들의 십자가를,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대속해 하시는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더 큰 십자가를 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 큰 책임을 맡을수 있도록, 맡겨 주시옵소서.
이사야 32:8 에는 말씀합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좋은 계획이 있어야, 좋은 건물이 세워집니다. 정성스럽게 설계한 건물은 티가 납니다. 현관이 틀립니다. 계단도 얼마 편한지 모릅니다. 화장실도 깔끔합니다.
인생의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칭찬하실 만큼, 좋은 계획, 선한 계획, 아름다운 계획이 있을때에 그 계획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믿음의 식구들은, 훌륭한 인생의 계획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계획을 열심히 만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37:4...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145: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시편 20: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얼마나 복된 말씀입니까?
겉모양으로 보고, 사람 생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남루한 옷을 입고 가던 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 때를 노칠 수 없다고, 그 사람을 뿌잡고 씨름을 시작합니다. 인생의 기로에 서서, 지금까지 계획대로 되어 왔지만, 형 애서와 만나서 모든 것을 빼앗길 처지가 되었습니다. 내가 기도하며,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내가 서지 못함을 알게 되었사오니, 기도하는 중에, 나에게 당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사오니.. 당신은 나에게 축복하소서...
열심히 하나님께 매어달리고, 하나님 부르짖을 때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축복을 내립니다.
“너의 이름으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너를 이제부터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네가 하나님과 겨루었음이라.”
그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매어달려, 우리의 계획이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고, 허락을 받고, 승인을 받는 경험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도 이번에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고 또 기도할 때에, 응답을 주십니다.
그런데, 찬송가로 주십니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 흔들자가 누구랴,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 근심 없도다“
기도할 때 245장 찬송가를 들려주시는데, 어느 순간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는구나..
몇 번이나 똑 같이 들려 주십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통과 싸인을 주셨구나..
자! 기도하면 이게 응답이구나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확연이 알도록, 응답을 주십니다.
시편 33:11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잠언 19:21에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우리 교회 믿음의 식구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허락싸인을 하시는, 멋있고, 담대한, 인생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때가 차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출애굽기 6장 1절 2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모세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자기 민족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해내는 계획이었습니다. 얼마나 창대 합니까?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하지만 이러한 좋은 일을, 모세가 계획할 때, 당장 이루어 주셨는가? 아닙니다. 모세가 그 일을 맡겨 주어도, 감당할수 있도록 준비가 될 때까지, 질그릇을 빚으시듯, 모세를 빚으시고 또 빚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왕궁에서 치국의 각종 학문을 배우게 하십니다. 높아지는 교육이지요. 또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하십니다. 낮아지는 교육이지요..
이렇게 되어 80년이 지나게 되었습니다. 젊을 때에 계획은, 모세 스스로도 잊어버린바 되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 계획을 잊어버릴수 있겠습니까? 잊지는 못하게 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네 나이 80세 이제, 뭘 하겠는가?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가 오히려, 모세의 계획이 이루어 질 때라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부르셨는데, 정말 이제는 모세가 모든 면에서 완전히 온유하고, 겸손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계획대로, 모세가 다 이루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낼수 있도록 해 주셨던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되, 하나님의 때가 될 때, 그 계획이 열매맺게 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계획을 세우되,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기다리는 믿음의 자세가 더하여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악한 계획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계획은 이루어 집니다. 계획이 이루어 지는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성도들은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집을 크게 세우는 훌륭한 설계도, 훌륭한 인생계획을 믿음의 그려나가는, 우리 믿음의 모든 식구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잠언 16:1-20
[잠언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잠언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언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의 계획이 아무리 멋지고 세밀하다 해도, 되고 안 되고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나에게 많은 계획이 있어도 결국은 하나님에 기뻐하심과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의 기쁘심을 얻고 도우심을 얻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보아야 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블레셋 땅이 아닌, 하나님은 그 길을 놔두고 광야로 돌아가도록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돌아갔더니 멀기만 한 게 아니라 시퍼런 홍해까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편하고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만일 빠르고 가까운 블레셋 길로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길로 가면 반드시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그러면 아직 믿음이 연약한 그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게 되어 하나님께서 홍해길로 돌리신 것입니다.
◎ 우리는 흔히 사막은 쓸모가 없는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물이 없기 때문에 사막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비옥한 땅이라도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가뭄이 계속됨으로 물이 끊어지면 금방 사막처럼 변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막이라도 계속 비가 오면 비옥한 땅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켈리포니아 지역은 원래는 메마른 사막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곳에 멀리 콜로라도 강줄기를 끌어들여 물을 대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황무지가 지금은 옥토가 되었고 햇볕이 뜨겁기 때문에 농작물이 더 잘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구경하는 켈리포니아 건포도, 켈리포니아 오랜지, 켈리포니아 사과 같은 과일들이 바로 그 사막을 옥토로 만든 곳에서 재배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 고군분투해서 싸워서라도 얻어야 하는 사람, 주재(主宰)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짐을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제 힘대로 살아왔고 자기가 책임진다고 말하지만 사람은 나를 성공하게 할 수도 실패하게 할 수도 있는 엄청난 외적 환경에 둘려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쉽게 결정하고, 울고 웃고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모든 일의 배후에는 영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 모든 일은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사실을 사람은 잘 모릅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수시로 번갈아 다가오니 모두가 우연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쁜 일 역시도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라고 생각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나쁜 것은 사람이고 사람이 제 꾀에, 자신이 파놓은 함정과 올무에 빠진다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원치 않는 상황일지라도 용인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 중에 필요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으니, 악인은 재앙의 날에 쓰이는 것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상황을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거만한 사람을 미워하시니 그들은 틀림없이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을 내버려 두십니다. 다 쓰실 때가 있어서입니다.
1) 건축 책임자 여로보암을 살려 두셨다가 솔로몬이 우상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하자 적당한 때에 그를 불러 이스라엘을 남과 북으로 나누셨습니다. 2) 빌라도가 예루살렘 총독이 되어 예수님의 심판 자리에 앉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 솔로몬이나 빌라도나 그들은 모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한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겼습니다. ○ 이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조그만 성취에 자랑하고, 남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스스로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과오를 행하는지 스스로 모릅니다. ○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실패가 드러날 때에 “내가 실패를 하다니, 내가 실수를 하다니 말도 안 돼!”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술을 마시며 분해할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행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자신이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잠 16:6,7]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잠 16:19,20]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 사람은 인자와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사람은 한 순간 순간 인생이라는 징검다리를 밟고 큰 바다를 건너가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은 인간관계가 좋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사람을 붙여주시시고,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때가 이르매,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 그렇게 그의 지평이 넓혀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를 달아보십니다. 은혜는 이슬과도 같이, 우로와도 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 겸손한 사람은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압니다. 나에게 주어진 재물이 적은 대로, 적은 재능이면 적은 재능에, 있는 그대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절망하고 넘어지는 까닭은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이상의 먼 곳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절망하는 것은 바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은 늘 실패합니다. 실패를 인정할 줄 알아야합니다. 사탄은 나를 교만하게 만들어 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 받은 존재인데 자신에 대해 가혹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의 현재 모습은 어떠합니까? 현실이 못마땅하고 사람들이 한심하게 여겨질 때는 없나요? 이웃을 존중히 여깁니까? 그리고 나를 사랑합니까? 조용하게 겸손히 받아들이십시오.
○ 지혜는 현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벌거숭이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그의 사랑 안에 머문다면 그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적 요소까지도 변화시켜 주셔서 우리의 경영을 이루게 해 주십니다.
◎ 숲의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에 재목으로 쓰이지 못할 만큼 심하게 구부러진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몇 십 년이 지난 뒤에 궁전을 지을 목수가 그 숲에 나타나서 목재를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 그러나 구부러진 나무가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나무는 크레 좌절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랍비가 그 숲을 지나가다가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보기 좋게 구부러진 그 나무 밑에 당도해서 땀을 씻으며 앉았습니다. ○ 이 때 구부러진 나무는 그 랍비에게 신세를 한탄하였습니다. ○ 그러자 랍비는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나무야, 네가 그 때 선택되어서 뽑혀 갔다면,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에게 이런 휴식의 기쁨을 누가 주겠느냐?” 이 말을 들은 나무는 비로소 자기가 쓰일 곳을 깨달았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 그것 역시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사랑할 줄도 모르고 사랑 받을 줄도 모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도움을 구하지도 도움에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 당신이 정직한 사람,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면 기다리세요.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들어야 합니다. 나의 소원, 나의 계획, 나의 뜻을 구하는 내 욕망에 사로잡혀 하는 기도는 안 됩니다.
○ 죠지 뮬러는 말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아라. 성령보다 앞서지 말아라.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라.” 무슨 말입니까? 성령이 감화하여 문제의 해결을 주실 것입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십시오. 무엇보다도 기도부터 먼저 하십시오. 그리고 듣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주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가까이 귀담아 듣지 못하는 이유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Too Busy, 너무 바쁘다는 것입니다. 일 자체에 몰두하고 성과주의에 빠져서 그저 성공에만 급하고 성공이 무엇인지도 생각하지 못한다. 의미도 깊이도 없이 그저 뛰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Noise 라고 했습니다. 너무 산만하다고 했습니다. 많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많은 들을 거리가 있습니다. 요즘에 우리는 많이 보고 듣고 삽니다. 만리장성을 보러 가려면 베이징에서 하루가 걸립니다. 얼마나 힘듭니까? 사람만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번은 보아야 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모임에 끌려 다닙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만나야 됩니다. 별로 무관한 사람들과 밥을 먹습니다. 겪고 싶지 않은 일도 겪어야 됩니다.
○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우리들의 마음이 산만해졌습니다. 깊은 명상의 시간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없습니다. 물어보았더니 딱 세 번 기도한다고 합니다. 식사할 때. 그러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기회도 없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나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현재적으로 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내가 마땅히 드려야할 나의 마음 나의 시간을 온전히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완악한 까닭입니다. 사람이 교만하여 멸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이여 나에게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 주의 음성을 듣는 그런 조용한 맘을 주십시오.’ 바로 이것이 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의 고집 나의 형편에 메이지 말고 마음을 열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잠 16:1-9 / 이수영 목사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잠언서 안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오늘 본문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첫 절인 1절과 마지막 절인 9절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했고, 9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했습니다. 이 두 구절을 종합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은 세우지만, 결정과 인도와 성취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1절과 9절 사이에 들어있는 구절들이 말하는 내용은 얼핏보면 3절을 제외하고는 1절이나 9절의 내용과 별 상관이 없고 서로 사이에서도 별 연관성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과 인도와 성취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뜻의 1절과 9절 사이에 들어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1절부터 9절의 내용 전체 사이의 일관되고 유기적인 관계성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절부터 9절의 내용 전체 사이의 일관되고 유기적인 연관성을 찾는 근거로서 우리는 첫째로 8절을 제외한 전 구절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타나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둘째로 본문의 각 절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사람의 행위와의 대비관계 속에서 말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면 오늘 본문 전체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앞서 오늘 본문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을 강조하는 말씀이라고 했고, 또 첫 절과 마지막 절을 종합하면 "마음으로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과 인도와 성취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인도하심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체의 요지에 비추어 각 절의 말씀을 이해해야 할 줄 압니다.
1절: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께서 하신다"고 옮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계획하고 마음으로 바란 대로 일이 이루어질 때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계획하고 바란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지혜로우시고 공의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시고 모든 일을 반드시 옳고 좋게만 하실 것이라고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나는 잘못한 것이 없거나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잘못되었는데 왜 내가 억울하게 당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라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본능적으로 자기합리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은 늘 잘못될 가능성을 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절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속 마음 제일 구석진 곳까지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일 뿐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는 이렇게 하시고 누구에게는 저렇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지혜롭고 공의로운 주권에 달린 것이며, 그 일 속에서 하나님은 결코 잘못 판단하시거나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내시지 않으실 것임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이 말씀은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힘쓸 것이며,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그 일의 실현을 위해 최선의 길임을 가르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절: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종종 이 세상에 악과 불의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거나 이 세상에 악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무능력이나 무관심 또는 무책임감을 논할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저런 악한 자를 태어나게 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저런 인간을 빨리 쓸어버리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시는가?" 말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을, 심지어는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 행하는 인간의 악한 일까지도 다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용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이 4절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외국의 상인에게 팔아넘긴 형들의 악한 행위도 훗날 야곱의 온 가족을 극심한 기근으로부터 건져내시기 위하여 적당하게 사용하신 하나님이시며, 스승을 배신하고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악함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데 적절하게 사용하신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4절 말씀은 결코 하나님이 악의 조성자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악은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거나 사용하시더라도 심판하실 적당한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5절: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교만의 뿌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와 능력은 모든 인간의 의지와 지혜와 능력을 다 합친다 해도 그것을 무한히 뛰어넘으심을 안다면 사람들이 감히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5절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교만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이렇궁 저렇궁 판단하는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정녕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5절은 말합니다. 본문에서 조금 내려가서 18절을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습니다.
6절: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이 6절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사람이 어질고 진실하게 살면 죄를 용서받고, 주님을 경외하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옮기며, 공동번역 성경은 "하느님을 참마음으로 사랑하면 죄를 용서받고 야훼를 경외하면 재앙을 면한다"고 옮기고 있습니다. 즉 6절 말씀은 이 세상에서 악한 일을 당하지 않고 선한 뜻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뜻대로 어질고 진실하게 사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 6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어질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죄의 용서를 받고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복을 주시고, 교만하며 사랑도 없고 진리도 모르며 악을 행하는 자들은 반드시 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주권자이심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7절: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누구나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크고 작게 원수지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원수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원수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불의하기 때문에 의롭게 살려고 하면 오히려 더 원수지기 쉽습니다. 원수를 갖고 있다는 것은 삶을 아주 두렵고 고통스럽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잘못한 것 없는데도 원수가 생기게 되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 항변할 수도 있고, 불의한 원수를 그냥 놔두는 하나님이라면 나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면서 원수하고 잘 지내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원수를 이기고 원수까지도 나를 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바른 길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이 7절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악한 세상과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며 우리에게서 두려움을 없애주실 수 있는 정의의 주권자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8절: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이 세상은 의롭게 살면 손해만 보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으며, 불의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잘 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벌하시지도 않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그래서 의롭게 살면서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는 불의를 행하면서라도 부유하게 사는 것을 택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8절은 "소득이 적어도 공의롭게 행하며 사는 것이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불의를 행하며 사는 것보다 낫다"고 잘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언젠가는 악한 자들의 악한 행실을 반드시 벌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8절 말씀 뒤에 숨어있는 생각입니다. 그 어떤 인간의 불의도 결코 의로우신 주권자 하나님의 정의의 손길을 영영 피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의는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우리의 생각대로 길을 갑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이 9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계획을 잘 세웠더라도 그 길로 가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계획을 잘못 세웠더라도 그 길로 가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며, 때로는 우리가 잘못된 계획에 따라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한 때 내버려두시더라도 먼 길을 돌아 결국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만드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모든 결과와 그 결과로의 인도하심을 그에게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우리 삶의 걸음을 그 방향에 있어서나 그 속도에 있어서나 그 보폭에 있어서나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늘 평안하고 감사하며 기쁜 삶이 됩니다. 우리 삶의 발걸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삶은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원망하고 절망하며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모든 일에 있어서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행하시는 모든 일은 다 바르고 선하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에는 부당하고 억울하게 여겨질 일 속에서도 하나님은 잘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자와 진리대로 행해야 하며 그 결과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우리 삶의 참된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진인사 대천명"이란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온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진인사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아무 것도 안하고 놀고먹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인사하고 대천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그 결과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치러진 대입수응시험이 예상밖에 너무나 어려워 많은 수험생들이 크게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낙심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있으며, 학부형들도 함께 낙담하며 당국에 대한 원망과 분노 가운데 빠져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과 결정을 조용히 기다리며, 어떤 결과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인도하실 것임을 확신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번 수능시험의 결과가 상대적으로 좋아서 뜻하는 대로 되는 사람들은 겸손하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인도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진학계획을 가지고 어떤 대학 어느 학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든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발걸음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삶의 발걸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이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할 것입니다.
인생 경영의 지혜
잠16:1-9 / 송원영 목사
오늘 읽은 말씀에 '경영'이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잠15:22절에는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된다."고 말합니다.
잘 아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전형적인 농사꾼이었는데 땅콩 농사로 돈을 벌었는데 한 친구가 농기계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기술과 자본을 서로 투자하여 사업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회사의 규모가 비대해지자 이제까지 주먹구구식으로 경영하던 방식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빚이 얼마인지 총매출액과 자산규모가 얼마인지 순 이익이 얼마인지 파악이 되질 않습니다. 합리적인 경영을 이루지 못해 누수현상이 일어나 탄탄한 기업이 하루아침에 도산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경제학 이론 중에 경영계획( business planning)이라는 용어를 자주 씁니다. 경영계획은 경영의 합리성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간이나 조직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지 않으므로, 그 행동에는 불확정성(不確定性)과 위험이 따르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목표달성을 저해하게 만듭니다. 불확정성이나 위험을 줄이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합리적인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영환경을 분석하고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경영 성과를 저해하는 요인 무엇인지 면밀히 검토하여 두 가지 이상의 대체 방안을 연구하여 대안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영계획은 합리성 향상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이 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경영이라는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장이나 중역들이나 생각할 문제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하고는 거리가 먼 단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정을 이끌어 가는 데도 가정 경영이 필요합니다. 가정 경영이 안 이루어지면 효과적인 가정 운영을 이룰 수 없습니다.
흔히 월급쟁이들이 겪는 고초는 봉급을 타서 이리저리 쓰다보면 보름도 안돼서 바닥나 버릴 때가 있습니다. 가정 경영을 이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경영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인생경영 계획이 없다면 그 사람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도 경영이 필요합니다. 본문 말씀에는 세상의 그 어떤 경영보다도 신앙생활의 경영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이 이를 잘 뒷받침해 줍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사람들이 여러 가지 경영하고자 하는 계획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경영의 실질적 Oner는(경영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경영이라는 말이 약 30회 정도 나옵니다. 공동번역이나 영어 성경상의 의미로는 △생각하는 것 △결정하는 것 △계획하는 것 등을 지칭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결정하는 것들은 모두가 다 경영에 속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경영자인 셈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경영을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처럼 신화를 창조하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갖고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경영의 응답이 여호와께로서 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미숙한 경영자 일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절대 권한을 가지고 계신 최고경영자 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의 경영을 폐하기도 하시고 또 일으켜 세우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계획과 경영에 있어서 최고의 경영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뒷받침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경영 환경을 개선하라
아무리 좋은 계획과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고 경영을 저해하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인생 경영, 신앙 경영에 있어서도 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경영 환경 개선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장벽을 허무는 일입니다. 최고의 경영자이시고 내가 경영하는 모든 일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실 하나님과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의 경영은 실패하게 됩니다.
본문 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경영환경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5절에도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 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느니라."
생각해 보십시오 대기업의 회장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미움을 받는 사원이 있다면 그 사원의 계획이나 입안을 받아 주려 하겠습니까?
우리는 6월 달에 지방 방백을 선출해야 하고 연말에는 통수권자를 선출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유능한 사람인가를 말하기 전에 얼마나 청렴한가를 먼저 따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올바른 경영의 지혜를 가진 성도라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본문 말씀에는 경영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올바른 경영을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경영에 대한 말씀이 병행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절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내 속에 있는 죄성을 추방하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인자와 진리 즉 사랑과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씻어지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 안에 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죄를 고백하여 죄를 멀리하게 됩니다. 하나님 가까이 섬기면 죄와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의 경영권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과 수고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을 이루리라."
우리는 인생의 경영자가 되는데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죄성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바 죄를 행하는도다."라고 탄식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죄성이 인생의 경영권을 올바르게 이끌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향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죄성과 연약성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넘어지고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명암이 엇갈리는 두 연예인의 행적을 보면서 인생 경영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연예계에 유승준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이 가수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고 국내에 들어와 10대들이 열광하는 댄스 가수로서 폭팔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술과 마약과 담배에 손을 댔던 과거를 참회하는 간증은 방황하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문화관광부에서는 그를 금연 홍보대사로 세워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예인들에게는 큰 걸림돌인 병역의 의무가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는 단언하기를 떳떳하게 군 복무를 마치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군 훈련 입대 일이 가까워지자 미국에 들어가 미국 시민권을 받음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게 되었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은 약속을 저버리고 얕은꾀를 쓰는 연예인은 국내에 받아들여서는 안된 다는 여론이 들 끌었습니다. 결국 국내에 입국하려했던 유승준은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해 한국에 들어와서 연예활동을 할 수 없는 매우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비슷한 형편에 처했던 차인표라는 탈렌트가 있습니다. 그도 역시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 생활을 하다가 본국에 들어와 연예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 복무기간이 다가오자 그는 미련 없이 머리를 깍고 병영에 들어가 훈련을 받고 현역 군인으로서 복무를 다 마치고 제대를 하였습니다. 2년 2개월이라는 군 복무기간으로 인하여 인기를 되찾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그는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 받는 중견 탤런트로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미국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007 영화에 북한 장교로 출연할 것을 제의 받았습니다. 이는 큰 행운으로서 세계적인 배우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대본을 검토해본 차인표씨는 북한과 우리나라의 국위를 저하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고 그 역할을 자신이 해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출연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에게 찬사를 보내고 인터넷을 통해 차인표를 칭찬하는 글이 연일 올려졌습니다. 차인표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던 것인데 오히려 이런 일로 시선 집중을 받게 되어 부담스럽다고 했습니다. 차인표씨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그가 크리스챤으로서 아주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칭찬합니다.
차인표씨야 말로 인생의 경영권을 주님께 맡기며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인생의 경영권을 주님께 맡기며 삽니까?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하였는데 내가 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주님께 맡기고 있습니까?
어떻게 내 인생의 경영권을 주님께 맡깁니까? 1절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말의 응답이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➊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성도는 말과 행실에 있어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야 하는 데 그렇게 되면 우리 하나님께서 내 인생 경영에 큰 도움을 주십니다. 내가 말과 행실로 그 분을 인정했을 때 그 말에 대한 응답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➋ 기도하는 일입니다.
말의 응답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기도 응답임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계획하고 경영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반듯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는 일들 중에서 기도 없이 경영하는 일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큰 경영자가 되려면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 중의 하나가 포용성입니다. 지나치게 편협한 마음을 가지고는 모든 일을 원만하게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향하여 늘 적대적 감정을 가지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거느리고 다니실 때 이미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반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돈궤를 맡은 사람으로서 공금을 횡령하고 있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시고 그를 받아주시고 늘 가깝게 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늘 곁에 따라다닌 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못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들도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천차만별의 다양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다 용납하고 포용하며 살 줄 아는 사람이 유능한 인생의 경영자사 될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유능한 사람이든지 무능한 사람이든지 아니면 잘난 사람이든지 못난 사람이든지 저들 모두가 하나님이 지으신 존귀한 창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의 잣대를 가지고 사람들을 편견의 울타리 안에 가둡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평등하게 대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요나는 편견의 벽을 깨트리지 못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하셨을 때 "원수의 나라에 내 어찌 가서 그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는가?"하며 니느웨의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탄 배에 큰 풍랑을 일으켜 고기 뱃속에 던져 넣음으로 인하여 요나가 회개하고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만듭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을 여기저기 다니며 "만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40일 후에 이 성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3일 동안 외치며 다녔습니다. 요나의 외침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왕으로 시작하여 모든 백성들이 회개함으로 그 성이 멸망당하지 않고 건짐 받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받은 것이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원수의 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요나는 성 밖에 초막 집을 짓고 니느웨 성을 바라보면서 그 성이 어떻게 되나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여 요나의 초막 집에 기어올라가게 하여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나는 박넝쿨 그늘로 인하여 시원하게 되니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벌레 한 마리를 준비하여 박넝쿨 줄기를 갉아먹게 하니 곧 방넝쿨이 시들어 그늘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몹시 심기가 불편하여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으니이다."하고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심지도 않은 이 박넝쿨을 이처럼 아꼈거늘 하물며 이 큰 성읍에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12만 명이나 살고 있고 육축도 많이 있어 내가 이들을 아끼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하시면서 요나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도성 니느웨에 살고 있는 12만 명의 생명을 아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 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보십시오 악인도 악한 날에 쓸데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선한 사람만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다는 겁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지으신 존귀한 창조물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편견 없이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용납하고 관용할 수 있는 마음이 진정한 경영인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소득을 취해야 합니다.
모든 운동경기에 운동 규칙이 있습니다. 규칙을 위반하면 아무리 좋은 경기를 펼쳤다 하더라도 우승할 수가 없습니다.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김동성 선수가 쇼트 트랙서 우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2위로 들어온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가 금메달을 걸게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미국을 향한 반미 감정이 극도로 달했고 젊은 청년들은 미국 제품 안 사기 불매운동까지 벌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매달을 취함으로 국익에 큰 타격과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소득이 무엇입니까? 정직한 경영, 정직한 노동의 대가로 얻은 수입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8절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이 많은 사람이 제왕 노릇을 합니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모으려고 듭니다.
성도 여러분 채소 하나를 먹으려 해도 무공해 채소를 먹으려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재물을 취하는 것은 온갖 불의와 더러움이 가득 찬 재물을 먹으려 합니까?
더러운 재물을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병들게 되고 먹은 것을 모두 토하여 내게 됩니다. 비록 적은 소득일찌라도 의를 겸해야 합니다.
일본이 지금 쓰러지기 직전까지 몰려 있습니다. 10년 동안의 경기 침체로 인하여 국가는 1년 예산의 100에 가까운 빚을 지고 있는데 이 빚을 갚을 길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2차대전의 전범으로서 고통을 안겨준 국가들과 개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독일은 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는데 일본은 지금까지 보상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경제 대국에 걸맞게 베풀며 살아야 하고 다른 국가에 물건을 팔아먹었으면 상대국의 물건도 적당히 사 주어야 하는데 경제 벌레라고 할 만큼 절약하고 이기심 많은 일본 국민들은 도무지 다른 나라의 물건들을 사다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본 은행들이 파산 직전에 있는 것은 적절한 여신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 경제가 야쿠자와 깊숙이 관련되어 있어서 소생하기 힘들다는 말도 흘러나옵니다.
일본은 우상을 많이 섬기고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라고 할 만큼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경영과 소득을 취하면 일본 경제와 같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불의의 소득으로 배불리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적은 소득이라고 의롭고 떳떳하게 얻은 재물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소득이 되게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16:9) 우리의 경영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 져야겠습니다. (16:7)
내게 주어진 인생의 경영권을 지혜롭게 운영하고 행사하려면 매일매일 전능하신 경영자이신 하나님의 자문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장차 큰 사명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몸을 지치게 하고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곤궁케 하여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느니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그 성질을 참게 하여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맹자
어쩌면 우리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은지...
형통이란 우리가 원하는대로 문제가 다 해결이 되고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동행하시면서 하나님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것이 형통입니다. 비록 그길이 지금은 이해가 안 가고 어렵지만 하나님의 더 높고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지금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형통입니다.
그래서 이해는 안가지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이 형들을 만나서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형들이 아버지가 너무나 요셉을 사랑하니까 미워서, 어느 날 아버지 심부름으로 온 동생 요셉을 붙잡아서 구덩이에 집어넣었다가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울면서 "형님, 나한테 그러지 말라"고 사정사정했지만 저들이 고개를 돌리고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팔려간 곳이 애굽입니다. 애굽에 가서 13년 동안 말할 수 없이 고생을 했습니다. 노예로 나중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노예로 팔려갔을 때도,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함께 하시고, 13년 후에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9년 후에 형들을 만납니다. 그러니까 13년 플러스 9년 하면 22년입니다. 22년 동안 그 요셉 마음에 사실 형들에 대한 보통 사람들 같으면 미움, 섭섭함, 증오심, 분노가 가득했을 것인데.... 그런데 형통한 요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긴긴 세월을 분노와 미움 속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45장 8절에,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50장 20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그렇게 요셉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그에게 시련의 시간을 거치시게 하셨습니다. 감당하기에 힘든 시험이었습니다. 갑자기 노예로 팔려가고 종살이를 하게 되고 옥살이를 하게 되고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당을 잘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은 그 당시 신생 이스라엘 즉 야곱의 족속은 국가도 아니고 그냥 한 집안이었습니다. 바람앞에 등잔 불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자기네 누이가 강간을 당하자 그것을 나중에 복수하였을 때에도 그들은 주변 족속들이 공격해올까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공격해오면 야곱의 일가는 다 멸족되는 겁니다. 그게 심히 두려워서 벧엘로 올라 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는데 이들이 지금 팔레스타인 가나안 땅에 계속 그렇게 있으면 언제 어디서 다른 족속으로부터 멸망을 당할지 모를 정도로 바람앞에 등잔불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그 당시 가장 강대국이었던 애굽으로 가게 해서 그들의 보호를 받아가면서 400여년이나 안전하게 있으면서 한 집안에서 국가로 성장시키게 하는 것이 마치 어머니 뱃속에서 10달 동안 태아가 안전하게 자라게 했던 것처럼 그렇게 그 민족을 자라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래야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그 계획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사용하시려고 그렇게 준비를 시키셨던 것입니다. 요셉 개인에게는 엄청난 시련이요 참아내기가 힘든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은 하셔야 하겠고 혹시 그가 넘어질까바 시험들까바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통하였습니다.
형통한 자 그대는 하나님의 의도를 잘 알아차린자입니다.
형통한 자 그대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느낀자입니다.
형통한 자 그대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받아들이는 자입니다.
형통한 자 그대는 늘 하나님을 앙모하는 자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했기에 그는 형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었고 하나님의 더 깊은 섭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물론 자기가 원하던 방식대로는 아니였지만 그는 그렇게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파도를 정말 멋있게 기쁨으로 잘 타고 나갔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형통한 삶입니다.
그래서 인생길 걸어가는 것은 외줄 타는 것과 같습니다. 큰 장대를 양쪽 손에 들고 가면서 그렇게 균형을 맞추면서 걸어가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걸어가야할 인생길이 이와 같습니다. 인생의 외줄을 걸어가는데 어떤 때에는 우리의 욕심이 아예 없어도 문제이지만 이 욕심이 너무 많아서 옆으로 쓰러져서 떨어질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중간에서 말씀과 기도의 장대로 균형을 잘 잡으며 나아가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앞에서 형통한 사람은 결코 편하게 살게끔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고난을 겪지 않으면 자기밖에 모릅니다. 자기가 잘 나서 그런 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전에 맹자의 시를 읽어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려는 사람은 고독하고도 지독한 하나님의 훈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고향땅을 떠나라고 하실 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세기 12:1-2)
여기서 복의 근원이란 뜻은 영어로는 Bless인데 Bleed에서 나왔습니다. bleed는 피를 흘리다라는 뜻입니다. 남을 위해서 자기자신의 피를 흘려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피를 흘려주는 사람이 된다....
남을 위해서 죽어준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이 되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복의 근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게 하시고 약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안땅에 기근이 오게해서 애굽으로 가게 되며 자기 부인을 바로에게 넘길정도로 까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외에도 아브라함은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제물로 갖다가 바치라고 할 정도로 극심한 아픔을 겪게 하시는데....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자 아브라함에게 임하였던 은혜는 얼마나 컷습니까? 그리고 그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해놓으십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16-18
고난당할 때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9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우리가 이 아픔을 통과할 때에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냥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시간을 속절없이 보냅니다. 그러나 그럴 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맞으러 새벽마다 밤마다 나오는 겁니다. 그 때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약할 때에 하나님은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세상의 어떤 쾌락도 세상의 어떤 것도 이 은혜를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 은혜를 제대로 받으면 세상의 어떤 것도 다 구역질 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주야로 하나님앞에 나와서 그분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은혜로다 주의 은혜 한량없는 주의 은혜
은혜로다 주의 은혜 변함없는 신실하신 주의 은혜
은혜로다 주의 은혜 변함없는 신실하신 주의 은혜
은혜로다 주의 은혜 변함없는 신실하신 주의 은혜
그래서 찬이슬을 맞으면서 온갖 시련과 폭풍을 맞으면서도 그 은혜를 받으려고 애를 써는 겁니다. 이 은혜를 받으러 60년대-70년대 80년대 한국교인들은 그렇게 주말마다 밤에 기도하러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러 올라간겁니다. 그 때에는 한국이 너무나도 못살고 삶이 힘들고 하니까 교회와서 기도를 그렇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이 은혜가 부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으며 그 고통을 이겨내면은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복의 근원의 사람이 되어가는 겁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북아메리카의 로키산맥.. 이 산맥 삼천미터 높이에는 수목 한계 선이 있습니다. 나무가 살 수 있느냐 없느냐의 한계선 입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너무나 매서운 바람 때문에, 위로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있는 모습을 한 채로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눈보라가 너무 심해 나무들은 살기 위해서 무릎을 꿇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모진 눈보라를 견디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하는 나무같이, 고통 없이 살아온 사람에겐 무덤덤하지만 한겨울 눈보라를 견디고 일어선 사람들에게서는 하나님과 공명이 잘 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공명도 잘 되어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마약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녀들을 둔 부모들을 위해서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본인은 정작 그런 아픔을 겪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열심으로 그분들에게 다가가고자 하시는데 제대로 도움을 줄 수가 없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잘 알고 있는 김 목사님은 그런 자녀를 둔 부모들과 얘기를 하면은 그분들이 100%공감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를 받고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왜냐하면 김목사님은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처절하게 체험을 하였기 때문에.... 그분들의 심정을 100%이해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쉽게 마음문을 열고 그분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겉으로 보기에는 강해보여도 평생을 파킨슨 병으로 고생했었습니다. 파킨슨으로 굉장히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고 이 파킨스병 때문에 평생 그는 기도를 많이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렇게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골다 메이어 총리는 1967년 이스라엘 총리로서 연립 내각을 이끌어 이스라엘을 부강케 했던 여자 총리입니다. 그런데 메이어 여자총리는 인물이 못났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인정하고 이렇게말했습니다. 자기는 정말 얼굴이 너무 못생긴 것을 부끄러해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고 혼자 피해다니면서 처녀시절에 열심히 공부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공부를 하고 많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게 된 것은 얼굴이 못났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얼굴이 못 생긴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나 못났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기도했고, 정말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나의 이러한 연약함은 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나라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약점과 실망은 곧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이 골다메이어 총리가 죽은 후에 12년 동안 사람들 모르게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더욱 더 기도에 메달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해서 자기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잘 감당을 한 겁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어렸을 때에 우리의 꿈과 소원은 크고 위대하였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대한 것도 기도하고 저런 위대한 것도 기도하고...
온갖것 다 들어달라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마치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밑을 바라보면은 이렇게 큰것도 해야되겠고 저렇게 큰것도 해야되겠다는 온갖 큰꿈과 생각들이 많습니다. 뭐든지 다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점점 비행기가 땅 밑으로 점점 내려오면서 구체적으로 뭐를 해야될지 좁혀지게 되듯이.....
어렸을 때 우리의 꿈은 무척 컸지만 살면서 꿈은 점점 더 작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꿈을 내려놓고 하나님안에서 하나님께서 작게 인도하시는대로 가면 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구한 것 --응답되지 않았음
베드로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 신이나서 세개의 집을 짓겠다고 했을 때에는 들은 척도 안하셨음.... 하나님의 인도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의 꿈은 거절을 당하고 당하고 당하다가 작은 것으로 작은 것으로 작은 것으로 자기의 사명으로 인도가 되는 겁니다. 남들 보기에는 초라해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를 그렇게 인도하신 거면 되는 겁니다.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욕심을 따라서 어거지로 우격다짐으로 구하고 주님이 응답치도 않으셨는데도 어떤 원하는 것을 인간적으로 억지로 차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행복하겠습니까?
예를 들면 다윗왕의 아들 중에서 암논이라는 왕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복남매인 다말이라는 공주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욕망인 것입니다. 그는 상사병에 걸리기도 하고 하여간 우여곡절끝에 그녀의 몸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소원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그녀가 꼴 보기 싫어졌고 그래서 그 다말을 내어쫓았습니다. 결국 복수를 다짐한 그녀의 오빠인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원해서 부득부득 억지로 하는 경우 설령 그것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엄청난 비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거기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고 우리의 야망을 따라서 얻는 것들은 이렇게 불행한 겁니다. 이민와서 많은 이민 가족들이 돈을 벌기위해서 밤잠 안 자고 돈만 벌기 위해서 건강도 돌보지 않고 하다가 제법 돈이 모일만하자 이제 행복해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도박으로 사람이 폐인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그것이 내 뜻과는 같지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삼손도 사랑해서는 안 될 여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삼손이 행복했습니까? 그 것 때문에 더 불행해졌습니다.
우리가 왜 힘들게 살아가느냐 이런 헛된 야망에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무리를 해서 잘 살려고 하다가 잘 살아지면 행복해집니까? 유명해지고 싶어서 유명해지면 행복해집니까? 이런 것들은 오히려 우리를 더 피곤하게 할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진작부터 그리로는 인도하시지 않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뜻대로 안 이루어진 것도 감사를 해야합니다.
---인생은 많은 꿈, 많은 욕심에서 적은 꿈, 적은 소망으로 발전하도록 인도함을 받습니다. 수 많았던 인생의 꿈들이 한 두개로 좁혀져 가는 과정,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 허무해질 필요가 없고 지금 주안에서 가진 것을 행복해하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면 그게 행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계획할찌라도 설령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주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따라가며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무척 불평하고 반항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들에게 심판의 메세지를 보내셨습니다. 광야에서 다 죽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들이 뒤늦게 심판이 무서워라서도 다시 가나안땅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너희들이 어찌 이제서야 가려고 하느냐 나는 너희들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들어가지 마라"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부득부득 우기고 들어갔는데 들어가자 말자 아말렉인과 산지에 거하는 가나안원주민들에 의해서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나안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행복의 땅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골골짝 빈들에도 하나님과 함께하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고 행복이 뒤 따라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