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연쇄방화사건.
#4. CCTV - 의문의 부호
지하철참사 1일 후. 사고의 사망자는 158명, 실종자는 207명에 달했다.
경찰은 사망자수색을 계속하면서도, 수사의 진전을 위해 탑승장소에 설치된 사고당일의 cctv영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범인색출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영상은 동시에 피해자의 유족들에게도 공개되었다. 이것은 실종자와 신원미상의 시신조사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저녁 5시.
사고대책위원회가 있는 건물의 한 별관에서, 사고지역인 중앙로역 전(前)의 역들의 영상이 모두 공개되었다.
중앙로역을 지나던 당해 열차가 출발 때부터 거친 역은 모두 15곳. 따라서 영상의 공개는 각 역별로 15곳에서 따로 이루어졌다. 사고피해자의 유족들은 피해자가 열차를 탔던 지역의 영상이 공개되는 방으로 각자 이동했다.
현석과 어머니도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우가 지하철을 탔던 곳은 집 근처의 '아양교역'.
중앙로역과는 6 정류장 거리에 있었다.
"여기에요, 어머니."
불과 하루만에 살이 쭉 빠져 야위어버린 어머니를 모시고, 현우는 '아양교역'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세워져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십 수명의 사람들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슬픔을 서로 위로하며 힘없이 서 있었다.
그렇다. 사람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가족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불과 만 하루만에 지독하게 약해져버린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의 가족이 '아양교역에서 중앙로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는 사실만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현석은 그들을 지나쳐, 말없이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모시고 영상이 가장 잘 보이는 맨앞자리로 가서 조심스레 앉았다.
그리고 10여분 뒤, 마이크를 잡은 한 경찰이 앞으로 나와선 모인 사람들을 죽 둘러보더니 낮고 조용한 톤으로 말했다.
"다 모이셨습니까?"
"......"
사람들에겐 이미 대답할 힘도 없었다.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경찰은, 말없이 옆의 보조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 보조는 어딘가에서 CD를 꺼내더니 그것을 앞에 놓인 노트북 CD-ROM에 넣어 돌렸다.
이내 방의 불이 꺼지더니, 다시 한 번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지금부터 사고 차량이 아양교역을 통과할 때의 cctv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가족이 여기서 탔는지, 그리고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지, 잘 한 번 보시고 기억해내주시길 바랍니다."
잠시동안 CD가 돌아가는 팬 소리가 심하게 들리더니, 이윽고 유족들의 앞에 영화관의 영상처럼만큼이나 큰 대형의 영상이, 자신들의 앞에 펼쳐졌다.
아양교역.
시각은 오전 9시 43분.
열차가 저 멀리서부터 달려온다. 이윽고 승강장 앞에 멈추어 서고,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내리고 타기 시작했다.
흑백영상에다 소리는 전혀 나지 않는다. 마치 찰리채플린 주연의 무성영화 같았다.
'저기서 내린 사람들은 정말 행운아들이구나...'
영상을 가만히 지켜보던 현석은 이런 생각을 했다. 어느덧 마음의 여유가 생겼단 증거다.
그런데 그 때부터 뒤에서 조금씩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영상에서 자신들의 가족을 발견한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타면 안돼... 여보..."
"안돼... 안돼..."
시간이 갈수록 고개를 푹 숙인채 끄윽끄윽거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상 내의 모든 사람들이 열차에 다 탔을 땐, 방안에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으아아아아아아~ 제기라알!!!!"
"여보!!! 으어어어어어어!!!!!"
"흐흐흐흐흐흐흐흐흑흑..."
유족들 중에는 미친듯이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눈물을 쏟아붓는 사람도 있었다.
곧 영상이 끝나고, 방 안의 불이 다시 켜졌다.
"모두 확인 다 하셨습니까? 그럼 다시 한번들 피해자의 인상착의와 옷차림을 기억..."
"닥쳐 이 새끼야!!!"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은 경찰에게 물병을 집어던졌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따라 다들 뭔가를 집어던지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쌓이고 쌓인 유족의 분노가, 영상의 공개와 더불어 드디어 폭발하고 만 것이다.
"범인 잡아와, 범인!!! 내가 족쳐주겠어 이새끼!!!!"
처음에는 훌쩍거리기만 하던 어느 평범한 주부마저도 이런 거친 말을 하며 경찰을 향해 가지고있던 음료수병을 던질 정도로, 방 안은 완전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현석과 어머니는 처음 그대로 맨 앞에 앉은 채 멍하니 있기만 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현석아..."
어머니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옆에 앉은 현석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예, 어머니..."
현석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cctv 영상에는, 현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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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연쇄방화사건 -#4. CCTV- 의문의부호-
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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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31 11:2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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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가요~